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3)
낭선기환담-42화(43/600)
낭선기환담 – 42화
한편, 수월문의 한수는 자신의 친우와 함께 금은환사를 찾았다.
한수 옆에 있는 사내는 같은 도선으로 장방이라는 도사였다.
“꼭 그녀들이 필요한가?”
“당연하지. 그녀들이 없으면 천요동으로 향하지 못해. 자네야 잘 모르겠지만 천요동의 환진은 다량의 환진들이 동굴과 융화되어 해제를 할 수가 없네.”
“그런데 겨우 도선 수행의 환진사로 도움이 되겠나?”
환진에 능통한 환선을 데려와도 힘들 텐데 겨우 도선으로 무얼 하겠냐는 말이었다.
그러자 한수가 입을 달싹거리며 전음을 날리자 장방의 낮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번 일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네. 안 그래도 서악의 요수들 때문에 난리 통인 와중이야. 환선님들은 물론이고 태선님들까지 손속에 여유가 없어. 그 시기에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비선으로 오를 일도 머지않았으니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
“항보신목(抗菩神木)과 천요동의 보물이라면 어디 비선뿐이겠는가. 환선으로 오를지도 모를 일이지!”
그들은 서로 비릿하게 웃으며 금은 환사로 들어갔다.
* * *
석실을 나오자 의외의 인물이 산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아, 본인은 수방봉 낭선 중 하나인 수개라고 하오.”
“예, 수개 도사셨군요. 한데 이곳은 어쩐 일입니까.”
그러자 노인이 차근차근 말을 이어 갔다.
요새 한창 서악으로 요수들이 모이고 있으니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요수들 덕분에 거대 문파들의 심기가 어수선하니, 낭선인 우리는 알아서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뒷배가 없는 낭선들이고, 같은 영산에 거주하는 것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교환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도사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죠.”
“허허, 뭐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같은 낭선들이야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덕담을 나누고는 수개와 헤어졌다. 그 이후, 홍련과 까망호리를 데리고 천요곡으로 이동했다.
천요곡은 서쪽으로 10리 정도 나아 가면 있는 곳이다. 그곳은 수개의 말대로 많은 문파의 도사들이 있었다.
‘근데 어째서 요수들이 서악으로 모이는 거지? 지금쯤이면 동쪽의 팔귀가 있는 곳으로 모여야 할 텐데…….’
산군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른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명은술을 펼쳤다.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용히 비보만 가지고 나갈 생각이었다.
“한데 우리는 언제까지 천요동을 지켜야 하는 건가?”
비선 한 명이 넋두리하듯 중얼걸렸다. 그러자 옆에 함께 있던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는데, 은밀히 움직이던 산군의 발길이 멈췄다.
“그러게 말일세. 어느 누가 이곳으로 요수가 도망칠 것이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요수?’
“그러게 말일세. 도망쳐도 천요동으로 도망칠 줄이야. 금제가 약해질 시점이 아니었다면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을…….”
“어휴, 그 때문에 우리만 개고생이 아니던가. 장로님들은 한창 전선에 계셔 천요동에 신경을 쓸 수 없고, 요수 놈은 천요동의 환진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니.”
“사제들만 아쉽게 됐지. 항보신목의 잎사귀를 수거하지 못하니 항보천탕(抗輔泉湯)으로 벌모세수(伐毛洗髓)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다음 기회는 100년 뒤에나 올 텐데 수명 때문에 그것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을 테고 말이지.”
“아니지. 한 사제가 들어간다지 않았던가.”
“뭐? 한 사제가?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고서야 어찌 사통 요수가 있는 곳에 들어가려 한단 말인가?”
“그게…….”
사내가 입을 달싹거리며 전음을 날리니 비선 사내가 눈을 번쩍 떴다.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자기가 들어가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윗분들이야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 알아서 하라 했다더군.”
거기까지 들은 산군의 눈이 가늘어지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천요동에 영명 영수가 갇혔다라…….’
한 사제라는 것은 분명 한수를 말하는 것일 터.
산군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놈이구나라 생각하며 이내 생각을 지워버렸다.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엮이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 뒤, 그가 지나는 길에는 많은 수의 도사들이 이따금 보였다. 하지만 홍연도 함께였기에 어렵지 않게 그들을 지나쳐 천요곡의 중심부로 향했다.
산군은 나무들을 기웃기웃하며 무언가를 찾았다.
한 시진 후.
“대체 뭘 찾는 거냐?”
까망호리가 궁금했는지 산군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물었다.
“나도 말로만 들어서 잘은 몰라. 천요곡 중심부에 나무 중에 자신의 이빨을 숨겨 놓았다더군.”
“이빨? 이빨을 찾는 거야?”
“그래. 보패화 시킨 이빨이라던데…. 그것을 찾으면 아마 비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금명지령 자신의 이빨에 오랜 세월 영력을 담고 신통을 부린 것이라 했다.
그것이 있는 위치에 비보가 있다 들어 이렇게 나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좋아! 나도 찾아줄게!”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것이 아닐런지요.”
홍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고목 하나가 있었는데, 그 틈을 자세히 보자 무언가 햇빛에 비춰 반짝였다.
산군이 한달음에 달려가 고목에 덮여있는 이끼를 손으로 헤집자 그토록 찾았던 금명지령의 이빨이 있었다.
그는 크게 기뻐하고는 곧장 절을 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절은 왜 하는 게냐!”
“모르면 닥치고 있어라. 이래야 되는 거니까.”
* * *
같은 시각.
천요동 입구를 지키고 있던 비선들은 떨떠름한 낯이었다. 자신의 앞에 당도한 도선들 때문이었다.
“정말 가야겠나? 한 사제가 이러지 않아도 100년만 기다린다면…….”
비선 사내는 뒤를 힐끔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선의 수명이 300년인데 100년을 어찌 기다리겠습니까. 저는 이곳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한수가 입을 달싹거리자 비선 사내도 크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선들이 몸을 비켜 세우자 한수가 도선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천요동의 입구는 거대한 요수가 지냈다 하는 동굴인 만큼, 입구가 삼십 장에 이르러 웬만한 누각보다 거대했다.
한수는 앞장서 걷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자 뒤를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도선들이 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두 도선의 등을 밀었다. 머리에 두건을 싸매고 새까만 색안경을 쓴 금은 자매였다.
“어서 하시오.”
금매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을 부라렸으나 한수는 냉담했다.
옆에서 은매가 고개를 가로저으니 가까스로 울분을 참는 듯했다.
그녀들은 산군과 헤어지고 곧장 수월을 벗어나려 짐을 싸던 중, 한수와 그 친우인 장방에게 잡혀 이곳까지 억지로 끌려온 것이었다.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천요동을 벗어나지 않으면 100년 동안 갇혀버릴 것이니 빨리 환진을 비틀어야 할 겁니다. 아니면……. 이 한 모가 거들어 줘도 괜찮고.”
한수는 품에서 단도 하나를 꺼내 들고 금은 자매를 향해 겨눴다. 그러자 금매는 물론이고 은매도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우리가 혼아혈이라 해도 이런 처우는 부당합니다!”
금매는 뒤집어썼던 두건과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말했다.
그러자 금색의 단발과 금안이 천요동 안에서도 은은하게 빛났는데 다른 도선들도 그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말로만 혼아혈이라 들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생김새가 기이했던 탓이었다.
“마, 맞아요!”
그러자 은매도 머리와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을 벗어던졌다.
금매와는 다르게 은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하지만 그녀들을 쳐다보는 한수의 눈에는 경멸이 깃들어 손에 쥔 단도를 더 가까이했다.
“요수의 피를 지닌 것들이 이런 곳이나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소? 언제 요수들 편에 붙을지 모르는 것인데 말이오!”
금은 자매는 주먹을 말아 쥐고 부들부들 떨다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내더니 핏방울을 환진이 있는 곳으로 뿌렸다.
안개들이 자욱했던 환진의 표면이 기괴하게 비틀리더니 일그러졌다.
“오오, 한 형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금은 자매가 만변각귀(瞞變角鬼)의 후손이라더니 참인가 봅니다!”
도사 한 명이 놀라워하며 한수를 향해 미소를 띄웠다. 한수도 흡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한 식경 후, 환진에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수는 모두를 이끌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금은 자매를 제외하고 여덟의 도사들이 신기해하며 환진 속을 나아갔다.
* * *
산군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뜬금없이 고목에 108배를 드릴지는 몰랐습니다.”
홍연이 피식 웃으며 말하고, 까망호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것은 산군도 마찬가지.
자신도 고목에 108배를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러했던 것이다.
마지막 절을 마치고 일어났다. 그러자 이끼가 덮여있던 이빨에서 자그마한 빛이 터지고, 고목들이 양옆으로 벌어져 사람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오오! 나무가 열렸다!”
누군가 손으로 잡아 벌린 것처럼 나무 중심 부분만 쩍 벌어져 또 다른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군은 곧장 머리를 들이밀어 안을 훔쳐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후웅.
몸을 감싸는 공기가 달라졌다.
“응? 뭐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시선이 쏠렸다.
-신기한 곳이군요.
산군도 다르지 않은 감상이었다.
주위는 회색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공동이었는데 여러 꽃과 영초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자체적으로 빛을 방사하는 발광초(發光草)가 자리 잡아 어스름하게 안을 밝혔다.
안에는 석 장 크기의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곤히 자고 있었는데, 산군은 늑대를 보고 잠시 움찔하다 다시 태연하게 그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내 친우의 묫자리다. 절대 그곳을 더럽히거나 하면 안 될 것이야. 내 친우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가 모르는 금제가 펼쳐져 널 잡아먹을 테니 말이다!’
친우의 묫자리라고 하더니 설마 그 시체가 썩지도 않고 금세라도 살아있는 것처럼 있을 줄은 몰랐다.
발광초가 만연한 곳.
그 한가운데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 늑대는 그저 잠을 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왓! 저놈 뭐야!”
까망호리가 죽어있는 늑대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이곳은 무덤이었군요.”
홍연은 단번에 눈치챘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산군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늑대의 앞에는 작은 석관 하나가 있었다. 석관을 열자, 안시석 하나와 목갑 하나가 있었다.
목갑을 열어보자 옥빛을 띠는 동그란 선단 하나가 들어있었다.
곧장 청량한 향내가 퍼져나가는 것이 한눈에 상승 선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주백단(玉蛛百團)이군요.”
“옥주백단?”
“예, 추철지주(鰍澈蜘蛛)의 내단을 연화시켜 백 가지 영초와 함께 배합 하여 만든다는 상승 선단이지요. 만들기가 번거로워 손이 많이 가지만 영결에 이르는 데 더없이 좋은 선단입니다.”
옥주단이라면 산군도 들은 바가 있다.
영기가 깃든 연못에만 사는 청추어(淸鰍魚)라는 미꾸라지만 잡아먹는다는 추철지주의 내단으로 만들어, 영결로 오르는 번뇌를 잡아주고 백 가지 영초로 보조해주는 선단.
하지만 추철지주는 청추어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홀로 자생하기 어려워 현재는 찾기 어려운 영충이었다.
청추어는 그나마 영서지수(靈栖池水)라는 영기가 깃든 연못에 살지만, 그마저도 요새는 보기 어려웠기에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는 선단이었다.
-금명지령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사실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일월의 영내산을 지키다 죽기밖에 더 할 테니 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산군에게 이곳을 가르쳐 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월을 벗어나지 못해 복수로 수명이 다할 테니.
산군은 목갑을 공정강에 넣고 안시석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지잉- 소리와 함께 안시석이 빛을 뿜었다.
공동 한쪽에 쏘아진 빛이 글자를 만들자 산군이 말없이 그것을 읽었다.
심드렁하게 읽던 그는 서서히 아미가 좁혀지더니 이내 희색이 돌아 밝아졌다.
-이 늑대는 금명지령이…….
-사모하는 영수였겠지.
“홍연. 저 늑대에 걸려있는 금제가 있나?”
뜬금없는 산군의 물음에 홍연이 자세히 늑대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산군은 고소를 머금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사모했던 영수라 그리 으름장을 났던 거로군.’
어쨌거나 안시석에 적힌 내용은 산군에게 호재였다.
이 늑대는 운령이라는 영수였는데, 인간을 좋아해 둔갑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다 도사 하나와 맺어진 영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수명이라는 제약이 있었다.
도선은 300년을 살지만, 영결이었던 그녀는 천년을 넘게 사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도사는 고민하다 수명을 늘리려 여행을 떠났다. 운령은 그가 꼭 돌아올 것이라 믿어 평생을 기다리다 자신도 수명이 다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금명지령은 그녀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아 갖은 고생을 해 선단을 만들어 줬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고도 취하지 않고 죽었다 한다.
금명지령의 한탄과 절절함이 묻어나는 구절 뒤편에는 그녀가 독창적으로 만들었던 둔갑술의 구결이 있었다.
언젠가 이곳을 찾을 이에게 그녀가 남긴 비운둔갑을 사용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비운둔갑(秘雲屯甲)이라.’
둔갑술은 저보다 높은 수행을 지닌 자에게 들킬 수밖에 없다. 그것을 염려해 독창적으로 만든 둔갑술로 산군에게 꼭 필요한 비술이었다.
산군은 안시석마저 품에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운령이라는 늑대를 바라보던 산군은 일월문에서 헤어진 초아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수명. 수명이라.’
혼아혈은 일반적인 인간보다는 수명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 해도 영수와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현재 산군의 경지로도 900년의 수명이 남아 있었고, 영결, 영명에만 이러도 2500년에 가까운 수명을 얻는다.
영명과 동급 경지인 환선이 된다 해도 인간은 고작 천년을 살지 못하니 두 배가 넘는 수명을 산다 할 수 있었다.
산군은 조금 착잡한 낯으로 운령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출구를 향해 나가려는 찰나.
몸을 엄습하는 기묘한 영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쉭!
순식간에 산군의 신형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