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6)
낭선기환담-365화(366/600)
낭선기환담 – 2부 75화
유유자적 기갈석목 안으로 들어선 범은 의외로 넓은 공간에 놀랐고, 수십 층으로 분리되어 있는 모습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층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향긋한 향기에 취해버릴 정도의 선초가 자리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버섯들도 여기저기 피어 있었는데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버섯과 선초들이 즐비했다.
순간 가져갈까 마음이 동했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 삼층으로 갔다.
삼층은 이층과 달리 온갖 썩은 내가 풀풀 풍겼는데, 거대한 선충의 사체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탐랑군의 포식 흔적으로 보였다.
이내 사층, 오층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었으나 범이 관심 가질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한 웅덩이에 받아놓은 녹빛 물이라던지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점점 층수를 올라갈수록 그런 현 상은 더 심했다.
“이건 알인가….”
동그란 형태의 백색 알들이 십이 층에 한가득이다.
탐랑은 사마귀의 형태에 가까운 충선이었으니, 그의 알인지도 모르겠다.
“암컷… 아니, 여선이었던건가.”
겉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허나 이 또한 범이 관심가질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니 서른여섯층까지 올라간 범은 드디어 반가운 물건을 찾았다.
“이거 오랜만에 보네.”
수정에 담겨있는 눈알.
안시석이었다.
다만 담겨 있는 것이 짐승의 것이 아닌, 충의 것이었다.
동공이 여러 개로 분열되어 있어 조금 섬뜩했다.
범은 잠시 쌓여있는 안시석을 바라보다 몇 개를 집어 살펴봤다.
이내 안시석에서 빛이 새어나오자 벽면에 기괴하게 생긴 충선이 나타나 몇가지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팔을 뜯었다 붙였고, 이내 자신의 팔을 먹어버리기도 했는데 잠시 후에 다시 새 팔이 자라났다.
안시석의 영상이 끝난 후에는 글자 몇 개가 올라왔는데 앞서 보여 준 관련 공법의 구결인 듯 보였다.
신기해 다른 것도 살펴보니 별의 별 해괴한 비술들 뿐이었다.
대부분 충선의 초점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 탈피에 관한 비술이나, 알을 낳아 몸을 바꿔치는 비술 등등 범은 따라할 수조차 없는 것들이 많았다.
여기 있는 수백, 수천 개의 안시석들이 전부 그러한 것들뿐이었다.
이걸 다 언제 보나 한숨 쉬고 있으니, 묘하게 안시석의 모양이 전부 같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눈이 세 개네.”
눈, 그러니까 동공의 갯수가 다른 것들이 조금 있었다.
이내 그것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니 동공의 갯수가 적은 것은 그만큼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고, 갯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계 비술인 경우가 많은 듯 했다.
안시석의 동공은 최대 열두 개까지 있었는데, 열두 개에 달하는 것은 총 세 개밖에 없었다.
그것 세 개를 연달아 살펴보자 이내 천범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세 개중 하나의 안시석에 나온 충선이 다섯 개의 산을 들고 그것을 이내 한데 모아 몸속에 담는다.
그리고 오행의 기운을 팔괘로 바꾸며 등 뒤에 팔괘의 문양이 펼쳐져 둥글게 자리한다.
여기까지는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이후의 것이다.
이내 오행이 바뀐 팔괘의 모습이 분열되어 배치가 바뀐다.
상하, 좌우.
괘의 모습이 여러 번 바뀌고 분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범의 눈동자가 치켜떠진다.
“그렇군. 존자의 말이 맞았어.”
범이 보았던 오행팔괘신을 존자는 와전된 것이라 폄하했다.
그리고 통천 서고에서 주약 또한 그러했다.
오행팔괘신을 제대로 익힌 자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내심 그럴 리 없을거라 생각하던 천범도 이제는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안시석이 보여주는 팔괘의 모습은 이내 육십사괘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행을 단순한 팔괘로만 바꾸어 힘을 다루려 했으니 기혈이 꼬이고, 힘이 한쪽으로만 쏠려 역천한 것이야.”
흐르는 계곡 한가운데에 댐을 만들면 물은 고이기 마련이다.
그러고 조그마한 길을 낸다면 댐은 붕괴하거나 넘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면 둘 다거나.
그러니 실패했던 것이다.
‘팔괘를 나누어 육십사괘로.’
팔괘에서 십육괘.
십육괘를 삼십이괘.
그리고 삼십이괘를 육십사괘.
그리해야 전신으로 고루 퍼진 오행과 괘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이다.
안시석에 자리한 충선은 오행을 육십사괘로 바꾸었고, 육십사괘의 문양은 이내 피부로 스며들어 문신처럼 바뀌었다.
관련 구결이 내비치며 공법의 제대로 된 이름이 나왔다.
“오행육십사괘신.”
천범은 오행육십사괘신의 구결을 곱씹으며 홀리기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멍한 얼굴로 품에서 수봉여산을 꺼냈다.
스르륵.
분열된 수봉여산에서 다른 사행극산이 나타나 빙그르르 선회했다.
이내 각기 다른 오행의 기운이 범의 몸으로 스며들고, 등 뒤로 자리한 오행극산의 모습이 팔괘로 변화한다.
여기까지는 같다.
전신이 뜨겁게 달구어진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똬리를 틀었다.
이전처럼 실패하여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
허나 멈출 수 없다.
안시석의 오행육십사괘신을 펼치는 모습을 봐 버린 순간, 천범은 직감했다. 이것을 익혀야만 한다고.
그래야 향산신선으로의 길이 열릴 것이며, 자신의 수행을 가로막고 있는 벽 또한 뚫릴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은 그때.
팔괘의 문양이 빙그르 돌아가며 천천히 분열하여 재배치된다.
팔괘.
십육괘
삼십이괘.
그리고 육십사괘.
드르르륵, 철컥! 하는 육십사괘의 소음과 함께 범의 금안이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일어나고 육십사괘의 중심에 만다라의 형상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연꽃의 형상이 피어나자, 육십사괘의 검은 문양이 서서히 금빛으로 바뀌어간다.
범의 입에서는 쉼 없이 선문이 흘러나와 기갈석목을 가득 메웠고, 눈부신 금광이 사방을 채웠다.
이내 육십사괘가 금빛으로 바뀌어 몸으로 스며들자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린다.
“크으으윽….”
등 뒤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육십사괘의 문양이 몸 곳곳에 자리 잡는다.
등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팔다리로 점점 나아간다.
천범은 몸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구결을 읊고 또 읊었다.
그리고 마침내 육십사괘의 모든 문양이 전신에 자리하여 금색으로 발광했고, 천범은 넘치는 전능감에 사로잡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친 것처럼 파안대소했다.
“하하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웃기만 하던 천범은 이내 자신의 몸에 자리한 육십사괘의 문양과 금빛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힘이 아니었어.”
팔괘만 해도 단순히 내포하고 있는 뜻이 많다.
허나 그것을 뒤집고 따로 맞추어 육십사괘로 바꾸니 그 변화무쌍한 참뜻은 배에 가깝게 불어났고, 그것 하나하나가 큰 깨달음을 선사했다.
“신기하군.”
육십사괘를 몸으로 받아들이자 평소엔 느낄 수 없던 것들이 느껴진다.
천범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꼭 주먹을 쥐는 것이 처음인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천천히 쥐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갓난쟁이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느리게 주먹을 뻗었다.
기갈석목의 벽 한 곳에 이보다 느릴 수 없을 정도로 뻗었다.
일권을 뻗은 게 아닌, 그저 벽에 주먹을 가져다대는 것처럼 보였다.
툭.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모습은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쩌억!!
기갈석목이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강력한 일격을 받았을 때, 그 충격을 덜어내기 위해 이렇게 갈라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기갈석목이다.
한데, 천범이 그저 가져다 댄 주먹만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보인다고 해야 하나….”
느껴진다 해야 하나.
육십사괘를 몸에 담자, 세상 모든 만물이 느껴졌다.
그들의 강한 기운, 그리고 약한 기운등이 눈에 선하듯 느껴졌다.
분명 아까까지와 다름 없는 세상일 텐데, 범에게는 이상하게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리하길 잘했어.”
어찌보면 오행팔괘신 때문에 충계로 흘러들어오게 됐으나, 그 덕에 제대로 된 오행육십사괘신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 오십 년.
무의미하지 않았다.
단번에 보상 받는 기분이다.
‘주약과의 내기는 내가 이겼군.’
이제 대강의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가야겠다.
아직 온전하게 이 힘을 써낼 수는 없겠지만, 시작은 이뤘다.
충계에 온 보람은 충분히 얻었다.
“극명하다.”
극명하게 보인다.
허나 한 가지 걸리는 거라면.
쾅, 콰아아앙!!
밖에서 신명나게 싸우고 있는 둘 중 하나인 존자가 마음에 걸렸다.
‘어쨌거나 날 구했으니.’
그게 의도적이라해도, 원하는 것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해도 목숨을 구명 받았다.
그 사실에 의의는 없다.
받은 게 있으면 갚는다.
그것이 은이는 원이든 그리하는 게 맞다.
“속에 무얼 품었는지 몰라도. 그 전까지는 그리하는 게 옳지.”
그래야 범의 심 속에 무언가가 남는 일이 없을 테니.
휘이익.
천범의 몸속에 스며든 괘의 문양이 사라지며 금광이 자취를 감춘다.
이내 차오른 전능감이 사그라든다.
허나 정신만은 또렷하다.
휙.
기갈석목 밖으로 나오니 싸움을 구경하는 탐화와 비비가 보인다.
범은 탐화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존자와 탐랑군을 보았다.
“탐화야.”
“왜?”
그들의 싸움에 눈을 떼지 못한다.
“네가 본 충계는 어떻더냐.”
“이상한 곳.”
즉답이다.
허나 이내 고개를 갸웃하더니 범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곳?”
“그렇느냐.”
“웅, 왜?”
“그냥 물어봤다.”
본래라면 탐화도 이곳에서 살아가야 했을 거다.
전투를 즐기며, 전투를 사랑하는 것처럼 항상 신나게 싸웠을 것이다.
잡아먹히고, 잡아먹는 것이 일상인지라 냉혹해보일지도 모르나 충계는 원체 그러한 곳이다.
그리고 큰 틀은 어딜 가나 같다.
‘약자는 먹힐 뿐이지.’
그렇기에 범은 괜히 물었다.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느냐.”
살고프다 해도 그리하게 두지 않을 거면서, 혹시나 싶어 한 번 물어봤다.
허나 탐화는 이번에도 즉답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주인이랑 살 거야.”
이쁘게도 말한다.
범은 탐화의 볼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며 히죽 웃었다.
“이제 주인이란 소리는 되었다.”
“그럼 뭐라고 해?”
당연하다는 듯 범은 답했다.
“아버지라 부르거라. 이제 널 딸이라 부를 터이니.”
그러자 탐화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치켜떠졌다.
이내 볼을 발그레 붉히며 답한다.
“응! 아버지!”
“그래 우리 딸.”
범은 탐화를 꼭 끌어 안았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이제 이리 해준 것이 괜스레 미안하고, 또 후회스러웠다.
그러자 금색 꽃잎이 나타나 여인의 모습으로 화하더니 화란이 나타났다.
“딸아, 어머니라 불러보련?”
“아니 그건 좀….”
“응! 어머니!”
“귀여워!”
화란이 귀엽다며 뽀뽀를 쪽쪽 한다.
탐화의 볼에 침이 한가득 묻어 범이 닦아주니 희희 웃는다.
“더럽게 애 볼에 뭘 묻히는 거야.”
“더럽다! 이뻐할 수도 있는 거지 왜 내 기를 죽이고 그래요?”
“아니 내가 언제 기를 죽였다고.”
“그렇게 더러운 거 밤에는 어떻게 참았대? 어떻게 참았냐고 읍 으읍!”
“애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조용히 안 해?”
“탐화야 이 어미는 너무 속이 상해서 못 견디겠는 거예요. 넌 나중에 저런 서방 만나면 안 된다 알겠지?”
탐화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대강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대로 범은 고개를 저었다.
갈수록 왜 저러는지 참.
“어쨌거나 저 싸움은 언제 끝나려고 저러고 있는 건지 원.”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탐랑과 존자의 싸움은 끝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넉 달이 지난 후에야 그들의 싸움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