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28)
낭선기환담-427화(428/600)
낭선기환담 – 2부 137화
닮았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게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보다 보니 알겠다.
“아니군요… 사모님이 아닙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았지만 아니다.
“누구십니까.”
물으니 냉소한다.
이내 대답 대신이라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때였다.
“흣!”
퓨퓨퓻!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실이 연결된 바늘이 튀어나왔다.
사출된 바늘은 스무 개 정도였으나, 그 속도나 담긴 힘이 남달랐다.
가연은 여섯을 피해냈으나 팔과 다리에 구멍이 뚫렸다.
연아는 하나를 제외한 바늘을 모두 검으로 튕겨냈다. 하지만 검면에 바늘이 꿰뚫려 꼼짝할 수 없었다.
“백요족의 백무. 또는 백절사무라 불리우는 자다.”
“백절사무!”
백절사무(百絶師武).
백가지의 초식이 모두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별호를 가진 수선다운 깔끔한 손속이다.
단 한 합으로 그녀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니, 백절사무의 경지와 실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가연은 잘 몰랐지만, 연아는 당연히 저 이명을 들어본 적이 있었으니 단번에 안색이 파리해졌다.
천궁의 향선 중에서도 맞설 이가 손에 꼽는다는 대수선.
“저희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거기 있는 푸른 궁장의 여인은 선궁의 주적인 천궁의 천녀이니 당연한 조치이고, 그대는 여기 얼어붙어 있는 자들과 동행이니 당연하다.”
동행이라 당연한 처치라니!
“저흰 수계의 사신입니다. 저희를 공격한다는 것은 수계와 척을 지겠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을 텐데요!”
그러나 백절사무는 콧방귀 끼며 답했다.
“그것도 백 년 전 이야기지. 설마 수계의 사신으로 온 자가 선계에서 살선이 되어 신선들을 해치는데 아직도 그 소리가 통할 거라 생각하나?”
“!”
그녀의 일갈에 가연은 꿀 먹은 벙어리 되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즉 모든 걸 알아채고 문무선들과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그럼 어째서….”
“그대들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무리 그래도 내 독단으로 수계의 사신을 처단할 수는 없지.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재판을 받고 형벌은 그 이후에 치러지는 것이 당연하다. 왜 같이 있는지 모를 천녀 또한.”
마찬가지다.
가연은 끝장이라도 났다는 듯한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사신 신분으로 왔다고 해도, 그 대표인 천범이 살선으로 지내오며 살생한 숫자가 엄청나다.
수십 개의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살생을 벌였으니 아무리 사신으로 왔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터.
‘하필 저런 고수에게….’
붙잡혔다.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가기란 요원하리라.
안 그래도 백절사무의 바늘에 찔린 부분이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다.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엔 다른 생각이 있는 걸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천궁의 천녀.
연아는 생각이 다른 듯하다.
돌연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다른 생각?”
“예,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록, 백절사무를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천궁의 천녀라는 신분으로 여러 전쟁터를 전전한 몸입니다.”
그렇기에 백요족과 백절사무에 관한 이야기는 여럿 들어보았다.
“백절사무는 손속이 잔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지요. 그런 분이 천궁의 천녀인 절 보고도 우선 살려둔다? 이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저치들은 수계의 사신이라 하여 그렇다 쳐도 저까지 재판을 받아 본보기로 보이기 위해 살려둔다고요? 말도 안 되죠. 본래라면 제 정체를 파악했을 때 곧장 찢어 죽이는 게 정상일 텐데요.”
가연은 순간 이 여자가 미쳤나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오냐, 그렇다면 바람대로 찢어 죽여주마.’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던가.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고서는 절대 저런 말을 해서는 안됐다.
소문을 너무 맹신한 것 아니냐고 빨리 싹싹 빌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백절사무의 태도에 가연 또한 고개를 갸웃했다.
아미를 좁히며 언짢다는 듯 연아를 보고 있었기 때문!
“천궁의 천녀라 불리우는 여인이라더니 배포는 두둑하구나. 허나 겨우 그런 소문만을 믿고 하는 말은 아닐 터. 왜 그런 확신을 갖는 거지?”
“첫째는 모습을 숨기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백절사무의 실력이라면 굳이 숨지 않아도 일격에 제압할 수 있었을 터.
어째서 처음엔 모습을 숨겼을까.
“숨길 필요가 있었다는 거죠.”
“내가? 어째서?”
“본래라면 그 누가 들어와도 백절사무 정도의 대수선이라면 모습을 감추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겠죠. 허나 당신은 모습을 감췄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수계의 사신단에는 탐랑이라는 향선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무리 당신의 실력이 뛰어나도 그리 간단히 제압당하지는 않았겠지요. 가연, 탐랑의 발밑을 유심히 봐주십시오.”
“…정말이군요.”
발밑 바닥은 무언가가 칼로 벤 듯한 흔적이 여러 군데 나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겨우 그것만으로 내가 네년을 죽일 힘이 없을 거라 생각한 거냐? 오만하군. 아무리 내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상선 하나둘쯤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으르렁거리자 씨익 미소 짓는다.
“전, 백절사무가 내상을 입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요.”
흠칫.
이내 그녀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그리고 연아는 시선을 천범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둘째는 저분의 유무입니다.”
천범의 곁에 있는 여인.
화란이었다.
“당신은 왜 살선을 찾으러 왔다면서 아직도 봉인하거나 죽이지 않은 겁니까? 아니, 못한 거겠죠.”
연아는 확신에 가득 차 말했다.
살선을 죽이거나 봉인하러 왔을 터.
한데도 아직 살선인 천범이 그대로 있고, 곁에 화란이 있다는 말은 그를 어쩌지 못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했다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백절사무는 이곳에 들어와 내상을 입었지만 사신단을 모조리 제압했을 겁니다. 그리고 살선인 사부님이 묶여 있으니 봉인하려 했겠죠. 살선을 온전히 가질 수 있다면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허나 실패했다.
이유는 뻔하다.
화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쉬익!
때마침 백절사무가 쏘아낸 바늘 하나가 연아를 향해 쇄도했다.
확연히 담긴 기운이나 날카로움이 이전만 못했다.
태앵!
연아의 검에 바늘이 튕겨나갔다.
“크!”
돌연 백절사무가 피를 토했다.
입가를 가리고 콜록거리며 토혈을 하는데 피의 색이 검었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바닥에 그녀의 핏물이 떨어지자 치익, 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이었다!
“독에 중독 당했군요.”
“장로님!”
백요족 수선들이 몰려와 백절사무를 부축했다.
그러자 은근한 안개가 걷히고 이곳의 공간이 확연히 드러났다.
환계로 인해 가리어졌던 부분들이 드러나자 연아와 가연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범이 묶여 있는 공간에는 여러 시체들이 나뒹굴었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풍화되는 뼈들도 잔뜩 보였다. 게다가 백절사무는 곧 죽을 것처럼 안색이 초췌했다.
백요족의 다른 수선들도 마찬가지.
모두 독에 중독되어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자들도 있었다.
백절사무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연신 토혈했다.
백요족 수선들에게 부축 받고 있으나, 새하얗던 그녀들의 얼굴은 눈 밑이 검게 변했고, 파리하여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독에 중독된 지 오래 된 듯하다.
“그렇군요. 독에 중독되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무슨 연유로 독에 중독되었는지 몰라도 아마 천범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 좋아할 것 없다.”
“곧 죽을 사람이 그런 말 해봤자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그녀의 환계가 깨졌다.
가연과 연아는 온몸이 꽁꽁 얼어 붙는 중이었으나 두렵지 않았다.
백절사무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고, 거동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니 희망이 있었다.
비록, 대수선이라 불리우는 백절사무라도 독에 중독되어 제대로 된 거동도 힘들다면 해볼 만하다.
“상황이 바뀌었네요.”
연아와 가연은 곧장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했다.
완전하게 움직일 수는 없으나 그래도 신통을 부릴 정도는 됐다.
독에 중독되어 제대로 힘을 쓸 수도 없는 수선을 처단하는 것 정도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승기가 기울었다.
연아의 몸에서 균천오광이 찬란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내 죽는다면 혼자 죽을 성 싶으냐. 다른 놈은 몰라도 네년만큼은 반드시 길동무로 삼을 것이다. 허나 아직은 아니지. 난 죽지 않아.”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요?”
연아가 놀리듯 말했다.
촤르륵. 그리 말하며 연아의 곁에 수백 개의 검들이 펼쳐졌다.
곧장이라도 백요족과 백절사무를 꿰뚫을 것처럼 흉흉했다.
허나 백절사무는 겁내지 않았다.
“내 평생 겪어본 적 없는 극독임은 인정한다. 허나 나 백절사무가 고작 독에 중독되어 죽을 성 싶으냐!”
백절사무는 혼잣말을 하듯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중얼거렸다.
그러다 이내 결단한 듯 좌선하고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돌연.
푹! 푹푹!
손가락으로 자신의 몸을 찔렀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피부를 찌르고 들어가자 거뭇한 핏물이 그녀의 새하얀 궁장을 검게 물들었다.
허나 신기하게도 그녀가 입을 달싹이자 검은 피는 바닥으로 흘러 이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겁니까!”
“죽으려면 곱게 죽지!”
“지금은 내가 극독을 해독하는 것보다 독이 전신으로 퍼지는 게 빠르다. 아무리 독을 퍼지는 걸 막고 있다 해도 이런 엄청난 독은 나 또한 처음이라 아마도 난 죽을 것이다. 허나 내 비술 장서단세라면 이 위기 또한 흐르는 세월마저 흘러가리라.”
쿠구우우우웅!!
미궁이 부르르 떨며 백절사무의 눈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장서단세!”
“그게 뭡니까!?”
연아는 알고 있는 듯하다.
“공간법칙의 일종으로 공간 자체를 얼려버려 적은 얼려 죽이고, 자신은 겨울잠 자는 짐승처럼 힘을 회복하는 백요족의 절기중의 절기입니다!”
허나 그 비술은 수행의 절반을 깎아버리고 한 번 얼어붙으면 최소 천 년 가까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풀어지지 않는다 들었다.
하기사, 곧 죽게 생겼는데 지난 세월 쌓아온 수행이고 뭐고 아까울 게 뭐가 있을까.
덕분에 큰일 난 것은 연아와 가연이었다.
“지금은 내가 독에 중독되어 별 힘을 쓰지 못하여 잔꾀를 부렸다만, 장서단세를 사용해 천 년 후에는 네놈들 모두 찢어 죽여주겠다. 그곳에 서서 내 머리 끝에 올라 서 있는 네년과 네가 모시는 살선 또한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야!”
이내 미궁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