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78)
낭선기환담-377화(378/600)
낭선기환담 – 2부 87화
범은 문무관장으로 지낼 때 관련 법규를 읽어본 기억이 있었다.
적이 많은 궁중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궁중의 법도를 알아야 괜한 꼬투리를 잡힐 일도 없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배지에 관한 법규는 퍽 흥미로웠기에 아직도 기억 한다.
수계의 동쪽 끝.
그곳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다.
본래는 수계의 땅덩어리였으나 옛 수선이 몇 개로 나누어 떨어뜨려 놓은 섬으로 이름은 팔열도다.
여덟 개로 나눠진 섬은 각각의 섬마다 특징이 있었고, 그것으로 죄의 업을 나누어 놓았다.
여덟 개의 섬은 수계의 동쪽 끝과 죄업에 따라 거리가 멀어졌는데, 가장 가까운 곳을 일열이라 했고 멀리 떨어진 섬을 팔열이라고 했다.
죄선들은 각각의 죄에 따라 일열에서부터 팔열까지 유배를 받게 되고, 유배를 명받은 죄선들은 금제가 부여된 수갑이 채워져 섬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 외에도 섬 자체적으로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어 죄선은 수갑을 풀어낸다 하더라도 탈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계가 완선혈공으로 뚫릴 줄은 몰랐나 보군.’
범은 이 어이없는 상황이 다소 믿기지 않았다.
현실인가 싶기도 하다.
다시 완선혈공을 타고 넘어가고 싶었으나 탐랑이 죽여버려서 그럴 수도 없다.
어쨌거나 대부분 유배를 명받은 이들은 죄목이 깊지 않다면 일열이나 이열도에서 죗값을 치르게 된다.
허나 그 죄가 깊어 칠열이나 팔열도에 유배된 자들은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
“그러니까. 여기가 팔열도라고?”
“그렇다!”
“네 죄는 그리 깊지 않았고, 게다가 천년의 유배라 이제 한 구백년 정도만 채우면 되는 것 아닌가? 한데 네가 왜 팔열도에 있는 거지.”
그리 묻자 황온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언어가 아닌 몸짓과 발짓으로 소통이 되는 법인데, 네놈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거냐 왜.”
“이노오오옴!!”
그러자 황온이 크게 화내며 단번에 황룡의 모습으로 변해 돌격했다.
[단숨에 찢어주마!!]황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날카로운 발톱이 예기를 발한다.
매서운 공격이었으나, 그래 봤자 상선에 족하는 수준이다.
범은 쌍멸을 꺼내 들어 황온의 팔 한 짝을 베어버렸다.
촤아악!!
[크아아아악!!]팔 한 짝을 잃은 황온이 크게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을 구른다.
허나 범은 봐줄 생각이 없다.
대가리를 발로 밟아 고정시키고 놈의 눈앞에 쌍멸을 겨눈다.
“더 날뛰고 싶다면 날뛰어도 좋다. 허나 다음은 팔 한 짝이 아니라, 네 목이 찢겨질 것이야.”
[크으윽….]“네가 어찌 팔열도에 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만 우린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방도가 있다면 말해라.”
그러자 황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왜 처 웃어.”
[이곳을 나가는 법? 그딴 것이 있었다면 내가 진즉 나갔을 것이다! 이곳을 왜 수계의 지옥이라 부르는지 모르는 것이냐?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팔열도만큼은 절대로 나갈 수 없다.]대가리가 밟혀 있으면서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낄낄거린다.
범은 쌍멸을 거두고 몇 번 발로 즈려밟아 주고는 내려섰다.
“죽이지 않는 건가?”
“죽일 필요가 없는 놈입니다. 죽여서 후환을 없앨 정도로 강한 놈도 아니니, 오히려 이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게 더 고통스럽겠죠.”
죽일 가치가 없다.
“한데 네놈이 왜 팔열도에 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네. 말해라.”
[네놈에게 알려줄 것은 단 하나도….]쾅!
콰강 콰가가각!
냅다 머리를 발로 차버리니 근처 산과 충돌해서 뒹굴고 난리가 난다.
“말해봐. 들어줄 테니.”
그제야 겁먹은 개새끼마냥 꼬랑지 내리고 말하기 시작한다.
[난 본래 이열도에 유배되기로….]놈은 본래 이열도에 유배되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지내는 게 너무 지루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이열도에 함께 유배된 수선들과 싸웠다고 한다.
“그래서 팔열도에 갇혔다고?”
[그리 난리를 치니 유배지를 관리하는 관리가 나오더군.]이곳을 관리하는 가문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미씨 가의 자제 중 하나였는데 그놈과 내기 하나를 했다 한다.
이기면 제 역량으로 천년의 유배를 감면해줄 것이고, 진다면 이열도가 아닌 삼열도로 가게 되고 유배 기간도 두 배로 늘려지게 될 거란 소리였다.
“그래서 졌군.”
한 번 졌지만 해볼 만하다 느꼈다.
그리고 두 번째 졌을 때엔 너무 아쉽게 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패했고, 마지막에는 팔열도에 갇히게 되었단다.
“꼴 좋군.”
[크윽….]그나저나 유배지를 관리하는 이가 미씨 세가의 자제 중 하나라.
‘설마 그놈은 아니겠지.’
곤가에 들렸을 때, 곤사비와 약혼 사이였던 녀석이 떠올랐으나 설마 그놈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오대세가라 해도 상선도 아닌 놈에게 유배지의 관리를 맡길 리는 없지 않겠는가.
천범은 골똘히 생각하다 물었다.
“이곳에 너 말고도 미가의 자제와 내기하여 들어온 자들이 있나?”
[이, 있소….]멍청이들이 한 수레다.
그런 내기를 수락한 그들도 그들이지만….
‘내기를 제안한 놈도 문제가 많군.’
수궁의 시야가 닿기에 동쪽 끝은 꽤 거리가 떨어진 곳이다.
미씨 세가라는 가문을 등에 업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유배지이니 무엇을 하는 제 마음대로일 터.
“왕이나 다름없겠어.”
얼마나 이곳을 제 마음대로 주름 잡았으면 그런 내기를 행하였을까.
안 봐도 뻔하다.
“한데 무슨 내기를 한 거지?”
* * *
쇄애애애액!
화살 두 개가 바람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매서운 돌풍이 휘몰아쳤으나 하나는 고꾸라지고, 다른 하나의 화살만이 목표를 향한다.
착!
이내 돛단배 꼭대기에 걸려있던 표적에 정확히 쑤셔 박힌다.
“명중이요!!”
수선 하나가 붉은 깃발을 흔들며 소리친다.
활을 든 사내 둘 중 하나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이다.
“하하, 이거 참 아쉽게 됐습니다. 그럼 약조했던 대로 그대는 사열도에서 칠열도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러자 무릎 꿇은 사내가 관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하,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
“기회. 기회는 누구나 공평하게 드릴 수 있지요. 제가 저 하늘 위의 천존도 아닌데 그까짓 기회를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허나.
“가능하겠습니까. 이번에 지면 칠열이 아닌 팔열입니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지요.”
칠열도도 마찬가지지만, 팔열은 더 심하다.
그곳에서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관여하지 않는다.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죄인이 모두 죽었다 한들 그들은 이미 없는 취급이다.
수계의 동쪽.
유배지에서 팔열도는 지옥이다.
그 누가 감히 지옥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겠는가.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미려한 외모의 사내.
이곳의 유배장 미세파(尾歲破)였다.
종4품 금부나장이라는 직책이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유배장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미세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죄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이내 말했다.
“하겠소! 어차피 칠열도나 팔열도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소! 지금 칠열도에 가서 죽으니 후회 없이 승부하고 팔열도에 가서 죽는 게 나을 테니 승부를 받아주시오!”
이내 미세파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과연 사내대장부로다. 그리하지요.”
그리고 다시금 내기가 치러졌다.
다시 한번 화살을 쏘았고, 세찬 바람과 천둥이 휘몰아쳤다.
죄인의 화살은 다시 한번 고꾸라졌고 남은 것은 미세파의 화살뿐.
구경하던 죄인들은 아쉬움에 혀를 찼고, 유배지를 관리하던 관리들은 유배장의 승리에 환호했다.
“이거 참 아쉽게 됐습니다!”
기분 좋은 듯 소리친 미세파는 자신의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았다.
“무엇 하느냐, 죄인을 압송하여 팔열도로 보내거라!”
“옙!!”
관리들이 죄인을 팔열도로 압송했고, 미세파는 말머리를 돌려 건원해의 하늘 위를 거닐었다.
이내 수계의 동쪽 끝.
동렬에 닿아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니 으리으리한 집채와 여선들이 그를 반겼다.
미세파는 한품에 헐벗은 여인들을 껴안고 애정행각을 벌였다.
침소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욕탕과 여인, 그리고 진수성찬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미세파는 일상이라는 듯 옷을 벗고 탕으로 들어갔다.
여선들이 몸을 씻겨주고 다과와 술을 먹여주니 이곳이 바로 극락이다.
“유배장님. 팔열도로 보낸 죄인을 압송했다 전했더니, 금씨 세가에서 각종 비단과 원근을 보내왔습니다.”
“감사히 쓰겠다 전해드리게.”
방금 내기로 인해 팔열도로 압송된 죄인은 사실, 금씨 세가의 철천지원수였는데 그들에게 뇌물을 받고 일부러 팔열도로 보낸 것이었다.
“저는 아직도 이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 아버님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어쩌시려고….”
심복의 첨언에 미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어차피 미씨 세가의 차남이다. 형님께서는 가문을 이어 가주가 되실 테고, 난 벼슬에 큰 꿈이 없으니 이리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 요 우리 집 선녀들과 함께 말이지.”
함께 욕탕에 자리한 여인들을 끌어안자 꺄악거리며 물장구를 친다.
함께 웃으며 하하호호 하다 보니 선녀가 들고 있던 술이 미세파의 얼굴에 엎질러졌다.
“어머, 죄, 죄송합니다….”
“이년, 네년도 팔열도로 보내주랴?”
돌연 무섭게 화를 내니, 여선의 낯이 새하얗게 사색이 된다.
“감히 내 유려한 얼굴에 술을 부었으니, 네년은 팔열도보다 더한 극락도로 보내주마!!”
그러하며 여선을 끌어안아 우악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진다.
달뜬 신음성이 욕탕에서 시작되니 다른 이들의 낯에 홍조가 낀다.
“하아….”
여색을 탐하는 모습에 심복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저러하신 분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향선에 올라 금부나장의 직책을 받게 됐으나, 이보다. 더한 중책이 어디 있냐 말하던 분이셨다.
내기 또한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한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그 안에서 억지로 여선들이 유린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궁에서 치러진 재판이 좋지 않아 다소 약소한 벌을 받게 된 죄선들을 회유하여 내기를 치렀다.
승자는 미세파였다.
가문의 힘을 입어 일열도에 자리했을 죄선은 육열도로 향했다.
가문의 뒷배로 인해 본래의 죗값을 치러야 할 자들이 다소 약한 벌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유배장은 자신의 가문과 힘을 이용하여 본래 죗값을 치러야 하는 죄인들을 직접 처단했다.
그 이후.
멸문당한 가문의 여선 하나가 자신을 대가로 죄인 하나를 팔열도로 보내 달라 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유배장은 고민했으나 제안을 수락했고 죄인은 팔열도로 갔다.
제 마음대로 팔열도로 보내버린 것을 누가 알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으나 들키는 일 없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무도 관심이 없구나.’
유배지 따위.
수궁에서든 어디에서든 아무 관심이 없는 곳이었다.
일열도의 죄선을 팔열도로 보내든 말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대가문의 자제가 아닌 이상, 죄선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왜?
그들은 전부 죄선이니까.
수계에서 그 누가 죄선에게 관심을 가지겠는가. 자기들 먹고 살기 바쁘고, 가문을 위해 일하기 바쁜데 저 멀리 떨어진 죄인까지 신경 쓸 자는 없다.
“아….”
미세파는 허무함과 자신 또한 이 유배지와 같다는 걸 인지했다.
“재미없네.”
자신이 무엇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세상은 관심 갖지 않을 뿐더러 수궁과 가문의 수선들도 모른다.
외딴 곳이고, 외딴 섬이다.
알 리가 없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때부터였다.
미세파가 죄인을 상대로 재미로 내기를 향하고, 향락을 즐기게 된 것은.
밤새 여색을 탐한 미세파는 여인들의 살 내음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어느새 동이 틀 시각이 다가왔다.
허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하던, 밤늦게 출근을 하던 신경 쓰는 자는 없다. 이곳에서는 그가 왕이나 다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며, 욕정이 동할 때는 아무 여인이나 붙잡는다.
그야말로 하고픈 대로 하며 사는 개망나니나 다름없는 삶이다.
그런 삶에 만족하는 미세파는 다시금 눈을 감고 여인의 살결에 얼굴을 파묻었다.
허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헉, 뭐, 뭐야!”
갑자기 어디선가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엄청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데, 이상하게 귀가 아플 정도다.
“무슨 일이냐!”
미세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그의 심복이 헐레벌떡 달려와 말했다.
“파, 팔열도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팔열도? 팔열도에 있는 죄인들은 전신이 구금되어 있지 않나? 저런 굉음을 낼 수 있는 자들이 없을….”
거라 말하려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제 팔열도로 압송한 죄인인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들은 본래 팔열도에 속하는 죄목이 아니라 따로 전신구금을 할 수갑이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미세파는 머리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쩔 수 없군….”
가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