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5)
낭선기환담-364화(365/600)
낭선기환담 – 2부 74화
도(道).
도란 무엇인가.
자신 안에 도를 쌓고 그것을 갈고 닦으며 하늘의 진리에 맞선다.
그것이 수선이고, 그것이 불멸로 가는 길이며 장차 하늘의 법칙, 그 위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한데….”
만만충로의 충선에게서는 그러한 도가의 개념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무어라할까.
‘날 것 그대로라 해야 하나.’
그야말로 충계다운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범은 시작하기도 전에 맥이 빠졌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아니라 갑자기 탐화가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탐화가 나서서 종린이란 선충과 싸우기 시작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쿠웅!!
육중한 소리가 일대에 퍼졌다.
종린이란 선충이 쓰러졌고, 그 위를 탐화가 밟고 섰다.
싱거운 승부였다.
“별 것도 아닌 게 까불어!”
왜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탐화가 이겼으니 됐다.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된 겁니까?”
물으니 자리하던 충선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허나 존자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 물으니.
“만만충로의 선충들은 어느 정도 지성이 생기기 시작한 놈들이거든, 조금 더 경험을 쌓아 올린다면 충선이 될 수 있는 녀석들이지. 충선이 되지 않는 놈도 있어서 녀석들의 힘은 상선이라 봐도 무방해.”
한데 탐화가 주먹 한 방으로 처리하니 존자는 물론, 주변 충선과 선충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은연중 강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거 정말 기대 이상이로군.”
존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다른 선충이 탐화의 앞에 나타났다.
다음 놈은 꼬리가 셋과 집게발을 지니고 있는 전갈이었다.
그러자 탐화는 곧장 범을 바라봤다.
“괜찮겠느냐.”
“재밌을 거 같아.”
“…그럼 뜻대로 하거라.”
나름 즐거워하는 것 같으니 됐다.
이내 전투가 벌어지고, 탐화는 오룡의 본신을 뽐내며 만만충로에 모인 선충들을 모조리 패대기쳤다.
이후에는 충선들까지 호승심에 불타 탐화에게 덤볐으나,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그 싸움은 장차 열흘간 이어졌는데, 탐화는 잠도 자지 않고 연신 그들과 싸우며 먹어치우기도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먹어치운 놈들은 심보가 고약한 놈들이었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충끼리의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렇게 장차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천범은 만만충로에 입성할 수 있었다.
탐화는 힘을 증명했으나 천범은 그런 것도 아니어서 선충들이 길목을 가로막고 까불기도 했다.
허나 그럴때면 탐화가 흠씬 두들겨 패버렸고, 그 뒤로 만만충로에서 천범을 건드는 자는 없었다.
* * *
천범이 만만충로에 입성하고 열흘.
열흘간 만만충로의 충선들과 싸우기를 반복에 반복을 걸친 탐화는 대부분의 선충은 물론, 충선들을 무릎 꿇리게 되었다.
그 이후, 만만충로의 충선들은 모두 탐화를 이웃으로, 강자로 떠받들었다. 그래서 만만충로 어느 한켠을 걸어다니다 보면, 충선이든 선충이든 모두 잠시 멈춰 예를 올리고는 했다.
천범은 강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나름 감명 깊게 보았다.
충선은 그렇다 쳐도 아직 신의 반열에 오르지 않은 선충들도 탐화에게 예우를 갖춘다는 게 신기했다.
허나 그것을 제외하면 만만충로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기척이 하나하나 느껴졌고, 틈만 나면 선충들은 서로 치고 박고 싸워댔다.
생존을 위할 때도 있고, 그냥 놀고 있는 것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선충들은 심심하면 싸우거나, 아니면 먹기 위해 싸웠다.
충선들도 별 차이는 없었다.
여기 있는 충선들은 말의 어휘가 다소 부족했는데 그 이유는 충계에서는 말을 많이 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계의 상선들은 대개 저런 느낌이지. 우리는 다른 계처럼 어디 동굴에 들어가서 폐관 수련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죽고 사는 생사결을 통해서 자신의 강함을 인지하고 더욱 강해지고자 강한 상대를 찾아 나서니까.”
“영생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우린 그렇지 않아. 다른 수선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충계는 오로지 자신의 강함만을 위해 투쟁하지.”
그리고 그 깨달음은 오로지 전투를 통해서 습득한다.
그야말로 생사결의 삶을 사는 충계만의 수련방법이었다.
존자의 설명에 범은 의아했다.
‘그런 자들이 왜 육절삼십육문에 집착하는 거지.’
그의 말에 따르면 충계는 실전의 경험을 최고로 치며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여 승선에 오르는 자들이다.
그런 전투광들이 어째서 옛 충선이 남겼다는 육절삼십육문을 얻고자 하는지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튼 만만충로는 강해지고자 마음먹은,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충들이 모인 곳이지.”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범은 그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시작은 이곳에서 나타난 충선 하나가 귀찮아서 비술을 만들어 충계 전역에 강자를 불러들였다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숫자가 찾아왔고, 후에 충들의 사체로 쌓아진 길이라 하여 만만충로라는 이름이 붙어버렸다고.
“그리고 그게 바로 날세. 하하하!”
“…정말입니까?”
“오래된 일이지. 아마 이제는 기억하는 이도 내 주변 놈들뿐이니….”
존자는 오래된 기억을 상기하듯 지그시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꽤 즐거운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한데 지인이 만만충로의 군이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충계에서 땅의 주인, 군이 바뀌는 것은 대부분 군의 죽음을 의미한다.
“질려서 넘겨줬지. 근데 이놈이 한 사천 년 정도 잘 지내다가, 새로운 놈한테 죽어버려서 말이야. 지금 만만충로의 군이 그놈이다.”
별 것 아닌 듯 이야기하는 존자의 모습에 범은 기시감을 느꼈다.
“슬프거나 화나지 않으십니까.”
지인이 죽은 것이다.
자신이 직접 군의 자리를 넘겨준 지인이 죽었으니 당연, 지금의 군에게 살심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다.
“충계란 그런 곳이지. 그놈이 죽은 건 약했기 때문이다. 약한 게 죄는 아니지만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지. 본래 세상은 강자가 군림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으나, 그렇다 하여 맞다고도 하기 어려웠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강자가 군림하는 것이 당연지사지만, 그렇다 하여 제 지인의 죽음을 그리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시 태어나잖아? 무엇으로 태어날지는 모르지만, 죽음 또한 하나의 굴레일 뿐이니. 충계의 충선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
슬픔을 감추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범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역시 아직은 충계도, 충선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아가야 할 듯하다.
“존자.”
“왜 그러시나.”
“오행팔괘신의 진본은 어디 있습니까. 만만충로는 오로지 숲과 산밖에 보이지 않는데, 진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범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하자 존자는 걱정 말라며 답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자네가 바라는 오행팔괘신 또한, 만만충로의 군이 있는 거처에 있을 걸세. 대대로 군의 거처는 그곳밖에 없으니까.”
그리 말하는 존자의 말에 따라 만만충로를 잠시 걷다보니 희한한 기암괴석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 모양이 단순한 거암은 아닌 듯했다.
“이거 설마 나무입니까?”
고개를 위로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크기가 컸고, 겉 표면은 우둘투둘하여 석괴 같았다.
특유의 모양이 아니라면 절대로 나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기는 또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나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도 이전에 기거하던 곳이지. 이 근방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놈이야. 난 기갈석목(飢渴石木)이라고 부른다네.”
기갈석목.
‘말라붙은 돌 나무라는 건가.’
범이 잠시 그 뜻을 유추하고 있을 때, 존자는 슬쩍 주변을 살펴보다 갑자기 섬뜩한 살기를 표출했다.
그러자 한 차례 만만충로가 들썩이고 군이 기거한다는 기갈석목이 뜬금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말 못 한 게 하나 있네.”
“그게 뭡니까.”
“아마, 만만충로의 군은 우리를 쉽게 저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할 게야. 하니, 우린 역할을 나누어야 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보면 알게 될 걸세. 자네가 할 일은 몰래 저 안에 들어가는 거지.”
그때였다.
돌과 같은 겉 표면이 수축되고, 돌연 땅 속에서 기갈석목의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존자를 공격했다.
‘빨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다.
순간적으로 흙더미가 비산하고 창처럼 날카로운 뿌리가 존자를 노린다.
헛바람을 집어삼킨 범과는 달리 존자는 기다렸다는 듯 뿌리를 쳐 내고 기갈석목의 몸통을 냅다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에 일대에 굉음이 널리 퍼졌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기갈석목에 일격을 먹이는 존자의 모습은 천범이라도 마른 침을 삼키게 했다.
‘강하다.’
향선이라 강한 줄은 알았으나, 그 이상으로 강했다.
조금 전의 그 일격.
가볍게 내지른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갈석목은 꽤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 살기를 표출하면 어찌 아는지 먼저 공격하거든. 그때를 틈타 석목 중심에 일격을 박아 넣으면 석목은 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쩌저적. 이내 존자의 일격을 받았던 기갈석목의 중심지가 갈라져 작은 틈이 생겨났다.
“이렇게 문이 열리지.”
만충로의 군은 이 안에 있다. 기갈석목의 문을 열 수 있는 자. 그리고 기갈석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자가 비로소 만만충로의 군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수계의 수선인 자네는 잘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충계의 충들은 나무가 집이고, 또 쓰러트려야 할 존재거든. 나무가 너무 커버리면 새 나무가 올라오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숲이 병들기 십상이거든.”
숲이 병들면 터전이 사라지고, 터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 죽게된다.
“하여 이 기갈석목을 쓰러뜨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내게 벽은 하늘이 아니라 바로 이 나무였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존자의 어투에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보지.”
“예.”
짧게 대답하던 그때.
돌연 기갈석목의 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범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거대한 살기다.’
살기로는 범 또한 어디 가서 꿀린 적이 없었는데, 이 정도로 거대한 살기는 난생 처음 느껴봤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모를 정도다.
마치 태산과도 같은 살기.
살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섬뜩했다.
[누구냐.]기갈석목 안에서 울려 퍼진 낮고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울려 퍼진 음성에 담긴 기운은 상선의 것이 아니다.
향산신선의 것이 분명했다.
“만만충로의 이웃이지. 기갈석목에 있을 수서 하나가 필요해서 말이네.”
허나 들려온 대답은 칼 같았다.
[내게 이웃은 없다.]“이웃이 없다라, 그럼 만만충로에 자리한 이들은 모두 뭔가?”
[전부 내 먹이일 뿐이다.]“허허, 오만한지고. 허나 만만충로의 군의 자리에 오른 오만함 답다!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탐랑군.]이내 기갈석목의 벌어진 입구에서 육중한 갈퀴가 턱하니 나왔다.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에 각갑으로 몸을 둘러싸고 있는 향선.
앞발은 사마귀와 같은 날카로운 갈퀴가 자리하고 있어 순식간에 상대를 도륙할 수 있을 것 같은 팔이었다.
“탐랑군! 우린 기갈석목에 자리한 오행팔괴신의 수서가 필요하다. 잠시 그것을 가져가도 되겠는가?”
예의를 갖추고 물었으나 탐랑군은 서늘한 시선을 내비췄다.
[나 탐랑군의 거처에 들어올 수 있는 놈 따위는 없다.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라. 허나, 그때에는 네 목이 뜯겨져 나가 있을 것이다.]“만만충로의 군자께서 그리 말을 빙빙 돌려하시나, 그냥 싸우고 싶다면 싸우고 싶다 말하면 될 것을!”
그러자 탐랑군이 씨익 웃었다.
[기갈석목에 들어가고 싶다면 날 죽여라. 그리하면 간단한 일.]존자와 탐랑의 호승심이 만발했다.
이내 둘의 모습이 사라지고, 하늘 한켠에서 거대한 파공음이 펼쳐졌다.
콰아아앙!!
경천동지할 굉음이 숲속을 가로지르고 둘의 전투에 숲의 나무들이 죄다 뽑혀나가고 잘려나갔다.
대부분의 충선과 선충들이 둘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천범은 가만히 기갈석목의 문을 바라보다 슬쩍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