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72)
낭선기환담-371화(372/600)
낭선기환담 – 2부 81화
산란장을 지나 좁고 어두운 길을 걷던 범은 이내, 몸에 무언가가 묻는 것을 발견했다.
“이 근방인가.”
어깨에 묻은 옅은 거미줄을 걷어 내 금천지화로 불태운다.
“역시.”
천범의 금천지화에도 거미줄은 타지 않고 멀쩡했다.
조금 달궈진 정도라고 해야 하나.
제대로 된 실도 아닌데 태워지지 않으니 신기하다.
나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으나 그만큼 대단한 거미줄이리라.
“나보다 나이가 수십 배는 많은 녀석들일 테니….”
그리 생각하면 위안은 된다.
허나 위안만으로는 끝낼 수 없다.
‘점성이 높은 것도 아닌데 접착력이 엄청나군.’
매우 얇은 거미줄이라 손으로 점성을 시험해보니 이내 붙어버렸다.
좁은 길을 지나가다보니 점점 거미줄이 많아진다.
어깨와 팔에 점점 거미줄이 묻어 벽에 달라붙거나 의복끼리 붙었다.
거미들은 대개 방적돌기라는 실 샘을 이용하여 몸속에서는 점액질의 상태였다가 돌기를 이용해 외부로 사출되는 순간 굳어 실처럼 된다 들었다.
대강의 원리는 그렇다 들었으나 금박지주의 충모 정도 되면 별로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완전 거미줄 범벅인데.”
죽어버려서 그런 걸까.
실 샘이 터지기라도 했나, 좁아터진 길목 사방이 거미줄로 막혀있다.
금천지화로 열을 가하면 그래도 조금 달궈져서 접착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태워버릴 수는 없어 퍽 난감하다.
“탐화.”
범이 부르니 팔찌 모양의 탐화가 휘리릭 풀려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범 옆에 섰다.
“응, 아버지!”
아버지란 호칭이 퍽 마음에 들었을까. 때만 되면 저리 부른다.
그렇다보니 범도 자연스레 미소가 내걸리게 된다.
“그래, 딸아. 충모의 실 샘에서 나온 거미줄인데 어찌 생각하느냐.”
물으니 탐화가 어려워한다.
범은 이내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다시 정정하며 물었다.
“먹고 싶으냐?”
이게 맞다.
탐화도 히죽 웃는다.
“먹을래!”
범은 탐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다 먹어도 좋다.”
“좋아!”
탐화는 곧장 거대한 오룡으로 변해 좁은 길목에 머리를 처박고 거미줄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허나 이내 거미줄로 인해 전신을 꼼짝 못하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범이 금천지화와 균천보화로 거미줄을 달구고 몇 번이나 내려쳐 자르고 나서야 다시 먹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실도 아닌데 이 정도. 거미줄을 모아 실이나 끈으로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이겠어.’
안 그래도 탐화는 금장사와 여러 신통들을 흡수해 강력한 실을 내뿜을 수 있다. 이제 와서는 독기 그 자체나 다름없는 실이고, 실과 자신이 먹어치운 경도 높은 금속들을 더해 강력한 사슬을 만들어 부리기도 한다. 한데 그 사슬에 이 정도 경도와 접착력을 지닌 거미줄이 합쳐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탐화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리라.
‘향선이라도 조금 벅차겠지.’
자그마치 충모의 거미줄이다.
연화시키는 데 상당한 노고와 시간이 들어가겠지만, 제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연자보나 다름없는 강력한 보물이 되지 않겠는가.
상선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향선이라도 이 거미줄을 자르거나 태우기 어려울 테니 범은 손에서 떠난 시간법칙 연자보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그도 그럴게 탐화라면 이 거미줄을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탐의 선천신통을 지녔다.
‘충계로 오게된 게 묘수였군.’
정말 우연찮게 오게 된 충계였지만 벌써부터 얻은 이득이 상당하다.
범은 물론, 탐화도 이번 기회로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아직도 향선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건 차차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문제다.
아직 상계로 올라와 첫 번째 천겁도 치르지 않았으니 시기상조기도 했다.
‘구백 년 정도 남았던가.’
시기가 조금 좋지 않기는 하다.
구백년 뒤라면 선살전이 열릴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생각해 봤자겠지.”
지금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치우는 게 우선이다.
탐화가 거미줄을 먹어치우며 길을 뚫으니, 점점 길의 폭이 넓어지고 미처 먹어치우지 못한 거미줄을 하나하나 모아 실 뭉치를 만들었다.
‘놔두면 쓸모가 있겠지.’
봉하여 공정강에 집어넣으니 어느새 탐화가 저만치까지 멀리 가 있다.
허나 더는 충모의 거미줄을 먹지 않고 있었는데 뭔가 하며 보니.
“고치네.”
거미줄로 이루어진 고치 하나가 널찍한 방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오룡으로 변한 탐화의 머리보다는 살짝 작은 크기다.
“왜 가만 보고 있느냐.”
평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먹으려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탐화는 뭔가 경계하는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다 이내 탈형의 모습을 취하고는 범의 손을 붙잡았다.
“이거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그러니.”
겁먹은 듯한 모습이다.
의연하게 묻자 탐화는 범의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어 얼굴을 묻었다.
뭔가에 겁먹는 아이가 아닌데 이리하니 묘한 긴장감이 솟구쳤다.
‘…물러나자.’
오감이 뛰어난 탐화다.
탐화가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응당 좋지 않은 것일 터.
세상에 더 없는 보물일지도 모르지만 딸아이가 겁에 질려 있는데 가만히 둘 아비가 어디 있는가.
범은 탐화를 품에 안아들고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잠시 고민해 봤지만 탐화가 이리 나오니 자신 또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여기까지 충분한 이득을 봤다.’
충모의 거미줄을 탐화에게 먹인 것으로도 흡족하다.
애초에 이곳은 충모의 몸속.
안에 무엇이 자리할지 모르니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함이 옳다.
범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는 탐화를 꼬옥 안아주며 서서히 물러났다.
저 고치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수봉여산에 내산이 생겼고 탐화에게 충모의 거미줄을 먹였으니 이득은 충분하게 봤다.
‘충선들과 합류하는 게 낫겠어.’
이곳이 실 샘이 있는 곳이라면 충모의 뱃속 끝부분일 터.
여기 말고도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공간은 무수히 많다.
그리 생각하고 물러나자 돌연 범의 귀걸이가 저 혼자 움직였다.
“여위?”
그의 귀걸이 모습으로 있던 여위는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흔들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범은 여위의 제약을 풀어주었는데, 이내 귀걸이에서 악어를 닮은 도마뱀의 모습으로 변해 허공을 헤엄치듯 나아갔다.
이내 고치 근처에서 멈춰선 여위는 무언가를 보며 꼭꼭 소리 냈다.
왜 저러는지 몰라 가만히 보고 있자 허공 한켠이 물결처럼 파문이 일어나며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연자보의 화신!’
시간법칙을 지닌 연자보의 화신이었다. 범은 깜짝 놀라 입을 벌렸으나 소리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위는 토끼 화신을 보며 연신 끅끅거리며 무언가를 말을 거는 듯했고, 슬그머니 나온 화신도 호기심 반 경계 반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내심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시간법칙을 지닌 연자보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저것을 찾으려고 동분서주 중이지 않던가.
한데 떡하니 제 앞에 나타나니 자제심이 강한 천범이라도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위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분명 기회다.
시간법칙을 담고 있는 연자보는 향선들은 물론, 원선들까지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보물이다.
그런 것을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다면 세상을 가진 듯 기쁠 것이다.
그리고 그뿐인가.
시간법칙 연자보를 이용해 뜬구름 같기만 하던 법칙에 대해 이해하고 통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계의 통천 서고에 수많은 공법과 수서들이 존재했으나, 법칙이 담긴 공법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향선이라도 법칙에 관해 전무한 이들도 많았을 정도다.
그런데 상선에 불과한 천범이 시간법칙 연자보를 얻으면 어찌되겠는가.
안 그래도 갖가지 신통과 법기들로 향선을 상대할 정도로 강력한데, 법칙까지 다루게 된다면 그야말로 범에게 날개를 단 격이 아니겠는가!
도계에 속하는 이상, 강해져야 살아남는 것이고 살아남아야 대도를 펼칠 수 있음이 당연지사!
욕심 없는 자는 진보하지 못한다.
허나 탐욕에 사로잡힌 자는 거꾸러질 것이니, 항상 중도를 지키라.
범의 마음이 퍽 혼란스러워졌다.
그 심정을 알았는지 옷깃을 붙잡은 탐화의 손아귀가 범을 일깨운다.
‘어렵구나. 어려워.’
욕심을 잠재우기란, 그것을 인내하기란 어렵고도 괴로운 법이다.
범은 걱정 말라는 듯 탐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여위를 바라봤다.
여위는 아직도 토끼 화신과 의사소통을 하려는 듯 꾹꾹거렸다.
범은 조용히 뒷짐진 채로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이내 품에서 탐화가 흘린 충모의 거미줄 뭉치를 꺼내 금천지화로 달구어 조금씩 풀어냈다.
몇 가닥으로 풀어진 거미줄이 이내 서로 베베 꼬이며 하나의 실로 뭉쳐지기 시작한다.
그 일련의 동작들이 계곡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순하며 자연스러웠다.
수십만 년 머금은 것이니 연화시켜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이 정도는 어려울 것 없다.
‘제발… 눈치채지 마라.’
여위가 저리 시선을 끌고 있다.
가능하다.
고치 앞에 자리한 화신과 여위의 곁으로 충모의 은색 실이 뱀처럼 소리 없이 다가간다.
화신은 진짜 토끼처럼 콧잔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경계했으나 호기심이 더 강한 듯 조금씩 여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천범은 숨조차 멈추고 다시없을 만큼 집중하며 실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화신의 지척에 실이 다다랐을 때.
‘됐다…!’
화신의 다리를 실로 묶으려는 순간.
덥썩!
화신이 여위의 머리를 덥석 물어 버렸다.
“미친!”
휘리릭!
촥!
천범의 실이 화신의 다리를 묶었으나 머리통을 물린 여위는 달아나지 못했다.
연자보를 잡아낸 기쁨도 잠시였다.
여위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허나 연자보는 녹록치 않았다.
여위를 퉤 뱉어버리더니 자신의 발에 묶인 실을 보고는 발광하며 사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큭!”
실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범이 끌려갈 것만 같은 엄청난 힘이었다.
게다가 속도는 또 왜 저리 빠른지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대는 통에 천장이고 땅이고 할 것 없이 쿵쿵쿵 격한 소음이 퍼져나가고 먼지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놓칠 것 같으냐!”
다른 건 필요 없다.
시간법칙을 다루는 연자보라 할지라도 아직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나 다름없는 수준!
그 증거로 놈은 충모의 거미줄을 풀어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헛점을 천범이 놓쳐낼 리가 없다.
범은 거미줄을 엮어 만든 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접착성이 강한 실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만, 그래봤자 충모의 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될 거다!”
실을 잡은 천범의 손이 화신과 같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다.
이내 토끼는 실타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제 몸이 엉키고 엉켜 충모의 실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됐다.
범은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고 온갖 주술과 부적을 꺼내 주박으로 몸을 묶고 금제를 걸어 버렸다.
이내 선문을 외우며 금제를 마치던 범의 낯에 희열이 깃든다.
그는 누가 볼까 두려워 냉큼 목갑 속에 넣고 부적을 턱하니 붙인 다음, 이걸로도 혹시나 싶어 수봉여산을 꺼내 그 안에 담아버렸다.
‘제 아무리 심후한 신통을 지녔대도 여기까지 꿰뚫어보지는 못하겠지.’
봉은 뿌듯함에 연신 입가를 만개시키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위를 손에 담아 살폈다.
“다행이다. 기절한 것뿐이야.”
갑자기 머리통이 씹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심하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연자보의 화신도 호기심에 깨물어 봤던 듯하다.
어쨌거나 시간법칙의 연자보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여위가 움직여준 탓이다.
화신까지 이루는 연자보는 성족이나 다름없다 들었는데, 아마 그래서 여위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 싶다.
범은 여위를 다시 귀걸이로 변하게 해 귀에 걸고 일어섰다.
“엉망이 됐네.”
한바탕 난리를 친 덕분에 실 샘의 공간이 어지러워졌다.
그래봤자 이곳에 있던 거미줄은 모조리 먹어치웠고, 남은 건 고치 하나뿐이지만….
“어라, 저거 원래 저랬나.”
고치 모양이 조금 바뀌었다.
연자보가 조금 건드렸던 걸까.
빽빽하던 고치의 모양이 조금 틈이 생겨났다.
가만히 그 틈을 바라보던 범은 제도 모르게 발을 내디뎠다.
‘어… 뭐지.’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발.
한발.
제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몸이 제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
이내 전신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뭔가가 잘못됐다.
심각하게 잘못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고치의 벌어진 틈.
그 틈에서 새하얀 손이 튀어나왔다.
촉촉한 액체로 뒤덮인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얀 손이다.
손바닥이 펼쳐지고 손가락이 범의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거였구나.’
탐화가 겁에 질렸던 이유가.
‘이거였다.’
충모가 안배해놓은 것이.
범의 눈앞에는, 서른여섯 개의 눈꺼풀은 있지만 눈동자는 없는 여인이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범의 금안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는 것인 양.
“아버지!!”
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