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16)
낭선기환담-415화(416/600)
낭선기환담 – 2부 125화
“없다고요?”
“없습니다! 묵계화는 저와 동년배의 수선입니다. 무법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소선의 떼 묻지 않은 원기가 필요한데 어째서 묵계화가 이곳에 있겠습니까!”
그 또한 그렇다.
생각해보니 천겁을 받았을 정도면 어린 아이는 아닐 터.
그러니 이곳에 있을 리 없다.
‘정말인가.’
완벽히 믿을 수는 없다.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있을지 또 모르지 않던가.
“묵계화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까? 젠장, 그런 거라면 진작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입니까.”
“당연히 묵 종주님 또한 이곳에 와서 계화 그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이미 확인해보고 가셨기 때문이죠!”
묵 종주도 이곳에 왔다고?
“이 실험장을 묵 종주도 알고 계신단 말입니까?”
“당연하지요! 저희 무법혈이 오로지 무결종을 위해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연히 현무성의 삼대 종파 모두가 협력하여 만들고 있는 게 바로 무법혈입니다!!”
“그럼 현무성 전역에 걸친 소선의 실종사건은….”
모두 그들의 짓이었다.
어쩐지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실종 사건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풀리지 않던 사건이 천범이 나서자 단번에 풀리지 않았던가.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기에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허나 그들이 어째서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이런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제 삼자인 천범은 나설 수 없다.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진작 말했다면 이리 오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을.
“그거야 천 수선은 수계의 사신이니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기사.
백 년 정도 현무성에 있었다고는 한들, 그는 외부에서 온 수계 수선. 오해와 오해가 겹쳐 생겨난 일이다.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다면 묵 종주의 여식인 묵계화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일이 쉽게 풀려 안일하게 생각해버렸나?’
실마리를 찾았다 생각했거늘 늘여놓아 보니 더욱 엉켜있는 꼴이었다.
천범은 수선을 묶어낸 금박령사를 풀어내고 포권했다.
“작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천 수선께서 무법혈에 욕심이 난 것이 아닌 게 다행이군요. 만일 그랬다면 그동안 만들어온 무법혈 전부를 빼앗길 뻔했으니.”
무 공자는 천법이 무법혈을 탈취하여 수계로 가져가거나 인계로 도망칠까 우려했다고 한다.
때문에 저리 회유하려고 했던 것.
그러다 보니 천범은 당연히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면 대체 종주의 딸인 묵계화는 어디 있단 말이던가.
도통 알 길이 없다.
“이곳의 아이들이 원기가 사라지면 요양을 간다고 하셨지요.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묵계화를 찾는 일 때문입니까.”
“예. 제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으니 우선 그것들 전부를 뒤져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 공자는 탐탁치 않은 눈으로 천범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계화의 일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라 부를만한 아이는 계화뿐이니….”
본래는 알려줘서는 아니 되지만.
“모두 악곡종으로 갑니다.”
“가서 어찌되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악곡종에서 하는 일이니 제가 알 도리가 없지요. 아버지라면 아시겠으나….”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렇군요….”
무결종 외동 아들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법.
천범은 무 공자에게 포권하며 다시 한번 사과를 말하고 자리를 떴다.
“갔나?”
“예, 돌아갔습니다.”
범이 사라지자 무 공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혀를 쯧 찼다.
“그냥 잡아가면 될 것을 굳이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시는지 모르겠군. 아무리 수계의 사신이라도 놈의 화신 정도는 일단 빼앗고 후에 다른 걸로 보상해도 충분할 텐데 말이야. 화신을 만드는 일이 다소 어렵다고는 해도 결국에는 화신이 아니던가! 암만 특별해도 무법혈이라면 충분히….”
그때였다.
“이게 왜 떨어져 있지.”
무결종 제자 하나가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봉인 수정을 들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수정을 다시 챙기려는 제자의 모습에 무 공자의 눈이 치켜떠졌다.
“조심해라!”
“헛!”
동시에 수정이 작게 빛나며 균열이 일어나 터져나갔고, 그 안에서 다소 왜소한 모습의 여인이 이 척 길이의 쌍검을 들고 나타난 것이 아니던가!
종횡무진 쌍검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검로는 마치 폭풍과도 같다.
“쳐라!”
깜짝 놀란 무결종 제자 서넛이 법기를 꺼내 공격했으나 교묘하게 축지하여 피해내고 다대일을 벌인다.
무슨 일인지 대강 파악이 되어 가려는 때.
무 공자의 곁에 허공이 일렁이며 그곳에서 천범이 나타나 손을 뻗었다.
“큭!”
단숨에 목을 잡힌 무 공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처, 천 수선. 아직 계셨습니… 큭!”
애써 미소 지어보지만 천범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왜 그런가 하니 몸에는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실이기에 자신은 물론, 주변에 자리한 무결종 제자 전원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지 모를 지경.
눈물이 핑 돌 정도다.
“혹시나 싶어 잠시 있어 봤는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오, 오, 오해입니다!”
“뭐가 오해라는 겁니까.”
자신의 화신을 노린다는 것?
악곡종으로 유인하려는 수작?
아니면 딸을 잃어버린 것 모두?
“일단 이것부터 풀고 차분히! 차, 차분히 대화를 나눠봅시다!”
“대화 좋지요. 저도 힘을 쓰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걸 좋아합니다.”
“자, 잘 생각하셨습니다!”
천범은 무 공자에게 싱긋 미소 지어주고는 양미에게 말했다.
“죽여라.”
촤악!!
* * *
한편 악곡종 내부.
무 종주. 그리고 악곡종 철 종주가 함께 모여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는 기형적으로 넓게 가지를 뻗었고, 널찍한 잎사귀가 창궐했다. 가지 하나하나에도 탐스럽게 커다란 열매가 열려 있어 밝은 주홍빛을 띄었고 투명하여 안이 훤하게 보였다.
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듯 했다.
“절명신목(絶命神木)의 성장은 아직도 멈춰 있군요.”
무 종주는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요. 지난 세월동안 신목을 키우려 저희 삼대 종파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나 벽에 부딪쳤어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저희 무결종에서 빼내오는 소선들 말고 상선들을 신목에게 내어 주는 것은 어떠한지요.”
“이미 해 보았으나 변화가 없더군. 도리어 시들거리게 되더이다.”
“역시 어린 소선의 육신과 혼이 아니면 소용없군요.”
“귀인께서 절명신목을 내어주며 이리 말씀하셨지 않소. 절명신목은 생명을 거두면 거둘수록 그 힘이 강해지고 끝에 가서 열매가 떨어지면 그때는 자연히 지성을 갖추고 현무성 자체를 지켜주는 신목이 될 거라고.”
맺혀있는 열매는 자연히 신목의 화신이 되어 영원토록 현무성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그 힘은 가히 수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니.
“곧 때가 도래합니다.”
그때 또랑또랑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며 발소리가 드리웠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녹색 궁장을 입은 현무종 종주.
묵계례 종주였다.
헝클어졌던 머리와 악에 차 있던 낮과는 달리 한결 여유롭고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부인의 면모였다.
“묵 종주 오셨소.”
“예. 무 종주, 놈은 어떻습니까.”
“음…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아신교의 뒤를 잡더군요. 지금 저희 무수산 지하에 제 아들놈과 노닥거리고 있을 겁니다. 슬슬….”
“악곡종으로 오겠구만.”
“그렇죠. 다른 단서가 없으니 이곳을 둘러보려 할 겁니다. 애초에 그리 하도록 꾀를 냈으니까요.”
그리고 이곳에 들어와 절명신목 앞에 서는 순간.
“툭 밀면 절명신목이 단숨에 먹어치워 버리겠죠. 그리하면 앞을 가로막는 성장의 벽이 뻥! 뚫릴 겁니다.”
“흐하하하! 그렇소. 화신으로 다닌다고 안심하고 있겠으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강력한 화신통으로 만들어진 터럭 하나 없는 깨끗한 화정! 그게 필요했으니 말이오! 흐하하하!!”
그들은 줄곧 찾고 있었다.
정순하기 짝이 없는 화신통의 정수. 화정을 이루고 있는 수선의 화신을.
“뒷감당은 괜찮겠습니까?”
“흐하하! 뭐 어떻소! 수계 사신단의 전력은 이미 확인한 바 있으니 화신 하나쯤 사라진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다른 것으로 배상하면 될 일이오.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이미 선궁에 사신의 일을 알렸으니 이제는 우리 손을 떠날 자요.”
적당한 보물로 보상해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것이다.
“한데 묵 종주. 여식의 일은 정말 사실입니까?”
악곡종 종주 철 종주가 묻자 묵 종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며칠 전, 찾아보니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더군요. 흔적도 하나 남기지 않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표정에서는 걱정하는 기색 하나 서려 있지 않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나 보군요.”
“본래부터 자기 알아서 잘 하는 아이입니다. 잠시 사라졌다 한들 요란 떨 필요까지는 없지요.”
“흐하하하!! 역시 묵 종주이시오! 과연 여인의 몸으로 현무종 종주 자리에 오른 수선답소! 흐하하하!”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신목이 자리한 공간에 수선 하나가 찾아와 무결종 종주에게 속닥거렸다.
그러자 무멸이 화들짝 놀라고 이내 심각한 낯으로 생각에 잠겼다.
“무 종주. 무슨 일인데 그리 안색이 어둡소.”
“일이 틀어진 것 같습니다.”
“일이 틀어지다니! 무 종주 외아들인 무마 수선이 실패했단 말이오?”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지금 여기서 노닥거릴 때는 아닌 것 같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휙.
사라지는 무 종주의 모습을 시작으로 묵 종주 또한 예삿일이 아니라 생각됐는지 모습을 감췄다.
이내 악곡종 종주 홀로 남아 절명신목을 바라보았다.
“고지가 머지않았거늘.”
일이 틀어졌다면 할 수 없다.
“억지로라도 끼워 맞춰야지.”
그 또한 공간을 넘어 밖으로 나서자 보이는 것은.
새벽녘을 밝히는 금색의 불빛과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기둥이었다.
[크아아아아악!!]금색의 불기둥에서 뛰쳐나온 것은 용과 흡사한 외양을 지닌 말.
거대한 모습의 용마였다.
[사, 살려주십… 아버님…!]화르륵!
불꽃에 휩싸여 있는 용마는 무언가에 꽁꽁 묶여 있었다.
지면에 쿵 떨어진 용마 위로 웬 사내 하나가 올라타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수계의 사신 천범이었다.
“그러게 왜 무의미하게 버둥대고 그러십니까. 무법혈로 신수의 피를 깨워 현신해도 금박령사는 풀지 못할 것을.”
천범은 어느새 근처에 자리해 있는 많은 수선들과 종주들을 보고는 아무 일도 아닌 듯 포권했다.
“오셨습니까.”
“천 수선.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란 말입니까.”
“별 것 아닙니다. 제가 유괴범을 잡은 듯해서 말입니다.”
“…유괴범이요.”
“예, 그 오랜 세월동안 어린 아이들이 사라지고 아신교라는 종교마저 탄생한 원흉을 잡았으니, 더 이상 현무성에서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그 유괴를 인정한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세 종주이거늘.
“무마야, 괜찮느냐!!”
[아, 아버님! 살려주십시오! 이, 이자가 다짜고짜 절… 컥!]“유괴범이 말이 많군.”
종주들의 눈이 찌푸려졌다.
오밤중에 왜 저리 소란을 피우나 했더니 현무성 주민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내 아들은 어디 있어!!”
“우리 딸은 어딜 갔냐고 이 썩어 죽일 놈들아!!”
주민들에게 이미 아신교의 실체를 밝힌 지 오래였다.
오랫동안 신의 행적인 줄 알았던 것이 수선의 짓임을 깨달았으니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모두들 현무성을 대표하는 현무종을 쳐다보고 그 최고 책임자인 묵계례 종주를 바라본다.
묵계례는 잠시 아미를 좁히다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무결종 무마 공자와 인신매매 일당을 잡아들여라!!”
“존명!!”
현무종 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종주들과 천범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눈빛만으로 많은 대화가 오갔으나 미소 짓는 건 천범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