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03)
낭선기환담-402화(403/600)
낭선기환담 – 2부 112화
“한데 암장은 왜 가려는 거요?”
이유라고 한다면 많다.
승선에 대비하여 몸을 보할 수 있는 영약이나 선단을 구하려는 것이다.
범이 알지 못하는 선초나 비술이 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승선에 대한 정보가 동네 서점에서 파는 고서에 적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암장이라 하여 꼭 물건만 사고파는 곳은 아니니 말이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소. 그저 시간이 남아 한 번 가보려는 것이지.”
허나 그런 것을 구태여 알려줄 필요는 없다.
“뭐? 겨우 그런 이유로 간다고? 아주 돈이 썩어 넘치는 모양이군.”
그럴 돈 있으면 나한테나 좀 주지라며 투덜투덜 거린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신선과는 영 거리가 먼 양반이다.
악곡종의 매걸은 누가 봐도 거지.
거지중의 상거지였다.
악곡종은 개방 계열의 종파라도 되는 건지 아님 매걸만 그런 건지… 그래서 그런지 다짜고짜 반말이다.
“예의가 없는 사람이군요.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무례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럼 당신네들도 말 편히 하시던가. 난 누구에게도 경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오늘 그 못된 입을 찢어드리죠.”
연아가 검을 뽑으려고 검자루에 손을 댔으나 천범이 막았다.
“됐다. 편히 대해주면 편하고 좋지 뭐. 난 신경 쓰지 말아라.”
“하지만 사부님.”
“괜찮다.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툭툭 두들겨주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참는다.
매걸은 누가 봐도 청년 쪽이 어려 보이고 경지도 같은데 사부라 부르는 모습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그래, 매걸. 암장은 어딘가. 한참을 걸었다 보는데 도통 보일 생각을 안 하는구만.”
“…다 왔소.”
허나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어찌 이곳이 암장이라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암장이 대개 그런 식이긴 하지.”
연아가 따지자 천범이 말렸다.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암장이란 곳에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니다.
암장은 대개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법.
이런 허허벌판이라면 대개 땅속에 있는 게 정석 아닌 정석이다.
“이 밑에 있는 거겠지.”
땅 속에 은밀하게 만들어진 암장이 있는 것일 터.
“그렇군요.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뭐 뻔하다.”
달리 어디 있겠나.
하늘 위에 있지도 않을 것을.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매걸이 개 풀 뜯어먹는 소릴 한단 식으로 답했다.
“무슨 개똥같은 소리요. 현무성 암장은 저 하늘 위에 있소.”
범과 연아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서로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범이 먼저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하늘에는 구름 밖에 없는데?”
“구름 위에 있소. 뭘 당연한 걸 계속 묻는 게요… 정말 처음이신가 보우.”
정말이다.
하늘 위에 조금 특이한 구름이 뭉쳐 있었는데 그 위에 적지 않은 수의 선력들이 느껴졌다.
“크흠, 뭐 땅 아니면 하늘일 거라 생각했다.”
“웃기고 있네.”
“사부님께 더 무례를 범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매걸은 웃기지도 않는 얼간이들이라며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을 거나 받고, 줄 거 주고 알아서 다시는 보지 맙시다.”
“얼마면 됩니까.”
“원근 삼 푼.”
값을 치른 연아와 천범은 통행패를 받고 기를 흘려넣었다.
단숨에 구름 위로 공간이동 됐다.
“사부님 저길 보세요.”
“음.”
구름 위는 생각 외로 넓었고, 수많은 수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자 삿갓이라던지 너울이라던지 용모를 가리는 신통이 깃든 법보 등을 착용하고 있었다.
“사부님은 가리시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가리면 될 일이지.”
한 손을 들어 얼굴에 가져다 대고 슥 내리자 앳된 청년의 용모였던 범은 푸석푸석한 피부에 주름살 접힌 노인의 얼굴이 되었다.
그제서야 범은 구름 위에 펼쳐진 암장을 둘러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재미난 곳이구나.”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구름 위의 암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무슨 구름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꽤 단단하게 바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온통 구름으로 만들어진 지붕과 벽으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천장은 환진을 펼쳐 두었는지 태양빛이 내리쬐는 듯 환상을 보여 줬으나 곳곳에 강력한 금제들이 심어져 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저 접시가 무엇인지 아느냐.”
“예, 저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수선들은 제각각 움직이며 어떠한 접시 안에 손을 넣고 있는 이들이 종종 보였다.
“묘운기(渺澐器)라 하는 법보인데, 설명하는 것보다는 한 번 만져 보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연아는 범을 이끌고 각각 여러 개로 배치되어 있는 묘운기 중 비어 있는 것으로 다가갔다.
이내 범의 손을 잡아 그릇 안에 담긴 물에 집어넣자 순간 새하얀 운무가 솟아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다른 수선이 만질 때는 이렇지 않던데 왜 이러나 했으나, 금세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았다.
“그렇군.”
묘운기를 어찌 쓰는 것인지 알았다.
운무가 쏟아져 나오더니 이내 주변 수선들과 연아의 모습이 지워지고 범의 곁에는 여러 가지 보물과 영약의 환영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신식을 집중하자 법기와 영약의 설명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묘운기는 물건의 판매를 돕는 법기였나 보군.’
환상으로 수많은 물건들을 보여 주고 흥미가 돋으면 앞에 대기하고 있는 점원에게 물건을 사는 방식이다.
“이곳 암장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묘운기 하나로 전부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셔도 됩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연아의 목소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확실히 묘운기 안에는 별에 별것들이 죄다 있었다.
법기와 영약, 귀물, 선단, 환수, 그리고 노비로 보이는 소선들과 수선들 또한 언뜻 보였다.
산을 쌓아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의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묘운기가 없었다면 일일이 내다 파는 것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사는 것은 어찌 하는 게냐.”
“물건을 끌어와 손에 쥐면 장부가 나타날 것입니다.”
연아의 말대로다.
적당한 법기로 보이는 부채를 끌어와 손에 쥐자 돌돌 말린 종이 장부로 변했다.
장부는 시시각각 글자가 새겨지고 지워지고를 반복했는데, 이 부채 법기에 대한 금액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장부로 경매하는 거군.’
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은 터라 이런 식으로 경매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재밌네. 상계에 올라와 처음으로 와보는 암장이라 색다르구나.”
“즐거워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시면 마음 놓고 고르셔도 됩니다. 이 제자가 천녀라 불리는 만큼의 원근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한번 제자 덕 좀 봐야겠구나. 각오하거라.”
“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원근을 몇 냥이나 가지고 있기에 저리 자신하는지 모르겠다.
허나 자신의 딸이나 다름없는 제 자가 저리 말해주니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어디 한 번 볼까.’
참으로 다양한 물건들이 많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들이 자리했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비슷한 물건들이 발이 달린 듯 앞에 자리하니 충동구매를 하는 건 아닌가 두렵기까지 하다.
“흠….”
범은 승선에 도움이 되는 영약 몇 개와 오래된 약방서를 구매했다.
영약은 승선하기 전 몸을 보하기 위한 것인데, 만 년 묵은 농결이라는 환수의 죽기 직전 눈물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구하는 데만 원근 백 냥은 가볍게 써버렸다.
‘상술이다 상술.’
장부를 통해 가격을 올려 구매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하게 된다.
물건은 몇 개 없고 갖고파 하는 이는 많으니 당연히 가격이 높아진다.
‘내 십 년치 봉급이 원근 스무 냥이 안 됐던 것 같은데.’
원근 백 냥이면 천범의 오십 년 치 봉급이다.
게다가 고서로 보이는 약방서는 앞부분만 슬쩍 볼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 원근 오십 냥은 가뿐하게 뛰어넘어 팔십 냥으로 올라가 버렸다.
잠시 고민했지만 꼭 필요하던 약방서라 무수한 입찰 끝에 구매했다. 장부끝에 판매 시작 시기와 마감 시기가 적혀 있어 빠르게 구매할 수 있기도 했다.
‘편하네.’
확실히 편하긴 편했다.
만족스러운 경매를 마치자 묘운기 앞에 자리한 점원이 거래 증명서를 작성해 주었다.
“총 백팔십 냥입니다. 이 증명서를 가져가면 저쪽 끝에서 일괄적으로 물건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소.”
힐긋 연아를 바라보니 잠시 멈칫하는 낌새가 보였다.
“내가 너무 기분을 냈나?”
“아, 아니요. 이 정도는 그리 부담스러운 지출도 아닙니다. 그, 그럼요.”
천범은 괜히 눈치보다 슬그머니 증명서를 받아들고 물러섰다.
삼백 년이 어쩌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알뜰살뜰 모아온 재물인 듯하다.
‘제자 하나 잘 뒀군.’
은근히 모르는 척 하며 증명서를 들고 암장 끝으로 가니, 살벌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선과 탁자를 두고 앉아 있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여기 보여주면 되는 겁니까.”
“아, 예. 증명서를 보여주십시오.”
이내 증명서를 내주자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장부를 작성하더니 호위하던 수선을 시켜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소.”
묘운기의 환상 속에서 구매한 농결 영약과 약방서였다.
곧장 품에 집어넣자 누군가 범을 밀치고 나타났다.
“아직! 묘운 경매 안 끝났겠지?”
급히 달려왔는지 숨을 크게 헐떡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질 낮은 물건을 올릴 거라면 그냥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에는 그럴 일 없어. 내가 찜한 물건은 아직 안 팔렸겠지?”
“그거야 직접 확인해보실 일이죠.”
고개를 끄덕인 의문의 사내는 이내 점원으로 보이는 사내 앞에 수정 원석을 하나 내놓고, 장부에 뭔가를 슥슥 기입하기 시작했다.
“뭡니까.”
“따끈따끈하게 갓 잡아온 인선들이지 뭐긴 뭐겠어? 이놈들 잡으려고 꽤 애를 먹었지. 이미 목줄을 걸어놨으니 반항하지는 못하니 죄다 경매에 올리도록 하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수정을 내던지자 쨍그랑 소리와 함께 많은 숫자의 인영이 보였다.
총 여덟.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채롭다.
소선도 섞인 듯 하지만 대부분 상선의 경지를 지닌 수선이었다.
전쟁의 여파로 붙잡혀버린 인선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묘운기 속의 환상에서도 노예로 팔려나온 수선들의 숫자가 꽤 됐던 걸로 기억한다.
강력한 금제와 금구를 매달고 노예가 된 이들이니만큼 탈출하기란 요원하다.
그들의 사정이 딱한 것은 맞으나 범은 관여치 않기로 했다.
면식 한 번 없던 자들이고, 범은 수계의 수선이지 선계, 그것도 인선과 연관이 있는 자도 아니다.
연아라면 모를까, 범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다 좋은데 이 자는 안 되겠군. 피골이 상접하고 기운이 크게 쇠해 묘운 경매에 위상을 크게 떨어뜨릴 거요. 여기서 처분하는 게 어떻습니까.”
“음, 하긴 그놈은 인선들에게도 천대받는 신분으로 보이더군.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인선 중에서도 신분이 꽤나 낮았던 모양이야. 알아서 처분해주게! 어차피 크게 다쳐 살리는 게 더 고생이니 명줄을 끊어주는 게 놈에게도 더 낫겠지.”
탁한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노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피골이 상접하고 옆구리에 큰 자상을 입어 피딱지가 높아 악취가 풀풀 나고 있었다. 무슨 금제에 걸렸는지 말도 하지 못하는 듯했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 듯했다.
“데려가라. 냄새나서 더 못 참겠군.”
곁에 있던 호위 수선이 산발을 한 노예를 데려가려 팔을 끌어 당겼다.
거친 사내의 손길에 힘없는 노예는 휘청거리며 산발이 된 머리칼 사이로 음울한 눈빛을 흘렸다.
그리고 그때 천범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환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