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50)
낭선기환담-349화(350/600)
낭선기환담 – 2부 59화
“그래, 우명 무선. 질문해보게.”
“환술로 인해 양천무장이 허상과 싸우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한데 문장은 왜 저러시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네.”
양천무장은 무도에 온 힘을 다한 무장이니 환술에 약할 수 있다.
허나 양천문장은 천문에 몸담고 있는 자다. 그런 천문장까지 천범의 환술에 농락당하고 있으니 의아한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줄기차게 싸우고 있던 문선과 무선들 또한 그게 궁금해서 문무관장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이기 때문에 간단한 속임수에 걸려들기 마련이지. 문장이 보고 있는 건 본래와는 다른 환진이다. 애초에 환진 자체가 허상인데 그것을 파훼하려 하니 저런 꼴이 된 것이야.”
문무선들의 입이 호선을 그린다.
양천문장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바둑돌로 환진을 그리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는 게지. 애초에 환술은 시작하기 전부터 교묘하게 걸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전술이다. 이게 만약 전시 상황이고, 실전이었다면 저 둘은 내 손에 죽었겠지.”
천범은 스스럼없이 둘에게 다가가 검을 꺼내 목에 가져갔다.
그러자 문무선들은 일제히 침을 꼴깍 삼켰다.
“이처럼 실전에서는 모든 것을 필요로 하고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상대방의 방심을 부추기고, 그로 인해 이점을 얻어야 하지. 한 번 본 이득은 차곡차곡 쌓여 나의 목숨을 이어주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만들어낸다.”
그의 경험이 다분히 녹아 있는 진솔한 말이었다.
“됐다! 파훼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양천문장은 환술을 깨뜨렸다.
하지만 기쁨에 젖어든 것도 잠시, 그는 둘러 앉아 구경하고 있는 문무선들과 연신 허공에 주먹질해대는 양천무장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파훼한 것은 환술이지 이곳에 펼쳐진 환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무관장, 이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번에는 팽가연이었다.
“좋은 질문이다. 만일, 둘 중 하나가 환진을 파훼했을 경우에는 나의 손실을 줄이고 적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끼치는 게 관건이다.”
휙.
손가락을 휘저으니 양천무장의 눈빛이 바뀌며 문장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날카로운 양천무장의 권압이 문장의 귀를 스쳤다.
“미, 미치셨소 양천무장!”
“흐흐, 문무관장. 날 속이려 해봤자 아무 소용없소이다!”
쾅 콰앙!
양천무장의 눈에는 문장이 문무관장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이다.
문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무장의 공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둘의 선력이나 기운이 많이 쇠하게 되겠지. 비겁해 보일지 모르나 전시에는 비겁한 것이 똑똑한 거고 용감한 것이 무식한 거다.”
절로 고개를 주억인다.
“뭐야 환진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어? 이럴 거면 나도 문선이 될걸….”
“뭐 임마? 천문선은 아무나 될 수 있는 줄 아느냐!”
“네가 할 수 있으면 나도 가능하지 뭐 그리 어렵다고!”
또 싸운다.
수천 살 먹은 사내들이 뭐 이리 어린아이처럼 툭하면 싸우는 건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지는 않다. 천무선도 그 나름의 강점이 있지. 아무리 교묘하고 강력한 환진을 펼쳐도 목숨을 잃는 자들을 나는 여럿 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관장 어른?”
“그렇다. 천 마디 말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를 듯하니….”
우, 우두둑.
몸을 풀던 천범은 이내 손을 휘저어 양천무장의 환술을 지워냈다.
“헛, 양천문장! 왜… 거기 계시오?”
“왜 여기 있긴…!! 아으으….”
양천문장은 벌써 무장에게 얻어터져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었다.
“다 하셨으면 이제 저와 좀 놀아 봅시다, 양천무장. 문무선들에게 보여줄 것이 조금 있어서요.”
양천무장은 자신이 농락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 올랐다.
이를 악물고 노려보는 것이 누구 하나 죽일 기세다.
“문장도 함께 하시지요.”
무선의 주된 강점은 수행의 8할이 강체를 단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선은 진법에 관련되거나 괴뢰, 또는 법기에 의지하는 편이다.
저 둘을 강체술만으로 상대해야 저들이 깨닫는 게 있을 거다.
“…후회하지 마시오.”
천범은 이내 자신의 환진을 지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양천문장이 붓을 꺼냈다.
그것으로 허공에 일필휘지하니 단숨에 진법이 그려진 것이 사라졌는데, 이내 연무장이 사라지고 우수죽순 대나무가 솟아올랐다.
문무선들은 솟아오른 대나무 위에 올라가게 됐고, 홀로 남은 천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상대의 환계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뭔지 아는 자 있나.”
그러자 문무선 중 하나가 외쳤다.
“진의 핵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도 틀리지는 않지만 다 대 일의 경우일 때는 녹록치 않지. 이럴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침착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
“쫑알쫑알 말이 많으시군!”
후웅!!
양천무장의 권압 한방에 대나무가 뽑힐 듯 쓰러진다.
역시 천무장은 천무장.
환술에 농락당했으나 그 육체만큼은 끊임없는 단련을 거친 듯하다.
“허나 무도는 자신보다 성취가 더 높은 자에게는 너무나도 취약하다.”
범은 무장의 주먹을 한끗 차이로 피하며 그의 손목을 잡아 꺾고, 발로 뒷무릎을 차 그를 무릎 꿇였다.
“헉!”
너무도 빠르고 정교한 솜씨에 문무선들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허나 그와 동시에 대나무 숲 사이에서 암기가 날아들어 그를 노렸다.
타타탁!
천범은 단숨에 피했고, 무릎 꿇어졌던 양천무장이 거리를 벌렸다.
그의 표정은 얼떨떨했는데, 아직까지 뭐가 어찌 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듯했다.
“방금처럼 무도라는 것은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 아니더라도….”
천범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를 주시하던 양천무장은 흠칫 놀랐고 이내 옆구리의 사선에서 내질러지는 천범의 주먹을 발견하여 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발생하니 양천무장이 대나무를 모조리 쓰러뜨리며 날려졌다.
“이렇게, 너무나도 쉽게 당하지.”
문무선들은 이제는 아예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경악하기만 했다.
푹, 푹푹푹푹푹!
그때 발밑에서 대나무 죽창이 솟구쳐 천범을 노렸다.
위협적인 기습이었으나 천범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죽창을 피해냈다.
“이제 무도만으로 환진을 파훼하고 나아가 진법사를 쓰러뜨리는 법을 알려주겠다.”
여유로운 모습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양천문장은 온갖 법기 등을 동원해 그를 공격했다.
허나 천범은 스치지도 않고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자 호기심을 참지 못한 문무선 중 하나가 소리 내 물었다.
“어찌 보이지도 않는데 다 피하실 수 있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범은 가볍게 답했다.
“답은 살기다.”
“아….”
“환진에 의한 환계라도 침착하게 적의 미약한 살기를 감응할 수 있다면 이렇게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다.”
환계에서 살기를 감응하는 것은 평소 때에 비해 열배 백배는 힘든 일이다. 환계라는 것 자체가 자연을 속이고 상대를 속이기 때문이다.
허나.
“살기를 느끼는 수행을 반복하다 보면 이 미약한 살기라도 그것의 근원을 찾아낼 수가 있지. 바로 이렇게.”
휘익!
바람처럼 사라진 천범이 어느새 문무선들 사이에 숨어있던 양천문장의 목을 잡았다.
“헉!”
그러자 단번에 환계가 풀려나고 다시금 천문궁의 연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도만으로 진법사를 찾아내 상대할 수도 있지. 애초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다방면으로 문무를 겸비하는 게 가장 좋기는 하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걸려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따로 궁금한 게 있는 자는 내가 있는 문무궁으로 찾아와 질문하도록.”
천범은 자리에서 일어난 양천무장과 아연실색하여 낯빛이 파리해진 문장을 보고는 천문궁을 나섰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끼니 때가 되면 밥 챙겨 먹어야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천범 혼자만 아무렇지 않은 듯 유유히 천문궁을 빠져나갔다.
정신 놓고 있던 팽가연과 우명은 흠칫 그의 뒤를 쫓았고, 남아있는 양천무장과 문장도 모습을 감췄다.
남아 있는 이들은 양천의 문무선들이었는데 그들 대다수가 문무관장의 모습을 떠올리고 말했다.
“이래서….”
이래서 여태껏 문무관장의 직책이 비어져 있었던 것이라고.
* * *
“하하하!!”
천범과 함께 문무궁에서 식사를 하던 주천무장 양휘는 예의에 어긋남을 알고 있음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웃어본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세 분이서 대체 뭘 하나 했더니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별 것 아닙니다. 그분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되니 제가 감내해야지요.”
겸손한 말과는 달리 아주 박살을 내버렸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첫날부터 양천장들을 개망신 주었으니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문무관장을 홀대하는 이는 좀처럼 없겠습니다.”
“하하, 그렇게만 된다면 저도 직무를 보기가 수월하겠습니다.”
“수월해지실 겁니다. 궁내의 소문은 발이 아니라 날개가 달린 듯 빠르니… 지금쯤이라면 대부분의 귀로 들어갔겠지요.”
그리 말하자 조금 심했나 싶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도 엄연히 정5품의 품계를 지닌 이들인데 너무 망신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할 때는 확실히 해야지.’
서열정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그리고 한 번 할 때는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좋다.
동지가 될 수 없다면 적 또한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상책이니.
“어쨌거나 너희들은 좋겠구나. 좋은 상관은 만나 상선보 하나씩과 원결단 하나씩을 손에 쥐게 되었으니.”
문무궁에서 일하는 자들이다.
오늘 처음 부임한 문무관장이 괴팍한 자는 아닐까 싶어 내심 노심초사했는데 돌연 하나씩 선물을 받게 될 거라 하니 당연 뛸 듯 기뻤다.
“어찌 말을 바꿀지 모를 일이죠.”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전부 보고 있었으니 말을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이곳은 소문이 빠른 곳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그들의 일 년치 봉급과 상선보와 원결단이니 적잖이 속이 쓰릴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주천무장과 담소를 나누는데 팽가연이 슬며시 다가왔다.
“관장 어른.”
“무슨 일이냐.”
“잠시 나와 보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뭔가 싶어 나가 보니 한가로운 문무궁에는 어느새 문무선들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연기처럼 모여 있었다.
“왜 모여 있는 겐가.”
“그게….”
오전 중에 보여준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저, 저도 문무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도 꼭 관장 어른 밑에서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문무궁에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직속을 바꾸고 싶다는 이가 절반.
“저는 무도에 대한 질문이….”
“저는 환진에 관하여….”
아까 전의 모습을 감명 깊게 보고 가르침을 구하는 자가 절반이었다.
“오후에는 천무궁으로 시찰을 나가 볼 참이었는데.”
열의에 찬 모습을 보니 오늘은 조금 힘들 듯하다.
그렇게 천범의 문무관장의 부임 첫날은 순조롭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