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04)
낭선기환담-403화(404/600)
낭선기환담 – 2부 113화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놀란 천범이 물었다.
그러자 점원과 이름 모를 사내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악곡장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니 저 노예는 장작으로 쓸 겁니다.”
“장작이요?”
“예, 암곡장의 특수한 구름을 생성해내는 화로 법기에는 적당한 장작이 필요한데 보통 장작으로는 이런 신통을 유지하기 어렵지요. 하여, 적당한 장작들을 구해 화로에 넣고는 합니다. 저 노예의 값어치가 없다고는 하나, 선력을 지닌 상선의 경지인 건 맞으니 그냥 죽이기보다는 악곡장의 장작으로 쓰이는 것이 더 좋겠지요.”
이곳의 암장 이름이 악곡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이곳은 전에 보았던 악곡종 매걸과 같은 종파 수선이 운영하는 암장이었다.
“애초에 인선이고, 곧 죽을 놈이니 장작으로라도 쓰는 것이 효율 좋지 않겠습니까. 인선의 피와 살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이루는 데 도움 된다면 저 노예 놈도 필시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겁니다. 뭐, 물론 본래 쓰이던 장작보다는 못할 테지만요.”
장작보다 못하다.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전쟁이 발발하는 때이기에 목숨 값이 길가에 떨어진 돌과 같으리라.
범은 먹먹한 가슴으로 멍한 눈을 하고 있는 노선을 보았다.
‘맞다.’
설마 이곳에서.
그것도 이런 모습으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계에 있을 적, 수도를 행하는 자들이라면 한 번씩 들을 수밖에 없던 이름이 있다.
탈의 대법주.
환망선사.
하계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을 지경이고, 범인들의 입에서도 그 이름이 오르내리던 자였다.
범과 엎치락뒤치락 하던 원수들과 적들도 환망의 이름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던 일도 많았다.
그런 대단한 자가 등선하여 어찌 살고 있나 궁금했는데….
‘세상사 새옹지마라더니.’
이리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얼맙니까.”
천범은 환망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뭐가 말이요?”
“장작 값이 얼마냐 물었습니다.”
“흠….”
점원은 천범을 기이한 눈으로 보고는 이내 답해주었다.
“장작 한 가리에 한 돈이요.”
원근 한 냥의 십분의 일이고, 한 푼의 열 배의 가격 한 돈.
장작 한 가리가 스무 묶음이라고는 하다만 그렇다 쳐도 비싸다.
‘보통 장작으로는 악곡장을 유지 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그럼 저 노선은?”
“저놈은… 다섯 푼.”
“다섯 푼?”
장작이 한 돈이다.
한데 살아있는 노선은 다섯 푼.
“다 죽어 가는 놈이고, 상처로 인해 지닌 선력도 희박하니 장작으로 쓴대도 그리 좋지는 못할 테니 다섯 푼. 딱 적당한 가격 측정이지요?”
“…다섯 푼 여기.”
“예? 아니 저걸 사가신다는 말씀입니까? 다 죽어가는 인선입니다….”
“쓰임새는 내가 정하는 것이지. 다른 이가 정해주는 게 아니요.”
범은 품에서 원근 다섯 푼을 꺼내 노선들을 데려온 사내에게 건넸다.
“금제 풀어주시오.”
“허 참… 이상한 양반이구만. 뭐 값은 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주지.”
사내가 성큼 걸어가 환망의 이마에 손을 짚고 천천히 거두자, 이마 속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다른 금제를 거는 게 좋을 거요. 정신 차리면 발작할 테니까. 아, 어차피 곧 죽을 테니 상관없으려나.”
이라며 킥킥댄다.
그 꼴이 추잡스럽고 예의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현무종 철남심이요. 인선이 더 필요하면 날 찾아오면 될 거요.”
철남심은 그리 말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때마침 값을 치르고 온 연아가 사내와 스쳐지나왔다.
“사부님, 물건은 받으셨… 어라, 웬 노선이에요?”
금제가 사라져 정신을 잃었는지 바닥에 픽 쓰러졌다.
이내 바닥이 피로 흥건해졌다.
금제로 피까지 막아두고 있었던 듯하다.
“사부님?”
설명을 요구하는 연아의 낯에도 천범은 입을 꾹 다물었다.
* * *
“바닥에 떨어진 먹이.”
“백건분입니다.”
“저것들은 무엇이지?”
“음… 노선들로 보이는군요. 선계는 전쟁이 왕왕 일어나 노선들을 부리는 계층이 많다 들었습니다. 저희가 쓰고 있는 관이나 갓도 나름대로의 신분을 말해준다 하더군요.”
탐랑과 건분은 현무성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명분은 계월선을 연기사를 찾는 것이지만 그냥 놀고 있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노선? 먹이라는 것인가?”
“흠… 어찌 보면 비슷하다 할 수도 있겠네요. 생김새를 보니 저들은 혼선이 아닌 인선이군요. 여기가 혼선의 지역이니 아마 전쟁에서 패했던 이들이 볼모로 잡혔다가 노선의 낙인이 찍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군. 너와 같다는 소리군.”
“예? 저는 노선이 아닌데요?”
탐랑은 얼굴에 낙인이 찍혀 있는 노선과 건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도 저 낙인이 잘 어울리겠군.”
“…아무리 탐랑이라도 제게 낙인을 찍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흠? 그럼 어쩔 테지?”
“관장 어른께 지금까지 탐랑이 저지른 부정한 짓을 전부 말할 겁니다!”
“어리석군. 나 탐랑군은 단 한 번도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다.”
한껏 비웃으며 말하자 백건분이 득의양양한 낯으로 답했다.
“관장 어른 몰래 계월선에 자리한 식량과 술을 동났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하지는 않으시겠죠?”
“그걸 네가 어떻게!”
“수십 년 치의 술을 혼자 다 드신 덕분에 문무선들의 불만이 극에 달아 있는 걸 제가 겨우 진정시켰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관장 어른의 귀에 들어간다면….”
슬그머니 탐랑을 보자 그것만은 피하고픈 눈치다.
“비겁한 먹이로다….”
“세상이 원래 그렇지요.”
“허나 작은 먹이가 그 사실을 안다 해도 내게 무엇 하나 할 수 있을까? 놈은 안 그래도 작은 놈이 더욱 작아져 약해진 상태다. 나의 부정을 알린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할 테지!”
“하지만 탐랑이 좋아하는 술을 대는 것 또한 관장 어른입니다. 그분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탐랑께서 좋아하시는 술을 단 하나도 드리지 않으시겠지요.”
“흠….”
탐랑의 머릿속에서는 술과 전투가 공존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어느 샌가 그 안에서 술이란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탐랑은 처음으로 고심했다.
그리고 답을 놓았다.
“비겁한 놈.”
“비겁한 건 탐랑이십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제 얼굴에 낙인을 찍으려 하지 않았습니까.”
“내 먹이라는 표식을 찍어 놓는다는 개념이 나쁘지 않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나쁘지 않아.”
그리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간다.
백건분은 여느 때처럼 한숨 쉬고는 그를 따라 어느 한 주루로 들어갔다.
“오늘 술 맛 한 번 아주 좋구만!”
주루 안에서는 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 덩치 큰 사내가 중심에서 산해진미와 함께 술독 채로 마시고 있었다.
“빌어먹을 인선 놈들로 돈도 벌고 술도 먹으니 이리 좋을 수가 없단 말이지 크하하!!”
주변 수선들도 시끄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어서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둘이요. 한데 좀 시끄럽군.”
눈치주자 헐레벌떡 뛰어온 점소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악곡종 개망나니입니다. 전장에서 인선들을 잡아 팔고 맨날 술이나 처먹는 잡놈이죠. 허나 악곡종 종주의 아들이고 실력은 흠 잡을 곳 없어 아무도 뭐라 못 합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개망나니야 어딜 가나 하나씩은 있으니 백건분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른 곳으로 가실까요?”
탐랑에게 물었으나 그는 이미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악곡종 개망나니라 불리는 사내 앞에 털썩 앉아 옆에 있던 술독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캬하, 이곳 술 맛도 아주 좋군! 어이 비겁한 먹이. 네놈도 와라.”
그러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진다. 백건분은 어쩌지 싶으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에는 모자란 친구 같으나 탐랑은 엄연한 향선이다.
악곡종이란 종파의 개망나니라 해도 얼핏 보니 상선이다.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향선 앞에서 무슨 짓을 할 수 있을까.
“빨리 오라니까? 네놈을 위해 내가 준비해둔 술이다!”
남의 술 훔쳐 먹으면서 뭘 자기 거라고 당당히 말하는 걸까.
백건분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허허 웃으며 탐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한발 내딛는 백건분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치켜떠졌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개망나니의 주먹에 얻어맞는 탐랑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퍽!
콰르르!
“아?”
얼빠진 낯으로 술안주들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 탐랑이 제 뺨을 손으로 매만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웬 미친놈이 남의 술상에 재 뿌리고 훔쳐 먹고 있어…?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있냐? 악곡종 종주의 삼남 중 막내인 철남침이야!!”
쨍그랑.
철남침의 탁자를 쳐내자 남아있던 요리가 떨어져 소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고 있던 백건분은 생각했다.
‘잣 됐다.’
이내 탐랑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덜 떨어진 먹이.”
꿀꺽.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였으나 백건분은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항상 정신을 반쯤 흘리고 있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지금은 유달리 또렷하게만 들렸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라.”
의아함은 늘어만 갔으나 백건분은 그것을 해소하려 하지 않았다.
“미친놈이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후웅!!
돌연 탐랑의 몸에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이내 주루 전체를 휩쓸고 퍼져버린 바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뭔가 싶어 인상을 찌푸린 철남침은 다시 이어 말했다.
“네놈이 향선의 경지를 지녔대도 이 현무성에서 악곡종 종주의 철남침에게 손대고 무사할 성 싶으냐? 어림없는 소리!! 감히 내게 까분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야!!”
“먹이들은 간혹 착각하고는 하지. 자신을 먹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상한 착각을 해. 죽지 않을 거라는 있을 수 없는 착각을.”
“미친놈이군.”
철남침은 미친놈이라며 욕하고는 점소이를 향해 소리쳤다.
“당장 악곡종 장로님들을 뫼셔 오거라. 나 철남침의 술을 도둑질한 뭣 모르는 향선이 있다고 말이야!”
허나 점소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숨에 철남침의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이내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아… 아… 아아악!!”
후두둑.
놈의 팔과 다리가 고기육편처럼 잘게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끼이이익 쿠구구구궁!!
주루에 자리한 모든 수선들은 물론, 주루 자체도 예리한 무언가에 의해 잘려 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콰아아아앙!!
주루가 완전히 쓰러져 무너져 내리고는 철남침의 눈에는 떠오른 달을 등진 탐랑을 보았다.
“착각한단 말이지… 배가 불러서 먹지 않았을 뿐인데 자기가 죽지 않을 거라고 착각을 해.”
“네, 네이놈!! 현무성에서 네놈이 이러고도 사, 살아나갈 성 싶으냐!!”
팔다리가 잘린 채로 버둥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탐랑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발버둥이나 쳐봐라, 먹이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