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71)
낭선기환담-370화(371/600)
낭선기환담 – 2부 80화
휘이잉.
어스름한 충모의 몸 속.
푸른 나비 날개를 지닌 청민이 두리번거리다 내려선다.
이내 반가운 얼굴을 마주친다.
“여 언니! 찾았어요?”
순진무구한 낯으로 묻는다.
여오부는 묘한 얼굴로 청민을 보며 말했다. 그녀도 연자보를 찾아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아니, 한 발 늦었나 봐.”
시간법칙을 지닌 연자보를 잡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시간을 다루는 녀석이니 쉽게 잡을 수 없음이 당연했다.
자신의 시간을 빠르게 돌림으로서 순식간에 이동해버리니 바로 붙잡지 않는 이상은 불가하다.
“화신이 형태를 갖추기 전에 잡았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우리들 중 한 명이라도 시간법칙을 다룰 수 있었다면 몰랐겠지.”
허나 시간법칙은 절대법칙 중 한 가지에 속하는 법칙이다.
익히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까다롭고,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도 두손두발 다 들게 하는 법칙이다.
그렇기에 더 아쉬웠다.
익히기는 힘들지 모르나, 시간법칙을 함유한 연자보를 얻는다면 약간이나마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허나 물 건너갔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시간법칙 연자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청민은 아쉬워 죽겠다는 듯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여오부는 고개를 내저었다.
“돌아가자. 충모의 몸속이니 그것 말고도 진귀한 보물이 있을지 몰라.”
“예를 들면요? 언니는 여기에 관해 뭔가 아시는 게 있지 않아요?”
청민이 은근한 어조로 묻자 여오부는 픽 웃으며 답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충모의 알 때문이야.”
“알이요?”
“충모 정도의 힘을 지녔다면 뱃속에 항상 알을 품고 있었겠지. 그 알에 담긴 원기는 이곳에 있는 선초들보다 더 엄청난 힘을 지녔을 테다. 물론, 난 그걸 구해 부화시킬 생각이지만.”
이건 또 놀라운 이야기다.
“수십만 년 된 알이 부화가 되나요?”
“된다. 적합한 환경을 갖춰주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부화해. 연자보는 물 건너갔으니, 난 충모의 피를 이은 녀석들을 부화시킬 거다.”
“부화시켜서 어쩌시게요?”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충모는 금박지주로 원래 엄청난 거미줄을 만들어냈어. 전성기 때는 그 거미줄을 자를 수 있는 법기가 없었더랬지. 게다가 충모의 피를 이었다면 눈 또한 서른여섯 개일 수도 있다.”
“삼십육문?”
“잘 키우면 상계일통을 해버릴지도 모르지! 물론 그런 건 관심 없지만.”
상계 일통까지는 아니어도 충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 정도는 쉬울 터.
“게다가 충모의 거미줄은 금박연사라고 한 번 닿으면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하지.”
그것 말고도 얻을 것은 많다.
심장이 연자보가 된 것처럼 주요 장기들 또한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가는 곳마다 보물이 즐비할 테니 그것을 쓸어 담고 나누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양은 충분할 테니.’
여오부의 말을 들은 청민은 신기하다는 듯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한데 민민. 넌 왜 이곳에 들어오려고 했던 거니?”
“저요? 저는 당연히….”
“오! 여기들 계셨군!”
때마침 존자가 넉살좋게 웃으며 다가왔다.
저 모습을 보니 존자 또한 연자보를 잡지는 못한 모양이다.
“존자군도 수확은 없나 보군.”
“허허, 그렇게 됐다네. 가능하지 않을까 했는데 눈 깜빡할 새에 사라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군. 남긴 흔적으로 추적술을 부리려 해도 시간이 꽤 흐른 것처럼 사라져 있어서 말야.”
“흔적을 지웠군. 시간법칙으로….”
그 정도까지 했다면 가망이 없다.
화신을 이룬 연자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성을 갖추고 지성을 갖추게 된다.
자기 능력을 점점 깨우치게 되는데 그 정도까지 진행됐다면 시간법칙 연자보를 잡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탈형을 하게 된다면 성족.
즉, 성선이 되어버린다.
여오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야겠네.”
“그래야겠군.”
“으으! 아까워라!”
몸을 떤 청민은 근데 구기와 난채는 어디 갔냐며 물었다.
“글쎄, 아직도 찾아보고 있지 않겠나. 쉽게 포기하기에는 너무 값진 보물이니 말이야.”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릉.
“뭐야?”
“설마 찾았나?”
충모의 몸속이 낮게 울릴 정도의 충격이다.
누군가 선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충선 셋은 황급하게 둔술을 펼쳐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 * *
“수계의 강자들, 정말이겠지.”
“정말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수계에서는 꽤 높은 위치의 직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직책? 그게 뭐냐.”
“종4품 문무관장의 직책을….”
생각해보니 직책이란 말 자체를 잘 모르는 듯하다.
천범은 충계의 군과 비슷한 거라 말해주니 그제서야 이해한 듯 탄성을 자아낸다.
“오, 작은 먹이. 네놈도 단순한 먹잇감은 아니었나 보군!”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를 수계로 데려가는 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충계보다 수계에 적이 더 많은 천범이다.
사씨 세가를 생각해도 그렇고, 자신이 지닌 연자보를 생각해도 오대세가 놈들과는 피를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지닌 연자보를 노리게 될 테니….’
탐랑은 수계의 강자와 싸울 수 있어 좋고 천범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어 좋으니 다루기 쉬운 탐랑을 데리고 있어서 나쁠 게 없다.
누가 뭐래도 그는 향선이니 말이다.
딱히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다.
수계의 대가문들은 향선 하나 둘 정도는 데리고 있고, 충계밖에 모르는 탐랑에게는 아주 좋은 배움의 터가 될 거다.
‘뭐 거기까지는 알 바 아니고.’
어쨌거나 탐랑을 다뤄내기만 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
다행히 탐랑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상태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 모인 충선들이 왜 저리 연자보에 관심을 갖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그의 세계는 넓어지는 중이다.
개선의 의지가 있다.
“일단 더 걸어볼까요. 거미의 구조는 잘 모르지만,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죠.”
“마음대로 해라.”
이곳이 산란장이라면 아마 아랫배 부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가면 주요 장기들이 있는 곳으로 이어질 터.
“다음엔 뭐가 있으려나.”
산란장 너머로 이동하려는 찰나.
쿠구구구궁.
멀리에서 들려오는 충격음이 탐랑과 범의 발걸음을 멎게 만들었다.
“피 냄새가 난다! 피가 부른다!!”
“어, 잠깐만!”
말릴 새도 없이 사라졌다.
“잘못 생각했나….”
제어하기 만만치 않은 상대다.
수계에서도 저렇게 튀어나가면 감당하기 어려울 듯하다.
“어쨌거나 무슨 상황이려나.”
연자보와 씨름하는 중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연자보를 두고 싸우는 건가.’
천범은 잠시 고민하다 다시 등을 돌렸다.
“전자라면 내가 낄 수 없고, 후자라 해도 내가 낄 필요는 없겠지.”
연자보와 싸우던, 저들끼리 싸우던 범이 끼여서 뭔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은 없으리라.
그럴바에는 차라리.
“요 앞에 뭔가 있기를 바래야지.”
충모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거미들이 엉덩이 부근에서 실을 만들어 내고 내뿜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충모의 실이라면 값을 메길 수 없겠지.”
탐화에게 먹이면 아주 딱이다.
금장사는 이제와서는 흑장사로 변해 아주 튼튼한 실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져 충모의 실까지 먹어치운다면 더 강력해지겠지.
게다가 충모의 몸속은 온갖 선기가 고이고 고인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초도 저리 자라고, 선석도 많지 않던가.
그랬으니 충모의 실이 남아있다면 그 또한 오랜 시간 선기를 머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충모의 실이 연자보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엄청난 기운을 머금었을 수도 있다.
“내 새끼 내가 챙겨야지.”
탐화를 챙기는 것이 결국 자신을 챙기는 일이니 거리낄 필요 없다.
범은 팔찌로 변해 있는 탐화를 쓰다듬어주고는 바삐 발걸음을 놀렸다.
* * *
쿠우우웅!!
거대한 충격의 여파에 금박지주의 몸속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둔광을 뿌리며 날아온 존자와 청민, 여오부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충모의 몸속이….”
육각형 모양의 구멍이 나 있는 벌집 속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칙칙하던 검은 빛이 아닌, 색 또한 노란 빛으로 바뀌었다.
육각형 모양의 홈이 파여져 이곳이 충모 속인지 벌집 속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내 시선을 돌리자 한창 싸우고 있는 구기와 난채가 보였다.
“이게 무슨 짓들이오!”
존자가 크게 화냈으나, 구기와 난채는 아랑곳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청민이 호소하듯 묻자 그제서야 구기가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잡은 연자보를 난 수선이 훔쳐갔네!”
그러자 청민과 여오부가 크게 놀라며 난채를 쳐다봤다.
“정말입니까?”
난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내 두 팔을 휘둘러 춤추듯 퍼덕이고 수결을 맺었다.
그리고 품에서 검은 말뚝을 꺼내 사방으로 발사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충모의 몸속이 단번에 모두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환계?”
“아니, 환계가 아니네!”
존자가 뭔가를 눈치챈 듯 소리쳤다.
사방이 육각형의 벌집모양으로 막혔으나 환계가 아니다.
여오부가 설마… 하며 눈가를 가늘게 뜨며 면밀히 살폈다.
“공간법칙!!”
“미리 선술을 걸어둔 공간을 옮겨 왔어!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왔었던 모양이야!”
존자의 설명이 마치자 육각형의 벌집 안에서 수많은 벌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채가 발휘한 신통은 공간법칙의 일종이었는데, 미리 선술을 적용시킨 공간을 일시적으로 불러온 것이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법칙의 힘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천차만별에 가까운 효용성이 있었다.
“충모의 보물은 우리 것이다.”
난채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기다란 가시를 들어올렸다.
이내 벌 선충들이 구멍에서 나오고 이후에 주홍색의 꿀이 쏟아져 바닥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를 죽일 셈이군!”
“저 꿀에 닿지 말게. 닿는 순간 굳어 꼼짝도 할 수 없게 될 테니!”
구기가 설명을 마치자 충선들 모두가 눈에 불을 켰다.
“오만하군. 고작 자네 혼자서 우리 넷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나?”
“가능.”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허나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존자는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나 혼자가 아니니까.”
낮게 울리는 난채의 말과 동시에.
푹! 여오부의 몸이 검에 찔렸다.
“너, 너…!”
“미안해요 여 언니. 하지만 어쩌겠어요. 나도 살아야죠.”
청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며 여오부의 몸에서 검을 뽑았다.
“분독을 발라놨으니 아무리 여 언니라도 해독은 불가능할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여오부는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전신이 곰팡이가 피어 오르듯 새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너와 내가 함께한 세월이 만 년이 넘어가는데 어찌… 어찌!”
“저도 어쩔 수 없었답니다? 구기 님이 말해줬거든요.”
“대체 뭘….”
“여 언니는 사실 알고 있었잖아요? 충모가 왜 괜히 육문을 지닌 후손을 모아 봉인을 풀게 만들었겠어요. 그것도 자신의 몸에? 겨우 후손을 위한 안배로? 설마. 우리는 충선인데 그럴 리가 있겠어요. 말도 안 되죠.”
그렇다면 어찌 이런 짓을 했겠는가.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겠죠. 그리고 여 언니는 그걸 위해 우리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잖아요?”
“그걸 대체 어떻게….”
“우리 구기님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랍니다? 일만 년 넘게 언니하며 지냈는데 이리 보내게 돼서 정말 안타깝네요….”
쯧쯧, 혀를 찬 청민은 여오부의 몸을 밀어 검을 빼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여오부는 모두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으냐! 충모는 영원하다! 그녀는 윤회법칙에 통달한 원선이야! 날 죽였어도 너희들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한다!”
통쾌하다는 듯 비열한 웃음을 흘린 여오부는 그렇게 독이 만발해 새하얀 분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럼 연자보를 훔쳤다는 건….”
“거짓이오. 저년을 끌어내기 위한 짓이었지. 애초에 찾지도 못했어.”
구기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언제부터 아셨소.”
“처음부터. 육절삼십육문을 알아내고 그것에 대해 조사할 때부터 대강 눈치채고 있었지. 애초에 날 끌어들인 게 여오부였으니 말이야.”
거리낄 것 없이 말하는 구기의 모습에 존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내 난채의 벌집들이 사라지자 청민과 그녀는 구기의 곁에 섰다.
완전히 그들은 한패라는 듯 말이다.
“여오부를 그대로 살려뒀다면 아마 우리를 충모의 제물로 쓰기 위해 별 술수를 다 썼겠지. 자네는 어떠한가.”
“별 것 없소. 그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선초와 나눌 수 있는 보물 몇 가지면 충분하지.”
존자는 한 발 물러났다.
지금 상황에서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청민은 구기의 곁에서 입가를 가리고 웃었고, 난채는 아무 표정이 없이 공허한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에 맞춰서 누군가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피 냄새가 날 불렀다.”
탐랑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