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20)
낭선기환담-419화(420/600)
낭선기환담 – 2부 129화
“훔쳐? 청명아. 정녕 내가 들은 바가 맞더냐.”
“맞습니다 형님. 한낱 소선에 불과한 제가 이런 고서를 어찌 정당하게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비록 보잘 것 없는 재주이나 여태까지 저를 살린 비루한 특기입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제껏 살아온 아우의 삶이 딱하기도 했다.
“어디서 빼돌린 것이냐.”
“현무성에서 목신통에 정통하여 약묘원을 크게 꾸리고 있는 현무종에 몰래 들어가 가져왔습니다.”
신목에 관한 것을 수소문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청명이 가져온 건천기 목은 앞으로도 천범에게 이로운 서책이 되어 줄 것이다.
“고생했다.”
고생했다 치하하자 청명이 미소를 감추려는지 고개를 숙인다.
“왜 그러느냐.”
“아닙니다. 그저….”
“그저?”
“형님이 직접 칭찬해주시니 입가가 절로 꿈틀거려 참기 힘들어서….”
“참을 필요 있느냐. 고된 삶을 살아가며 마음대로 웃지도 못한다면 그게 대체 무엇을 위한 삶이더냐. 우리가 힘들고 지쳐 죽고 싶을 때에도 굳이 살아가는 것은, 끝내는 그 입가가 절로 움직여 미소 짓기 위해서다.”
끝내 웃기 위하여.
웃으며 행복하기 위하여.
그것을 바라고 살아가지 않던가.
“그러니 웃어도 된다. 네 지난날을 살아오기에는 웃음도 참아야 할 때가 많았을 것이나, 나 천범의 아우가 되었으니 이제는 웃고 싶을 때는 마음껏 웃고 울고 싶을 때에도 내키는 대로 울면서 사는 게 좋다.”
숨길 필요 있겠는가.
모두 다 그리 사는 것을.
“끝내 웃음 짓기 위하여….”
청명은 뭔가 와닿는 구절이 있는 듯 천범의 말을 한참이나 곱씹었다.
범은 처음으로 생긴 자신의 어린 아우를 보며 피식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건천기목을 보았다.
건천기목에 적혀있는 절명신목.
내용을 꼼꼼히 살핀 천범은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여기에 적힌 게 사실이라면….’
절명신목은 생명을 비료로 삼아 발아하고 열매를 맺는다.
이름이 절명인 것 또한 그 때문.
‘어느 과부가 아이와 함께 죽기 위해 목매달 나무를 찾아 줄을 내거니, 어느 순간 신목이 움직여 아이를 집어 삼키고 열매를 맺어 떨어졌다.’
그렇기에 절명.
‘허나 신목인 이유는 아이는 절명했으나 새롭기 태어나기 때문이다.’
신목을 수호하는 신으로.
열매는 아이를 삼키고 원료로 하여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렇게 태어난 수호신은 신목과 일대의 땅을 지킨다.
수호신의 모습은 때로는 가까운 이의 모습이며 때로는 짐승.
‘죽음과 탄생을 동시에 이루는 나무이기에 신목.’
생명의 굴레 그 자체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신목.
절명신목이리라.
‘절명신목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힘이 강대해져 후에는 숲을 이루고 자신만의 영토를 만들어낸다.’
기록에 적혀 있는 절명신목은 족히 수십만 년 된 것이었는데, 뿌리 한줄기가 용의 몸통과도 같고, 나무 끝이 하늘에 맞닿아 있었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수호신은 온갖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한 마리가 향선급의 힘을 지녔다 했다.
건천기목을 집필한 장본인은 제대로 성장한 절명신목은 원선태사와 같은 힘을 지녔을 것이라며 끝마쳤다.
‘수선이 인위적으로 키워내기는 굉장히 까다롭다. 수많은 생명과 그것을 잉태시키는 정순한 화정이 필요.’
정순한 화정이 필요라….
건천기목을 덮은 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월선 끝으로 가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현무성의 사라진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취한 절명신목.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으니…
신목이 화정을 취하고 성장을 끝마친다면 절명한 아이들은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나 생명을 이어 가리라.
‘허나 그것이 진정 생명의 순환이 맞기는 하던가.’
진정한 윤회라 할 수 있는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들이 키우는 절명신목이 완전한 성장을 이룬다면 정말로 항간에서 만들어진 아신교의 이야기대로 되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의 의지도 없이.
그저 신목의 아래.
그들의 혼이 묶여 평생을 이 땅을 지키는 인형이 되는 게 아닐까.
“술이 과했나.”
쓸데없이 감성적이 된 듯하다.
“형님.”
“가느냐.”
“예, 사부님께 가봐야죠. 아직 몸이 불편하셔서요.”
“그래.”
인사하는 청명에게 천범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이건….”
“건천기목에 대한 소소한 성의다. 가져가거라. 네가 써도 좋고, 네 사부에게 드려도 좋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안에는 원근 천 냥이 들어있었다.
“너, 너무 많습니다!”
“그렇느냐? 이상하구나. 내게는 아주 약소한 보답으로 보이거늘.”
“형님….”
“내게는 약소하다. 허나 너는 과분하다 여기는구나.”
청명은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큰 뜻을 품는 사내가 되거라. 천 냥에 벌벌 떠는 것은 모름지기 사내가 가질 태도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청명은 입술을 베어 물다 무어라 말하고는 사라졌다.
“형제인가….”
크게 실감나지는 않았다.
허나 그 울림이 싫지는 않아, 천범은 괜스레 미소 지었다.
“주인님.”
그때 가연이 황급히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우 부관이 왔습니다. 곁에는 선궁의 수선들도 있었습니다.”
“몇이나 되더냐.”
“대략 오천 정도였습니다.”
오천.
생각보다 더 많다.
“선궁의 의지인지도 모르겠구나.”
이곳만큼은 평화로워서 그닥 와닿지 않으나 선계는 전쟁 중이다.
호위로 오천이면 넉넉한 것을 넘어선 숫자이지만 무어라 단정지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우선 우 부관을 맞이하러 가지.”
계월선이 있는 위치가 현무성 외곽이니 가만히 있으면 연아는 알아서 이곳으로 찾아올 터.
우선은 고생한 우명을 맞이하는 것이 먼저다.
‘한적한 때도 다 가버렸군.’
* * *
같은 시각.
현무종 집무실에는 원형의 고목으로 되어 있는 원형 탁자가 있었다.
원탁은 윗부분은 움푹 페어 있어 물이 고여 있는 이상한 원탁이었다.
허나 묵계례가 검지를 수면 위로 툭 튕기니 옅은 파문과 함께 수면의 풍경이 달라졌다.
“예상했던 대로 선궁의 사자가 왔습니다.”
묵계례가 그리 말하자, 수면 위에 비치는 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악곡종과 무결종의 종주.
철심과 무멸이었다.
[현무성도 이제는 피해갈 수 없을 때가 된 것이지.] [전쟁에 참여하라는 협박하러 온 것이 분명합니다. 수계의 사신을 보호한다손 쳐도 숫자가 너무 많아요. 무슨 꿍꿍이인지 뻔히 보입니다.]현무성은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업보가 쌓이고 쌓여 이제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딴 바보 같은 전쟁통에 내 제자들과 아들들을 내어줄 수는 없소!] [옳은 말씀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소모전만 벌써 수천 년이 지났으나, 혼계나 인계나 그들의 땅 하나 점령한 적이 없지요. 무의미한 전쟁이요, 허망하게 죽어가는 목숨들입니다.]“하지만 이번에는 그들도 단단히 마음먹고 오는 것일 터. 선궁의 요청을 이제는 피하지 못할 겁니다.”
[허나 마땅한 방법이….]없는 것 아니냐는 무 종주의 말에 철 종주가 답했다.
[하나 있소.] [그게 무엇입니까.] [알고 있지 않습니까. 놈을 잡아 어서 신목을 개화하여 현무성을 철의 방주로 만들어야지요! 그리만 한다면 현무성은 선궁의 지배가 아니라 혼계와 인계 사이의 새로운 땅으로 발돋움할 것이오!]하지만 그리 하기 위해서는….
“수계의 사신. 그를 잡거나 회유해야만 할 겁니다.”
그의 화정은 필수불가결.
없어서는 아니 된다.
[놈이 묵 종주의 현각불괴를 원하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저희 무법혈로 거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럴 필요 있소? 그냥 잡아서 먹이로 던져주면 그때가 되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할 것이외다!]무 종주는 회유.
철 종주는 무력으로 해결하자는 이야기였다.
묵계례는 둘의 의견 모두를 자세히 들어본 뒤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정했다.
“놈을 잡지요. 화신을 신목의 먹이로 던지기만 한다면 후에 일은 신목이 모두 알아서 할 겁니다.”
* * *
반나절이 지나고.
어스름한 저녁.
우 부관과 선궁의 수선들을 만나고 온 천범은 자신의 본신이 있는 선실에 서서 골몰하고 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현무성은 이제껏 선궁과 천궁의 전쟁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하여 선궁의 수선들은 수계의 사신인 범에게 사과를 표하기 위해, 그리고 현무성의 삼대종파에게 전장에 참여할 수선을 지원받기 위해 겸사겸사 찾아왔다고 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정보다.
“놈들에겐 진퇴양난이겠군.”
그들이 절명신목을 키우는 이유 또한, 의미 없는 전쟁에 제자들과 자신의 자식들을 내몰고 싶지 않음일 터.
허나 이렇게 선궁의 수선들이 직접 찾아왔으니 더 이상 달아나기엔 발 디딜 공간 없는 낭떠러지니….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이를 드러내는 법이지.”
손안에 쥔 월법혈을 보았다.
선궁의 수선이 많은 보물과 함께 사죄의 표시로 내준 것이다.
이미 월법혈을 대강 살펴보았고, 마셔버려 빈 병이었다.
몸 안에 천법혈과 무법혈.
그리고 월법혈까지 섞여 들어가 더할 나위 없는 선력이 충만했다.
차분히 눈을 감고 전신으로 금천지화를 일으키자 선실에 자리한 태화만등으로 빚어진 금화들이 흔들린다.
사방에 자리한 꽃들이 흔들리는 풍경이 꼭 혼란한 마음과도 같다.
허나 그럴수록 금천지화는 더 밝고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모든 것을 뒤덮듯이 환한 불꽃.
하늘마저 금색으로 뒤덮어 금천.
땅 아래를 뒤덮어 지화.
천범의 금천지화가 서서히 몸속으로 스며든다.
치이이이익.
피부가 금색으로 변모하고 열기는 연기로 변해 피어오른다.
전신의 피가 들끓는 듯 열기가 피어오르고 피부가 울퉁불퉁 끊는다.
천법혈은 혈관을 감싸고, 무법혈은 순환을 빠르게 하며 월법혈은 사방을 난도질한다.
그 속에 금천지화가 스며드니 섞여 들어가던 법혈이 반발한다.
후웅!!
강력한 기운이 선실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한 번의 반발에 한 번의 돌풍이 휘몰아치니 천범이 바라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쌍결기고에서 마기와 선기의 반발을 이용한 힘을 보았다.
평소엔 조용하던 법혈이 금천지화가 스며들자 더 없이 반발한다.
잘못하면 죽는다.
허나 그렇기에 더 없이 큰 힘을 내기도 한다.
회광반조의 묘리와 흡사하다.
쿠우우우우우!
전신에서 피구름이 피어난다.
땀샘을 통해 핏물이 쏟아지고 동시에 증발하여 핏빛 연기가 자아난다.
금색으로 변한 피부 위에 붉은 실선이 생기기 시작한다.
혈관이 터져나가고 있다.
허나 멈출 수 없다.
이제 와서 멈춘다면 깊은 내상만 입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리라.
“처음부터 어리석었다.”
화혈을 만든다 해놓고 천범은 화혈을 몸속에 담으려 했었다.
인간의 형태를 본따 만든 화신의 몸으로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화혈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 더불어 천법혈과 화정을 기본으로 한 화신체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형태를 버리기로.
천범의 몸이 흐트러진다.
손발은 불꽃이 되어 흩날리고, 피구름은 더욱 피어오른다.
삽시에 상체와 머리마저 타올라 사라지니 남은 것은 핏방울들과 금색의 화정뿐이었다.
불타오르는 화정 속에 핏방울들이 주위를 맴돈다.
이내 핏방울로 변한 셋의 법혈들은 화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즉시 금구슬의 모양을 띤 화정은 금천지화를 전신으로 방출하고 이내, 형태를 잃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형태를 잃은 화정은 더이상 화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금색의 액체였다.
허나 그것은 불타오르기도 했다.
이게 바로 천범이 원하던 화혈.
금천화혈이었다.
금색의 피.
금천화혈은 신이 난 듯 허공을 날아다니며 맴돌다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고 천범의 본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휙!
금천화혈은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날개 달린 범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쿵! 쿵! 쿵!
본신에서 거센 심장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구구궁.
천범의 날개가 펴진다.
거대한 두 쌍의 날개였다.
그리고 범의 눈이 뜨여졌다.
금색의 동공은 무엇을 꿰뚫어 보는 듯 형형했다.
[와라.]천범의 입이 열리자.
선실에 자리했던 온갖 보물들과 다섯 개의 극산.
그리고 여기저기 피어나 있던 태화만등이 사그라들고 꽃잎으로 흐드러져 일사불란하게 모여든다.
이내 탈형의 모습으로 변한 천범의 몸속으로 법기와 법보가 스며든다.
오행극산은 오행육십사괘신으로 변해 천범의 등 뒤에 자리했다.
균천보화 또한 만다라로 피어난다.
등 뒤에 자리한 오행괘신과 균천보화가 다시금 몸으로 스며든다.
“심시묘.”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시간법칙의 연자보 심시묘도 불러온다.
토끼 모습의 화신으로 있던 심시묘가 번쩍 빛난다.
새하얀 반지로 변해 천범의 검지에 끼워진다.
“후우우우우.”
깊게 숨을 내쉰 천범이 품에서 작은 접시를 꺼낸다.
무결종 지하와 연결되어 있던 접시 모양의 법기였다.
‘더 시간 끌면 내가 죽는다.’
본신의 몸이다.
억지로 멈춰놓았던 수행이다.
금돈신상을 입으로 삼킨 뒤, 접시 법기에 신식을 불어 넣었다.
화신체로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신식이 부여된다.
수천 개의 혈로들이 순식간에 천범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와 동시에 번쩍 빛이 나더니 혈로를 타고 들어가 어딘가로 도착한다.
탓.
풍경이 뒤바뀌었다.
은은한 주홍빛이 천장에 매달렸다.
거대한 공동.
허나 그곳에 자리한 것은 검붉은 빛의 불길한 나무.
하늘에 매달려 있는 듯한 수천 개의 주홍빛 열매에 어린아이의 윤곽.
저것이 바로 절명신목.
쿠구구궁!!
그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 뿌리들이 움직여 천천히 그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그리 먹고 싶으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그리 묻자.
절명신목은 그에 화답하듯 더욱 빠르게 그를 끌어당겼다.
신목의 줄기들이 그를 옭아매고 나무 중심이 세로로 갈라지더니 탐욕스럽게 입을 처 벌린다.
무저갱 같은 신목의 입 안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천범은 짙게 미소 지었다.
“나도 그러하다.”
그리고 이내.
쿠웅!
절명신목의 입이 닫혔다.
다시금 신목의 공간은 으레 그랬듯 고요함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