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395)
낭선기환담-394화(395/600)
낭선기환담 – 2부 104화
주해성으로 돌아온 결천과 혼선의 무리들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이유는 천녀 때문이었다.
“주해성의 경비를 서는 수선들도 천녀를 보고 당장 달려들었지만 그녀를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합니다.”
“그렇겠지.”
천녀가 괜히 천녀겠는가.
결천 자신이 상대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천궁의 천녀다.
“천 가지 검술을 익혀 그분의 후보로 거론된 여인이다. 주해성의 병사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해낼 수 없지.”
결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인선과 혼선의 전쟁은 현재진행형.
자신의 부모는 물론, 선조 때부터 계속 이어져온 전쟁과 불행이다.
그것을 끝내고 싶어 조급한 마음에 섣불리 행동했기 때문이었을까.
‘법혈 때문인가.’
피가 끓으면 통제가 어렵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판단을 내어 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미미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화가 뚜렷하다.
허나 이 또한 혼선의 길을 걷는 자들이 떠안는 시련이니 이겨내는 것이 바로 수선의 길이다.
“지금 주해성에는 천녀를 당해낼 수선이 없습니다.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전부 오천성에서 한창 인선 놈들과 대립중이라….”
“허나 가만히 내버려두면 천녀가 수계 사신단을 데려갈 것입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요!”
수계의 사신이 인선에 붙었다라는 소문이 퍼진다면, 적들의 사기는 드높아질 것이며 아군의 사기는 땅으로 고꾸라질 것이다.
‘어디 사기뿐일까.’
근 시일내에 수계에서 원군이 도착하여 전쟁을 끝내려 할 수도 있다.
“휴전을 하게 만든다면 그나마 낫지만 힘을 보태준다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그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들도 바보들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수계의 힘을 빌어 선계 통일을 하려 할 겁니다.”
현 선계는 천궁과 선궁이 서로 위태위태한 줄다리기를 이어나가니 누군가 톡 건들기만 해도 무너져 내릴 듯한 상황을 유지중이다.
그런 상황에 수계의 사신이 왔으니 인선과 혼선 모두 혈안 됨이 당연.
“이리 된다면 차라리….”
* * *
한편.
문무관장을 만나러 왔던 천녀는 그의 원신 둘을 만나고 있었다.
소년과 노인의 외양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원신은 어딘가 닮은 듯 닮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문무관장은 상선이라고 들었는데….’
내상을 입은 게 아니라 승선하고 있던 도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지금 궁금한 것은 어째서 본신이 아닌 원신이 나타났냐는 것.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문무관장의 원신이시고, 본신이 아닌 원신분들께서 나타나신 이유가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노인은 길게 자란 새하얀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신은 지금 움직일 수 없네. 자신의 수행을 멈추어야하기 때문이지.”
“예? 수행을 멈추다니….”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신이 있는 걸 보면 향선이 되었을 텐데 수행을 멈추다니.
의문을 표하자 이번에는 소년의 모습을 한 원신이 말했다.
“본신은 승선하지 않았어. 지금 승선하면 죽고 말 테니 필사적으로 수행을 멈추고 있는 중이야.”
“문무관장의 부관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으니 말일세.”
“그 녀석들은 본신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이상한 놈들이잖아?”
가르쳐 줄 이유가 없지.
라며 선을 긋는 소년의 모습에 천녀의 눈가가 가늘어진다.
“하면 저는….”
“자네는 다르지. 그들과는 조금 그리고 많이.”
태생도 다르고 지닌 세력도 다르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딱 나타난 완벽한 부외자이기도 하다.
“본신은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천겁을 기다리는 신세지. 그 누구라도 초겁을 치루지 않고서는 승선을 이룰 수 없으니 말일세.”
성취가 너무 뛰어나 돈오하였으나 아직은 준비되지 않은 몸이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행을 멈추고 초겁의 때를 기다리고 있으나, 원옥이 제멋대로 발아하여 의식 일부를 뜯어가 원신이 되었다.
“어째서 둘로 나뉘었는지는 우리도 잘 몰라. 그러나 본신과 원신의 운명이 결국에는 하나만 살아남는 거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게 맞지.”
천녀는 원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에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은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원신은 결국 자신에게 덜어낼 부분들이라 하셨었지….’
허나 그 덜어낼 것들도 자신의 일부이니 무정을 통달하지 아니하면 해내기 어려운 경지로다.
어쨌든 간에 그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본신으로부터 살아남을 준비.
약간의 도움을 원하는 것일 터.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시나요. 그리고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이야기가 빠르군. 날 도와준다면 천 년간 그대의 곁에서 어떠한 도움이라도 들어주도록 하겠네. 때가 된다면 나 또한 향선이 될 것이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야.”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천 년 동안 향선을 제 입맛대로 부린다라면 값을 매기기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본신이 가두어두고 있는 우리의 육신을 꺼내어 주기만 하면 된다네.”
“금돈신상을 찾아! 우리는 그곳에 봉인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이내 환계가 조각조각나며 거울처럼 깨져버리고, 다시 눈앞에는 수풀이 우거진 공간과 거대한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천녀. 어째서 가만히 있으십니까.”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우명과 가연의 시선이 느껴졌다.
환계에 빠진 것은 자신뿐이었던 모양이다.
천녀는 다시금 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앞의 짐승 모습을 한 문무관장이라는 자를 보았다.
날개로 전신이 가려져 있어 어떠한 신수인지 볼 수가 없다.
바깥의 수많은 금련과 화정, 그리고 오행극산과 오룡의 주인.
참으로 범상치 않은 자다.
상선이 수행을 멈출 정도로 돈오하여 원신을 만들어 내다니!
‘향선이라도 중기에 들어서야 원신이 발아한다 들었거늘….’
대체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모를 정도다.
허나 그런 대단한 자이기에, 천녀는 조금 걱정이 앞섰다.
문무관장은 비승신선이라 들었다.
상선이고, 초겁을 치르지 않았다면 비승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초겁은 비승 후, 천년이 지나서 다가오는 첫 번째 천겁.
그것조차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식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강력한 수선임을 증명한다.
지금도 천혜의 보물들을 손에 쥐고, 상선임에도 수계의 사신으로 찾아오는 사내이니 향선이 된다면 대체 얼마만큼 강해질지 모른다.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장차, 자신이 상계에 큰 획을 그을지도 모르는 자의 명줄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원신은 봉인되어 있다.’
어찌한 것인지 몰라도 제대로 발아하기 전 미리 봉해둔 것이리라.
그의 판단은 옳았지만 그들의 의식이 환계를 만들어냈을 정도니, 완벽한 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풀어냄도 손쉬울 터.
천녀의 눈이 휙휙 돌아갔다.
금돈신상이라는 것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있다고 하니 자연스레 눈이 그것을 찾았다.
‘아.’
찾았다.
여러 가지 보물과 법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금돈신상 또한 그곳에 아무렇게나 자리해 있었다.
금색 돼지의 모양을 한 조각상이다.
이죽스럽게 웃고 있는 금돈의 모습이 퍽 징그러웠다.
‘어디서 본 거 같은 기분이….’
천녀는 금돈신상을 보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 없는데도 퍽 익숙했다.
천녀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금돈신상 쪽으로 옮겼다.
‘…본 적이 있어. 확실해.’
가까이서 보니 더 확신이 든다.
자신은 분명 이것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본 적이 있다.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천녀가 금돈신상에 손을 뻗으려 하자 가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막았다.
그러나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 하고 가연에게 물었다.
“이 물건의 주인… 그, 그러니까. 문무관장의 존함을 알 수 있을까요?”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표정이다.
가연은 갑자기 문무관장의 이름을 묻는 그녀가 의아했으나 가르쳐주지 못할 건 없었다.
“천자 범자 쓰십니다. 하늘 천에 범어 범자를 쓰시지요.”
뭔가 다급해보였던 천녀의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그렇군요.”
적잖이 실망한 기색이다.
“천녀, 더 이상은 저희가 기다리기 힘들 듯합니다. 어서 천법혈을 사용해 저희 상관의 병세를 치료해주십시오.”
더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 우명이 말하자 천녀는 금돈신상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하지만 천법혈을 쓰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갑자기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시겠죠… 혹, 딴 마음을 품었다면 달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무리 천녀라도 이 공간 전체가 불탄다면 살아남지 못할 테니!”
그들의 살벌한 경고에 천녀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설명했다.
환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가연과 우명은 당혹스러움과 함께 허탈함까지 들었다.
문무관장은 내상이 심해 잠들어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고, 그 이유가 너무도 상식 범위 밖이라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상선이 원신이라니….”
“역시 상식을 뛰어넘는 분입니다.”
“향선 후기의 일격을 막아낸 덕에 깨달음을 얻기라도 하셨나 봅니다.”
이내 가연과 우명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감사합니다, 천녀. 큰 오해를 할 뻔 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조금이지만 원신의 제안에 혹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원신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수선하는 처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원신의 편에 설 수는 없지요. 저도 후에는 원신을 지니는 향선이 될 자니까요.”
천녀는 그리 말하고는 품에서 옥함을 꺼내 천법혈이 든 유리병을 띄워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돌연 금제를 해제하더니 그것을 가연에게 던져주었다.
“팔백 년만 지나면 초겁을 치르고 마땅히 향선으로 승선하실 분이겠죠. 그때가 오면 천법혈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겁니다. 앞서 말했던 대로 단순한 제 호의이니, 사용해주세요.”
그때였다.
돌연 문무관장의 본신에서 금색의 화정이 나타나 천법혈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집어 삼켰다.
“엇!”
하는 사이 천법혈은 사라졌고, 금색의 화정은 점차 크기가 거대해지고 농후한 선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금빛이 찬란하여 숲속이 가득 메워졌고, 햇빛과도 같은 따스함에 꽃잎과 잎사귀들이 만개하였다.
찬란함 속에서 화정은 점점 무언가의 형상을 갖추었다.
동그란 모양에서 길쭉하게 변하자, 손과 발이 생겨나고 눈과 코가 생기더니 서서히 눈을 뜬다.
실오라기 하나 갖추지 않은 그는 금색의 머리칼과 눈을 지녔다.
청년의 모습으로 멈추어 빛이 가시자 여실히 보인다.
이질적인 머리칼과 눈이었다.
허나 무감정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매는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문무관장 천범을 뵙습니다!!”
그는 태천외양신공의 화정과 천법혈이 만나 태어난 화신.
천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