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7)
낭선기환담-366화(367/600)
낭선기환담 – 2부 76화
육절삼십육문. 그것은 하나의 문이며 동시에 무덤이고, 누군가의 주검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몸을 봉인해두고, 그 몸속에 각종 보물과 한평생 이루어두었던 진의를 담아두었을까.
게다가 어째서 육문을 열 수 있게 된 자신의 후손 여섯이 있어야 봉인을 풀 수 있게 해두었을까.
“글쎄, 제 후손을 위한 안배가 아니었나.”
“충계에 그런 것도 있나요.”
“없기는 하지.”
충계에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
짝을 만들고, 알을 낳는다.
그뿐인 이야기다.
이후의 알이 어찌되었는지 따위는 대개 중요치 않다.
알을 지키는 이들도 있으나, 대개 자식이 태어나면 내버려두거나 알아서 자연에서 살아가게 한다.
그게 충계의 방식이고, 예부터 피로 이어져 내려오던 충의 본능이다.
“그런 게 궁금하신가.”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존자가 그를 데려온다면 이제 곧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그도 그렇다.
그들은 이내 눈앞에 자리한 거대한 거미의 사체를 보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에 먼지가 쌓이고 흙이 덮이고 풀이 자라났으나, 이것은 분명한 거미의 그것이다.
머리와 다리가 이리 붙어 있지 않았다면 산이라 해도 믿었을 것이고, 바다로 나가 둥둥 떠다녔다면 섬이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거미의 이름은 금박지주.
총 서른여섯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충모라까지 불리던 거미였다.
허나 그러한 충모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육절삼십육문도 곧 열 수 있게 될 테니 들어가 보면 알겠지.”
이내 금박지주와 연결된 산의 동굴로 들어가자 서른여섯 개의 눈으로 장식된 금색의 벽이 그들을 맞이했다. 좌우 대칭으로 서른여섯 개의 눈이 자리하고, 동그란 문양 표식과 함께 여러 글귀들이 적혀 있는 봉인문.
육절삼십육문이었다.
봉인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의 침투는 허용치 않는다.
오직 이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차분하게 기다려 보자고.”
문 앞에 자리한 넷의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천범은 만만충로를 벗어나 존자가 말하는 육절삼십육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존자와 탐랑의 싸움은 넉 달간 이어졌으나 끝내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쯤 되니 호승심이 조금 누그러들어 자연스레 싸움을 끝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계속 따라다니는 겁니까?”
“결판을 내기 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
승패를 정하지 못해서 자존심에 상처가 난 건지, 오기가 생긴 건지 탐랑군이 존자를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뭘 그리 속닥대나 먹이.”
말끝마다 먹이라고 지껄이는 것도 여전했다. 한 명만 제외하고.
“존자, 이놈들은 모두 너의 먹이인가?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네 것이라면 건들지 않도록 하지.”
“뭐, 안 건드는 게 좋긴 하지.”
존자는 성격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를 맞수로 인정한 건지 허허 웃기만 하며 그러려니 했다.
졸지에 먹이들 중 하나가 되버린 천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래 성격 같았다면 진작에 무어라 한마디 했겠으나, 그는 존자와 같은 향선이고 강한 힘을 지닌 만만충로의 탐랑군이다.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얻을 것도 없는 데다가.
‘애초에 정상도 아니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자신 이외의 것들은 전부 먹이들이고, 저보다 강자나 맞수에게나 조금 대우를 해줄 뿐인 괴랄 맞은 성격이니 말이다.
천범은 생각했다.
저런 놈과는 절대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탐화에게도 단단히 일렀다.
“저런 놈과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 절대절대 멀리 하거라.”
“응! 아버지!”
해맑게 말하는 탐화의 모습에 범의 가슴이 찌잉 울린다.
어스름한 새벽녘의 시리고 차가운 안개를 밝히는 아침 해처럼 탐화의 미소가 잔잔한 따스함으로 비춘다.
“이쁜 것.”
범은 탐화를 와락 껴안고 볼을 비비다가 내려놓았다.
“먹이들이 주제도 모르고 시끄럽군, 조용해라 큰 먹이, 작은 먹이.”
“절 보고 하신 말씀입니까.”
“그래, 너 작은 먹이. 조용해라.”
범을 보고 큰 먹이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큰 먹이는 탐화였다.
“내가 큰 먹이야? 히히 나 크대!”
“좋아할 일이 아니다 딸아.”
“그런 거야?”
“그런 거지.”
정정해주자 탐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탐랑군을 노려봤다.
“성깔은 있는 먹이로군. 충의 이름을 달았다면 응당 그래야지.”
처음 보았을 때는 말없이 묵직한 놈이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싸움이 없어 심심한 건지 아니면 원래 말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길을 가는 내내 이어졌다. 뭐만 하면 먹이가 시끄럽다 먹이가 수선을 떤다며 구박했다.
졸지에 큰 먹이도 아니고 작은 먹이가 된 범은 자존심이 상했다.
-작은 먹이 풉풉풉!
화란이 범의 몸속에서 폭소했다.
-조용히 하거라.
-조용히 해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작은 먹이 아니십니까? 시어머니마냥 저리 구박해대니 우리 작은 먹이께서는 상처가 이만저만 아니겠습니다.
또 건수 하나 잡은 화란이 작은 먹이라며 쉴 새 없이 놀려댔다.
정말 누구편인지 모를 여인이다.
“존자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음, 충계의 지주지대로 가네. 육절삼십육문도 그곳에 있거든.”
지주지대.
말 그대로 거미들이 즐비한 곳이다.
“충계의 온갖 지주들이 그곳에 자리 잡고 살지. 이름 좀 있는 지주 선충들이나 충선들은 모조리 그곳에 있거든. 이유는 뭐랬더라… 지주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던가? 도통 그런 곳이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존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투덜거리다 말을 이었다.
“한데 지주지대까지 거리가 조금 되기에 전송진을 이용할걸세. 만만충로 근처에서 전송진을 이용하면 지주지대까지는 금방이거든.”
어디보자.
“이쯤이면 거의 다 왔는데….”
그러자 탐랑군이 눈가를 좁히며 급히 물었다.
“존자 네놈, 설마 이곳의 완선혈공(婉壇穴控)을 이용하려는 게냐?”
“오, 알고 있었나.”
“미친놈이군. 그런 기분 나쁜 걸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완선혈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정신으로 안 보이는 탐랑이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절대 정상적인 건 아니겠구나 싶었다.
“저도 반대합니다.”
이런 건 재빨리 사양하는 게 좋다.
“작은 먹이의 의견에 동감한다.”
웬일로 탐랑과 의견이 맞다.
“허나 완선혈공을 이용하지 않으면 지주지대까지 족히 오십 년은 걸릴지도 모르네.”
“오십 년은 금방이지. 눈 감았다 뜨면 백 년, 천 년 지나가 있는데 그깟 오십 년이 대수는 아니다.”
탐랑은 상관없다는 듯 말했으나 범은 조금 달랐다.
“오십 년은 좀….”
오십 년이나 지주지대에 가는 것만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작은 먹이는 줏대가 없군. 안 먹을 거면 내게 맡겨라. 잘근잘근 씹어 먹어줄 수 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천 수선은 우리한테 꼭 필요한 존재라서.”
“흥, 적당한 때에 널 꺾어주고 네놈의 먹이들도 다 씹어 먹어주지.”
“그래그래, 그건 나도 기대하지. 한데 우리는 완선혈공을 이용해야하네. 그게 싫다면 자네는 그만 만만충로로 돌아가는 게 어떠한가.”
“네놈을 꺾기 전까지는 불가하다.”
존자는 허허 웃으며 근처를 둘러보다 산속 한켠에 자리한 땅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 있구만.”
신식을 이용해 완선혈공을 찾아낸 존자는 땅굴 속에 팔을 깊이 넣어 무언가를 쭈욱 잡아 당겼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분홍빛.
거대한 분홍빛이었다.
“이게 완선혈공이네.”
껄껄 웃으며 보이는 것은 분홍빛.
분홍빛의 애벌레였다.
“이거 지렁이 아닙니까?”
“뭐 비슷한 거지.”
잠시 멍하니 가만히 있던 범은 고개를 갸웃하다 다시 말했다.
“전송진을 이용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한데 갑자기 이건 왜….”
“자네는 처음인가보군. 완선혈공의 뱃속은 공간신통의 일종이라서….”
이 녀석들은 신기하게 자기가 먹은 것들을 공간신통으로 다른 동족에게 전해주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다.
꽤 멀리멀리 분포되어 있는 놈들인데 만만충로 근처의 완선혈공은 지주지대 근처의 완선혈공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 말고 자네도 알고 있는 전송진이 만들어져 있는 장소는 꽤 멀거든. 게다가 완선혈공도 몇 번 써버릇하면 나름 편해진다네.”
뭘 어떻게 해야 지렁이인지 애벌레인지 모를 것 뱃속으로 들어가는 게 편한 건지 모르겠다.
존자의 말에 따르면 소화되지 않도록 선술을 걸어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데, 탐랑은 소름끼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가 먹잇감의 뱃속으로 제 발로 기어 들어간다니 제정신인 놈이 없군.”
안타깝게도 범 또한 동감했다.
“시간 절약할 수 있고 좋지 않나. 날아간대도 몇 십 년 걸릴 테고, 그동안 선충들이 덤벼들면 괜한 힘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니.”
허나 존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난 할래!”
탐화는 해맑게 재밌어 보인다고 당장이라도 들어갈 기세였다.
완선혈공은 분홍빛에 눈조차 없는 지렁이에 가까운 놈이었는데, 잡혀온 주제에 뭐가 그리 태평한지 탐화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정말 소화 안 되는 거 맞습니까?”
“나 또한 들어갈 테니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네.”
그렇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더럽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고, 뭔가 내키지 않았다.
“작은 먹이. 네가 앞장서라.”
“왜 저입니까.”
“네가 제일 작다.”
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본신의 이야기인가.’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완선혈공 뱃속으로 들어가냐 마냐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난 갈래! 아버지도 가자!”
천범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몇 가지 묻고픈 게 있습니다, 존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자들이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리 떠드는 겐가.”
질렸다는 듯 핀잔주지만 천범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제가 육절삼십육문을 열어 무슨 이득을 바랄 수 있냐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존자의 은혜를 갚을 겸, 그리고 제 욕심을 채울 겸 따라왔으나 여기서 한 번 정리를 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범은 모른다.
육절삼십육문 안에 무엇이 있고, 그것을 열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그리고.
‘위험한 것은 아닌지.’
그를 믿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야 했다.
범의 말에 존자는 잠시 골똘히 고민하다 답을 내놓았다.
“우리도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해 무엇이 있다 확답할 수는 없으나… 아마 한 가지는 약속할 수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육절삼십육문의 안에 자리한 보물 중, 자네를 향선으로 만들어줄 선단이 있을 걸세. 그걸 자네에게 주지. 그만하면 협조할 수 있겠나?”
선단!
“정말입니까.”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 줄 의향도 있네. 팔보단이면 되겠지. 상선에게 효엄 좋은 선단이니 잘하면 향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충선이라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쉬운 일 중 하나니 걱정할 것 없네.”
천범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 말 또한 거짓일 수도 있다.
그동안 봐왔던 존자의 품성은 거짓을 말할 자가 아니지만 세상 일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허나 달구나.’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상선에게 효엄 좋은 선단을 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이제껏 제대로 된 선단 한 번 구하지 못하기도 했다.
수계는 연단법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기도 했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유 있게 선단에 관한 재료나 약방서를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으려나.’
존자와 자신 말고도 향선 넷이 더 있다 들었고, 그들이 함께 육절삼십육문을 열어 들어가는 일이다.
‘잔잔경정도 때와는 달리 탐화도 함께 있으니….’
여차할 때 제 몸을 지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오행육십사괘신도 미력한 수준이지만 가능하고 탐화의 위주호연갑도 사용할 수 있다.
잠시 주판을 굴려본 범은 이내 계산을 마치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법. 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쪽을 택했다.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