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69)
낭선기환담-368화(369/600)
낭선기환담 – 2부 78화
육절삼십육문.
그것은 서른여섯 개의 눈으로 보이는 홈이 파여져 있었고, 원형으로 된 문이었다.
알 수 없는 기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근처 석벽에는 조각으로 새겨진 그림도 있었다.
‘여섯 눈의 여섯 문이 모여 육절삼 십육문을 해방할지어다.’
봉인된 문을 열려면 육문을 개통한 여섯이 필요하다는 뜻인 듯하다.
“자, 그럼 시작하지.”
이것저것 설명해줄 만도 한데 그런 게 일절 없었다.
각자 수결을 맺고 기운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선기가 치밀어 오르고, 선력의 압력이 사방에 내리 깔린다.
‘신기하군.’
하나씩 보이는 육문의 눈동자가 각기 달랐다.
제일 먼저 노인의 모습을 한 구기는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지팡이 윗부분은 뭉툭하고 두꺼웠는데, 그곳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살아있듯 움직여대고 있었다.
그러자 육절삼십육문의 서른여섯 개의 눈동자 중 여섯 개의 눈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쯧.”
다음은 여오부였다.
그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낯이었다.
‘육절삼십육문 안에는 금박지주라는 거미의 사체가 자리한다 했지.’
그녀가 아마 제대로된 혈통을 이어 받은 적통자가 아닐까 싶다.
그리하니, 지팡이에 꽂혀 있는 눈들을 보고 기분 나빠하는 거겠지.
본래 이 문은 금박지주의 후손들만이 열 수 있는 봉인이라 하였으니.
그녀는 얼굴 자체에 눈이 여섯이었기에 뭘 꺼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운을 불어 넣은 것만으로 봉인문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다음은 난채라는 여인이었다.
‘벌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본신이 벌에 가까운 외형이라 존자에게 귀띔 받았다.
난채는 이내 선문을 외우더니 두 개의 눈동자가 발광하며 동공이 분열하여 여섯 개로 바뀌었다.
범처럼 자신의 눈에 이식했던 모양이다.
열여덟 개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다음은 존자였다.
존자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 붙이고 힘을 주니 손목부터 팔뚝까지 여섯 개의 눈이 튀어나와 꿈틀거렸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천범이 수분법목을 손등 속에 숨긴 것처럼 존자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허나 숫자가 많으니 징그러운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존자의 육문에는 여오부는 물론, 청민까지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그는 허허 웃을 뿐이다.
“다음은 저네요.”
청민이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아름다운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나비 날개에 문양이 바뀌며 여섯 개의 눈 모양 문양으로 변했다.
‘이쁘네.’
눈 모양과 비슷한 문양이라 징그러워 보이지도 않고, 나비 날개와 잘 어울려 어여뻤다.
청민은 그 사실을 아는지 범의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꺼워했다.
“이쁘죠?”
“아름답네요.”
청민이 기분 좋은 듯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범은 왠지 오한이 들었다.
“마지막은 저군요.”
범도 수결을 맺고 단령금정을 열기 시작했다.
일문, 이문, 삼문, 사문, 오문, 육문.
다시금 눈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닌가 했으나, 육괴지계를 쓰지 않고 문만 여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잠깐 정도는….’
벌써 눈이 따끔거리고 피눈물이 흘러나오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오, 정말 열었잖아? 대단한데?”
“그러게요. 상선이 열 수 있는 문이 아닌데 말이죠.”
놀라워하는 반응이 지나고 수선들의 눈이 육절삼십육문으로 향한다.
서른여섯 개의 눈 모양의 문양에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쿠구궁.
서른여섯 개의 눈에 빛이 들어오고, 두 개의 원형으로 된 석문이 드르르륵 돌아가기 시작한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내.
쿵!!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이내 잠잠해지자 끼이이익.
육절삼십육문의 문이 열리었다.
“오오! 드디어!!”
존자가 감탄하고, 청민은 북받쳐오르듯 두 손을 가슴께에 모은다.
“아….”
여오부는 나지막한 탄성을 자아내며 눈물을 주륵 흘렸다.
그녀만의 사연이 있으리라.
“들어가지.”
구기가 먼저 원형으로 된 육절삼십육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나머지 이들도 조금 경계하다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뭔가 습기가 많네요.”
청민은 들어서자마자 움찔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문 안쪽은 조금 습했다. 허나 신경 쓰일 정도로 많이 습한 건 아니었다.
‘용마골보다는 덜 습하네.’
수계의 황씨 세가가 터로 잡았던 곳보다는 습기가 덜했다.
그리 심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가 금박지주의 몸 안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 거야.”
여오부였다.
“수십만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습할 수가 있나요?”
청민이 묻자 존자가 대신 답했다.
“원선태사 정도 되는 경지에 이른다면 죽어서도 몸이 썩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원선의 죽음은 하늘에게 이롭다고들 하잖나. 죽어서 산이 되거나 그 정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이로운 현상을 만드니까.”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천범은 조용히 귀 기울이며 향선들의 담소를 엿들었다.
“원선의 몸은 그 자체로 하늘의 보배이지. 썩은 내는커녕, 몸이 정화되는 듯한 풀내음이 나고 있잖아.”
“원선의 몸이니 이 안에 많은 것들이 자리하여 생겨났을 걸세. 손쉽게 볼 수 없는 선초라던가 충모의 화신이 태어났을 경우도 없지 않지.”
“연자보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 그렇지.”
모두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푼다.
그것은 범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자보까지 생겨날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수십만년 전에 봉인된 원선의 몸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간 모이고 모인 선기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니, 정말 천혜의 보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허나 범은 많은 것을 욕심낼 마음은 없었다.
뒤통수를 맞는 것도 이제는 질렸고, 웬만하면 원만하게, 좋게좋게 서로 나누고 헤어졌으면 싶다.
어쨌든 간에 이번 일이 끝나면 범은 다시 수계로 향한다.
차라리 이들과 좋은 친분을 맺어 놓는다면 후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수계라 하여 안전한 것은 아니니.
“이것 보시게.”
선두에서 걸어가던 구기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좋은 징조로군.”
그가 보는 것은 벽 틈에 자라난 푸른색 꽃잎이 아기자기한 물망초였다.
“물망초가 있다는 뜻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 선초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확률이 높지.”
“그거 참 반가운 소리네요.”
그리고 잠시 후.
구기의 말대로 향긋한 풀내음이 여기저기 가득하게 맡아졌다.
“호! 이곳에 있는 선초들은 족히 사십만 년은 넘은 것들입니다! 요새는 만년 된 것도 잘 구할 수가 없는데….”
사십만 년 동안 오래토록 정기를 머금고 자란 선초다.
게다가 원선의 몸속에서 자라났으니 얼마나 많은 선기를 머금고 자랐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 년 묵은 선초라면 별 것 아닌 품종이어도 원근 반냥정도 하던가.’
만 년만 해도 귀한데, 족히 사십만 년은 되었다 하니 죄다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우선 더 앞으로 가 보지. 어차피 여길 나가려면 되돌아와야 할 테니.”
“아, 그러도록 하죠. 아직 초입이고 뭐가 있을지 아직 모르니까요!”
신이 났는지 청민이 거듭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잡초처럼 자라나 있는 선초들을 보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구기가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선초를 모조리 캘 기세였다.
“아마 우리가 있는 곳은 충모의 머리 부근이 아닐까 생각되는군.”
구기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하자 존자도 동의한다.
“너무 거대해서 가늠이 잘 되지 않지만 말이야 허허.”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충모의 입 쪽을 거닐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산만큼 거대했던 충모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다.
그런 것 치고는 바닥이나 벽이나 전부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하후미농 때가 생각나는군.’
하후미농도 크기가 엄청나게 거대해 그 안에서 별 일이 다 있었다.
탐화가 하후미농 안에서 탈각을 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설마 여기도 위액이 남아 있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하후미농은 그렇다 칠 수 있으나 충모는 거미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거미들은 대개 체액을 빨아먹는 게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이니, 충모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벌써 갈림길인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청민이 묻자 구기는 잠시 고민하다 크기가 더 큰 좌측으로 향했다.
“혹시나 따로 갈 생각은 하지 않지. 어떤 게 나올지 모르고, 오랜 시일이 걸린다 해도 전부 함께 돌아볼 거니.”
구기의 말에 다른 이들은 약간의 아쉼움을 참아내며 동의했다.
홀로 다니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위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뒤로 반나절을 걷기만 했을까.
“충모의 몸속은 밝네요.”
돌연 청민이 그런 소릴 해댔다.
그녀의 말대로 충모의 몸속이라기엔 이곳은 꽤 밝은 편이었다.
아마 벽 곳곳에 생겨난 야광주들과 발광하는 선초들로 인한 빛이었다.
반나절이나 충모의 몸속을 돌아다녔으나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수십 년 묵은 선초들은 산을 쌓을 만큼 이따금 발견됐고, 충모의 몸속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선석들이 보이기도 했다.
‘사자석(死者石).’
선기를 머금은 환수나 선충의 몸 속에서도 이따금 발견되는 것이다.
급이 높은 이들이 죽었을 때 몸속에 쌓여 만들어지는 사리 비슷한 것인데, 괴뢰나 강시술을 부릴 때 빼고는 딱히 쓸모가 없기도 했다.
괴뢰술사나 강시사는 눈에 불을 켜고 구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 일단 내버려두고 걷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선두에 선 구기의 발걸음이 멎었다.
“심장이다.”
“오오, 그렇구만!”
“이게 심장? 엄청 크네요?”
청민의 말대로였다.
‘이게 심장인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으나 언뜻 보면 심장처럼 생기긴 했다.
상상보다도 거대해서 절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천범은 동산처럼 거대한 심장을 바라보다 문득 미간을 좁혔다.
‘안에 뭐가 있는데.’
슬쩍 존자와 구기를 바라보니, 그들도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돌로 변한 심장 속에 대체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알아보면 될 일이지.”
구기가 소매를 펄럭이자, 그 안에서 작은 비수가 날아가 꽂혔다.
픽.
쿵!
심장 한가운데 비수가 꽂히자 쩌적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무너져내린 심장의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 비산한다.
그리고 허공에 자리한 것은 은유한 빛을 띠고 있는 고리.
동그란 고리였다.
‘팔찌라기엔 크고 저게 뭐지.’
그렇다고 륜이라고 하기에는 뭉툭한 부분이 있고 크기 또한 작다.
쇠로 된 듯한 고리다.
천범은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으나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구기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청민과 여오부는 탐욕이 득실거리는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존자와 말수가 없던 난채 또한 마찬가지였다.
슬쩍 눈치보고 있던 범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입 열려는 순간.
“엇!”
청민이 놀라 소리쳤다.
홱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떠 있던 고리가 우윳빛 광채를 흘리며 기운을 빨아들이더니, 짐승의 형상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화신을 이루는군! 역시 연자보!”
“저게 연자보란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저 기운은 틀림 없이 시간 법칙의 기운이야!”
시간 법칙!
범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앗! 도망쳐요!”
“시간 법칙의 연자보야! 지금 놓치면 영영 잡을 수 없어!”
고리는 이내 우윳빛 기운을 뭉쳐 토끼의 형상을 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했다.
“잡아!”
다급한 여오부의 외침에 연자보가 변한 토끼의 화신이 뒷다리로 한 번 튀어 오르자.
휙!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