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06)
낭선기환담-405화(406/600)
낭선기환담 – 2부 115화
“연기술에 능통한 자를 말이오?”
“예, 특수한 비승선을 수리할 수 있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연기술이라… 잠시 고민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답한다.
“악곡종으로 한 번 가보시오. 그곳의 수선들은 대부분 다재다능하거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악곡종.
연기사를 찾는 가연은 악곡종이란 이름을 곱씹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현무성은 나름대로 활기를 띠고 있는 곳이었다.
허나 한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현무성 어느 곳을 보아도….
‘어린 아이가 없어.’
하지만 가연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어서 빨리 계월선을 수리할 연기사를 찾기만 하면 될 일이다.
가연은 현무성에 자리한 주민들에게 소식을 물어 악곡종을 찾았다.
악곡종은 현무성을 대표하는 삼 대 종파 중 하나였다.
그 중 으뜸은 현무종이고, 또 다른 하나 무결종이라고 한다.
땅 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현무성 자체도 웬만한 국가처럼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무성 내부에는 많은 선산 또한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연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분명 이곳인데 왜 없지?”
의아하다고 가연은 생각했다.
“어리숙하게 생겼다 했더니 길을 잘못 알려준 건가.”
자기가 길을 잘못 들어놓고 단숨에 주민 탓을 하는 모습이다.
가연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뇌신을 꺼냈다.
시뻘건 붉은 나비 모습의 뇌신을 불러내어 입을 달싹이자 단숨에 그 수가 수십 마리로 불어나 사방으로 꽃잎처럼 흩어졌다.
이내 눈을 감자 그녀의 머릿속에 수십 가지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 여기네.”
위치를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한 발을 내딛자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자 어느 험준한 산골 한가운데였다.
그 앞에는 악곡종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대문이 자리했고, 그 앞을 어느 수선이 지키고 있었다.
“뉘시오.”
척 보아도 꾀죄죄한 것이 거지꼴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눈빛만큼은 살아 있어 수선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비승선을 수리할 수 있는 연기사를 찾고 있습니다. 악곡종에 뛰어난 수리공들이 많다기에 왔죠.”
“잘 찾아오셨군. 비승선의 크기와 재질, 그리고 보수에 대해 말해주면 적당한 수선을 보내리다.”
생각보다 간결한 어조다.
어느 소속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건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담백하다.
가연은 그의 요청에 따라 크기와 재질에 대해 말하고, 보수에 관해서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면 나 혼자면 충분하겠군. 악곡종에 나보다 뛰어난 연기사는 장로급이 아니면 없지. 내가 갈 테니 길을 안내하시오.”
“믿을 수 있습니까?”
“고치지 못한다면 보수로 내건 금액의 두 배를 도로 지불하지.”
“자신만만하니 보기 좋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
현무성의 삼대 종파 중 하나라는 악곡종의 수선이다.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가연은 그와 함께 길을 거닐었다.
사사삭.
그때 수풀이 흔들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빛줄기가 난무했다.
악곡종이 자리한 악곡산에서 뻗어 나오는 둔광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 봅니다.”
“흠, 별거 아닌… 일은 아닌가.”
혼자 턱을 짚으며 고민하던 사내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거렸다.
“큰일이기는 하지. 어떤 미친놈이 악곡종 종주의 막내아들을 죽였다고 하더군. 현무성에서 악곡종 종주의 아들에게 손을 댔으니, 그자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지금만 해도 장로 둘이 날아갔으니까.”
“근데 왜 반말이십니까.”
“난 원래 경어를 쓰지 않아. 너도 쓰지 말던가.”
“똑같은 자가 되고 싶지는 않군요.”
새침하게 말하니 사내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장미는 가시가 있기에 매력적이지. 난 악곡종의 매걸이다.”
악수를 건네는 매걸의 모습에 가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무시했다.
매걸은 머쓱한 듯 건넨 손을 슬그머니 거두어 팔짱꼈다.
“그런 큰일이 났는데 안 가보셔도 되는 겁니까.”
“내가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난 악곡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어차피 높으신 분들은 높으신 분들 알아서 지지고 볶고 장구 치는 법이니 아랫것들은 알아서 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거지.”
신기하게 그를 쳐다본 가연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쿠르릉… 현무성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세찬 광풍이 여기저기 감돌고 강력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듯 맴도니 괜히 있다가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것이 당연했다.
“조금 서두르죠. 현무성 바깥에 있으니까요.”
“편하실 대로.”
* * *
사흘 뒤.
환망을 돌보는 천범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반점이 사흘 전보다 넓어졌다.’
환망의 몸은 천범이 애쓴 덕분에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허나 이상하게 그럴수록 그의 몸에 검은 반점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천범은 그것을 보고도 딱히 환망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는군.”
환망이 슬그머니 눈을 뜨고는 그리 말했다. 범은 그의 곁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다 탕약을 건넸다.
“나름대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지요.”
“흥미로운 이야기오. 백산파 장문의 깊은 깨달음을 경청해볼 수 있겠소.”
“별 것 아닙니다. 그저….”
범은 환망의 목에 난 반점을 흘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부분의 일은 기다림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지요.”
“기다림… 허허, 기다림이라….”
대부분의 일은 기다림이 해결해 준다라. 많은 뜻을 지닌 말이다.
“지금은 닥쳤을 때에는 세상 큰일이라 생각하고 마음 졸이고 앞길이 막막할 때가 있지요. 허나, 그러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되어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가만 기다리다 보면 대부분의 일은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지요.”
어떤 형태로든.
환망은 그 말이 유달리 가슴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기다리시는 건가.”
“신의 반열에 오른 저희들의 시간은 범인들이 생각하는 범주를 아득히 뛰어 넘었지요.”
시간이 많다는 소리다.
그의 말에 환망은 쓰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일은 그렇지. 허나 내 일은 그렇지가 않소.”
자조적인 말에 천범은 입을 열지 않고 그에게 차를 권했다.
찻잔을 받아든 환망은 차 속에 떠 있는 찻잎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이미 눈치챘을 것이오.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천범은 말을 아꼈다.
확실히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상처를 입었기에 하는 소리가 아니다. 몸에 피어난 반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왜 이리 된 것인지 짐작하시오?”
“…그 반점은 어떠한 독이나 신통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처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죠.”
“맞소. 짐작하고 있겠지만 재수 없게도 난 마겁을 받아버렸소.”
천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바였다.
‘피어오른 반점의 영향은 마기에 의한 것이었으니.’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다.
금매은매 자매와 만났을 때, 은매가 사기에 침식당해 있는 것을 치료했던 적이 있다.
지금 환망의 몸에 피어오른 반점은 마기에 의한 것이지만, 그때와 언뜻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마겁을 받고 내 몸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게 되었소. 단전 깊숙한 곳에 스며든 마기는 내 원옥을 변질시켰고 내 선력과 충돌을 일으켰지. 마치 재해나 다름이 없었소.”
운이 없어도 저리 없을 수 있을까.
하다못해 연아처럼 반겁이라도 받았다면 환망은 이겨냈을 것이다.
다른 천겁이라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한데 하고많은 것 중 마선들이 받는 마겁을 받아버렸으니 온몸이 망가지는 게 당연하다.
‘환망이니 살아남은 거겠지. 평범한 수선이었다면 죽었을 것이야.’
평범한 수선이 마기가 응축된 마겁을 받고도 살아남기란 요원하다.
마기에 침식당해 마귀가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마기를 빼낼 수는 없었습니까.”
“없었소. 그리 간단히 할 수 있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환망은 어떻게든 몸속의 마기를 배출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마겁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수선들은 외면하고 몸담았던 종파에서조차 쫓겨났다.
어디서 마기를 풍기냐며 붕계의 앞잡이가 아니냐며 수선들이 떼로 몰려와 죽을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왜 그리 악착같이 버티며 살았는지… 이제 이 꼴로는 제대로 된 수행도 할 수 없지. 그럼에도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아마 천 수선. 그대를 만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소.”
“그런 말 마십시오.”
“난 이제 가망이 없소. 몸속에서 들끓는 마기를 어찌해야 할까. 그렇다고 마선이 될 수도 없는 노릇. 아무리 내 목숨이 중하다고는 할지라도 지나온 길과 앞서 간 선조들의 발자국을 따를 수 없다는 건 내게 죽음과도 같소. 그래, 이미 난 죽었소.”
삶의 희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어 보이는 목소리다.
유약한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옥이나 다름없던 하계 속에서 그는 범이 인정한 유일하게 참된 도를 걷는 자였다.
“질긴 목숨, 끊고 싶음이 간절하나 한 가지 날 붙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뒤따라 올라올 후인들이오.”
“장천을 말입니까.”
“부법주, 아니, 이제는 대법주겠군. 대법주는 나보다 더 높게 오를 것이오. 그런 자질과 품성을 지녔지. 하여, 그 아이가 올라왔을 때 나와 똑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 마음 하나뿐이오.”
그러며 환망은 자신의 어금니를 뜯어 범에게 건넸다.
어금니는 이내 스르륵 범의 손에서 녹아내려 몸으로 흡수됐다.
“먼저 올라온 선조들과 나의 유지가 담겨 있는 장소요.”
그의 말대로 범의 눈에 선계 어딘가로 보이는 장소가 비추었다.
“천 수선, 그대가 찾아 사용해도 좋소. 대법주와 좋은 지기로 지냈음을 알고 있으니 믿을 수 있지.”
환망은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게 폈다.
“가시는 겁니까.”
“죽음이란 예기치 못하게 불쑥 찾아오는 손님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마음의 준비는 끝낸 지 오래요.”
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자결할 셈이다.
“지난 세월… 내게는 한없이 고된 세월이었소.”
그랬을 것이다.
한없이 고통스러웠을 터.
누구에게나 존경 받던 환망선사가 어느 수선 가문의 하인이 되어 살아가지 않았던가.
그 걸로도 부족해 마기를 풍긴다 핍박받고 박해 받았던 세월이다.
자신을 그리 괴롭힌 마기가 아직도 제 몸 속에 남아 있다.
제대로 된 수행은커녕 운기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다.
범인보다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그 탈력감과 허무함 속에서 여지까지 살아남은 근성이 대단할 정도다.
이제 와 편해지고 싶다는데 그 누가 막아설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하고픈 대로 하게 두는 것이 그를 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환망의 손이 날카롭게 모아졌다.
범은 그의 손이 마치 잘 벼려진 검과 같다 느꼈다.
그것이 천천히 단전을 겨누었다.
당장에라도 뱃가죽을 찢고 안에 들어 있는 원옥을 잡아 부술 기세였다.
자신을 이리 만든 마기에 대한 원한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내 한 서린 손이 찔러지는 순간.
“마기를 지니고도 수선할 수 있다면 어쩌실 겁니까.”
북풍과도 같은 말에 칼날 같던 환망의 손이 멈췄다.
“마선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선기와 마기를 공존시켜 수행하는 공법이 있습니다. 그거라면 지금보다 수배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르죠.”
환망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떨리는 손과 눈은 길 잃은 배처럼 망망대해를 방황했다.
“허나….”
“제 도움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리 된다면 복수도 할 수 있겠죠.”
“복수라니, 누구에게 말인가….”
천범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창밖의 하늘을 멀거니 보았다.
“당연히 당신을 괴롭게 한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