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26)
낭선기환담-425화(426/600)
낭선기환담 – 2부 135화
“비승선?”
백절사무는 모르는 듯하자 선평이 입을 열었다.
“이 시기에 저런 모양의 비승선이라면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소.”
혼계와는 사뭇 다른 외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비승선.
이래저래 말이 많은 수계의 사신들이 타고 있는 계월선일 것이다.
“바로 맞추셨소!”
계월선 위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빛줄기 여러 개가 떨어져 내렸다.
그곳엔 우명은 물론, 탐랑과 양미 등등 여러 문무선들이 모여 있었다.
“수계의 사신으로 온 우명이라 합니다. 혼계에서 명망이 자자한 백요족을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포권하며 인사하자 백절사무와 선평 또한 함께 인사한다.
“백요종 장로 백무입니다. 세간에서는 백절사무라 부르지요.”
“전 별다른 별호가 없으나, 선궁의 피를 이어받은 둘째 선평이라 합니다. 수계의 사신들을 만나다니 저 또한 영광이지 않을 수 없군요.”
한데.
“수계의 사신이 이곳에는 갑자기 어인 일인지 궁금하군요.”
선평이 묻자 우명이 나서서 답했다.
“저희가 찾는 분이 있습니다.”
“찾는 분?”
“예, 모종의 일로 헤어지게 되어 행방이 모연하신 분이지요. 항상 홀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하시기에 아랫것들을 서운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전부 그분을 찾기 위해서이죠.”
그분이라 칭하는 것을 보니 사신단의 대표격으로 온 수선일 터.
허나 그런 자를 어째서 이곳에서 찾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하하, 누구신지 몰라도 이렇게 상관을 생각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정말로 복 받으신 분입니다. 혹, 괜찮다면 그분의 함자를 알 수 있는지요.”
“물론입니다. 그분은 사신 대표이시며 동시에 문문관장의 직책을 짊어지고 계시는 천가 성에 범어 범자를 쓰시는 분이지요.”
“이것 참, 좋은 이름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이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달변가인 선평의 권유에 우명은 짐짓 미소지었으나, 그보다는 먼저 구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차도 좋지만, 저희가 급히 내려온 까닭에 대해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백절사무가 환망의 몸 곳곳에 꽂혀 있는 바늘에 연결된 실을 슬쩍 잡아당겼다.
“으윽!”
그러자 우명의 미간이 움찔했다.
“인선과 면이 있는가 보군요.”
“예. 무언가 착오가 있는 듯하니 우선 말로 하심이 어떠신지요.”
좋게 말했으나 백절사무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환망을 묶은 바늘과 실도 묵묵부답이니 답하지 않아도 그녀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착오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저 자는 제 뒤를 밟았습니다. 우 수선은 지금 저자의 행동이 수계의 뜻이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는 듯 묻는 그녀의 태도에 뭐라 해야할지 말문이 막혔다.
천범이 살선이 되었고, 백요족이 살선을 쫓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쫓게 되었다 말할까?
그리 답한다면 환망은 살릴 수 있을지 모르나 천범과 수계는 큰 빚과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혼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수계의 수선임이 밝혀진다면 그들이 어떤 배상을 요구해올지 모르지 않던가.
안 그래도 수계에 적이 많은 천범이니 더더욱 밝혀지면 곤란했다.
‘허나 그렇다고 밝히지 않자니 환망을 살릴 방도가 없구나.’
포기해야 하나 싶던 그때.
돌연 문무선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소년이 튀어나왔다.
“저자는 사신단의 대표이신 문무관장 천범의 노선이니, 그를 죽인다면 수계의 것을 해한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사신 대표의 노선? 저 아이가 말하는 게 정말입니까?”
우명은 힐긋 청명을 바라봤다.
-무슨 짓이오 청 소선.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절 믿고 한 번만 입을 맞춰 주십시오.
-관장 어른의 의형제라도 우린 수계의 수선이오. 만일 관장 어른과 수계에 해를 끼친다면, 그대의 목숨 정도는 내놓아야 할 텐데?
허나 청명은 각오하고 있다는 듯 짐짓 의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우명은 잠시 청명을 내려다보다 백절사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신 대표의 노선이 어째서 저를 쫓았는지 설명해주어야 하겠군요.”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청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기를.
“그거야 말로 백요족의 남다름 때문입니다.”
“남다름이라니 무슨 말이냐.”
“백요족은 혼계에서도 이름난 혈통을 지닌 일족이니, 당연히 그중에서도 뛰어난 백요족의 장로이신 백절사무의 명망은 저희 노선의 귀까지 퍼지지 않은 곳이 없으니 당연히, 저희 주인을 찾기 위해서는 백요족의 뒤를 쫓는 것이 빠를 것이라 믿었습니다. 미천한 것들의 작은 꾀이지요.”
난데없는 칭찬 한보따리에 백절사무의 입가가 씰룩였다.
“허나 꼬마야, 네 말에는 한 가지 인과가 맞지 않구나.”
“무엇이 그러한지 혹,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너는 이 노선이 네 주인을 찾기 위해 한 일이라 말하였다. 한데 어째서 백요족을 쫓은 게냐? 우린 알다시피 야멸살선으로 이름을 떨치는 잔혹한 이를 쫓는 중이지, 수계의 사신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네 말의 인과가 맞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연관이 없지 않느냐.”
그렇다.
청명의 말은 다소 일리가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연관성이 부족했다.
노선이 제 주인을 찾는 일에, 어째서 백요족의 뒤를 쫓는단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녀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집중됐다.
이 작은 소년이 꾀를 냈으나 허점투성이 꾀를 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네 입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나의 행동도 달라지게 될 테니 부디 정답을 말해야 할 것이다.’
청명이 만약, 천범이 살선이다라고 말한다면 우명은 곧장 그를 죽이려 준비하고 있었다.
살선이라 말한다면 의형제를 맺은 제 형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사신단 일행과 수계에 해가 되는 일이니 아무리 그의 아우라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우명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니, 부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청명의 입이 열렸다.
“연관이 있습니다.”
“연관이 있다라, 어찌 연관이 있다는 게냐. 혹, 사신단 대표께서 우리가 쫓는 살선이라는 건 아니겠지.”
싱긋 웃는 백절사무의 미소는 아름다웠으나 날카로웠다.
바람에 의해 칼날 위를 노니는 꽃잎 같은 인상을 주었다.
청명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수계를 대표하는 사신이자, 저희 노선의 주인이신 천 어르신은 갑주로 둔갑하는 조예가 남다르십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게냐.”
“백절사무께서는 혹, 살선이 검은 갑주를 입고 계심을 아십니까.”
백절사무의 아미가 좁혀진다.
이내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팍 찡그린다.
살선의 검은 갑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여지까지 살선을 막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 갑주에서 튀어나오는 독무와 사슬 때문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럼 설마….”
“예, 저희 주인 어르신은 수계에서도 명망이 자자하신 분으로 대협의 면모를 갖추셨습니다. 하여, 현무성에서 살선이 나타났을 때 솔선수범하여 그를 막으려 했습니다만….”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그러고보니 살선이 처음 나타난 곳이 현무성이라 들었다.
그 때문에 선궁의 외교 차 갔던 대신 몇몇과 병사들이 싸그리 죽기도 했으니 거짓이라 보기엔 정황이 딱딱 들어맞는다.
“허나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선에 저항하고 계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 청명의 모든 걸 걸고 분명 그럴 것이라 믿으니 부디 백절사무께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내 무릎을 꿇고 포권하니 그녀의 얼굴이 떨떠름해진다.
“도와주십시오!”
청명을 따라 주변에 자리하던 문무선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청한다.
이 기이한 풍경에 백절사무는 물론, 백요족과 선평까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청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백절사무는 작게 한숨 쉬었다.
푸푸푸푹!
“큭!”
이내 환망의 몸을 꿰뚫었던 바늘을 빼냈다.
“이 또한 인연이겠으니, 동행하시지요. 다만 그대들의 목숨을 책임지지는 못하니 살선을 상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일은 수계에 책임을 묻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우명은 그녀의 호의에 감사를 청하고 문무선들에게 환망을 치료하라 명했다. 그리고는 묘한 눈길로 청명을 바라봤는데, 보면 볼수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피를 나눈 술잔을 나눠 마셔서 그런 건지 뭔지….’
겨우 소선의 불과한 몸으로.
겨우 몇 해 지나지 않은 나이로 상선들도 두려워하는 백요족 장로.
백절사무를 상대로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게다가 말 몇 마디로 환망을 살려 냈으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마치 문무관장을 보는 듯했다.
‘의형제라도 형제는 형제라 이건가.’
놀랍고, 또 놀라울 따름이다.
“닮았군.”
우명만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탐랑 또한, 청명을 보며 그리 말했다.
“간사한 혓바닥으로 저 백지장 같은 먹이를 구워삶다니, 마치 작은 먹이를 보는 듯했다.”
어딘가 모르게 재수 없는 것도 똑 닮았다며 궁시렁거린다.
우명은 그저 허허 웃으며 바라보다가 지하 동굴 입구를 바라봤다.
‘저곳에 계시는가.’
흑풍지대에 선인의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저곳에 문무관장이 있을 것이다.
백요족은 예전에 한 번 살선을 봉인한 전적이 있어, 살겁을 받은 자를 찾아내는 비술이 있다 들었다.
그들의 추적에 실수는 없을 터.
“저희는 들어갈 겁니다. 앞서 보물에 눈 먼 자들이 먼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 위험할지 모르죠. 애초에 살선이 이곳에 숨어 있을 터이니 안전한 게 이상할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나 백요족의 백절사무가 계시다면 상관없겠지. 앞서 말했듯 이 또한 인연이니 난 동행할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걱정할 것 없소이다.”
선평이 그리 말하고 슬쩍 우명과 탐랑을 번갈아 바라봤다.
탐랑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우명이 그의 말을 가로채 답했다.
“우리도 작은 먹이….”
“저희도 당연히 갑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않는다면 겁쟁이라 불리겠지요. 살선이 제아무리 두렵다 한들, 저희 상관을 버려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좋군, 그럼 들어갑시다.”
선평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자 우명과 탐랑은 몇몇을 추려 이곳에 주둔케 하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저도 갈게요!”
양미였다.
계월선을 지켜야 할 인원으로 배정했는데 그녀는 따르지 않을 모양이다.
우명은 잠시 고민하다 허락했다.
그녀 또한 문무관장을 스승처럼 따르는 자이니 그 마음, 헤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형님을 부탁드립니다.
청명은 다친 환망을 돌봐야 하니 여기까지였다. 어차피 들어가도 별 도움은 되지 못하리라.
우명은 알겠노라 답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백절사무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백요족의 수선들과 선평, 그리고 수계 사신단의 인원 대부분이 지하로 통하는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