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2)
낭선기환담-361화(362/600)
낭선기환담 – 2부 71화
햇빛 하나 비추지 않는 어둠보다 검고 밤보다 깊은 곳.
혼돈의 바다와 같은 공간에 자리 한 검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여인이 붉은 실을 떨어뜨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 묻자 검은 무언가가 말한다.
[괜찮다. 예정대로다. 그와의 인연이 닿기 위함이다. 괜찮아.]묘하게 괜찮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다. 여인은 더 무어라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만나고픈 마음을 꾹꾹 억눌러가는 그 심정 어찌 헤아리지 못할까.
“그에게 알려준 공법은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혹여나….”
[됐다. 그만해라. 그는 괜찮다.]괜찮아야만 한다.
검은 무언가는 그리 바랐다.
* * *
화 수 목 금 토.
오행의 기운을 몸 안에 담아 다시 그것을 분할시켜 팔괘로 바꾼다.
☰건(乾)·☱태(兌)·☲이(離)·☳진(震)·☴손(異)·☵감(坎)·☶간(良)·☷곤(坤)으로 나뉜 그것은 하늘이며 땅이고, 산과 늪이며, 불이고 바람이고, 물과 벼락에 근간을 두고 있으니, 오행은 곧 팔괘이며 팔괘는 곧 자연이고 천과 지의 힘이니라.
천범은 수없이 오행팔괘신의 구결을 읊으며 입을 달싹였다.
허나 한 번 엇갈린 기로는 다시 뒤틀기가 어려웠다.
운공을 끊어내고 싶었으나 범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억지로 끊어내면 몸속에 스며든 오행팔괘신이 자신의 무언가를 앗아갈 것이라고.
‘젠장.’
범의 몸은 점점 더 빛이나기 시작했다.
팔괘의 오묘한 빛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을 물들여 눈부신 광채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끄으으으윽!!”
온몸이 타는 듯 고통스러웠다.
화신통을 수련한 자신이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분 탓이 아니다.
범의 전신은 까맣게 그을려 빛이 바래고 있었다.
팔괘의 힘이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범의 몸 안팎을 돌아다니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새까맣게 타버린 그의 피부가 쩌적 갈라지고 안에서 염화가 치솟았다.
천범의 전신이 발화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엄습한다. 범의 동공이 이지를 잃었다.
금색으로 불타는 범은 그대로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했다.
* * *
“찾았느냐!?”
“아직 못 찾았습니다!”
한창 상서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범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갑자기 강렬한 기운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을 때 확인했어야 했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그 기운이 느껴지던 곳이 바로 범이 있던 곳이었으니까.
별 일 아닐거라 생각했다.
원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내는 놈이고, 잠시 조용히 수행하고 싶다하여 그 일환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안일한 생각은 상서의 모든 수선에게 마른 하늘에 쏟아지는 금빛 유성을 보게 만들었다.
길게 꼬리를 이은 금색의 유성은 상서를 지나 건원해로 떨어졌다.
그게 범일 거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고, 꽤 시일이 지난 다음에서야 알게 됐다.
‘반년.’
그때부터 반년이다.
도계에 몸 담은 수행자에게 반년이라는 세월은 순식간이다.
잠시 폐관하여 몸속을 관조하는 것만으로 십 년이 지나기도 한다.
허나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수선이라도 죽을 때는 죽는다.
목숨의 경각에 차이는 없다.
빨리 구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주님, 이 이상 들어가면 건원해의 파도에 휩쓸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하필 떨어진 것이 건원해다.
하필 건원해에 떨어져 수색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아마 이대로 찾지 못한다면….
영영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하는 망연자실 새하얀 안개 그 자체인 건원해를 바라보았다.
“어디 있는 것이냐.”
그렇게 신중한 놈이 대체 뭐가 잘못되어 그러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범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고 이겨낸 자다.
고작 이런 일로 죽었을 리 없다.
그러던 중 범을 찾던 이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놈들이 벌써….”
우명이었다.
그의 중얼거림에 사하도 괴이한 잡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년 전, 팽씨 세가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괴멸시킨 장본인이 바로 천범이다.
놈들이 벌써 움직였을 가능성도….
사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지금은 범을 찾아야 한다.
다른 건 그 다음이다.
* * *
툭, 투욱, 툭.
일정한 간격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몸의 감각은 없으나 이상하게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린다.
‘여긴 어디지.’
힘겹게 눈꺼풀을 움직이니 보이는 것은 땅이었다.
싱그러워 보이는 선초들이 즐비했고, 그 자리를 자그마한 곤충들이 옹기종기모여 움직이고 있었다.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자, 천범은 자신이 웬 나무줄기에 옭아매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톡, 토옥.
머리 위에는 웬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져 머리를 적셨다.
뭔지 이해할 수 없어 일단 몸속을 관조하며 운기하려 하자 해일과도 같은 고통이 범람했다.
“커억!”
울컥, 한 웅큼 피를 토한 천범이 다시 고통스러움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웬 사내의 뒷모습이 그의 시야에 내비쳤다.
등이 넓어 듬직해 보이는 사내다.
그 사내는 묵묵히 약초를 잘게 빻고 다리고를 반복하며 제 할 일만 하기 바빴다.
그러다 힐긋 뒤를 돌더니 범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사내가 수결을 맺자 나무에 옭아매져 있던 범의 몸이 풀려났다.
나무줄기들이 범을 풀어놓고 다시 침상처럼 그를 눕혔다.
사내는 무어라무어라 말하며 범의 몸에 약초와 여러 선충.
그리고 끈적거리는 점액질 등을 올려놓았다.
사내는 쉼 없이 말했으나 범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고 다시 감는 날이 반복되었다. 안심하며 감을 수 있었던 것은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몸이 확실하게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사내는 재수 없이 자신을 보며 웃었지만 어쨌거나 그의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지만, 당시 범의 몸은 체내와 체외 모두가 심각하게 파열되어 있었다.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몸의 그을음도 서서히 사라졌다.
나무 껍데기처럼 갈라진 피부는 서로 맞물리기 시작했고, 새살이 돋아나며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수면에 취하던 범은 이제 절반은 깨어있을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아직도 몸속의 기혈이 회복되지 않아 신통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하여 저 사내가 누구인지, 어떤 경지를 지니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대와 혀가 어느 정도 나아져 범은 그에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음성을 내는 게 힘겹다.
쇳가루를 퍼먹고 말하는 것처럼 힘없고 거친 목소리다.
사내는 그 목소리에 뭔가를 크게 깨달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내가 누구냐… 글쎄, 일단은 충계에서 온 사내라 말해둘까.”
묘하게 친한 척 하는 음성이다.
허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충계! 그렇다면 이자는 충선이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충선이 어째서….’
자신을 치료하고 있는 거지?
범은 재빨리 당시의 기억을 되감아 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정신을 잃고 어딘가로 떨어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충계일 리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상서와 충계가 가깝다고는 해도 그 정도는 아니다.
계와 계 사이의 거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수백 년이나 천 년이 넘는 거리라는 게 존재한다.
제대로 된 동맹이 존재하지 않는 상계에서 계와 계 사이에 전송진이 존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왜…다…앙신…이 날….”
더듬더듬 물으니, 사내가 예의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네가 육문을 열지 않았더냐. 우리는 줄곧 육도의 문을 열 수 있는 자를 찾고 있었다.”
육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허나 육문이라는 소리는 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군. 충분히 그럴 만하지. 일단은 몸의 회복부터 하고 나머지는 차차 설명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단호하지만 은근히 다정한 그의 어감에 범은 저도 모르게 또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 * *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범은 자신을 구한 사내가 향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혈이 조금 회복된 것이다.
몸의 치료는 순조로웠다.
깨어날 때마다 검은 피를 토하던 것도 이제 멎어간다.
기혈이 회복되자 몸의 재생력이 단번에 급상승했다.
본래 균천보화로 인해 몸 자체가 보검이나 다름없는 그다.
게다가 아직 그의 몸속에는 수봉여산 또한 있으니 회복되는 속도가 극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놀랍군.”
족히 삼백 년은 누워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게 심각한 외상과 내상을 고루 입은 범이다.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내심 마음 졸이며 치료했던 그다.
허나 일정 궤도에 오르자 순식간에 회복력이 대폭 늘어나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겨우 삼십 년 만에 몸이 회복되다니… 정말 놀랍군.”
천범은 이제 몸을 일으킬 수 있고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일상적인 생활을 말하는 거고, 정상적인 수선의 모습을 갖추려면 아직 더 치료에 힘써야 했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몸을 회복하는데 자그마치 삼십 년이란 세월을 소비해버렸다.
‘휴가가 1년이었는데….’
그 서른 배를 쉬어버렸으니 무슨 낯으로 수궁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음은 물론, 사하와 다른 이들을 어찌 봐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몸을 회복하고….’
온전히 치료에 힘쓰고 수계로 돌아간다.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가 죽어버리면 우리 또한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야.”
그는 충계의 충선으로 자신을 존자라 불러달라고 하였다.
존자는 꽤 고명한 향선이었는데, 충계에서도 아주 높은 지위와 이름을 지닌 자라고 한다.
수천 년 내에 원선으로 승선할 거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육문을 연 자가 필요하다 하셨지요. 그건 어째서입니까.”
존자는 힐긋 범을 바라보고 답했다.
“충계에는 육절삼십육문이라는 옛 선조의 유물이 존재한다.”
그곳에는 선조의 진의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만든 자가 매우 특이한 선천신통을 지녔고, 육절삼십육문을 열기 위해서는 그 신통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괴비여각의 육문을 연 자.”
“그렇지 그렇지. 아무나 열지 못하게 자신의 후계를 위해 안배해놓은 육절삼십육문을 열면 안에는 상계일통을 할 수도 있는 대단한 물건들이 존재한다고 하지.”
허나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육문을 열 수 있는 자 여섯이 필요했다.
육절삼십육문.
서른여섯 개의 눈이 새겨져 있는 문에 육문을 개통한 자 여섯이 모여야만이 문을 열 수 있다.
“금박지주의 혈통을 이은 자들의 눈 중에서도 육문을 개통한 자는 매우매우 드물지. 피가 옅거나 깨달음이 부족하면 열기도 전에 미치거나 터져버리기 일쑤니까.”
금긴의 눈은 금박지주라는 혈통을 이은 특별한 법목이라는 듯하다.
“한데, 그 육절삼십육문에 정확히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겁니까?”
“모를 리가 있을까. 거긴 무덤이다.”
“무덤이요?”
“무덤이며 동시에….”
존자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 아직 확실한 것이 없기는 하지. 그보다는 네가 그리 된 일에 대해서 묻고 싶군.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몸이 그 지경이 됐었던 거지?”
대충 둘러대려던 범은 조금 생각해보고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는 향선이다.
어쨌거나 자신보다 경지 높은 수선이기에 명쾌한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존자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행팔괘신?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그건 충계의 공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