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00)
낭선기환담-399화(400/600)
낭선기환담 – 2부 109화
맹렬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내게로 향했다.
그 중심에 있는 상반된 색의 붉은 검신은 내 가슴으로 쇄도한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홀로 등선한 나의 어린 제자.
첫 번째 제자는 선계에서 아주 훌륭한 상선이 된 것이다.
기쁘다.
순수하게 기뻤다.
허나 동시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보이는 것은 칠흑이요, 들리는 건 빗소리뿐이니 어찌 애통하지 않을까.
제자가 익힌 것은 균천보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며, 지금의 내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그러한 걸 제자 또한 익혔으니 어찌 세상을 통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화르르륵.
검신에 담긴 봉악청화.
내가 넘겨준 티끌만한 불꽃이 장성한 모습이 되어 다가온다.
타오른 옷가지와 동시에 가슴팍에 불로 달구어진 검상이 새겨진다.
저 뜨거운 검격에도 화신의 몸에 담긴 천법혈이 의지를 갖고 그녀의 검을 막아내려 한다.
촤악.
피분수가 뜨거운 열기로 단번에 핏빛 증기로 변했다.
천녀의 궁장이 붉게 물들었다.
‘하늘은 이리도 날 미워하는가.’
이리 미워할 거면 어찌 이곳에 날 데려왔는가. 허나 외쳐 봐도 닿지 않으니 비로소 하늘.
“큭.”
천범의 가슴을 가른 천녀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피로 물드는 어깨를 부여잡는다.
가슴을 꿰뚫으려 했던 검로다.
그 틈에서 비틀어 피한 모양이다.
‘잘 피했다. 잘 피했어.’
허나 사부라는 자는 피하지 못했으니, 제자 보기가 한없이 부끄럽다.
푹. 지면에 검을 꽂아 겨우 몸을 지탱한다. 가슴은 아직도 봉악청화가 붙어 있다.
꺼지지 않는 푸른 불꽃이다.
다른 수선이라면 끄지 못했을 염화.
하지만 천범은 아니다.
쉬이익.
몸에 스며들듯 사라지는 봉악청화에 천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당신….”
동시에 천범의 신형이 허공에 스며들며 모습을 감춘다.
“기다려!”
잡아보려 하지만 그 앞을 흑의인 넷이 막아선다.
“지금이다 죽여!”
“천녀가 약해진 틈을 노려라!”
허나 그때.
콰과과광!!
붉은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이내 우명과 가연이 나타나 천녀의 곁에서 자세를 취한다.
“도와드리겠습니다.”
* * *
며칠 뒤.
자객의 습격은 밤낮 없는 전투로 이어졌다.
허나 계월선의 문무선과 천녀의 무리는 그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변수나 다름없던 향선은 탐랑과 사흘을 싸우고 나서야 쓰러졌고, 그 승기가 다른 기세로 이어졌다.
똑똑.
“들어오너라.”
천녀의 시녀가 흠뻑 젖은 은빛의 천 한 장을 가져왔다.
그것을 본 천녀는 자신의 궁장을 벗어 내리고 환부를 보였다.
시녀는 천을 환부에 덧대어 입을 달싹이며 선문을 외웠는데, 그러자 천녀의 안색이 조금 편안해졌다.
‘어이없게도 당했어. 나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
자신과 싸우던 네 명의 자객은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방심했다.
“그 많은 전장에서도 다치신 적이 없으셨는데….”
“균천지체를 가볍게 뚫은 자객의 실력이 보통은 아니었나봅니다.”
천녀의 호위대들도 신기하다는 듯 저들끼리 소근거렸다.
‘보통은 아니었다라….’
확실히 그랬다.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가두고 일격을 가했다.
그 과정에 군더더기가 없고 오로지 적을 죽이기 위한, 노련하기 그지없는 수법이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피해냈으나,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무슨 신통이었을까.’
기혈이 뒤틀리는 듯한 수법이었다.
덕분에 아직까지 오른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
깔끔한 일격이라 후유증은 없겠으나 천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균천지체에 이른 자신의 육체가 꿰뚫린 것은 물론, 봉악청화의 불꽃이 스며들듯 사라지는 현상은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후….”
궁장을 다시 갖춰 입은 천녀는 한참을 그리 앉아 있다 주변을 돌아봤다.
“나 말고 다친 이는 없니?”
“호위대에서는 넷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무합니다.”
“다행이구나.”
“수계의 문무선들 수준이 생각보다 뛰어났습니다. 대부분 쌍수를 익히고 있더군요.”
“쌍수… 그랬구나.”
때 맞춰 자신을 도우러 온 문무부관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문무선 전부가 그런 모양이다.
“아, 천녀님. 놈들 말인데, 주해성의 혼선들이랍니다.”
“그럴 것 같았다. 향선은?”
“주해성에서 폐관하고 있던 향선이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승선한 지 몇백 년 되지 않아 경지를 다스려야 했기에 전장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랬구나. 위험할 뻔했어.”
주해성에 향선이 없는 줄 알았다.
확실한 정보를 듣고 왔는데, 그런 자가 남아 있었다니 수계의 문무선들이 아니었다면 큰 일을 치를 뻔했다.
“앗, 어디 가세요!”
“주해성의 수선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들이 과연 수계에서 온 사신단을 노렸겠느냐 아니면 철천지원수인 날 노렸겠느냐.”
“그건….”
당연히 천녀를 노렸을 터.
“괜한 일에 휘말리게 했어. 그렇다면 성의를 보여야지. 그들은 아직 우리 편이 아니니까.”
“하지만 혼선들 편도 아니잖아요.”
“수계는 중립을 유지해도 상관이 없을 거다. 게다가 편을 나누자면 우리 편인 쪽이 좋겠지.”
신뢰란 쌓기는 어려워도 이런 사소한 것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것은 다시 주워 담는다 해도 불순물이 끼기 마련.
무너졌다 다시 쌓아올린 신뢰는 작은 바람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래성과 다를 바 없으니.
“문무관장을 좀 만나야겠다.”
벌컥 문을 열고 나간 천녀는 계월선 복도를 지나치다, 문득 자신의 치마폭에 묻은 피를 내려다봤다.
가만히 그것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수결을 맺고 입을 달싹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치마폭에 묻은 피가 떨어져 나와 핏방울로 모여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천녀는 그것을 병에 담아 진중한 낯으로 바라보다 품에 넣었다.
“여쭐 것이 많을 테니.”
* * *
천범의 거처는 수많은 금련이 피어 있고 오행극산이 자리한 곳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천범은 자신의 본신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음은 물론, 화상을 입은 듯한 검상이 붉게 부어올라 물집이 터지고 생기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극심할 것인데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치료하지 않으십니까.”
곁에는 가연이 있었다.
우명도 있었다.
탐화 또한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모두 천범을 보았으나,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상처가 조금 심하다고는 하나, 치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천범의 공정강에 있는 몇 가지 선초와 혈붕수라면 화신의 몸을 금세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러지 아니했다.
상처가 덧나도록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주변에 자리한 이들의 애만 타들어갔다.
화신체라 해도 본래는 천범의 몸속에 있는 화정으로 구축한 신체다.
오래두어 병이 높기라도 한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함이 분명하다.
“혼자 있고 싶다.”
명백한 축객령에 우명과 가연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으나 마땅한 방도가 없다.
마음 같아서야 억지로라도 치료를 받게 하고 싶으나, 상처를 얻기 전 범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으니….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리라.
부관들은 작게 한숨 쉬고는 범의 곁에 약병 여러 개를 놓아줄 뿐이었다.
끼이익, 쿵.
범의 거처에서 물러난 가연과 우명은 그의 대문 앞을 지켰다.
“관장 어른께서 저리 동요하시는 것도 처음 보았습니다.”
“저리 힘 없는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기는 합니다.”
“이상한 일이군요.”
이상한 일.
평범한 상선이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허나 그는 평범치 않다.
아무리 화신체라 해도 그는 신중하고 전투에 관해서는 많은 경험을 지닌 수선이다.
향선이 아니라면 그에게 저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자객은 없다.
그가 섣부르게 행동하여 저런 상처를 얻었을 리도 없다.
“저희가 당도했을 때. 이미 관장 어른은 모습을 감추셨고, 전음으로 천녀를 도와주라 말하셨죠.”
천녀는 어깨에 상처를 입고 피흘리고 있었다.
물론 전투를 하다보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게 천녀든 문무관장이든.
“주인님께서는 갑작스럽게 검을 빼들고 뛰쳐나가셨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이.”
그리고 우명과 가연이 쫓아가보니 범의 자취는 사라져 있었고, 상처 입은 천녀만이 자리해 있었다.
“처음에는 천녀를 죽이려고 하셨나 싶었습니다.”
허나 그는 전음으로 살리라 했다.
그러니 더더욱 모르겠다.
그는 왜 뛰쳐나갔고, 왜 천녀를 살리라 하였으며 왜 상처 입은 것인지.
상처를 치료하지도 않는 그의 상태를 보노라면….
“제 얘기를 하시고 계셨나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천궁의 천녀였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예, 덕분에 이 정도로 그쳤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함과 동시에 천녀는 가연과 우명의 뒤를 보았다.
천범이 자리한 대문을 말이다.
“문무관장을 뵈어야겠습니다.”
천녀가 한 발 내딛자, 가연과 우명이 그 앞을 철벽처럼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이유를 듣고 싶네요. 상의드릴 게 지금 참 많은데….”
“…환진을 펼치느라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원기를 회복중이십니다.”
“어머나 저런. 그럼 제가 원기 회복에 좋은 영약을 지니고 있으니, 직접 전달하러 가보겠습니다.”
막무가내다. 우명과 가연의 사이로 지나가려 하자 막아선다.
턱.
우명이 천녀의 어깨를 짚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허나 그와 동시에 천녀의 손이 올라와 우명의 손목을 비튼다.
우드득.
강한 악력에 우명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번엔 가연의 손이 날아온다.
비수처럼 날아온 가연의 일수를 천녀는 단번에 붙잡아 비튼다.
“전, 문무관장을 뵈어야겠습니다.”
한 손씩 천녀에게 붙잡힌 우명과 가연은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기운을 살며시 흘린다.
“이 이상, 억지를 부린다면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그게 무슨….”
“사과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파앙!
가연과 우명의 손목을 비튼 채로 천녀가 손을 털어내자, 파공음과 함께 둘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휘리릭, 치지직.
허공에서 균형을 잡아 착지한 가연과 우명은 급변한 천녀의 모습에 신중함을 담아 법기를 꺼냈다.
“두분은 강하십니다. 하여, 힘 조절이 불가할 듯 합니다.”
이내 천녀의 허리춤에서 붉은 검신이 빠져나온다.
스으응.
서늘한 검명이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굉장한 압박감이었다.
마치 사방천지를 가득매운 검들이 자신을 드리우는 듯했다.
마치.
‘문무관장과 마주섰을 때의….’
그때였다.
[들라 해라.]안쪽에서 문무관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쉬익, 철컥.
검집에 납검한 천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낯으로 대문을 열어 젖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