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94)
낭선기환담-393화(394/600)
낭선기환담 – 2부 103화
붉은 검신이 결천의 목에 닿았다.
결천은 몇 수의 공방을 펼쳤으나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천녀의 검격은 변화무쌍하고 공수를 겸비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힘과 속도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완벽하게 차이가 났다.
결천에 목에 닿은 칼날에 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물러나주세요.”
결천은 적잖이 충격 받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다음에 만날 때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다.”
“다음 번에는 전장에서 만나겠군요.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혀를 찬 결천은 혼선의 무리를 이끌고 계월선을 떠났다.
남은 건 인선의 무리뿐.
“인사가 늦었습니다. 천궁의 천녀라고 합니다.”
우명과 가연은 천녀와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혼선이었던 주해종 결천과는 달리, 이 여인은 말이 통하리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기도 했다.
“통천수궁의 문무부관 우명입니다.”
“가연입니다.”
조금 전의 전투와 백건분이 귀띔해준 이야기로 대강 알았다.
천녀는 천궁에서도 지위가 높은 여인이었고, 천 가지 검술을 익혀 상선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다 한다.
우명과 가연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납득했다.
결천을 제압하는 변화무쌍한 초식과 그걸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으니까.
“못볼 꼴을 보여드렸으나, 대강 인선과 혼선의 상황을 예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천녀와 결천의 대화는 그들의 입장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한창 전쟁 중인 천궁과 선궁.
인선과 혼선으로 나뉘어진 파벌 간의 싸움은 오래토록 이어진 듯하다.
“적진이라는 말도 다르지 않지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면 이곳에 발 딛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저라도 목숨이 위험한 곳이니까요.”
“그런데도 여기까지 발걸음해주신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가연이 묻자, 흔쾌히 답한다.
“사신 분들을 천궁으로 데려가기 위함입니다.”
역시라면 역시다.
한창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선계의 입장 상, 수계가 어느 곳에 힘을 실어주냐에 따라 사기가 뒤바뀔 것.
그러니 앞 다투어 자신들을 회유하려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결천이 왜 그리 급하게 억지를 부렸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수계의 사신을 자신들의 편에 서게 한다면 혼선과 인선의 전쟁이 끝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으음….”
허나 애매한 상황이다.
수계에서는 그나마 연관이 있는 혼선에게 힘을 싣자는 의견이 많았다.
알아보라 보낸 것이긴 하지만, 터럭만큼이지만 연관성이 있는 혼선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혼선의 법혈을 알고 계십니까.”
“예. 결천 수선께서는 저희에게 월법혈을 약조하셨습니다. 그 조건으로 몇 가지 제안도 하셨죠.”
“그럴 것 같았습니다. 허면 법혈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위험성이요?”
들어본 적 없는 소리다.
“법혈은 혼선 특유의 뒤섞인 피를 이용해 만드는 영약입니다. 그 때문에 어떤 피를 사용해 만들었냐에 따라 효능은 물론 부작용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위험한 물건이죠.”
“그렇군요….”
“그나마 월법혈은 덜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가연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월법혈의 효험이 대단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게다가 인선과는 달리, 저희 수계의 수선들에게는 어떤 부작용도 초래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뗐다.
“그럴지도 모르죠. 제가 혼선을 깎아 내리는 듯한 말을 했지만, 나름대로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저도 수계의 수선분들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그러니! 인선과 혼선 모두를 차분하게 살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말재간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싱긋 눈웃음치는 모습을 보아하니 사내의 애간장을 여럿 흔들어 놓았을 듯하다.
“그리고 제가 주해성에서 사신단의 수선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대부분 무언가를 찾고 계시더군요. 호기심에 알아보니 내상에 좋은 탕약이나 선초를 찾아다니시는 걸 보니… 누군가 몸이 좋지 않으신 모양이에요.”
가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슬쩍 천녀와 함께 온 백건분을 노려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상에 좋은 치료약이라면 저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게 있습니다.”
천녀가 눈짓하자 그녀의 뒤에 시립해 있던 여인들 중 하나가 작은 함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열어보십시오.”
우명이 함을 열어보자 안에는 네모난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안에는 우윳빛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반짝거리며 은은한 빛을 내는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닌 듯 싶었다.
“천법혈입니다.”
“천법혈이요?”
“혼선이 만든 월법혈에는 적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했지요.”
법혈이란 피에 담긴 힘을 증폭시켜 깨달음과 몸속의 혈력을 깨워 준다.
허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초래함을 막을 수 없다.
혼선이라면 그것이 덜하지만, 인선이 사용했다가는 이성을 잃고 만다.
월법혈은 조금 덜하지만 그렇다 해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그리하여 인선 측에서 월법혈을 개량하여 만든 것이 바로 천법혈이다.
“이거라면 내상 따위는 단숨에 치료할 수 있겠죠. 어쩌면 벽을 깨뜨려 버릴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것으로 지금의 경지에 올라섰으니까요.”
그때 백건분이 전음으로 전했다.
-월법혈도 보통 수선들은 구할 수 없는 천혜의 영약입니다. 만드는 것도 오래 걸리고 그 값이 어마어마해 거대 종파가 아니고서야 손에 쥐기가 어렵다 하더군요. 그런데 그것을 개량시킨 천법혈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오직 천궁에서만 얻을 수 있고, 천법혈을 손에 쥔 자는 인선 중에서도 극소수에 달한다.
저것을 선뜻 냈다는 것은 인선 쪽에서 사활을 걸었다는 뜻.
그리 대단한 물건이라 하니 어서 빨리 문무관장에게 전하고 싶었다.
‘허나….’
천법혈을 사용한다면 의도치 않게 인선쪽에 빚을 지게 된다.
가연과 우명은 그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결정은 자신이 내리는 게 아니다.
결정권자는 문무관장이다.
그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천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선뜻 천법혈을 가연과 우명 쪽으로 밀었다.
“이것으로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혼선 측만 바라보지 마시고, 인선도 한 번 둘러봐주시라는 겁니다. 결정은 지금 답하지 않으셔도 되니 우선은 한 목숨을 살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저렇게까지 말해주니 절로 감사의 마음이 피어난다.
우명과 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로 된 예의를 갖췄다.
“천녀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감사드립니다.”
그 의도가 어떻다 한들, 깨어나지 않는 문무관장에게 도움이 될 영약임은 틀림이 없을 터.
자신들의 입장을 배려해주며 천법혈을 호의로 내준다 하니 감사 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천법혈을 사용하시려면 금제를 풀어내야 하니 지금 쓰시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부관들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수락했다.
* * *
앞서 나아가는 문무부관 가연과 우명을 따르며 천녀는 안심했다.
‘역시 생각대로다.’
처음 주해성에 당도했을 때, 그녀는 우연찮게 수계의 수선들이 영약을 찾고 있음을 알아냈다.
거기서부터 연결고리가 이어진 거다.
수계의 사신단 대부분이 영약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그 정도 인원이 수색에 나설 정도면 높은 신분을 지닌 자가 다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천법혈은 아무리 그녀라 해도 쉽게 얻어낼 수 없는 진귀한 영약이다.
단순히 호감을 사려 전해주는 용도로는 셈이 맞지 않는 보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도박은 성공적이었고 천법혈로 치료되기만 한다면 큰 은혜를 입히는 꼴이니, 결과적으로 인선과 천궁에 큰 보탬이 되리라.
“이곳입니다.”
“예.”
누군가의 신분을 보려면 그 집 대문을 보라는 말이 있다.
말마따나 방문부터 범상치 않은 게 퍽 높은 신분의 수선인 듯하다.
다른 방들과는 달리 크기도 크고, 대문으로 되어 있으며 조각된 봉황과 용의 모습이 멋들어지다.
걸려 있는 금제와 법술 등이 여러 개임을 보아 단단히 지키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가연과 우명이 수십 가지의 금제를 풀어내고 간신히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내 환한 빛이 대문 틈 사이로 찬란하게 빛났다.
“헛.”
천녀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키고 입가를 가렸다.
‘엄청난 선기….’
대문이 열리자마자 금색의 빛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풍겨오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녀를 덮쳤다.
강렬한 빛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하던 그녀는 안력을 돋우자 그제서야 방 안쪽의 모습이 들어왔다.
‘세상에.’
방 안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 듯 했다.
바닥은 금색으로 이루어진 연꽃이 사방에 깔려 있었고, 활짝 피어난 꽃 위로 화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금련은 대체….’
하나하나가 품은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천녀는 저도 모르게 금련 하나를 만지려다 흠칫 손을 거뒀다.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웬만한 보검보다 날카롭고 강력한 화기를 담고 있어 베임과 동시에 불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가연의 경고에 천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장관을 살폈다.
사방에 자리한 수만 개의 금련 끝에는 다섯 개의 태산이 자리했다.
금련과는 조금 다른 기운을 풍겼는데, 천녀는 그것이 오행의 기운을 품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오행극산!!’
오행의 기운 중 하나만해도 쉽게 구할 수가 없는 것인데 다섯 개 모두 품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부 기운이 쇠했어.’
그렇기 때문에 늦게 알아차린 것이리라. 아마도 격한 전투를 치러 기운이 쇠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의 주인 자체가 내상을 입었다고 하니 말이다.
천녀는 자연스레 궁금했다.
이곳의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역시 보통 신선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녀는 금련 사이의 길목을 거닐었다.
한참을 걷자 오행극산에 펼쳐진 운무가 크게 일렁거렸다.
뭔가 싶어 바라보니 운무 사이로 새까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며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을 찔렀다.
퍽 대담한 살기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이내 멈춰서니 운무 사이로 각갑을 두른 용의 머리가 슬그머니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오룡!!’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저런 갑각과 생김새는 오룡밖에 없다.
서적에서만 보았던 오룡의 모습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기에 적잖이 놀랐다.
오룡의 탄생 자체가 수만 마리의 용을 잡아먹어야 태어나는 것이니 쉽게 볼 수 있지 않았다.
‘오룡을 보게 될 줄이야….’
수만 마리의 용을 잡아먹었다는 설화에 알맞게 풍기는 기운 또한 강렬하기 그지없다.
천녀는 자신과 눈앞의 오룡이 싸우게 된다면 어찌될까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가연이 오룡의 앞에 나아가 무어라 입을 달싹거리며 전음을 전하는 듯하자, 다시 운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가시면 됩니다.”
천녀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또 다시 한참을 걷자 이번에는 돌연 숲이 나타났다.
숲 사이사이에는 천녀라도 놀랄 만한 대량의 선초가 숨겨져 있었고, 여러 가지 무구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커다란 연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위에 자리한 것은 거대한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싼 신수의 모습.
몸 전체를 가리는 날개 때문에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앞전에 보았던 오룡보다 이렇다 할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천녀는 잠시 고민하다 한 발 내디뎠는데, 순간 자신의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풍경이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환계!’
퍽 강력한 환계임을 깨달은 천녀는 저항하기보다는 포권하며 예의를 갖추는 편을 택했다.
이 환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 만날 수선일 테니!
“수계를 대표하여 사신으로 찾아온 문무관장이 맞으신가요.”
그리 묻자 어디선가 조금 무겁고, 조금 가벼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한 사람의 발걸음이 아니다.
두 사람이었다.
이내 고개를 들어 살피니.
천녀의 눈앞에는 소년과 노인의 모습을 한 수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딘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노인은 감정이 없는 듯한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천녀는 조금 의아해하다 물었다.
“문무…관장이십니까?”
묻자 소년과 노인은 답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오.”
“맞나? 아닌가? 몰라?”
둘 모두 애매한 답변이었다.
천녀는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
물으니 둘 모두가 답한다.
“그거야 당연히.”
“우린 그의 원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