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55)
낭선기환담-354화(355/600)
낭선기환담 – 2부 64화
흡족한 얼굴로 대천궁을 나선 천범은 공정강 하나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점점 이상하게 꼬이는 거 같기는 하다만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원근 스무 냥을 드리죠. 그리고 문무부대 안건도 결제해드리겠습니다. 언제 또 붕계나 사계의 첩자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고, 문무관장 또한 몸을 지켜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대천무장이 그렇게까지 해서 곤사비를 지킬 이유가 조금 궁금하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천범도 조금 도와줄 의향이 있다.
‘곤가의 비술을 익히려면 곤가 혈통인 사비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데리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오셨습니까.”
“음, 대천무장께서 윤허해주셨네.”
“아! 그럼 문무부대 창설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군요.”
“준비?”
“같은 소속이라면 숙소도 따로 합쳐야 하고 직속도 바꾸어야 하니 처리할 서류가 조금 있습니다. 물론, 그 결제는 문무관장이 해주셔야 합니다.”
오히려 그녀가 더 신나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내 몸을 지켜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라.’
그런 일은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세상일이란 게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수행에 더 집중하고 싶군.’
수행에 집중하고픈 마음이 커진다.
안 그래도 무도전에서 호준성에게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봉은 탄한여산과 다른 비술과 섞여 자기 자신을 수봉여산과 하나 되게 만든 지 오래다.
덕분에 범은 한층 더 고강한 선력과 힘을 지니게 됐으나….
‘아직 부족하다.’
상계에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신통과 법술이 난무하는 곳이다.
수계가 자신을 지켜주진 않을 뿐더러 이곳의 중심은 수궁의 문무관장이 되었어도 안전하지 않다.
어느 곳에 간다 하더라도, 수도에 몸담은 이상 자신의 안전은 자기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
그러니 범은 원할 수밖에 없었다.
‘상서에 간다면 차분하게 수행에 임해봐야겠어.’
지금은 안이나 밖이나 차분하게 수행할 만한 곳이 없으니.
* * *
일과를 끝내고 문무각으로 돌아온 천범은 자신을 맞이하는 비비와 주결경, 그리고 곤사비를 보았다.
곤사비는 결경과 같은 궁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앳된 티가 많이 났으나 옷 하나만 바꿨는데도 못 알아볼 정도로 외양이 바뀌었다.
전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짙은 화장과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수수한 궁녀 옷과 함께 화장도 지워져 있어 보기 좋았다.
“넌 화장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그 모습이 더 낫다.”
“…송구합니다.”
이제는 조금 자기 처지를 직시한 걸까. 반발심이 많이 옅어진 듯하다.
“결경,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은 없었나.”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릴 일이….”
말을 아끼는 것을 보니 사비가 들어서 좋을 게 없는 모양이다.
“사비, 밤이 늦었으니 넌 별채로 돌아가 먼저 쉬고 있거라. 결경, 자네는 잠시 들어오고.”
“예.”
비비와 함께 안채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결경이 차를 가져와 범에게 건네주고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불온한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문무각 주변에 말인가.”
“예, 제 노파심일지도 모르나 평소보다 문무각 주변을 힐끗이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벌써 눈치를 챘단 말인가.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
“생각보다 빠르군. 허나 그들도 아직 확신하고 있지는 못할 게야.”
곤사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은근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문무관장은 가문의 견제를 받기 쉬운 존재다.
괜한 제발 저려 움직임을 보이면 놈들은 곧장 물어뜯을 것이다.
“평소대로 행동하게. 그리고….”
범은 품에서 원근 두 냥과 수서 몇 권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것은….”
“수서는 곤씨 가문의 것이네. 비교적 다른 비전보다 기초적인 것이니 지금 건네줘 익히게 해서 나쁠 건 없을 게야. 내가 가르치고 싶지만 알다시피 아직 시간을 내기 어려운 입장이네, 사비가 내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귀찮기도 하고.
“나보다는 자네가 건네주는 것이 더 좋아. 그리고 이 원근은 혹시 모를 때를 위해 자네가 가지고 있게, 쓸 일이 있으면 쓰고.”
하루 중 절반 이상 가까이 하고 있는 자는 단연 주결경이다.
자신보단 그녀가 더 적임자다.
“그것으로 선단을 사서 함께 취해도 좋고, 수행에 필요한 귀물이나 선초를 사도 좋네.”
주결경은 저리 보여도 상선이다.
소선인 곤사비에게 좋은 가르침을 줄 수도 있을 게다.
“저보다는 문무관장께서….”
“짬이 나는 대로 나 또한 수행을 봐줄 것이니 그리해줄 수 있겠는가.”
주결경은 머뭇거리다 고개 숙여 알겠노라 답했다.
그제야 천범은 고개를 주억이고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앞으로 나는 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할 게야. 문무각에 신경을 쓰지 못할 일이 많겠지. 자네 또한 대천무장의 편이니 날 돕는 게 그분을 돕는 거라 생각하겠지?”
“물론입니다.”
“내 할 말은 다 했네. 더 하고픈 말 있는가.”
“물러나겠습니다.”
그녀가 물러난 뒤, 범은 벼루와 붓을 꺼내 무언가를 슥슥 적어 내렸다.
화란은 슬그머니 나타나 무릎을 껴안고 그 모습을 한가로이 바라봤다.
촛불 아래, 붓을 들어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 범의 모습은 경건하기 그지없어 절로 입가를 둥글게 만들었다.
그가 적는 것은 곤씨 세가와 관련 된 비술과 비전들이었다.
머릿속에서 뭉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적어가고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것을 생각난 김에 한 번에 처리하려는 것이다.
심심함에 놀려줄까 고민도 했으나, 진지한 그의 모습에 화란은 그냥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꾸벅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그녀는 범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그는 아직도 붓을 들고 있었다.
“안 일어났습니다.”
괜히 응석부리니 범이 붓을 내려 놓고 란의 등을 토닥거렸다.
“산군.”
“왜.”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범은 가만히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등선하면 다를 줄 알았습니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허나 아니구나.
이곳도 같구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하늘 아래의 세상일 뿐이구나.”
하계든 상계든 하늘 아래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 아래에 있는 존재들은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며, 그 치열한 삶 속에서 무언가를 갈구해야 한다.
그것이 애정일지 행복일지 다른 무엇일지는 각자의 손에 달렸으리라.
“그래서 후회하느냐.”
등선한 것을.
“후회할 게 있습니까. 전 그저 산군의 곁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럼, 백산이 그립더냐.”
“그립지요. 그 시절도 좋은 때가 있었으니. 창귀의 신세였을지라도 저는 그때도 좋았습니다.”
“하면 지금은.”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지금도 좋습니다.”
“정말이더냐.”
“예, 곁에 있을 수는 있으니까요.”
자신의 다리를 베고 말하는 화란의 진솔한 대답에 범의 손이 멈춰 섰다.
잔잔한 물결처럼 그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거센 파도와 같은 충격도 벅참도 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범은 그 잔잔함이 좋았다.
그리고 이 잔잔함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 맹세했다.
* *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새 문무관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
한 달이 지났다.
문무궁은 지난 한 달간 더 없이 북적북적해졌다.
이곳에 부관인 팽가연과 우명은 우수한 자질을 지닌 자들이라 딱히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밑의 하관들을 가르치며 일을 찾아서 했다.
팽가연은 냉소적인 부분이 많았으나 실리를 추구하고 찾아내고자 하는 집요함이 있었고, 우명은 팽가연이 놓치는 사소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문무부대의 부관으로서 문무관장의 손과 발이 되어 가르침의 전수에 크게 이바지했다.
“쓸 만해졌네.”
팽가연과 우명이 고르고 골라낸 문무선들은 대개 이도저도 아닌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문무궁에 입적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자신도 아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허나 그렇기에 문무부대의 일원이 되기에는 탁월했다.
“문무겸비라는 게 말이나 쉽지.”
직접 해보면 너무 어렵다.
하나만 알아가는 것도 평생에 걸려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것을 둘이나 하려고 하니 머리가 터지지 않고서야 베기지 않는다.
허나 그걸 해낸 이가 바로 문무관장이고 그게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그들도 의지를 다질 수밖에 없다.
“한 사십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얼추 백은 남았네.”
처음 받아준 숫자는 삼백.
강도 높은 수행과 시험으로 다 떨어져나가고 이제는 백 밖에 없다.
천범은 이들에게 딱히 뭔가를 해 준 기억이 없다. 특별한 공법이나 수서를 전달해준 적도 없고 선단을 만들어 준 적도 없다.
그저.
“이만하면 열심히 굴렸다.”
굴리고 굴렸을 뿐이다.
문무부대의 숫자는 백.
얼추 문선과 무선의 숫자가 동류를 이루어졌기에 문선과 무선을 나누어 하루에 한 번씩 대련하게 했을 뿐이다.
하루는 문과 무.
다음날은 어제 대련했던 자와 함께 문과 무를 바꿔서 시켰다.
그걸 반복하고 중간중간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함께 회의하고 그에 대한 답을 맞춰나갔을 뿐이다.
“관장 어른. 아까 저는 분명히 살기를 느끼고 적을 찾아 환진을 깼다 생각했는데… 왜 제가 진 겁니까?”
“자네가 느낀 것은 의도적으로 뿌린 살기의 흔적이었네. 무도로 환진을 깨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한 것이 살기를 느끼는 것이고, 그걸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역으로 당한 거지.”
“아….”
“아, 가 아니고 다음부터는 어찌해야 되는지 고민해야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자네 상대에게 물어봐. 자네가 생각했을 때 환진을 깨기 위한 방법으로 뭐가 적당했겠나.”
“제가 생각하기에 제 환진의 약점은 구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상대를 완벽하게 환계에 빠져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어중간한 환계를 깨고자 충격을 줬다면 쉽사리 깨졌겠지요.”
“그렇다는군. 자네는 환진에 대해 파악하기 전에 무작정 살기만을 고집했기에 대련에서 진 것이네.”
“아… 이런 바보 같은.”
무선이 자책하자 주변에서 경청하던 이들이 웃다가 위로해준다.
‘이렇게만 이어진다면 이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겠어.’
수행하는데 잔잔경정도의 모조품이나 잔잔혈정도를 쓰기도 하지만, 문무궁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하지.”
“벌써 가시는 겁니까.”
문무선 중 하나가 아쉽다는 듯 말 했다. 부임한 지 한 달.
천범은 휴가를 받아 잠시 궁을 떠나 있을 시간이다.
“뭘 착각하나 본데, 나도 자네들 같은 상선이네. 차분하게 수행도 해야 가르칠 게 더 많지 않겠나.”
그러자 문무선들이 쓰게 웃는다.
“어차피 1년 있다가 올 것이니 그동안 문무궁 잘 지키고 있게.”
문무부대의 배웅을 받은 뒤, 문무 각에서 짐을 챙겼다. 비비도 데려가고, 곤사비도 데려가고….
“결경, 자네는 어디 있을 겐가.”
“전 간간히 문무각을 돌보고 대부분은 대천무장의 곁에 있을 겁니다.”
“그렇군.”
대강 챙길 건 다 챙겼다.
결경과 인사를 나누고 수궁을 나서니 준비된 마차가 그를 반겼다.
수궁에서 휴가자를 위해 지원해주는 마차였다. 용과 봉황의 문양이 그려진 멋들어진 마차다.
“예전에는 벼슬자리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좀 정이 가네.”
기쁜 마음에 단숨에 올라타니.
“마부는 아닐 테고, 그대가 여기 왜 있는 거지?”
“관장, 저희 가문을 도와주십시오!”
마차에 먼저 탄 선객은 그와 안면이 있던 후씨 세가 막내아들 후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