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90)
낭선기환담-389화(390/600)
낭선기환담 – 2부 99화
팽종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힘 조절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허나 놈은 멀쩡하다.
어느새 몸 전체를 뒤덮은 검은 갑주와 오행의 기운을 뿌리는 산 형태의 법보가 자리할 뿐이었다.
멀쩡히 서 있는 모습에 주변에 자리한 가주들은 물론, 수선들 또한 눈만 깜박거렸다.
저리 멀쩡할 리가 없다.
팽 가주의 뇌신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그 위력이 강대했다.
순간적으로 대천문장과 대천무장, 그리고 가주들이 결계를 치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과 기물이 파손될 정도였다.
그 결계에 문무관장이 들어가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찌 저리 아무렇지 않은 모습일까.
그러니 수선들은 물론, 자리한 향선들조차 얼떨떨한 게 당연했다.
“하, 하하… 이거 팽 가주께서 너무 힘을 빼셨나 봅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상선에 머물러 있는 문무관장에게 본심을 드러내기는 어렵겠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적막감이 흐르니 지 가주가 애써 웃으며 무마시켰다.
당연한 논리다.
그리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요?”
확인받으려는 지 가주의 물음에 팽종연은 답할 수밖에 없다.
“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손속에 정을 두지 않는다면 오늘 수궁에서는 송장 하나 치워야할 테고,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 한들 상선을 상대로 제가 그리할 순 없죠!”
팽종연의 말에 수궁의 병사들은 물론, 자리한 자들 대부분이 그제야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인다.
본래 현실이란 자신이 인지 가능한 틀 안의 것들을 말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믿기 어렵다.
그러니 팽종연의 말에 수긍했다.
직접 뇌신으로 일수를 건넨 장본인, 바로 팽종연이 하는 말이니 당연하다.
“팽 가주, 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니 너무 봐줄 것 없어 보입니다. 역시 문무관장이라 그런지 썩 잘 막아내 보이는군요. 마지막 이 수는 조금 본심을 담아 봐도 될 듯합니다!”
지 가주의 말에 팽종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조금 강도를 올려 보지! 이것마저 막아낸다면 내 문무관장의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으리다!”
팽종연이 수결을 맺고 허공에 손을 내리긋는다.
휘이이잉.
묘한 바람이 일렁인다.
그가 입을 달싹이니 하늘에서 천둥이 들끓는다. 동시에 적룡의 모습을 한 뇌신이 나타나고 적뇌를 흩뿌리며 뇌전으로 이루어진 진을 구축한다.
“뇌신진!”
미 가주가 흠칫 놀란다.
“아무리 그래도 법칙의 힘을 사용하는 건 과한 것이 아닙니까?”
“제 입으로 향선과도 맞설 수 있다 했으니 이 정도는 해주어야지요. 팽 가주의 뇌신진이 나왔다는 것은, 천뇌의 법칙과 그 합일이니… 오랜만에 적뇌향응주를 볼 수 있겠습니다.”
쿠르르릉!!
적뇌가 퍼덕이며 뇌신진에서 열댓 마리의 적룡이 튀어나왔다.
뛰쳐나오고 싶은 듯 발광하는 열댓 마리의 적룡이 뿜어내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상선들은 벌써부터 얼굴을 찡그리는가 하면 무릎이 꺾이는 자도 있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모습을 드러낸 열댓 마리의 적룡은 벼락처럼 순식간에 내려쳤다.
하지만 목표가 천범은 아니었다.
그것들 모두 팽종연에게 내려치자 그의 몸에 적뇌가 만연했다.
전신은 붉은 갑주가, 손아귀에는 흉흉한 거창이 들려 있었다.
뿜어내는 예기가 남다르다.
뇌신이 변한 갑주와 창으로 팽종연의 기운 또한 한층 날카로워졌다.
온몸이 적뇌로 가득 찬다.
마치 적뇌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며 기운이다.
“우리 팽가의 적뇌향응주… 원신을 뇌신과 합일시키고, 그것으로 또 다시 법칙합일을 이룬 신통이지.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게요, 문무관장.”
포기하라는 말과 달리 눈빛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범은 피식 웃고는 자세를 잡았다.
닮아 있다.
만류귀종이라 하던가.
극의에 이르면 일맥상통한다더니, 그 모습이 균천보화와 닮아있다.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괜한 짓을 했나.’
천범이 이런 상황을 만든 이유는 일종의 과시다.
자신의 힘을 내보임으로써 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위명을 드높여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무리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그리했다.
게다가 불천불벽이 쌍멸을 삼키고 있으니 그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천 년 뒤.
선살전에서 강력한 수선의 숫자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제아무리 상선이라도 향선 못지 않은 힘을 지닌 자가 있다면 그들은 천범을 괄시할 수 없다.
지금은 상선이지만 그가 향선이 된다면? 지닌 힘은 몇 배나 강력해질 것이 당연하다.
진정 조금이라도 수계를 위한다면, 그들은 천범을 해하는 일에 터럭만큼이라도 껄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범은 그걸 원했다.
그 작은 틈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균열은 붕괴의 조짐이 된다.
‘그래도 조금 버겁군.’
탐화가 변한 위주호연갑과 오행극산으로 만든 오행육십사괘의 묘리로 만든 결계. 오행괘망(五行掛網)이다.
오행극산과 괘의 묘리로 기운을 그물처럼 만들어 촘촘하면서도 단단한 방어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향선 후기의 경지가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뇌신을 온전히 막아냈으나 피해가 없지는 않다.
갑주로 변한 탐화는 괜찮았으나, 천범의 주위를 선회하는 오행극산의 기운이 조금 쇠했다.
결계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속은 진즉 문드러져 형태만 유지하고 있을 뿐.
다행이라면 수봉여산은 멀쩡했기에 다른 극산들도 시간을 두면 연계되어 있는 터라 금세 회복될 거라는 점.
허나 그 또한 살아남았을 때의 일.
지금 다가오는 저 뇌신의 창을 막아내야만 이루어질 일이다.
고민은 짧았다.
위주호연갑에서 탐화의 사슬.
금쇄가 튀어나와 땅바닥에 깊숙이 박혀 천범을 고정시켰다.
동시에 입을 달싹여 오행괘망은 천범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오행육십사괘신이 발동한 것이다.
천범의 위주호연갑 위로 육십사괘가 금색으로 번뜩인다.
그 모습에 팽종연이 뛰어들었다.
쿵!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팽종연의 디딤발에 지면이 움푹 패여 파편이 휘날린다.
그와 동시에 붉은 뇌전이 사방으로 퍼득여 휘날리고, 반대로 손에 쥔 거창의 적뇌는 한 점으로 모여든다.
팽종연의 뇌신의 창이 서늘함을 내뿜으며 천범의 목을 노린다.
그 순간.
사방에 꽃잎이 휘날리고, 천범의 손에 검 한 자루가 쥐어진다.
검은 이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고, 천범의 금안이 번뜩이며 전신에서 금천지화의 불꽃이 치솟는다.
순식간에 사방을 메마르게 할 강렬한 금색의 불꽃.
찬란히 빛나는 그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이내 천범의 주먹과 팽종연의 적창이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적색과 금색이 뒤섞여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일어났다. 수궁은 물론, 하공 밑바닥까지 일대에 널리 퍼지니 멋모르는 수선들은 선살전이 일어났나 할 정도다.
자리한 수선과 가주들도 거대한 규모의 폭발에 결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크윽.”
대천문장은 결계를 유지하며 꽤 많은 힘을 쏟아 부었다.
팽 가주의 뇌신합일은 대단했다.
창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만 번 내려치는 벼락의 응축된 힘을 모아 한 번의 창격으로 수만 번의 벼락과 같은 힘을 낸다.
그는 단 한 번의 찌르기를 보였으나, 그 뒤로 수천만의 적뇌가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사방으로 내려쳤다.
상선치고는 대단했다.
문무관장이라 칭할 만하다.
허나 고작 그 정도다.
향선 후기에 이른 자가 본 실력을 내면 한낱 파리만 한 목숨이 된다.
경지의 고하라 그런 것이다.
살아남았을 리 없다.
천뇌의 법칙이 담긴 적뇌요, 그것을 합일시킨 법칙합일이다.
수만 번의 찌르기를 흉내 내듯 수만의 적뇌가 쇄도했을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찰나의 순간에 행해졌다 사그라들었을 터.
하늘에서 내려친 벼락처럼.
‘낭중지추가 독이었도다.’
튀어나온 송곳은 눈에 띠기 마련.
문무관장은 특별했다.
그리고 뛰어났다.
허나 그것이 그 목숨을 앗아갔다.
‘아쉽게 됐군.’
산송장 하나 치우게 되었으니 그리 보기 좋은 상황은 아니니라.
허나 그는 대천문장.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손을 뻗어 휘젓자 모래 먼지가 하늘 위로 흩어진다.
육편이 되어 휘날리지는 않았을까 했으나 아니었다.
완전히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뭣….”
가주들 또한 흠칫 놀랐고, 주변에 자리한 수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멀쩡…하군.”
모두들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문무관장은 의외로 멀쩡했다.
기운이 크게 쇠한 듯 했으나 그것 말고는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것이 가주와 대천문장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자신한 대로 향선 후기의 이수를 막아낸 것이다!
“말도 안돼!”
지 가주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고 대부분 그 말에 동의했다.
허나 보이는 모습이 명백하다.
팽 가주는 분통이 차오르는 듯 전신을 덜덜 떨며 문무관장을 노려봤다.
이내 섬뜩한 살기가 차오른다.
그 앞을 누군가 다가와 막는다.
“문무관장은 팽 가주의 이 수를 막아냈습니다. 승부는 났군요. 아닙니까?”
대천무장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앞을 막는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팽 가주의 살기가 사그라든다.
“난 이만 가보겠소.”
팽 가주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붉은 벼락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러자 수선들은 모두 문무관장을 보았다.
이 말도 안 되는 내기에서 누가 승리를 거머쥐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대천문장. 약조를 기억하십니까.”
“…수계를 대표하는 향선 후기 중 한 분의 이 수를 막아냈으니 문무관장의 힘에 이견을 제시하는 자는 없을 것이오.”
보는 눈이 수천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보란 듯이 해 냈으니 억지를 부릴 수도 없다.
“승자는 문무관장 천범이오!”
대천문장이 외치자 계월선의 문무선들이 큰 소리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내 계월선에서 내려와 천범의 곁에 자리하며 기뻐한다.
허나 천범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대천무장은 범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깨달았다.
‘눈이….’
탁하다.
선명한 금안이던 동공이 회색이다.
찰나의 순간에 모습도 조금 바뀌었다. 뿔과 날개가 돋아있다.
탈형의 모습을 취하게 된 것이라.
‘머리카락이 원래 저리 길었나.’
의아했지만 그걸 신경 쓸 때는 아니다.
“문무부관 우명.”
“예.”
“부관은 즉시, 문무관장을 계월선으로 안내하세요.”
“알겠습니다.”
우명은 천범에게 다가가 흠칫 놀라고는, 그를 계월선으로 이끌었다.
이내 문무궁의 수선들과 천범이 계월선에 모두 탑승했다.
멀거니 있던 가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계월선만 바라보다 쯧 혀를 차고는 급히 사라졌다.
* * *
붉은 벼락으로 변하여 수궁 한켠에 내려선 팽종연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신음했다.
“빌어먹을….”
두통이 치미는 듯 갖은 인상을 다 쓰더니 이제는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꾹 누른다.
팽종연은 찰나에 일어난 순간을 다시금 복기했다.
적뇌향응주의 일격을 내지른 순간, 놈의 눈이 기이해졌다.
그러자 순간 쌓아둔 기억들이 폭발하듯 그를 덮쳤다.
찰나에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아 봤더니 묘한 기운이 창을 타고 자신의 손에 침투해 기혈을 흩트려 놓았다.
‘절대 상선의 수준이 아니었다.’
향선이라도 어렵다.
향선 초기의 수선이라도 이 정도의 노련함은 없다.
덕분에 온전한 일격을 싣지 못했고,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동시에 팽종연은 깨달았다.
지금 죽여야 한다고.
지금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종래에는 정적이 되어 목숨이 노려질 것이라고!
“젠장….”
아직까지도 떨리는 손을 꾹 눌러 잡으며 팽종연은 등을 돌렸다.
한 발 떼려던 그는 순간 멈칫하고는 계월선이 있는 선착장을 바라봤다.
계월선을 오르는 이들 중에 붉은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보였다.
“가연이를 믿을 수밖에 없겠군.”
그 똑똑한 아이라면, 충분히 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얼마가 걸리든 그리만 한다면 마음의 짐을 놓게 될 것이니!
팽종연은 입꼬리를 비틀고는 다시금 붉은 벼락으로 화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