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52)
낭선기환담-351화(352/600)
낭선기환담 – 2부 61화
“팽 문선, 아직도 그걸 들여다보고 있었습니까.”
“아… 우 무선.”
이미 늦은 밤이다.
팽가연은 아직까지도 문무관장이 낸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저희 가문에서도 천재다 기재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고작 이 종이 쪼가리에 적힌 것이 무엇인지 풀어내지 못하네요.”
조금은 자조적인 표정이다.
허나 우 무선은 그녀의 심정을 조금 이해했다.
통천 수궁에 천문무에 속하는 신선이 된 자들 중에 천재소리를 듣지 않은 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데 그들 전부, 같은 경지의 상선인 문무관장의 시험을 풀어내는 이가 없으니 무력함을 깊이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라는 것은 문무관장을 뜻하는 말이겠지요.”
“하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울하네요, 문무관장을 보고 있으면 저 자신이 사실은 범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마니까요.”
고작 사흘이다.
고작 사흘 만에 문무관장이 보여 준 모습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이런 기분일까.’
우물 속에서 나와 넓디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개구리의 신세처럼 그녀의 마음 또한 처량했다.
“한데 그건 뭡니까.”
우명은 천범의 시험지 말고도 옆구리에 서책을 끼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무슨 수서 같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저 또한 문무관장이 보여준 환진이 신경 쓰여서요. 관장의 말대로 전시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방면으로 익혀볼 요량입니다.”
그가 지닌 것은 병법서와 진법서에 관련된 수서였던 것이다.
“한 번에 두 가지를… 쌍수(雙修))를 익히시겠다는 말입니까?”
“문무관장을 모시니, 남들보다는 가능성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만 익히기도 어려운데, 문과 무 두 가지를 동시에 익히겠다는 소리다.
수계에서 일부러 그 둘을 나눈 이유는 하나만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선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여 문과 무로 병과가 나누어져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쌍수를 하게 된다면 물론 수행의 성취가 느리고 오래 걸린다.
하나에 매진해도 천겁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쌍수를 익히면 이도저도 못하고 죽기밖에 더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천겁을 맞기도 전에 죽을 테니 시도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죠.”
팽가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오대세가의 자제 중에서도 우씨 세가는 과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자제라면 선살전이 일어나도 전장에 서지 않을 수도 있을 터.
‘이 사내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네.’
허나 그 기상만큼은 높게 살 만하다.
“문무궁에 몸담게 되었으니… 문무를 겸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성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겉보기에 나쁘지는 않다.
팽가연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도 무도에 관한 수서를 한 번 찾아봐야 하나 고민했다.
“엄마야!”
찌직.
돌연 문무궁의 궁녀 중 하나가 문무관장의 시험지를 찢어버렸다.
화들짝 놀란 눈과 표정을 보니 실수로 찢어진 모양이다.
“조심 좀 하지….”
“아,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쉽게 찢어져서….”
연신 고개 숙인 궁녀는 소선으로 문무궁의 가사를 책임지는 여인이었다.
“어?”
찢어진 시험지를 보는 궁녀의 눈이 조금 바뀌었다.
그러더니 반으로 찢긴 시험지를 한 번 더 찢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뭣 하는 게냐!”
팽가연이 호통쳤다.
시험지에 불과한 것이라도 문무궁 상석에 자리한 문무관장이 내린 것이다. 궁녀 따위가 남들 앞에서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팽가연은 문무궁의 하관으로서 따끔하게 호통을 치려 했다.
“패, 팽 문선님 이것 좀 보세요! 시험지가 찢어지니 그림이 달라지고 글자가 나타났어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라고 생각하던 팽가연은 찢겨진 시험지를 보고는 안색이 급변했다.
‘정말이잖아….’
네 조각으로 찢겨진 시험지의 위치를 바꾸자 구불구불한 지렁이를 그려놓은 듯 했던 그림이 그럴 듯한 형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가 빠진 듯한 글자도 아귀가 맞아들었다.
“정형파각(定型破).”
틀을 깨트려라.
“그림은 기초적인 진의 형태를 간 소화시킨 것입니다. 그랬군요… 이리 간단한 문제였다니.”
“정형을 깨트려라… 이제야 문무관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가 되는군요.”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
틀을 깨라.
“하하하하하!!”
팽가연은 풀어낸 시험지를 보고 참기 힘들다는 듯 광소했다.
예의를 중시하던 그녀가 저리 큰 소리로 웃으니 문무궁의 이들은 화들짝 놀랐다.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이 이런 간단한 문제 하나를 못 풀다니… 정말 관장께서는 저희를 바보천치로 만드는 재주가 있으신 듯합니다.”
아무도 풀어내지 못하던 것을 궁녀의 실수로 인해 풀린 것이다.
저 궁녀가 아니었다면 대체 언제쯤에서야 문제를 풀어내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아니, 한 달?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천의 자질을 지녔다 들어온 이들이 태반이다.
그런 자들이 이런 간단한 속임수를 꿰뚫지 못하니 어찌 바보 천치들이라 할 수 없겠는가.
‘오히려 많은 것을 알기에….’
틀에 얽매이고 갇힌 것이다.
문무관장이 전하고 싶은 게 바로 이것이었다.
팽가연과 우명.
그리고문무궁의 이들은 모두 대오각성 하듯 그의 뜻을 마음 깊이 새기고 곱씹었다.
* * *
“정형파각. 이거 즉석에서 그려 나눠줬다며? 이런 걸로 애들 놀리면 못 쓰는 거야.”
통천 서고.
그곳에서 만난 소녀 주약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그가 낸 문제를 단숨에 풀어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문제였습니다.”
“하긴, 그 바보들은 이것도 풀지 못해 쩔쩔매고 있긴 하더라.”
풍기는 기운은 향선의 것.
대천무장과 흡사한 기운.
‘원신.’
아마도 그녀의 원신이리라.
천범은 입꼬리를 올렸다.
“허나 이건 몰랐을 겁니다.”
천범은 자신의 시험지를 네 조각으로 찢어 이어 붙이고는 다시 여덟 조각으로 찢어 허공에 띄워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허공에 법진이 완성되며 금빛의 글자가 둥실 떠올랐다.
“저는 문무관장입니다. 문과 무를 항상 동시에 생각해야지요.”
첫 번째 해답이 무를 위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문을 위한 것이다.
무선에게는 문, 문선에게는 무.
그것이 그가 원하는 방향이니.
“신검합일?”
떠오른 글자는 그것이었다.
여러 글자가 모여든 선축문이었다.
신검합일이란 선축문 안에는 여러 구결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천범의 균천보화 속 강체술에 대한 묘리가 새겨진 것이었다.
‘열화판이지만.’
기초적인 강체로 사용하기 좋다.
법기나 무구를 통해 신체를 강화하는 강체술은 수계에도 있으니 다른 것과 섞여도 웬만하면 반발하지 않으니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한다.
‘수계의 수선들은 뭔가 형식에 얽매여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니.’
“흥, 이 정도는 알고 있었는걸.”
“정말이십니까?”
“그, 그럼!”
아마 몰랐던 모양이다.
천범은 소녀의 외양을 한 원신.
주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천유 어릴 때도 딱 이러했지.’
이보다 더 심했지만 기억이란 미화되기 마련이고, 아버지가 추억하는 딸의 모습은 언제나 어여쁜 것이다.
허나 오행팔괘신에 대한 구결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주약님. 죄송하지만 오행팔괘신을 돌려주시겠습니까. 한창 재미나게 읽고 있었거든요.”
“아직 네겐 일러! 상선 나부랭이가 익힐 공법이 아니거든? 좀 더 무럭무럭 자라나면 다시 오렴!”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딸 같은 아이가 말하니 귀엽게만 들린다.
“아니면, 할 수 있으면 뺏어 보던지. 가아아능하다면?”
천범은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다른 수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오행극산에 관한 수서는 그것 말고도 몇 개 더 있었고, 여러 문헌을 열람해보고 뭐가 더 나은지 셈을 한 뒤여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천범이 자신에게 신경을 끄자 주약은 볼을 부풀리고 그의 곁을 기웃기웃거렸으나 소용없었다.
“이거보다 더 나은 건 없을걸? 이거보다 더 나으려면 자기 체질에 맞게 익히며 조금씩 개량하고 개선하는 수밖에 없거든. 그리고 겨우 종4품의 상선에게 오행팔괘신이 열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야. 애초에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알아도 익히기가 어어어어엄청 까다롭거든.”
주약의 도발에 천범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럼 내기하시겠습니까?”
“내기? 내기 좋지!”
요즘 따라 왜 이리 내기하는 게 재미나는지 원.
겨우 웃음보를 참은 천범은 실실거리는 주약을 보며 말했다.
“제가 오행팔괘신을 익히지 못한다에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내가 통천 수궁에서 일만 년에 가깝게 서고를 들락거렸으나 단 누구도 오행팔괘신을 익힌 이를 본 적이 없었다. 상선은 물론 향선도!!”
“무엇을 거시겠냐 물었습니다.”
“흥,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가 만약 오행팔괘신을 익힌다면 이걸 줄게.”
주약은 품에서 영패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정2품 영패야. 이것만 있으면 통천 서고의 모든 수서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줄 수는 없고 서고를 열람할 때 내가 보증을 설 것이니 가진 것과 다를 바 없을 거야.”
간단히 말해 통천 서고의 모든 수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역시 대천무장의 원신이었군.’
그 원신이 왜 홀로 서고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거래다.
“기간은… 한 천 년 정도 잡아줄까? 아마 넌 그렇게 해도 못 할걸?”
자신만만한 기세다.
사흘 전에도 이렇게 자신만만한 둘을 죽을상이 되어서 돌아가게 한 기억이 난다.
“천 년은 제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니 그 반절로 하시죠.”
“오백 년? 뭐 나야 상관없지. 그래, 그럼 문무관장 넌 뭘 걸래?”
뭘 걸어야 잘 걸었다고 소문이 날까.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딱히 뭔가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뭘 원하는지 모르고, 대천무장의 원신이면 웬만한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위치다.
그가 고민하자 주약은 친히 내기에 걸어도 좋은 것을 말해주었다.
“네가 가진 것들은 나한테 필요 없는 것들일 테니… 널 걸어라.”
“절 말입니까.”
“그래! 지금부터 오백 년 안에 오행팔괘신을 익히지 못한다면, 넌 그때부터 내 노예가 되는 거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고작 상선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그것이면 난 충분히 만족하니 그리해!”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주약은 벌써 노예가 하나 생겼다는 듯 좋아했다.
“아참. 사실은 이거 때문에 온 건데 까먹고 있었어.”
주약은 천범의 손바닥에 구슬 하나를 올려두었다.
‘안에 뭔가 있군.’
무엇인지는 꺼내보아야 확인해볼 수 있을 듯하다.
“몰래 네가 가지고 있으랬어. 아무 한테도 들켜서는 안 된대. 그럼 난 전해줬으니까 간다. 아! 내기 절대 잊어버리거나 무르기 없기!”
그렇게 주약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천범의 손에는 오행팔괘신의 수서와 녹옥빛 구슬만 남아 있었다.
천범은 오행팔괘신의 수서를 순식간에 완독하고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몇 개의 수서를 더 읽어보고는 시간이 늦어 문무각으로 향했다.
자신을 반기는 비비와 주결경과 인사하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곧장 녹옥빛 구슬을 꺼내 던졌다.
구슬이 반으로 쪼개지며 그 안에서 운무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있는 자는 여인이라기에는 아직 어린 소녀.
“쓸데없는 걸 받아버렸군.”
소녀의 옷은 조금 헤졌으나 고급품이며 새겨져 있는 자수가 어느 가문의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인연이구나.”
소녀는 곤씨 세가의 마지막 혈육이며 곤가의 후계자인 곤사춘의 딸.
곤사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