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15)
낭선기환담-414화(415/600)
낭선기환담 – 2부 124화
무결종이 자리한 무수산은 고명한 선산이라 현무성의 삼대 선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결종 특유의 느긋하고 온유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수산은 대대로 수기가 강하게 흘러 수신통을 익히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기도 했다.
“크윽….”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허나 그런 무수산에도 이변이 발생했다. 무수산 지하에 자리하던 이들이 돌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난 괜찮으니 어서 챙겨라! 이곳을 공격한 놈이 찾아올 것이야!”
공자라 불린 사내가 소리치자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통들을 향해 공정강을 가져다 대며 챙기기 시작한다.
나무로 이루어진 얼핏 보면 욕간처럼 보이는 거대한 탕에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이 자그마치 수백 개에 이르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 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금색의 화신통이었다. 현무성에서 그런 불을 내뿜는 자는 없다! 외부에서 왔다던 그 사신단 대표를 제외하고는…! 어서 서둘러라! 놈이 온다!”
그때였다.
“으아아악!!”
콰아앙!!
동굴 한켠에 금색의 화염이 터져 나왔다. 후드득, 떨어지는 흙더미와 격한 진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어두운 무수산 지하 동굴에 밝은 빛이 눈부시게 내리쬐었다.
금색의 화염을 등지고 나타난 이는 바로 수계의 사신.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천범이었다.
“음? 이거 누군가 했더니, 무결종 공자님이 아니십니까.”
누군가 했더니 무결종 종주의 하나뿐인 아들 무마였다.
천범과도 면식이 있는 자였는데, 걸출한 사내였던 걸로 기억한다.
“천 수선님이 아니십니까. 한 사십여 년 전에 뵙고 처음이지요?”
“그렇군요. 이거 못 본 사이에 무 공자의 낯빛이 아주 헌앙해지셨군요.”
천범은 주변에 자리한 거대한 나무 통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뜻 보면 물속에 매장당한 듯 보이지만 보통 물은 아니다.
저 안에 있는 아이들 모두 살아 있는 상태였다.
“무수산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악곡종처럼 구름 위에 뭔가 만들어 놨나 했는데 땅속이었을 줄이야… 공자께서는 땅속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소선이 몇 있었고 대부분은 상선이었다.
스윽.
어느새 천범의 주변에 무결종 수선들이 포위하며 섰다.
각각의 법기를 꺼내든 모습이 당장에라도 공격할 기세였다.
“혼자 십니까?”
알면서도 물어본다.
허나 천범은 흔쾌히 답했다.
“예, 설마 저 혼자 왔다고 공자께서 차 한 잔 내주지는 않으시겠죠.”
“하하, 그럴 리가요. 저희 아버님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천 수선을 칭찬하시는데 차 한 잔 못 드리겠습니까.”
무 공자가 눈짓하자 소선 몇이 어디선가 탁자와 의자를 꺼내 가운데에 놓았다.
“사내대장부가 만났는데 한가롭게 차를 마시기는 좀 그렇고, 술이나 한 잔 어떠십니까.”
“역시 호방하십니다. 그리 하지요.”
술병과 술잔을 꺼낸 무마는 술을 따라주고는 잔을 들어 올렸다.
무 공자의 모습에 천범 또한 도포를 펄럭이며 의자에 앉아 술을 받았다.
범과 무마의 잔이 부딪치고 청명한 소리가 동굴에 잔잔하게 울렸다.
이내 무마가 술잔을 단번에 들이키고 탁 내려놓자, 범 또한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쭈욱 들이켰다.
둘은 한동안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술잔을 채우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순식간에 술이 동나고 마지막 잔이 채워지자 무마가 입을 뗐다.
“무결종은 나름대로의 신통과 법기를 제작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보다는 의술에 더 능합니다. 혼계 전체를 뒤져도 저희 무결종보다 나은 의술을 지닌 곳은 없으리라 자부하고 있지요.”
천범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결종은 현무종과 악곡종과는 달리 의학이 발달한 종파라 들었다.
의술에 능통하여 현재의 삼대종파 자리에 끼워졌다는 이야기는 현무성에서 사는 이들이라면 대개 알고 있는 내용이다.
현무종이 현각불괴로 공방일체의 신통에 능하고, 악곡종이 다방면으로 능하다면 무결종은 의술이라는 게 현 세간의 평가다.
무결종의 종주인 무멸은 그중에서도 대단한 의술을 지녔는데 악곡종과 현무종 모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환자는 없다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허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죠. 수선하는 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저희도 자그마한 욕심을 품었습니다.”
“자그마한 욕심이요….”
이곳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언뜻 보아도 수천이다.
아이를 갖기 힘든 혼선에게 자식이란 그 어떤 아이라도 금지옥엽일 터.
그런 아이들을 납치하여 탕약을 우려내듯 담궈 놓고 자그마한 욕심?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천 수선께서도 보셨다시피 그리 악독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흘리는 원기를 조금 빼내어 저희가 만들어낼 법혈을 위한 재료로 쓰고 있을 뿐입니다.”
법혈!
“그럼 이 모든 게….”
“예, 법혈을 위함이었습니다. 천 수선께서도 선계에 오신지 백 년. 법혈이 저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시겠지요. 혜안이 두터우신 분이니 잘 알고말고요!”
혼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법혈.
허나 그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천범은 그것을 줄곧 보아왔다.
“법혈의 부작용을 말하는 거군요.”
“예! 역시 천 수선입니다!”
무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들이 들어있는 나무통 근처의 항아리를 열어 바가지로 퍼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눈으로 보기에는 투명한 물.
코로 보아도 단순한 물 냄새다.
무색무취.
허나 풍기는 기운은 단순한 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법혈이군요. 무색무취의….”
“그렇습니다! 법혈의 부작용은 저희 몸속에 담긴 혼아의 피를 건드리죠. 그렇기에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행동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법혈의 강인함은 그것을 뒤덮고도 남았으나…!”
부작용은 부작용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것은 점점 심해져 광증으로 이어질 터.
광인이 된다면 제 아무리 천의 힘을 얻는다 해도 소용이 없다.
“고명한 수선들은 그런 법혈의 부작용을 자연히 없애 보낼 수 있다지만 평범한 수선들은 그렇지 못하죠. 하여 저희는 완전무결한 법혈을 만들어내기를 염원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겁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것을 천범은 알고 있다.
‘천법혈과 비슷하군.’
천법혈로 이루어진 몸이기에 보다 자세하게 느끼는 게 가능했다.
무마가 만들어낸 법혈은 천법혈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면 갈래가 달랐으나, 근간은 같다.
“저는 이 법혈을 무법혈이라 이름 짓기로 했습니다. 무법혈은 단순히 법혈 자체의 부작용만을 없앤 게 아닙니다. 저희 무법혈은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이성을 지닌 채로 신수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천범의 눈에 이채가 감돈다.
말인즉슨, 혼아혈의 수선들 속에 잠재된 신수의 힘을 온전히 부릴 수가 있게 된다는 소리다.
본래 혼아들은 반인반수.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의 힘을 지닌 자들이기에 무엇이든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사용한다손 쳐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든 것이 바로 혼선이다.
허나 무마의 말은 짐승의 힘을 온전히 각성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
놀라운 발명이 아닐 수 없다.
천범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이 모든 걸 무 공자 혼자 해내신겁니까?”
“하하, 저 같은 것이 어찌 이 모든 걸 혼자 해냈겠습니까. 모두 곁에 도와주는 사제들과 다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겠지요.”
다른 분들의 도움.
“다른 분들이라 하면….”
그리 묻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무 공자가 다시금 자리에 털썩 앉았다.
“제가 말이 많았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무 공자는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천 수선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만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어떤 수선이라도 탐구심을 이기지 못할 테지요. 수선하는 자들의 본질이 영생을 위해서라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하며 무 공자는 술잔을 내밀었다.
건배하기 위해서였다.
공자와 건배를 하면 그 뜻에 찬성하는 것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술잔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
천범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술잔을 들어 그와 함께 잔을 맞추었다.
짠.
그러자 무 공자의 입가에 함박 웃음이 피어났다.
“하하하하, 이해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혜안이 그리 두텁다 명성이 자자한 천 수선이시니까요. 예, 그럼요! 믿고 있었습니다, 하하하하!!”
무 공자는 한결 편안한 자세로 기쁘게 무릎을 쳤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한데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군요.”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무법혈의 제조비법을 알려드릴 수는 없으나, 다른 것이라면 무엇인들 알려드리겠습니다!”
천범은 술잔을 쥐고 나무 통 안에 있는 아이들을 눈짓했다.
“저 아이들은 어찌 되는 겁니까.”
“하하, 천 수선. 저는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하면….”
“소선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잠들어 있기는 하나 모두 살아있는 상태지요. 다만 원기를 조금씩 빼앗는 것이기는 하여, 쇠약해진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약조되었습니다.”
“약조요.”
원기가 소모된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요양을 보낸다?
“그럼 다른 곳으로 보내진 아이들은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이곳에 보내지는 겁니까?”
“크흠, 그건….”
그건 아닌 듯하다.
무 공자의 낯에 껄끄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제가 너무 별 것 아닌 것을 물었나 봅니다.”
“하하, 아닙니다. 충분히 신경 쓰일 만한 내용이지요.”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무 공자의 답에 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접시 법기로 보낸 수정 안에 제 부하가 있습니다. 돌려 주시겠습니까.”
“음? 아아, 그렇군요. 여봐라.”
“예, 여기 있사옵니다.”
무결종 제자가 보따리 하나를 풀어 놓으니 많은 수정 모양의 봉인구가 자리해 있었다.
그것 말고도 자세히 살피니 수정이 산처럼 쌓여 있는 장소가 있었다.
저 안에도 모두 어린아이들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음, 아 여기 있군요.”
천범이 양미가 갇혀 있는 수정을 찾아 손을 뻗으려는 순간.
척.
무 공자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천범의 눈가가 단번에 날카롭게 변했다가 다시 누그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무 공자.”
“제가 천 수선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나, 대개 일이 그러하듯 혹시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여…?”
“저희 사이에 금제까지 걸 것은 없을 것이고, 가볍게 심마에 걸고 맹세 한 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심마의 맹세.
“좋지요.”
천범은 손가락 세 개를 펴 하늘로 향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 수계의 수선 천범은 내 앞에 자리한 무결종 제자들과 무마 공자의 앞에서 맹세하노니.”
경건하던 천범의 표정이 순간 무표정으로 바뀌어 날카롭게 변했다.
“내 앞의 모두를 처단하여 잘못된 이치를 바로 잡기 전까지는 편히 발 뻗고 잠들지 못하리라.”
그러자 그 순간.
쇄애액! 후웅!
천범의 소매에서 새하얀 실이 뻗어 나와 수선들을 모조리 밀어냈다.
“헉!”
“크억!”
“으윽! 아, 안 떨어져!!”
가느다란 실과 함께 동굴 벽에 붙은 수선들은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충모의 몸 안에서 얻었던 금박령사 한 가닥이 만들어낸 장관이었다.
“…안타깝습니다.”
“나도 심히 안타깝소. 무 공자.”
“무엇이 문제입니까. 제가 아이들을 납치하여 법혈을 이루는 데 이용해서 그런 겁니까? 크나큰 대의 앞에 사소한 인의를 앞세우는 위선자였습니까? 제가 만든 무법혈로 앞으로 혼선은 전쟁을 이겨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십니까?! 더 이상 전쟁으로 피해 받는 자도 없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혼선과 인선의 전쟁을 제가 종결시킬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무법혈로 잠들어 있는 신수의 피를 각성해낸다면 혼선의 전력은 지금보다 배는 증가하게 될 터.
그렇다면 정말 전쟁이 끝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면 당연히 현무성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계 전역에 자리한 전쟁으로 피해 받는 아이들도 없을 것이고! 무고하게 죽는 자들도 없을 것이며! 그로 인해 불행한 아이들도 없어질 겁니다! 천 수선은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바보 천치셨습니까?!”
그러나 천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무 공자의 대의는 굳이 설명치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하면 무엇입니까!! 당신도 수선하는 자라면 절 이해할 것 아닙니까!”
“하지요. 백 번 천 번이고 하지요.”
“하면 대체 왜…!!”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천범은 바닥에 떨어진 보따리에 놓인 양미의 수정을 집어 말했다.
“선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약…?”
“묵 종주의 여식을 찾아주겠다 먼저 약조했습니다.”
그뿐인 이야기다.
이리 많은 아이들이 있다면 이곳에도 묵 종주의 여식이 있을 터.
그녀를 찾아 돌아가면 될 일.
나머지는 다른 이들에게 알리면 알아서 하게 될 터.
허나 그 소리를 들은 무 공자의 낯은 이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묵 종주의 여식을 왜 여기서 찾는단 말입니까!!”
“당연하잖습니까. 어찌 숨겼는지 몰라도 묵 종주의 여식을 찾아주기로 약조하였으니, 이곳에 제가 볼 일은 그것뿐입니다.”
허나 무 공자의 답변은 의외의 것.
“없습니다! 묵 종주의 여식이라면 나와도 어릴 적부터 오랜 친분을 맺은 친우입니다! 제가 미쳤다고 친우도 알아보지 못하고 납치라도 했겠습니까! 게다가 묵계화는 아이가 아니라 다 큰 성인입니다! 성인이 이곳에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