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3)
낭선기환담-362화(363/600)
낭선기환담 – 2부 72화
“충계의 공법이란 말입니까?”
“그래, 내가 익히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건 충계에서 만들어진 공법이야.”
혹시 몰라 오행팔괘신의 관련 구결을 읊어주자 더 확신을 가졌다.
“맞아, 내 지인중에 오행팔괘신을 익힌 자가 있어 알고있지. 한데 이것과는 조금 다른 듯한데….”
존자는 골자가 조금 바뀌어 있지 않나 하고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걸 어찌 아는지 참 희한하군. 알려줄 수 있나?”
범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수계의 통천 서고에서 보았노라 답하니 존자는 고개를 주억였다.
“통천 수궁의 서고라면… 충계의 공법이 있을 만도 하지. 허나, 구결 몇 군데가 잘못 적혀진 것 같군. 자네가 정말 그리 공법을 수련했다면 살아 있는 게 정말 신기한데?”
“그럴리가! 저도 오행팔괘신의 구결을 몇 번이나 해석했습니다. 잘못 되었다고 느낄 만한 무언가는….”
없다고 느꼈다.
허나 확답하지는 못했다.
“흠… 내가 알려주랴?”
“잘못된 부분을 말입니까?”
“그래,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뫼충지대를 넘어서면 내 지인이 살던 곳이 나온다. 놈은 이미 죽어 흙으로 돌아갔지만 관련 수서를 남겨 놓았거든.”
허나 선의로 행하는 일은 아닐 터.
“제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내가 자네를 왜 구했다 생각하나.”
“육절삼십육문을 위해서겠지요.”
“그래.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잘 알겠군.”
“절 데려가겠다는 것이겠죠.”
“똑똑해서 좋군. 허나 자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야. 뭣하면 충계에 터를 잡아도 도와줄 것이고 수행을 봐주는 것도 어렵지 않아. 아, 그리고 육절삼십육문을 열려는 향선 중에 자네와 비슷한 공법을 수행한 자도 있거든. 특유의 화신통이 비슷하게 느껴지는구만.”
“화신통 말입니까?”
“그래, 자네 조금 특이한 화신통을 수행하고 있지? 딱 느껴져. 그라면 자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을게야.”
범은 태천외양신공을 전수해준 화기린을 떠올렸으나 고개저었다.
그가 말하는 건 향선이다.
충계에 있을 리도 없을 뿐더러 원선의 경지를 지녔으니 그가 말하는 자와는 다를 것이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단칼에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의 자신은 상처 입었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우선은 모호하게 답하는 것이 좋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을 치료하고 회복하는데 큰 기여를 해줬으니.
“그래,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존자는 우선 회복에 힘쓰라 말하고 유유히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이내 다시금 딱정벌레 같은 선충들이 천범의 몸 위에 올라탔다.
나무줄기가 다시 그를 감싸 안고 머리 위에 수액을 떨어뜨린다.
신기하게도 몸에 붙은 선충은 몸의 독을 빨아들이고, 나무줄기와 수액은 몸의 상처를 치유한다.
듣도 보도 못한 치유법이지만, 지난 세월 착실하게 자신을 치료했다.
다시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그러하며 생각했다.
‘사하는 걱정할 게 없다.’
그녀의 말대로 아직 쓰임새가 다분하니 사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후해와 곤사비는 상서에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자신이 사라졌으니 지켜줄 이도 만무하니까.
수궁과 상서는 날아서는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고, 전송진을 이용해도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외곽.
후해에게 쌍멸이 존재치 않는 것은 이미 다 퍼지고 퍼졌을 거다.
눈치 빠른 자들은 영화비 또한 곤사비가 아닌, 범에게 있으리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겠지.
그런 와중에 의도치 않고 충계로 와 버렸으니… 어찌 보면 나쁘지 않다.
‘별로 좋지도 않지만.’
어쨌거나 한동안은 이곳에서 지내야 할 거다.
충계에서 상서까지 날아가려면 족히 몇 십 년은 걸리는 거리다.
존자는 무슨 방법을 써서 그 거리를 짧게 건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력으로 충계를 탈출하는 건 하책.
오랜 시일이 걸리고, 몸도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상태로 건원해를 건널 수는 없다.
‘대천무장은 내가 어디 있는지 대충 가늠하고 있겠군.’
영화비가 내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대천무장뿐이니.
관련 비술을 이용해 영화비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그녀다.
충계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의도치 않게 휴가 복귀를 하지 못했으니 관직에서 물러나라 하려나.
그럴지도 모른다.
궁중의 법도가 지엄하니.
그렇다 해도 커다란 문제는 없지만 법칙 수서와 함께 벼슬자리의 수혜를 제대로 누려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어쨌거나 우선은 회복이군.’
몸을 회복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후의 일은 이후에 생각하자.
범의 의식이 깊은 수마에 잠겼다.
* * *
이십 년 뒤.
상해버린 기혈을 회복시키는 것은 육체를 치료하는 것보다 배는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허나 범이 익히고 단련한 공법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 기간을 단축시켰다.
육체의 회복에 삼십 년.
기혈을 치료하는데 이십 년.
도합 오십 년이 걸렸다.
상계에 오른 지 팔십 년이 되던 날.
완전한 몸 상태에 오른 범은 존자와 함께 충계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충계는 원래 이럽니까?”
“하하! 활기찬 동네지 않나?!”
하늘을 가르며 둔광을 뿌리는 존자와 천범은 무언가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향선의 기운을 크게 과시하는데도 선충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수만 마리의 사마귀 떼가 그들을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충계가 원래 이렇네! 아무리 힘이 강하고 경지가 높아도 가끔씩은 이렇게 쫓길 수밖에 없는 곳이지!”
존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거리며 둔술을 운용했다.
붉은 빛과 금빛이 하늘을 가르고 그 뒤를 새하얀 사마귀들이 쫓았다.
사마귀는 새하얗고 분홍빛이 있는 놈들이었는데, 풀숲에 있으면 새하얀 꽃으로도 착각하기 쉬운 난초당랑(蘭草螳脚)이라는 놈들이었다.
본래 사마귀는 무리 짓지 않는 놈들인데 이놈들은 한데 모여 살며 꽃밭으로 위장하는 선충이었다.
“어떻게 못합니까?”
“처리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아. 허나 소란을 피우면 더 많은 선충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찾아올 거다!”
괜히 힘 빼봐야 더 도망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충계다.
충계는 씨족 사회로 이루어진 수계와는 다른 곳이다.
몇몇 지성을 갖춘 충선들을 제외하고는 충계의 대부분을 저런 선충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충계의 선충은 대부분 굉장히 호전적이라 한 번 소란을 피우며 싸우기 시작하면, 일대의 숲을 모조리 불태우지 않는 이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별 빌어먹을 곳을 다 보았나.’
덕분에 충계는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어, 아름다운 곳도 많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도 많다.
그렇기에 충계는 기름진 땅이면서도 다른 계의 침입이 적고, 선살전 때도 이곳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한다.
충선의 수는 다른 곳보다 적지만 그를 채우고도 남을 선충들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게다가 이곳의 충선들은 대개 복충으로 저런 선충을 키우는 충사들이기 때문에 상대하기도 까다롭다.
“이런, 냄새를 맡았나 보군!”
그때였다.
돌연 존자와 범 앞에 사람만한 덩치의 흉악한 벌떼가 도래했다.
그 수는 겨우 수백이라 난초당랑과는 숫자부터 확연히 차이 났다.
허나 크기는 벌들이 더 컸다.
“이쪽으로!”
존자가 범을 잡아끌고 품에서 망태기를 꺼내 뒤집어썼다.
이내 수풀 속에 숨자 사마귀들과 벌들의 전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충계는 향선도 선충들한테 도망치고 숨고 하는 겁니까?”
“괜한 힘을 빼지 않기 위한 지혜지. 그리고 저 선충들을 상대하다 보면 진이 빠져. 놈들 하나하나가 상선에 가까울 만큼 강력하니 말이야.”
존자는 자네가 만났던 선충은 충계에서 도태되어 도망친 약해빠진 놈들일 거라며 핀잔줬다.
“충계는 완전한 약육강식. 강자존의 세계임을 잊지 말게.”
존자의 말 대로였다.
난초당랑과 벌떼가 싸우자 다른 곳에서도 선충떼가 우르르 몰려나와 한바탕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하늘을 까맣게 물들인 선충떼들 사이로 난초당랑 떼는 앞발을 이용해 검기를 날리며 싸웠다.
후두두둑 추풍낙엽처럼 썰려나가는 선충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썰려나간 선충 떼들을 땅속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나타나 사체를 파먹거나 끌고 간다.
‘충계….’
그 단어의 참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벌레를 위한 계.’
오로지 충을 위한 곳.
그곳이 바로 충계이리라.
“우린 이 틈에 빠져나가지.”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였다.
돌연 구름 속에서 투명한 거대 지네가 굉음을 토해내며 나타났다.
“운은오공이군.”
구름 속에 숨어사는 지네인 운은 오공이라는 놈이었다.
몸체가 투명하여 몸속의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녀석이었다.
운은오공은 나타나자마자 거대한 입을 벌려 고래가 송사리들을 삼켜 버리듯 선충들을 삼켜댔다.
선충은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결집하여 운은오공을 공격하려 했으나 놈의 몸에서 희뿌연 안개가 뿜어져 나오자 쉽사리 공격하지 못했다.
“쉽게 보기 힘든 놈인데 마침 배가 고팠나 보군.”
“그렇습니까.”
“운은오공의 갑각은 수정보다 투명해서 쓰일 곳이 많거든.”
단단하기도 하고.
허나 말과 달리 존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범도 그보다는 그가 말했던 오행팔괘신의 수서가 있다는 만만충로라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만만충로(萬萬衝路).
충계에서는 가문 대신 지역의 패자를 군이라고 칭하는데, 존자 역시 충계 한켠에서는 군으로 불린다 한다.
만만충로 역시 존자의 지인이 군림하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다른 이에게 뺏긴 장소란다.
아무튼.
천범은 그곳으로 가 오행팔괘신의 완벽한 구결을 얻고자 존자의 안내를 받아 가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오십 년이나 지나버렸으니 수계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필요에 의해서였다고 하지만 목숨을 구명 받았으니 되는 부분까지는 존자와 함께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하도 나와 함께 있으면 또 자기 목숨을 던지려 할지 모르니.’
어쨌거나 이후에 육절삼십육문에 대해서 면밀히 조사하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고자 함을 위해서도 오행팔괘신의 제대로 된 구결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비록 실패하여 죽을 뻔 했지만, 순간적으로 오행팔괘신의 힘을 맛본 범은 그 충만함을 잊지 못했다.
오행의 힘을 팔괘로 나누어 다루는 힘. 오행팔괘신을 제대로 익힌 다면 범에게 부족한 다른 속성 신통에 대해서도 득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범의 앞길에 강한 수선은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살짝 막막했던 향선의 길도 오행팔괘신을 수행하면 열릴지 모른다.
그만큼 어려운 공법이지만, 범이 배운 것들 중에 어렵지 않은 게 없다.
한번 실패를 맛봐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오기 또한 생겼다.
‘아직까지 존자는 호의적이니.’
그 호의가 어디까지 적용될지는 모르겠다만, 유쾌하고 은근히 편안한 분위기를 내뿜는지라 동행하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그럼 가지. 만만충로는 꽤 머니까.”
운은오공의 포식으로 이제 선충의 비는 내리지 않았다.
허나 문득 범의 발길이 멈추었는데, 존자는 왜 그러나 싶어 뒤를 돌아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자기 처 웃고 난리야?”
“어차피 이리 된 마당이니 그렇게 급히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갑자기? 자네 말대로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괜히 선충들 싸움에 휘말려서 좋을 게 없잖나.”
범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품에서 공정강을 꺼냈다.
“뭘 먹어도 항상 배고파하는 아이가 있는 걸 깜빡했습니다.”
이내 천범이 공정강을 하늘 위로 집어 던졌다.
호박색 빛이 어른거리고, 그 안에서 새까만 운무가 피어났다.
먹구름처럼 부풀어진 운무 속에서 흉흉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흑운 속에 매끄러운 갑각이 용비늘처럼 햇빛에 반사된다.
언뜻언뜻 운무 속에 보이는 몸체가 거대한 크기를 짐작케 했다.
“오십 년이면 배고플 만하지.”
그 동안 줄곧 범의 공정강 안에서 토갑룡이나 뜯어먹고 있었으니, 슬슬 제대로된 밥을 줄 시간이 되지 않았던가.
범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밥이다, 탐화야.”
이내 흑운 속에서 새까만 오룡이 머리를 내밀고 괴성을 내지르며 단번에 운은오공이 만든 운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참혹한 비명이 절절하게 퍼지고, 이내 들려온 것은 콰직, 콰직.
무언가가 뜯어 먹히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