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82)
낭선기환담-381화(382/600)
낭선기환담 – 2부 91화
“정말 문무관장이십니까….”
“그럼 내가 뭘로 보이나.”
쓰게 웃자 우명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더듬더듬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지. 해 보니 어떠던가.”
“저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범은 허허 웃으며 어느새 자신의 주변에 둥글게 모여선 자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그리운 얼굴들이다.
고작 한 달을 함께 보내고 칠십 년만의 재회였지만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 겁니까!”
“저희가 얼마나 찾았는데요!”
“문무관장이. 아니, 문무부관이 관장님을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다 큰 사내놈들이 뭐가 그리 기뻐서 저리 눈물을 그렁그렁 매다는지 원.
범은 징그러운 놈들이라며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을 한명 한명 안아줬다.
천범과 문무궁의 수선들은 한참이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껄껄거리기도 했다.
누가 누구랑 정분을 나눴네 어쨌네, 양천문무장 놈들이 관장 무서워서 상선보를 줬는데 나타나지 않아 준 걸 뺏으려고 했네 어쨌네 말도 참 많다.
“양천무장이 문무궁의 하관들만 보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 뭡니까!”
“캬, 그 꼴을 관장 어른이 보셨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그려!”
웃기도하고 씁쓸해하기도 한다.
범은 한참이나 둥글게 모여 그동안의 설움과 감내함을 이야기하니.
그저 묵묵히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우명은 물론, 문무대원들의 복장이 상당히 더럽혀져 있음을 깨달았다.
“한데 자네들 꼴이 왜 그러나.”
묻자 미주알고주알 별 얘기를 다 하던 이들의 입이 꾹 닫힌다.
범은 우명을 바라봤다.
“어딜 다녀오는 길이었나.”
어딜 갔다 왔기에 저리 흙투성이야. 염려를 담아 물으니 우명 또한 우물쭈물 거린다.
“오늘부로 문무궁에 복귀한 종4품 문무관장 천범이다. 문무부관 우명은 질문에 답하라.”
“…존명.”
“어딜 다녀오는 길이었나.”
우명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그러자 대원들 중 하나가 애써 웃으며 끼어든다.
“하하, 관장 어른. 별 것 아닙니다. 그냥 다른 부대와 대련을 잠깐….”
“난 문무부관에게 물었다.”
정색하며 말하니 더 이상 나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다.
범이 다시 한번 물었다.
“어디서 무엇을 했나. 문무부관.”
그러자 우명이 답했다.
“양천과 변천 부대원들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고 왔습니다.”
그러자 다른 문무대원들도 뭘 잘못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대련 정도야 할 수 있다.
그랬으니 복장에 흙이 묻어 있고 상처가 있을 수도 있지.
‘한데 꼬라지를 보아하니….’
원치 않게 얻어터진 얼굴들이다.
천범의 볼이 씰룩거렸다.
“앞장 서.”
그러자 화들짝 놀라 말린다.
“관장 어른!!”
“저희는 괜찮습니다!”
“단순한 대련이었을 뿐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자신을 말리는 대원들의 말에 오히려 더 화가 난다.
“내가 없는 칠십 년간 대련을 명목삼아 얻어터지는 것이 너희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되었나?”
“그건….”
날카롭게 찔러오는 말에 벙어리라도 된 듯 입도 빵긋 못한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지.’
적이란 적은 다 만들어놓고 사라졌었으니 이들이 견뎠어야 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본래 다른 부대에 있던 자들이다.
문무관장인 천범의 힘에 매료되어 모든 걸 뿌리치고 왔던 자들이다.
하니, 미움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들을 지켜줄 천범이 없으니 괴롭힘 당하는 것이야 당연했다.
‘우명으로는 역부족이었나.’
우씨 세가의 우명이라 한들, 저들 또한 오대세가에 속해있는 자제들이 한 가득이고 명문가의 자식들과 여러 연줄이 닿아있는 자들이다.
은근한 괴롭힘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터.
‘처음에는 조금이었겠지.’
허나 점점 심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자존감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다.
“수가 줄어들었군.”
부대원의 수가 줄었다.
스물 남짓이다.
본래는 마흔이 넘었었거늘.
범은 다시 한번 말했다.
“앞장 서.”
우명을 똑바로 보고 말하자 무뚝뚝한 그의 눈동자가 범을 응시한다.
“관장 어른이 곤란해질 겁니다.”
“그 책임은 자네들이 지는 게 아냐. 이런 거 하라고 내 품계가 종4품인 것이고 자네들이 높임말 쓰는 상관인 것이야!!”
범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어서 앞장서라 호통 쳤다.
“더 말하지 않겠네. 그 개만도 못한 놈들 앞에 날 데려다 놔.”
복날 개 패듯 패버릴 테니.
* * *
변천궁.
점심부터 술상이 차려져 있는 변천궁의 대청마루에서는 양천과 변천의 문무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변천 부대의 수선들 실력이 날이 갈수록 매서워집니다. 역시 변천무장과 문장의 가르침 때문이겠죠.”
허허 웃으며 양천무장이 술잔을 따르니, 변천이 손사래 치며 겸양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 저들이 알아서 매일 수행과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한 건 뭐 없습니다.”
“하하, 겸양 떠실 것 없습니다. 문무궁의 수선들이 변천부대 수선들과 대련만하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게 일상 아닙니까.”
“그거야 그, 이도저도 아닌 놈 밑에서 잘못 배운 이들이니 그렇지요.”
양천문장과 무장은 은근히 지금은 없는 천범을 깠다.
“솔직히 우리 사천부대만 있으면 충분하지, 별 필요도 없는 문무부대는 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놈도 사라진 마당에 그냥 없애버려도 상관없을 터. 도통 윗분들 속내는 참 알 수가 없다니까요. 아니 그렇습니까, 변천무장?”
“그게….”
그때였다.
식사하는 자리에 돌연 변천부대의 수선 하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변천부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지헌위였다.
다른 수선 같았으면 진작 호통을 쳤겠으나, 그의 뒤에 지씨 세가가 버티고 있으니 성격 급한 양천들도 쉽사리 무어라 하지 못했다.
“지 무선.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
양천문장이 미소를 띠고 묻자 지헌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문무관장이 찾아왔습니다.”
“문무관장?”
지금의 문무관장은 우씨 세가의 자제중 하나인 우명이 임시로 맡고 있다고 들었다.
임시인 만큼 종4품의 품계로 치지는 않고 그저 직책만 받은 것이다.
“우 수선도 참, 문무관장 자리를 뭐 하러 그 세월 동안 지키고 있는지….”
“뼈대 있는 명문가 자제가 어쩜 그리 융통성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씨 집안 특징이죠. 그 우직함에 여태껏 명문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변천무장이 옹호하자, 양천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주억인다.
“물론이죠. 아암, 그렇고말고.”
“저희가 욕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 그런 게 아닙니까. 그 창창한 젊은이가 뭐가 아쉬워 그런 자리에….”
양천문장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고 양천무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데 문무관장이 왜 온 게냐.”
“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요, 지 무선.”
“그 문무관장이 아닙니다!”
지헌위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천씨 성을 쓰는 문무관장입니다!”
콰앙!!
그와 동시에 변천궁 연무장에서 돌연 큰소리가 퍼져 나왔다.
양천장들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고, 변천장 또한 급히 일어나 연무장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보이는 얼굴은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금색의 눈동자에 깃든 무감정한 눈빛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아, 아니…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양천장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손을 덜덜 떨었다.
변천무장과 문장은 연무장에 쓰러져 있는 수선들을 보며 쌍심지 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별 것 아닙니다. 변천의 수선들에게 약간의 가르침을 주었을 뿐이죠. 그래도 제가 문무관장인데 이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싱긋 웃으며 내뱉는 말과 달리, 연무장 한 가운데에는 유성이라도 떨어진 듯 뻥 뚫려 있었다.
다행히 다친 이들은 없는 것 같았으나 정신을 잃고 혼절한 수선들은 여럿 보였다.
양천무장과 문장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는지 주춤거리며 저도 모르게 거리를 벌렸고, 변천장들은 그의 무례한 태도를 따지고 들었다.
“아무리 가르침을 위한 것이라 해도 정도가 너무 과하지 않소!”
“과하다고요? 너무 과민반응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고작해야 주먹질 한 번만 보여줬을 뿐입니다.”
천범은 연무장에 깔려있는 선석을 톡톡 두들겨보고 혀를 쯧쯧 찼다.
“변천궁의 연무장이 너무 약한 거 아닙니까? 사천궁의 관리는 각각의 사천장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뒷돈이라도 빼돌린 게 아니냐는 말이다. 이내 변천장들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그 말, 감당할 수 있겠소!!”
화가 머리끝까지 난 변천문장이 삿대질을 해가며 소리쳤다.
“오늘따라 그 말 많이 듣네.”
범은 자신의 뒤에 대기하고 있는 문무대를 힐긋이고는 답했다.
“감당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까까지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면 이제부터 아니라는 듯의 기세가 돌변했다.
누구 하나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 포악한 맹수의 기세였다.
“제가 없는 칠십 년간 어지간히도 많이 문무궁의 수선들을 부려먹었더군요. 확인해보니 별의별것들로 다 괴롭히셨습니다.”
심심하면 자기 부대의 대련상대를 시키지 않나, 위에서 내려온 임무를 자기들 멋대로 떠넘기지 않나.
변천과 양천은 물론, 유천 또한 문무부대를 자기 아랫것 대하듯 부려 먹기 일쑤였다.
모든 사실을 들었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게 어디 천범이겠는가.
내 새끼가 뺨 한 대를 맞았다면 그 자식새끼나 부모에게 열 대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게 바로 천범이다.
범은 곧장 쌍멸을 꺼내 휘리릭 돌리고는 연무장 바닥에 쾅! 찍었다.
“쌍멸!!”
“역시 그 소문이….”
쌍멸을 직접 본 양천과 변천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범은 기세 등등 팔짱을 끼웠다.
“거 내기 하나 합시다.”
내기!!
내기라는 말에 양천문장과 무장은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른 듯 위축됐다.
“내기라면….”
“전 쌍멸을 걸지요.”
쌍멸을!!
“그게 정말입니까?”
“나 문무관장 천범은 단 한 번도 거짓을 뱉어본 적이 없습니다.”
뻔뻔하게도 내뱉는 말에 양천장들이 죽일 듯 노려본다.
“내기 내용은 뭡니까.”
“양천과 변천장들께서 저와 함께 대련 한 번 하시지요.”
“대련이요? 지금 저희 넷을 상대로 대련을 하시겠다 이 말씀입니까?”
“왜요, 쫄리십니까?”
“문무관장! 말씀을 가려 하십시오!!”
허나 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쫄리면 말하세요.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련 한 번 해서 제 얼굴에 주먹 한 번 우겨 넣는다면 기꺼이 쌍멸을 내놓으려 했는데….”
슬쩍 양천과 변천을 본 천범은 쯧쯧 혀를 찼다.
“사천장 분들께서 이리 겁이 많으신 분들일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사대일로 싸우면서 제 얼굴에 주먹 한 번 꽂아 넣지 못할 거라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아무리 문무를 겸비한 문무관장이라도 더 이상의 도발은 용납지 않소! 나 변천무장의 이름을 걸고 그대의 내기를 수락하지!!”
홧김에 수락한 변천무장의 말에 양천들이 화들짝 놀란다.
“벼, 변천무장. 자신 있으시오?”
“문무관장의 실력은 그… 이런 말씀드리기 뭐한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듯 주뼛거리는 양천장의 말에 변천무장은 단 한마디로 입 다물게 했다.
“그래봤자 문무관장도 상선입니다! 게다가 선뜻 사대일로 싸워주기까지 하는데 거절하면 사천장의 이름이 울고 말 것이오!”
“허나 만약 우리가 지게 된다면 사대일로 박살이 났다 궁내에 소문이 파다해질 것입니다!”
“양천무장. 언제 이렇게 겁쟁이가 되셨소. 사대일로 싸워 설마 문무관장에게 주먹 하나 닿지 못하겠소?”
“허, 허나….”
“허허, 나만 믿으시오.”
“그렇소, 변천무장이 어떤 수선인지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것이오.”
변천문장이 양천장을 달랜다.
“변천무장은 차기 오천장으로 올라설 사내라 거론되지 않소!”
“아암, 사대일도 필요치 않지. 문무관장과 일대일로 싸워도 쌍멸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
자신만만 해하는 변천무장의 기세에 변천의 수선들 또한 의기양양하다.
그 모습에 양천장의 생각이 바뀐다.
‘그래 한 번의 유효타로 쌍멸을 얻을 수 있다면….’
‘한 번만 때려 맞추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자그마치 사대일이다.
문무관장일지라도 상선이다.
공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토록 각인되고 부풀려지기 마련.
“그래, 지난 칠십 년간 우리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소!”
“옳소! 문무관장! 칠십 년 전의 나를 생각한다면 단단히 큰코다칠 것이니 각오하시오!! 단순한 일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니!”
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범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