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56)
낭선기환담-355화(356/600)
낭선기환담 – 2부 65화
“다짜고짜 도와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 나야?”
“문무관장의 피에도 저희 가문의, 선조의 피가 흐르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우리가 절대 남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빌어먹을 놈의 혈통 같으니라고.
누군지도 모를 놈의 피가 흐르는 걸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라는 건가.
정말 같은 피가 흐르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뭘 이리 뻔뻔하게 도와 달라 청하는지 원.
“하아….”
필사적인 저놈 얼굴만 봐도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러나.”
그러자 갑자기 후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대며 울먹거렸다.
“다 큰 사내가 내 앞에서 질질 짜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은데.”
작게 타일러 보니 그제서야 더듬더듬 사연을 들어볼 수 있었다.
“허… 그러니까 자네의 형이 환수의 습격을 받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오리무중 상태라고.”
“예, 그렇습니다!”
천범은 쩝쩝 입맛을 다시다가 귀를 한 번 후비고는 답했다.
“…그래서?”
“그, 그래서라니요! 저희 집안의 가주가 실종됐습니다!”
“그래, 알고 있네. 방금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 이 말이지. 그런 일이라면 수궁에 직접 탄원서를 넣어 일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이리 무례하게 휴가 가는 수선의 발목을 잡아서야 쓰나.”
휴가다 휴가.
열심히 일한 대가는 쥐꼬리만 한 봉급도 있지만 휴가 또한 중요하다.
휴가라면 응당 일주일이 일곱 시간 같고 한 달이 하루 같은 것.
그런 금쪽같은 신성한 휴가를 방해하는 일은 대라신선이 와도 안 된다.
“말도 안 됩니다, 탄원서라뇨! 환수의 습격이라고는 하나 놈들이 의도적으로 한 일입니다! 탄원서를 써 봤자 묵살당할 것이 뻔하죠!”
“그래서 내게로 왔다?”
뭔가 앞뒤가 이상한데.
“아버님이 그렇게 되시고 친하게 지내던 가문들 모두가 저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형님께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문무관장께 가서 도움을 부탁하라 하셨습니다!”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후가의 현 가주는 범과 전대 가주 사이에 대한 일을 뭔가 아는 듯 전음을 하기도 했었다.
‘깜빡 잊고 있었군.’
따로 한 번 만나자 하였으나 공사가 다망하여 시간을 내지 못했었다.
“그래도 나보다는 수궁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낫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환수로 위장하여 습격했다면 수궁도 무시하지는 못할 텐데.”
그런 일이라면 천무장 중 하나가 무선들을 이끌고 갈 만한 일이다.
“허나 제 탄원서가 거기까지 들어가지도 않을 겁니다. 중간에서 누군가 가로채거나 사라질 겁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지?”
“곤씨가 그리 당했으니까요.”
…그리 말하면 할말이 없다.
“자네 형님, 후 가주는 아직 살아 있다고 보는가.”
묻자 후해는 고개를 젓는다.
“그럼 다음 가주는 자네가 되겠군.”
그러자 점차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저희 집안의 가보만 제대로 전해졌더라도 이런 일이 생기지는…!”
뜨끔.
“그, 그럴 리가….”
“사실입니다!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온 쌍멸만 있었더라면 형님. 아니, 가주께서 그런 환수의 기습에 당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괜스레 가슴 한켠이 따끔해진다.
“…그래?”
“물론이지요! 문무관장께서는 잘 모르실지 모르나 저희 집안 가보인 쌍멸은 수계에도 몇 없는 연자보로써 그 강력함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강력하긴 하지.”
“예?”
범은 헛기침을 했다.
모른 척하기에는 양심이 찔린다.
쌍멸이 있었다면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때가 되면 돌려줄 것이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지금 돌려줘봤자 뭐가 해결되지는 않을 테고….’
쌍멸에는 불천불벽이 자리 잡아서 지금 돌려주면 괜히 욕이나 먹을 거다.
하니, 우선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다.
“우선, 조금 차분하게 이야기해보게. 자네는 아직 날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네.”
후해는 거칠게 눈물을 닦아내고 급히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관장 어른. 경황이 없어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찾아뵙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무도전에서는 그리 건방을 떨던 놈이 이렇게 고개를 숙인다.
후해의 어깨를 두들기며 묻는다.
“해서, 내가 무엇을 해줬으면 하고 찾아오셨는가.”
“저희 가문에 둥지를 튼 환수와 그를 조종하는 배후 놈들을 부디!”
배후라.
“자네는 환수의 습격을 주도한 게 누구의 짓인지 알고 있는 것 같군.”
“당연합니다!”
“그게 누구던가.”
“빌어먹을 팽씨 세가 년놈들이지요!”
팽씨라는 말에 천범의 눈가가 가늘어진다.
“확신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나머지는 가면서 듣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관장 어른!!”
후씨 또한 모른척할 수 없으니.
‘이러다 내 휴가 다 날아가겠구만.’
* * *
수궁으로부터 북동쪽.
융연(融聯)이라는 지역은 후씨 세가가 자리잡고 있는 땅이다.
산세가 가파르고 기둥처럼 생긴 기암괴석들이 하늘까지 솟아있는 곳이라 이곳에서만 나는 선초와 선석들로 풍족한 삶을 이어나가는 곳이라 들은 기억이 있다.
“융연의 선석들이 법기 제작에 아주 탁월하다던데 사실인가?”
“물론입니다! 저희 융연에서 채굴 하는 선석인 미선방(尾務)은 통천 수궁의 궁을 지을 때도 많이 사용됐던 선석 중 하나입니다!”
큰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미선방은 말 그대로 원형의 부채를 닮은 선기를 함유한 돌인데, 겉보기와는 달리 단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수궁 내부에 있는 궁이나 내각에도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특이한 성질로는 한 번 열을 가하면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 한계 없이 늘어나고 그 상대로 한 번 굳으면 열에 내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비싸겠네.”
“융연의 특산품입니다. 당연히 값싸지는 않죠.”
마차를 타고 융연에 도착한 천범은 흥미가 돋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미선방….’
상서로 가져간다면 극양상산에서 제작하는 법기의 질이 한층 더 뛰어나질 것이 명백했다.
슬쩍 물어보니 미선방의 가격이 어마무시하여 천범이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 보따리에 원근 한 냥.
비싸도 너무 비쌌다.
허나 이번 상황을 잘 마무리하면 어찌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그 환수라는 놈은 어디 있는 겐가. 생각해보니 무슨 놈인지도 듣지 않았군.”
“놈은….”
드드드드드득!
후해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거칠게 땅이 요동치며 일대에 지진이 일어났다.
순간 신식으로 땅 밑을 살핀 범은 후해의 뒷덜미를 잡고 날아올랐다.
콰아아악!
땅밑에서 어떤 거대한 무언가가 아가리를 벌리며 솟아오른다.
머리는 언뜻 거북과 같으나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
흙더미가 비산하고 그와 함께 놈의 몸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돌덩이를 이어붙인 듯한 기이한 몸이다.
“토갑룡입니다!”
생각보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집 한 채는 꿀꺽 삼킬만한 머리에 백 장 가까이 되는 몸체를 지녔고 앞다리만 존재하는 놈이었다.
천범은 후해를 하늘로 집어 던지고 곧장 합환호환검을 꺼내 날렸다.
공간을 찢고 사라진 합환호환검은 이내 토갑룡의 뒤에서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태앵!
허나 어림없이 튕겨나간다.
‘생각보다 단단한데.’
환수라기에 어렴풋이 무시했는데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천범은 합환호환검을 거두고 금안을 번뜩였다.
하니, 토갑룡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서고 멍한 눈으로 바뀌었다.
“환술에는 걸리는군.”
이내 수결을 맺고 부적 몇 장을 허공에 던져 법진을 만든다.
법진 속에서 금빛의 사슬이 튀어나와 토갑룡의 몸을 꽁꽁 묶었다.
그리고 목갑 속의 푸른 부적 한 장을 꺼내 토갑룡의 머리에 붙이니.
놈의 몸이 연기로 변해 부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딱히… 간단한데?”
뭐 이런 거한테 습격을 다 당하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후해는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내가 오지 않았어도 됐을 거 같은데.”
토갑룡은 갑옷을 입은 듯 단단하고 땅속을 헤엄쳐 다니기에 상대하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문 하나가 풍비박산 날 정도는 아니었다.
후씨 세가는 전대 가주가 죽었다지만 그렇다 해도 대가문이다.
곤가야 체질 자체가 특수하여 그런 거지만 후씨 세가는 그렇지도 않다. 가문의 가선 수 자체가 다른 가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의아해 물으니 후해 또한 당연하다는 듯 긍정했다.
“그놈 한 마리였다면 저희 가문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라면 천무선이 아닌, 그냥 평무선 다섯 정도가 왔어도 상대할 만했을 것이다.
“놈은 새끼입니다.”
“새끼? 방금 그게 말인가?”
허나 이어지는 후해의 말에 범 또한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새끼 크기가 백 장이 넘어간단 말인가!
“자세히 말해줬으면 좋겠군.”
“토갑룡의 습격으로 일단 저희 대궐이 몽땅 삼켜졌습니다. 놈의 한 입에 말이죠. 곧장 모든 가문의 가선들이 나서서 싸웠으나 놈은 땅속에서 수백 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공격해오는 통에 도중에 형님은 놈에게 삼켜지고, 다른 가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우 후해만 소식을 알리기 위해 빠져나갔지만, 대부분의 가문들은 도움을 거절했고 통천 수궁마저 그럴 거라 생각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저도 그렇게 큰 토갑룡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마 몇 만 년은 묵은 토갑룡이겠지요.”
“한데 그것이 어찌 다른 가문, 팽씨 세가가 의도적으로 꾸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전 보았습니다!”
융연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거대한 토갑룡 뒤에 자리한 누군가를.
“그만한 토갑룡이 아무 이유도 없이 융연을 공격할 리가 없습니다.”
필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팽씨가 존재한다.
그런 말이었다. 후해의 말 전부를 믿을 수는 없었으나 일단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듯 싶다.
‘내가 잡은 게 새끼라니….’
괜히 머쓱해졌다.
이놈이 새끼면 어미는 대체 얼마나 큰 것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라고는 하나, 이전의 오대세가에 앉아 있던 가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거각이었을 텐데 그것을 한 입에 삼켰다 하니.
“여기가 융연 초입부근이라 했나.”
“예, 그렇습니다.”
융연의 중심지에 후씨 세가의 터가 있을 것이고, 그곳으로 가기까지 토갑룡의 새끼들이 주변에 판을 치고 있을 테니….
‘완전 작정을 하고 후씨 세가의 씨를 말리기로 했나 보네.’
허나 그제야 납득이 갔다.
“곤씨 세가도 이놈들의 습격을 받았었을지도 모르겠군.”
엄청난 크기의 토갑룡과 그 새끼들 수십 마리가 나타난다면 통천 수궁이라도 쉽게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
‘흠….’
천범은 자신이 잡은 토갑룡이 들어 있는 부적을 보고는 품에 넣었다.
‘탐화 선물로는 딱이네.’
토갑룡.
탐화의 별식으로는 딱이었다.
새끼들이 수십이고, 어미는 엄청난 크기라 하니.
“탐화가 좋아하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