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86)
낭선기환담-385화(386/600)
낭선기환담 – 2부 95화
척.
통천 서고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 둘이 창을 들어 막아섰다.
허나 이내 그 창은 다시 거둬졌다.
“문무관장님 아니십니까.”
“음? 아, 날 기억하나.”
“당연하지요. 겨우 칠십 년 전인데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합니다. 소문은 들었는데 정말 살아계셨군요. 다행입니다.”
“자네는 성취가 조금 있었던 것 같군. 축하하네.”
“하하,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이게 다 문무관장의 시험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때 한 삼십 년 정도 끙끙 앓다 겨우 풀어냈지요.”
경비병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강체술을 보였는데, 범이 문제 속에 넣어둔 균천보화의 열화판 강체였다.
자기 입맛대로 조금 바꿔놓은 듯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다.
“훌륭하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 이런 정신머리 없이 관장 어른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죠.”
“고맙네. 자네 이름이 뭔가.”
“비렴입니다.”
“기억하지.”
“영광입니다.”
훈훈한 대화를 마치고 서고에 들어가자 그를 반기는 것은 이곳을 관리하는 노인이 아닌, 어린아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범이 포권하자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던 어린아이.
대천무장의 원신.
주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범을 흘겼다.
“아니지?”
다짜고짜 아니라 묻는다.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지만 범은 알 수 있었다.
오행팔괘신에 대한 물음이리라.
보자마자 묻는 걸 보니, 범의 기운이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 모양이다.
오행육십사괘는 본래, 극산을 육십사괘로 나누어 신체에 담아내어 평소보다 월등히 뛰어넘는 힘을 지니게 해주는 강체술의 일환이다.
그렇다 보니 육십사괘가 신체와 맞물리는 기간도 필요하고, 여덟 개로 나뉜 팔괘를 이해할 시간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몸속에 담아내면 담아낼수록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강체술이라는 뜻이다.
하여 오행팔괘신을 알고 있는 주약은 그 변화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거짓말! 대체 칠십 년간 무얼 했기에 그걸 익혔단 말이야!”
“이런저런 일이 있었죠. 아직 사백삼십 년이나 남았지만 내기는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나버렸군요.”
칠십 년 전 주약과의 내기.
범이 이기면 서고의 모든 수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진다면 주약의 노예가 된다는 내기다.
“인정 못 해!”
허나 주약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다는 듯 떼썼다.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며 많은 공법을 익혀왔지만 오행팔괘신을 익혔던 자는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주약의 주장이다.
한데 칠십년 만에 상선이 익혔다 하니 당최 믿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럼 어찌해야 인정하시겠습니까.”
“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어!”
두 눈이라.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다.
바로 오행극산을 꺼내 입을 달싹이니 각각의 기운을 흩뿌리며 괘의 형태로 바뀌어 간다.
이내 오행은 팔괘로 바뀌고, 팔괘는 육십사괘로 나뉘어 전방위로 펼쳐지며 만다라가 피어난다.
육십사괘가 몸 곳곳에 자리 잡아 금색으로 스며들다 전신이 발광한다.
오행육십팔괘.
그것이 펼쳐지자 이 서고의 영역이 모조리 범의 손아귀에 있는 듯하다.
금안은 더없이 영롱하게 빛나고 사방의 모두 자신의 것만 같다.
“이제는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때였다.
휙.
연기처럼 사라진 주약이 범의 사각에서 짓쳐들어왔다.
허공을 꿰뚫었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강렬한 일수.
턱!
“오, 이걸 막아?”
허나 범은 막아냈다.
표정은 좋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약은 신기하다는 듯 말하고 다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아니 왜 서고에서 난리들인지….”
가만히 바라보던 향의정, 향장은 투덜거리며 손을 휘적였다.
그러자 통천 서고의 기둥 같던 나무들이 어둠에 잡아먹혔다.
수서를 지키기 위해 그가 숨긴 것이리라.
‘이게 아닌데.’
주약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점점 그 위력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쿵, 쾅!!
단순히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는 것뿐인데도 굉음과 어마어마한 여파가 퍼지기 시작한다.
공간신통을 이용한 경신법인지 허공을 뚫고 사라졌다, 갑작스레 공간을 뚫으며 공격해온다.
그 때문에 기척을 읽는 게 어렵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여러 가지 보법을 섞어 쓰니 당최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다.
오행육십사괘의 특성으로 오감이 예민해진 게 아니었다면 반격은 자시고, 막지도 못했을 거다.
‘이 정도 차이인가.’
솔직히 향선 후기의 원신이라 한들, 해 볼 만하지 않을까 했다.
허나 원신이라도 수계 제일의 무선이라는 대천무장의 원신이다.
만일 진심으로 싸우게 된다면 어떨까. 범은 자신이 승리하는 미래를 그려낼 수 없었다.
‘모든 수를 다 쓰게 된다면 5할.’
강체만으로 싸운다면 3할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대천무장의 원신과도 이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본체인 그녀는 대체 얼마나 강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맞긴 맞구나.”
긴장이 극도에 이르게 되었을 때.
돌연 주약의 허탈한 음성이 서고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내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아, 이거 본신한테 엄청 혼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정수리를 벅벅 긁으며 오만상을 다 구긴다.
어지간히 골치 아픈 일인 듯하다.
범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오행육십사괘신을 거두었다.
탈력감이 스며들며 소진된 기운이 만만치 않아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도 약속이니 지킬게.”
주약은 그리 말하며 향의정에게 그리 해달라고 청했다.
향장은 알겠노라 말하며 범에게 영패를 달라 말했고, 그것을 건네고 잠시 후.
범의 영패에 알 수 없는 선술이 걸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는 안되는 거지만… 대천무장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향장은 그리 말하고 모습을 감췄고, 주약은 곁에 남았다.
“모든 수서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통천 서고의금 서도 보게 할 수는 없어. 너,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 거야.”
“못 보게 감시한다는 겁니까?”
“겸사겸사? 네가 어떻게 오행팔괘신을 익혔는지도 궁금하니까. 아무리 봐도 내가 알던 거랑은 조금 다르니까… 이야기 좀 들려줄 수 있지?”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응, 뻔해. 대천무장, 그러니까 내 본신에 대한 물음이지?”
“그것도 있고, 주약님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 입장은 아니라서요.”
“내 가르침을 원해?”
“얻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자는 주의라서요.”
“볼수록 웃기는 놈이네. 뭐 좋아!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게 많으니까 거래하도록 하자.”
그 뒤, 범은 주약과 대화를 나누며 통천 서고의 모든 법칙수서를 열었다.
주약은 친히 법칙 수서에 관해 알려주었는데, 그녀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의 수서로 수행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통천 서고의 법칙 수서는 일천 개가량이 있어. 모든 법칙이 삼천 개라고 일컬어져 있으니 삼 분의 일은 이곳에 있다 봐도 무방하지.”
법칙의 종류는 모두 삼천.
그중에서도 절대적인 법칙 세 가지를 진칙이라 한다.
“진칙(眞則)… 그 세 가지가 뭡니까.”
“시간, 공간, 그리고 기(氣)다.”
“기요?”
시간과 공간은 그렇다 쳐도, 기가 법칙의 절대 법칙 중 세 가지라 하니 그럴듯하면서 그닥 와닿지 않았다.
“네 몸 자체의 원기. 자연의 선기. 갖가지 기운들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세상이고 하늘이다. 태초의 존재들 또한 그 기운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이들이니 기운이 진칙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진칙이겠어.”
확실히.
저리 들으니 이해가 간다.
세상 만물의 법칙 중, 기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게 없다.
범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모든 삼천 법 칙이 모이고 진칙이 뒤섞여 자리하는 게….”
창조(創造).
‘삼천법칙이 모두 모여 뒤섞인 것이 바로 창조의 법칙….’
창조의 어마어마한 실체에 범은 감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월제항에 깃든 창조의 일말을 보고서 전부라 치부하였던 것이다.
‘일말의 밀알이었구나.’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법칙의 방대함 속에 범은 돌연 길 잃은 아이처럼 마음의 방황을 거두지 못했다.
창조의 법칙을 위해서는 그 외 삼천 개의 법칙을 섭렵할 필요가 있었다.
“창조할 수 있는 자가 있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법칙이다. 모든 법칙을 모두 섭렵해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법칙이라니.
“글쎄, 내가 알기로 상계에서 세 명 정도?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 셋이 상계를 다섯으로 나누어 쪼개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굽어살펴 경계를 만들어 수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라천의 하늘 위에 올라갔다는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흥미로운 내용이다.
“그들이 이룩한 게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기도 하고…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믿는 자들이 많지 않지만 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삼세삼기(三世三氣).
세 가지 세상에 세 가지 기운.
옛 신선들은 그들을 그리 부르며 추앙하였다고 한다.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로 만족스러운지 연신 미소짓는다.
범은 가만히 주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닙니다.”
어쨌거나 주약의 이야기는 대체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삼세삼기에 대한 이야기나, 삼천법칙에 대한 것들 대부분 쉽게 들을 수 없는 정보였다.
통천 서고에 있는 법칙 수서는 천 개 남짓이었으나 그걸 전부 익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간단한 법칙 하나를 제대로 익히는 것도 수만 년이 걸리는데, 천 개나 되는 법칙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는가.
“나도 될 수 있으면 익혀보려 했지만 세 개 정도밖에 못 익혔어.”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주약도 그렇다는데 범이 어찌 익힐 수 있을까.
쉽지 않을 듯하다.
“한데 주약님은 왜 이곳에서 홀로 수행하시는 겁니까.”
대천무장의 원신이라면 그녀에게 배우거나 함께 수행하는 게 좋지 않나 싶었다.
의아해 묻자 주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리 말하며 혀를 쯧쯧 찬다.
“왜 그런 겁니까?”
원신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통제가 어렵고 제멋대로라 알고 있다.
그것이 본신에서 떨어져나온 무의식적인 이념이 담겨있어 그렇다 들었는데, 주약 정도로 이지가 있고 저만한 지식과 관념이 있다면 통제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신이란 자고로 본신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야. 원옥일 때는 심기체를 합일시키는 기준이 되지만 원신이 됨과 동시에 본신의 반쪽이 된다.”
향선 초기에는 원신을 형성하고.
향선 중기에는 원신이 체내에서 떨어져 나와 의지를 갖는다.
그리고 향선 후기에는 점차 성장하여 강력한 법칙과 신통을 부린다.
“허나 후에는 어차피 본신과 생을 겨루어야 하는 몸이야.”
“예? 생을 겨루다니….”
“둘 중 하나는 죽는다는 소리지. 우린 서로에게 떨쳐내야만 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밟고 올라서야만 승선할 수 있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