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33)
낭선기환담-432화(433/600)
낭선기환담 – 2부 142화
느닷없이 자신의 손녀가 튀어나오자 제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천범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녀라니.
자신에게 손녀라니!
“네가… 천우의 딸이라고?”
“네…!”
소청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끅끅거리며 소리쳤다.
뭐가 그리 서러운 건지, 아니면 이 극적인 만남에 반가움에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천범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져 소청의 뺨을 어루만졌다.
“네가 정말… 내 손녀란 말이냐.”
소청은 울먹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러자 범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인지는 모른다.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 손녀라 하니 돌연, 미안하고 대견스럽다.
“항상, 항상 생각했어요. 아버지와 조모님께 항상 조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기에 바라고 바랐어요! 한데, 한데 이게 정말로 이루어질 줄이야! 정말로 조부님을 만날 줄이야!”
소청은 어린아이처럼 울다 웃으며 기뻐했다.
“하늘 위의 신선이 되신 조부님을 만나서 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어요.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조모님도 같이 계셨다면 더 없이 좋았을 텐데!”
소청에게는 천범을 만난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었다.
이야기로만 전해듣던 전설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천범을 금환선향에서 만나게 될 줄 어찌 알았을까.
금환선향이 만들어낸 기적.
그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인연이라고 소청은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늙은이가 다 되었구나. 조부님이라….”
조금 어색하기는 하나, 듣기 싫은 울림은 아니다.
갑자기 귀여운 손녀가 생겨 얼떨떨한 마음도 적잖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니 오똑한 코는 요호를 조금 닮은 듯했고, 서글서글한 눈매는 천우를 닮은 듯 했다.
‘웃을 때는 날 닮았군.’
남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자신을 닮은 듯 하다.
“조부라는 호칭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정 없어 보이지 않더냐.”
천범의 위치가 위치이고, 그녀가 평범한 신분이 아니니 저런 표현을 쓰는 것이겠지.
허나 안 그래도 먼 사이인데, 호칭까지 벽을 낀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그럼….”
“할아버지라 불러보거라.”
그러자 소청은 전에 없던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네, 할아버지!”
소청의 해맑은 표정에 천범도 후하게 웃으며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소청은 제 할아버지의 품이 더 없이 넓고 따스해 마치 햇볕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잠시 후.
극적인 상봉을 마친 천범은 손녀와 함께 금환선향의 부유석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손녀의 질문에 성의껏 답변하고, 상계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등선 직후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재미나게 들려주기도 했다.
남장을 푼 소청은 예상보다 더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겉모습은 열여섯밖에 되어 보이지 않아 대하기도 조금 편한 구석이 있었다.
장성한 여인이었다면 아무리 손녀라도 친근하게 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앗, 그럼 할아버지는 수계에서도 유명하신 거예요?”
“당연하지, 네 할애비는 하계에서도 모르는 자가 없지 않더냐. 당연히 상계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지.”
조금의 허세도 떨어보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한데, 소청아.”
“네, 할아버지!”
귀엽게도 답하는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한데, 넌 내가 남긴 보물을 찾으러 왔다 하지 않았느냐.”
“아! 네, 그랬어요!”
“근데 금환선향에는 내가 남긴 보물이 없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보물이 있을 리 없지 않느냐.”
세월이 조금 흘러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다.
천범은 금환선향에서 무언가를 두고 간 기억이 전혀 없다.
“네? 그, 그럼 이건 대체 뭐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오래된 고서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 펼쳐 보자 누군가의 필체로 보이는 글귀와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내 필체랑 비슷하구나.”
“네! 그래서 저희는 이게 할아버지가 남기신 거라고….”
“아니다. 내 필체와 흡사하기는 하다만 난 이런 걸 쓴 기억이 없다.”
기억에 없는 물건이다.
애초에 기억나는 보물도 없고, 금환선향에 묻어둘 이유도 없는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단 말인가.
그리 말하자 소청은 대번에 실망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고생고생하면서 왔는데, 다 헛고생이 되었네요.”
“하하, 삶이 다 그런 것이지. 허나 그 때문에 이 할애비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그렇지 않느냐?”
“그것도 그렇네요?”
기분 좋게 웃는데, 이상하게 소청의 안색에 묘한 근심이 묻어 있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천범이 다시 한번 고서를 살펴보며 글귀를 읽어내렸다.
글귀에는 어느 보물과 그것에 대한 효능을 적어두었는데, 이름은 원천강이었고 이것이 있다면 구륭절맥을 치료할 수 있다 적혀 있었다.
‘원천강…?’
원천강이 나올 줄이야.
원천강은 탐화가 삼켜버린 해룡족의 선조, 지란위가 안배해둔 장소에 있는 선기를 응축시킨 것이다.
‘원천강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내 손에 죽었거늘….’
어찌 이게 자신의 필체로 적어져 손녀에게 가게 되었을까.
“이걸 어디서 얻었느냐.”
물으니 답하기를.
“어머니께서 우연히 백산파 전각을 청소하시다 발견하셨다고 했어요.”
“음… 내게는 며늘아기가 되겠구나. 네 어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겠느냐.”
“네? 물론이죠.”
소청의 어미는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궁비호의 핏줄이었는데, 우연히 천우와 만나 평생가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백산파에서 지내며 천우를 보필하며 소청을 낳았고, 후에는 요호의 며느리로, 천우의 아내로, 소청의 어미로 성품도 나무랄 곳 없는 백산파의 안주인이라고 한다.
“며늘아기를 한 번 보지 못하는 게 참 아쉽구나.”
자신과 악연이 있는 하계의 후계가 나쁜 목적을 지니고 접근한 건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구륭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원천강이라니… 누가 이런 헛소리를 적어놓았는지 모르겠군.”
구륭절맥이란 절맥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계의 수도자가 원천강을 집어 삼키면 그대로 몸이 터져 죽을 텐데 어찌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이 말도 안되는 소리에 소청이 어째서 목숨 걸고 금환선향에 들어왔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구, 구륭절맥의 치료제가 원천강이란 게 아닌 건가요…?”
“그래. 원천강이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수만 년간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거대한 기운을 하계의 수도자가 함부로 취했다가는 특수한 핏줄을 타고난 게 아니라면 소화하지 못하고 몸이 터져 죽겠지.”
그러자 소청의 안색이 파리해지며 고개를 툭 떨군다.
“왜 그러느냐.”
그러더니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전 이제 희망이 없어요, 할아버지.”
“희망이 없다니. 무슨 소리냐.”
“전, 구륭절맥이라는 절맥증을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었거든요….”
“뭐?”
구륭절맥(九隆切脈).
절맥증에 하나로 혈맥에 문제가 있어 기의 순환이 어려워져 젊은 나이에 요절하거나 하는 병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구륭절맥은 혈맥이 어릴 때부터 비대하여 다른 절맥증과는 달리 기의 순환이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이루어진다고 한다.
범인이었다면 노화가 빨리 이루어지거나 했을 테지만 소청은 영수의 핏줄을 지녔다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수도에 중요한 심기체가 균형을 이루지 못해 다음 진수명화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아실 거예요. 영결의 수명이 천오백 년이라는 걸.”
“그래, 알지.”
“하지만 저는 구륭절맥을 앓고 있기에 수명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 앞으로 백 년밖에 더 살지 못하는 거예요….”
소청의 나이가 오백 살 정도라 절맥증을 치료하지 못하면 곧 수명이 다해 죽게 될 운명이었다.
“진수명화하면 되지 않더냐.”
소청은 현재 영결 후경이었고, 작은 기연만 있다면 금세 영명이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의 손녀라면 자질도 나쁘지 않을 터.
허나 천범이 너무 가볍게 말했기 때문일까.
손녀인 소청은 더 울적해져 땅 밑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저는 할아버지처럼 대단한 자질을 지닌 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구륭절맥으로 기의 순환이 남들보다 빠르고 그 때문에 영기를 다루는 법이 서툴러서 어려운걸요….”
그래서 소청에게 원천강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천범의 말에 크게 실망한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아마, 큰 원한을 지닌 놈이 이런 일을 꾸몄을 것 같군.’
소청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것 같다.
백산파에 원한을 지녔다면 대개 마도문의 마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청아, 네게 원한을 품은 자가 있느냐.”
“원한이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천범은 순진한 얼굴을 한 소청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어린 것이 그 치열한 곳에서 잘 살아남을지 모르겠구나.’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바로 수도계가 아니던가.
천우는 아비라는 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지 딸만 덩그러니 금환선향에 보냈는지 참 의문이다.
‘제 누이와는 달리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거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범은 고서에 적힌 약도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소청에게 손목을 내어달라고 하였다.
도사에게 손목을 내어주는 일은 무척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소청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내주었다.
천범은 소청의 맥을 짚어보고 안으로 슬쩍 기운을 흘려넣어봤다.
“흣!”
고통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지만 참아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흠… 이런 식인가.’
기형적으로 혈맥이 넓어서 생기는 병이다.
선천적으로 혈맥이 넓어져서 태어난 것을 대체 어느 약으로 이것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타고나길 그리 타고난 것이니 웬만한 약으로는 치료하지 못하리라.
“어떤 약을 쓴다 해도 네 병을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니 소청의 낯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혹시하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제 할아비가 신선이니 무슨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것이다.
허나 이리 단호하게 말하니 남은 수명이 백 년 남짓이라 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소청아. 그래도 내가 네 할애비인데 손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위인은 아니다.”
“하, 하지만… 할아버지도 어쩌실 수 없다시니 전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걸요. 흑!”
이제는 완전 흐어엉거리며 울기 시작하자 천범이 픽 웃어버렸다.
“하, 할아버지는 손녀가 곧 죽는다는데도 웃음이 나오세요!?”
어이없다는 듯 울먹거리며 말하자 천범이 희희 웃으며 답했다.
“약으로는 치료하지 못한댔지, 다른 것으로는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다. 네 할애비가 신선인데 하계의 병 하나 치료하지 못하겠느냐.”
“네?! 그게 정말이에요?”
“네 할애비를 거짓말쟁이로 몰지 말거라. 손녀에게까지 거짓을 말할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니.”
그리 말한 범은 자기 손목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네가 이제는 내 곁을 떠날 때가 온 것 같구나. 너도 참으로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 했다.”
그러자 범의 손목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피부를 뚫고 금색으로 빛나는 실처럼 긴 벌레가 나타났다.
이 영충의 이름은 장충지태.
하계에서부터 천범의 몸에서 서로 상생하며 살아온 상생영충이었다.
“이게 네 병을 치료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