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24)
낭선기환담-423화(424/600)
낭선기환담 – 2부 133화
선계에 살선이 나타났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고 적홍사막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쟁이 종결 났다는 이야기가 뒤섞이자 모두들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수만 년간 끝나지 않던 전쟁이 살선 하나로 끝났으니 당연했다.
안 그래도 선살전이 다가오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데, 돌연 살선이 나타나 오랜 전쟁을 끝내버리고 십만이 넘는 수선 모두가 죽었다 하니 당연히 그러했다.
소문에 살이 붙는 것이야 당연하니, 실상은 다를 것이라며 말이 많았으나 살선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선계를 뒤덮었다.
그러다 보니 호승심 높고 대개 이름값 좀 있는 수선들은 모두 자신이 살선을 죽이겠다 호언장담했다.
허나 그리 나섰던 이들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니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살선이 나타나면 모두들 달아나기 바빴고, 그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상대하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선궁에서는 대대적으로 추살령을 내려 살선의 용모파기와 함께 지명 수배가 내려졌다.
“흐음… 죽이는 자에게 원근 천 냥을 하사하고, 사로잡는 자에게 백만 냥을 하사한다라! 대단하구만!”
천 냥도 어마어마한 값어치라 할 수 있는데 사로잡으면 백만 냥!
평범한 수선은 감히 손에 만져볼 수도 없는 엄청난 재물이었다.
“그래 봤자지! 그 야멸살선(夜滅殺仙)을 누가 사로잡을 수 있겠나.”
밤에만 나타나는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얼마 전 새벽에 글쎄, 전쟁터 한복판을 야멸살선이 가로지르는데, 감히 앞을 막을 생각도 못하고 선궁과 천궁 모두가 싸우던 도중임에도 길을 비켜줬다더군.”
먼저 살기를 품고 달려들지 않으면 아무 짓도 하지 않으니 조용히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에야 다시 전쟁을 치렀다는 일화는 유명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거슬리는 건 모조리 죽이는 살선이니….”
살선의 악명이 혼계는 물론, 인계까지 퍼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곳이 혼계이든 인계이든 야멸살선은 개의치 않는다.
“선궁에서는 그를 사로잡아 천궁에라도 보낼 작정인가 보더군. 그렇지 않고서야 사로잡는 자에게 백만 냥이라는 거금을 하사하겠나?! 내가 한 천 년만 젊었어도 응? 야멸살선 정도는 아주 다리 몽댕이를 확! 분질러서 백만 냥을 꿀꺽했을 텐데 말이야!”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네. 자네 목이 댕강 달아났겠지! 야멸살선은 검은 물론이요 온갖 박투술에도 능하니 자네 같은 노인네는 손가락 하나 튕긴 것으로 사지를 잘라버릴 수 있어!”
“한 번 본적도 없으면서 뭘 본 것처럼 말하고 지랄이신가?”
“내 마음이다 왜!”
“근데 이 영감탱이가!”
한바탕 수배서 앞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멀찍이 떨어져서 그 풍경을 바라보던 노인과 소년이 일어났다.
노인과 청년은 천범과 인연이 깊은 환망과 청명이었다.
“우리 사제지간 모두가 큰 은혜를 입었으니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네 마음도 그러하지 않더냐.”
“당연합니다. 제게 사부님은 아버지이시며 범 형은 제게 하나뿐인 형제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살선이라며 두려워하고 흉신이라 떠들어도 자신들에게만큼은 더 없이 따뜻했던 사내다.
그가 베푼 은혜를 갚지 않고서는 편히 눈 감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은 아직 혼계에 있다.
“선궁에서 그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혼계에서도 이름 난 혈족이라는 백요족의 대 수선이 나선다고 하더구나.”
“백요족이라면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선궁을 대표하는 혼선 일족 중 하나라지요. 분명, 머리가 희고 눈이 파란 것이 특징이라고….”
그때였다.
돌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고 하니 인파가 반으로 갈라져 수선 행렬이 나타났다.
새하얀 궁장을 입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머리가 새하얗고 이질적으로 눈이 파란 여인들.
“배, 백요족?”
백요족이었다.
“백요보련의 일족이 나타나다니 선궁도 제대로 마음을 먹었군!”
“백요족이 나섰다면 야멸살선도 이제 마음대로 활개 치지 못하겠지!!”
그리 말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마 쪽으로 쏠려 있었는데, 백요족의 행렬 속에서도 가마에 탑승한 여인의 기운이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기품이 있음은 두말할 것 없거니와 정갈하게 묶인 머리끝에 새하얀 나무로 된 비녀가 인상적인 여인이다.
모두들 그녀의 기품과 용모에 넋이 나간 듯 바라보며 정신을 못 차렸다.
“백요족의 미모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로군.”
“난 그래도 좋아….”
“에헤잇! 이 사람이, 백요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사내 잡아먹는 과부들임을 모르는가?! 정을 줬다가는 자네 천명이 줄어들어 죽게 될 게야!”
웅성거리는 소란 속에서 환망은 새하얀 머리칼을 지닌 백요족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 수선의 부인과 참 닮았군.’
쉽게 잊힐 외관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차가운 인상이 참으로 닮았다.
‘설마 아니겠지.’
환망은 잠시 고개를 내젓고 청명은 백요일족의 행렬을 따랐다.
-내 비록 지닌 힘은 보잘 것 없을지이나, 작은 것이라도 그에게 보탬이 된다면 응당 목숨을 걸어야겠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전 범 형을 모시는 분들께 이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아직 수계에서 온 문무선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청명이었다.
그들에게 알린다면 어떻게든 천범에게 도움 될지도 모른다.
* * *
메마른 대지와 가파른 절벽이 공존하는 이곳의 이름은 흑풍지대.
높이 솟은 기암괴석과 풀 한포기 나지 않은 메마르고 건조한 기후가 흑풍지대의 특징 중 하나였다.
물론, 이곳에서도 나름대로의 환경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환수나 선초가 존재했으나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찾다가 죽기 일쑤기에 대부분의 신선들은 이곳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흑풍지대 골짜기.
그 절벽 아래에 벽을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아 죽은 건가 싶었으나 미약하게나마 숨 쉬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 사슴을 닮은 새하얀 환수 한 마리가 킁킁 거리며 다가왔다.
무섭지도 않은지, 피칠갑을 하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와 커다랗게 입을 벌리자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흉측한 이빨들이 내비쳤다.
한 입에 사내를 삼켜버리려는 기세였는데, 그 순간 갑주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환수를 찔러 죽이고 그대로 오룡의 머리가 나타나 먹어 치웠다.
작은 소란에 잠에서 깼는지 사내의 눈이 떠졌다.
긴 속눈썹이 얕게 흔들리자 곧 금색의 안구가 나타났다.
천범이었다.
그는 높게 솟은 절벽을 보고는 하늘 위의 태양을 보았다.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있을 때이면 잠시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다.
허나 밤이 되어 성운의 힘이.
천살성의 힘이 강해지면 다시 정신을 잃고 살선이 되어버린다.
그는 악곡종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절명신목의 안으로 일부러 들어가 안에 담긴 원기를 바탕으로 심시묘의 시간법칙을 이용하여 천겁을 당겼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확실히 잘한 일 중 하나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놈들에게 꽤나 모진 꼴을 당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허나 그 뒤가 문제였다.’
설마하니 자신이 살겁을 받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으나 천살성이 직접 내려와 살겁을 받게 될 줄 그 누가 알았던가.
천살성을 몸에 담음과 동시에 억눌렀던 수행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와 승선에 성공했다.
허나 그 뒤로 의식 또한 잃었다.
심연과도 같은 살기의 바다 속에서 의미모를 것과 싸우고 또 싸웠다.
허나 그 뒤로 잠시나마 깨어나 자신이 죽인 것들이 살기가 아닌 수선이었음을 깨달았다.
해가 떠올라 양기가 충만할 때에 그는 살겁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어 성운의 힘이 강해지면 눈이 붉게 변하며 살선이 되어 살기를 뿌리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게 된다.
“무분별한 살생이 내 살겁을 단축시키는 방도라지만, 이 이상은 하늘의 뜻대로 걷게 될 뿐… 진실로 살선들과 다를 게 없구나.”
그리 되고 싶지는 않다.
필요에 의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생을 벌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수선계가 본래 강자독식이니 먹히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하고 살생을 행하여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맞다.
허나.
“지금 내가 하는 것은 살육이다.”
무의미한 살육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니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겁을 이어 나갈 수는 없다.
천범은 곧장 입으로는 선문을 외우고 손으로는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바닥에 금빛의 법진이 그려지고 점점 그 크기를 키워 흑풍지대 일대를 가득 채웠다.
쿠구구구궁!!
지반이 흔들리고 땅이 푹푹 꺼진다.
마치 미궁처럼 어지러운 법진이다.
그러자 돌연 허공에서 꽃잎이 흘러나와 뭉쳐 여인의 모습으로 화했다.
화란이었다.
“꼭 그리하셔야겠습니까.”
“그러해야겠다. 지난번에는 실패했으나 이번에는 생각이 있다.”
“하늘의 겁입니다. 무의미한 살육인지 아닌지는 하늘만이 알겠지요.”
“많은 살생을 저질렀다. 그러니 내 목숨을 노리려는 자들이 많을 게야. 아무리 나라도 혼계의 진정한 강자들이 나선다면 수적 열세를 감당키 어렵다.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꾀를 내야 한다.
해가 떠 있는 양기가 충만한 이때에만 정신이 온전하니, 시간이 없다.
“날 봉인할 것이다. 허나 그냥 봉해지지는 않을 것이야. 살겁은 살기를 원료로 삼아 치러진다. 하여 내가 지닌 보물과 온갖 환수들을 이용할 것이다.”
욕심 많은 자들은 자연스레 지하 동굴로 들어올 것이며 지하 미궁을 수 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탐욕스러운 자들은 죽게 될 것이며 그들이 지닌 살기는 살겁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탐화가 고생해 줘야겠구나.”
“난 괜찮아!”
“에휴… 어찌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고생만 이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내가 견뎌야 할 업이지 않겠느냐. 견디다보면 광명이 찾을 것이니 괜찮다. 지난날 겪은 과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지나가면 이 또한 추억이 되리라.
이내 천범의 술식이 끝나자 그들은 지하 미궁의 끝 방으로 내려앉았다. 범은 곧장 탐화의 금쇄로 자신을 꽁꽁 묶어 자신을 봉했다.
“내 모든 것을 풀어 미궁에 가두어두니, 이곳에 발 디딘 자는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으며 또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