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34)
낭선기환담-433화(434/600)
낭선기환담 – 2부 143화
오랜 벗이나 다름 없다.
금명지수와 함께 궁비호의 영역인 호위객잔, 그곳의 대장로 요호에게 받았던 것이 바로 장충지태다.
“네 할머니한테 받은 게다.”
“그런 소중한 걸 제가 받아도….”
소청은 감개무량해 했으나 천범은 속으로 쓰게 웃을 뿐이었다.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해봐라 하고 던져준 것이었지.’
천범은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아마 그가 아닌 다른 놈이었으면 죽었을 흉계가 바로 그녀가 내준 장충지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호는 참 앙칼진 구석이 많아 매력적인 여인이다.
한 성깔하기 때문에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참 매서운 부분이 많았다.
‘허나 그 또한 부인의 매력이지.’
부부의 연을 맺은 후에는 그 성격도 많이 죽었다만, 한 번씩 성질부릴 때에는 범이라도 모른척하고 도망갈 정도긴 했다.
“크흠, 본래 하계의 영충이었으나, 내 기운을 많이 받아 영험한 힘을 지니게 되었으니 네가 지닌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구륭절맥이라 하는 것 또한 체질적인 부분일 뿐이니 장충지태가 올바르게 바꾸어 줄 게다.”
몸속에 들어간다면 선충이라도 계면의 압박을 받지는 않을 터.
순식간에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겠으나 차근차근 소청에게 이로운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장충지태를 네 할머니께 보여드리면 아주 좋아라 하실 게다. 자, 이제 몸에 힘을 빼고 있거라. 장충지태를 다루는 비술과 함께 놈을 몸속에 넣어줄 테니.”
“네!”
이내 천범의 몸속에서 나온 금색의 실 같은 장충지태가 뾰족한 머리를 이용해 소청의 몸으로 들어갔다.
소청은 조금 기이한 감각인 듯 아미를 좁혔으나 이내, 몸속을 감도는 신비한 기운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몸속이 간질간질 거리면서 힘이 넘쳐나요!”
손녀가 기운 차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이천 년 넘게 함께한 녀석이라 시원섭섭하기는 했으나, 지금의 범보다는 소청에게 가는 편이 더 낫다.
“다행히 네 아비를 닮아 화신통에 큰 자질이 있어 다행이구나.”
구륭절맥 때문인지 뭔지, 뇌신통에도 뛰어난 재능이 엿보였다.
소청은 이제 근심이 없어졌는지 아이처럼 해맑게 웃다가 돌연 두 손을 모아 불꽃을 피워냈다.
두 손바닥 위에 푸른 화염이 연꽃처럼 피어나 두 팔을 펼치자 푸른 연꽃이 만연했다.
“화신통이 제법이구나.”
“헤헷, 이 푸른 불꽃이 천씨 일가의 자랑인걸요! 할아버지의 화염을 받았다 들어서 더 열심히 수련했어요!”
흐뭇한 미소로 소청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푸른 연꽃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한다.
허나 범이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 연꽃 속에서 금빛이 감돌고 이내 화려한 금빛의 화염이 솟구쳐 금색의 연꽃으로 만연해진다.
천범의 태화만등이었다.
찬란한 금빛의 연꽃이 세상 천지에 가득하여 금빛을 뿌렸다.
이름 없는 부유섬 근처를 지키던 백산파 제자들은 화들짝 놀랐다가 천범이 만들어낸 조화에 빠져들었다.
“우와, 너무 아름다워요….”
소청이 감탄하자 한껏 뿌듯해진 범의 어깨가 치솟았다.
“내 할애비로서 네게 줄 수 있는 게 몇 없구나.”
상계의 보물을 쥐어줘 봤자 소청이 쓰지도 못할 것이니 무소용이다.
천범이 지닌 선초는 약효가 너무 강하거나 하계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았고, 선단 또한 소청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것들이 많다.
하여 줄 수 있는 게 몇 없으니.
“손을 모아 보아라.”
이내 사방에 퍼진 태화만등이 금색의 빛줄기로 천범의 손에 모여든다.
두 손을 모은 소청의 손바닥 위에 천범의 손이 포개어지니.
그 안에 작은 빛이 살랑거렸다.
“할아버지, 이건….”
“본래 봉악청화는 내 것이 아니다.”
그건 봉황의 불.
봉악청화를 집어삼켜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낸 것이 바로 지금의 것.
금천지화다.
“네게는 이게 더 어울리겠더구나.”
본래의 금천지화보다는 반 푼에 반 푼도 안 되는 힘을 지닌 불이다.
진실된 금천지화를 주었다가는 오히려 그 불에 잡아먹힐 테니, 하계에서 천우에게 봉악청화를 내렸던 것처럼 약소한 힘을 주는 것이 낫다.
“그 이후는 너에게 달렸다.”
불을 어찌 키워낼지는 소청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으리라.
소청은 자신의 두 손에 담긴 작은 금색의 불씨를 빨려 들어갈듯 바라보며 미소를 흘렸다.
손녀가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자, 천범은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만하면 줄 건 다 주었다.’
여기서 잠시 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천범은 선살전이 치러지고 있을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물론, 그전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도 있어 해결하고 갈 참이다.
범은 다시 한번 소청이 내준 고서를 펼쳐 약도를 보았다.
“그건 또 왜요?”
“…함정이라면 빠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소청을 해코지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이 약도가 그려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기회가 닿을 때 해결해 주는 것이 좋다.
귀여운 손녀를 위한 일이다.
그 정도는 해결해주고 떠나야 마음 또한 편하지 않겠는가.
“웬 놈들인지 얼굴 한 번 보자꾸나.”
* * *
소청의 고서에 그려진 약도는 어느 부유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널찍한 크기에 한적한 외딴 섬 같은 부유섬에는 여러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초가집이 지어져 있었다.
얼핏 보면 신선이 살 것만 같은 고즈넉함을 지니고 있어 신선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수도자들이 보기에 호기심과 방심을 끌어내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탓.
그리고 그곳에 천범의 손녀.
천소청이 백산파 제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그럼….”
곁의 도사가 묻자 소청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확인해 봐.”
그때였다.
타다다다다다다닥!
돌연 흙바닥 속에서 길게 연결된 쇠사슬이 흙먼지를 만들며 튀어나왔다.
“윽!”
“헛, 아가씨!”
어디선가 흑의인들이 나타나 사슬을 부여잡고 소청과 백산파 제자들을 모조리 꽁꽁 옭아매는 것이 아니던가.
“이게!!”
소청은 잔뜩 화를 내며 쇠사슬을 끊어내려 했지만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컹철컹 기분 나쁘게 울려대는 철성에 귀까지 아파오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 보통 사슬은 아니었다.
“누구냐!”
소청이 외치자 모습을 드러낸 세 명의 인영이 눈에 내비쳤다.
쌍심지를 키던 소청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화들짝 놀랐는데, 낯이 눈에 익은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귀 장로, 그리고 완 장로와 곽 장로가 아니십니까…!”
그들 모두가 백산파 장로직에 앉아 있는 인사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얼굴 가죽을 손으로 잡아 뜯었는데, 그러자 핏기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는 사내였고, 하나는 여인이었으면 중심에 있는 사내는 여인처럼 곱게 생긴 미청년이었다.
소청은 백산파 장로들이 이러한 짓을 벌였다는 생각에 머리에 피가 쏠렸다. 게다가 새하얀 얼굴을 보니 저들은 사술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동안 잘도 우릴 속였구나! 이 귀신놈들이!!”
그들은 귀선들이었다.
“동국에서도 쫓겨난 지 오래인 놈들이 백산파 아래에 숨어들었었다니!”
귀선들은 한때 동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나, 동해 해족과 동국 사이의 영역 다툼으로 밀려나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자들이었다.
“난 수천 년의 원한을 갚을 뿐이다. 네년의 죄가 있다면 그놈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뿐.”
그놈의 핏줄?
“네놈은 우리 천씨 일가와 원한이 있는 놈이로구나!”
“그런 거지. 그러니 너무 억울해 마라. 천씨 성으로 태어나 많은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리지 않았더냐. 어차피 내 손에 그놈의 핏줄 모두 씨를 말릴 것이니 모든 건 늦고 빠르고의 문제이다.”
중심에 선 사내의 음침한 듯한 목소리가 밤하늘처럼 내리깔렸다.
전신에 절로 오한이 들게 하는 음기 가득한 음성이었다.
소청은 저도 모르게 덜컥 겁에 질렸다. 그들의 경지는 못해도 태선.
그중에서도 가운데 있는 자는 지선과 가까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계에서도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의 조모인 요호나 큰조모라 부르는 초아밖에 없으리라.
“귀실, 새파랗게 어리다 해도 이 년은 놈의 핏줄이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어서 없애버립시다.”
“저도 곽 노인네 말에 동감입니다. 그놈의 핏줄이라면 어리다 할지라도 비장의 한수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 방심해서 좋을 게 없어요.”
고작 영결의 경지인 소청을 상대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 조금 기이했다.
“대체 그놈이 누구기에 나와 내 가족들에게 해코지한단 말입니까!”
소청이 억울한듯 호소하자 세 명의 인물들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당연히 우릴 이 꼴로 만든 백산파 시조, 천범이 아니겠느냐!”
그들이 겉옷을 조금 들추자 안에는 썩은 살점과 훤히 보이는 누런 뼈들이 한눈에 보였다. 귀선의 말로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삶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모습이었다.
“내 한을 네년은 모를 게다! 이천 년이 넘도록 쌓아진 이 한을 풀려면 놈의 핏줄을 모조리 죽여 그 피로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야만 비로소!”
미련 없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
“어린 것아, 너무 걱정 마라. 어차피 네 가족들 모두 네가 떠난 길을 곧 뒤따라 갈 것이다. 그 시작을 네가 끊는 것이니 영광으로 알고 죽어라.”
귀실이라 불린 사내가 품에서 뼈로 깎은 듯한 단도를 꺼낸다.
소름끼치는 사기가 잔뜩 담겨 있는 한이 서린 듯한 단도였다.
“내 지난 원한을 모으고 모아 만든 골망도이다. 이 단도에 찔려 죽으면 그 혼은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이 안에서 고통 받게 되겠지. 지금은 네년 혼자일 테지만 곧 외롭지 않게 될 것이다. 놈의 핏줄을 편히 죽게 둘 수는 없지! 크하하하!!”
한껏 광소한 귀실은 천의 미주를 마신 듯 흥분되는 얼굴로 골망도를 소청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푹.
“어…?”
허나 그때였다.
후우우웅.
돌연 사방에 금빛 기류가 나타났다.
“이, 이게! 이게 왜!! 뭐야 이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골망도로 소청의 가슴을 찌르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소청은 그를 한껏 비웃었다.
“왜 웃느냐! 웃지 마라 건방진 년!!”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슨 수천 년의 한을 갚는단 건지.”
그때 소청의 입에서 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귀실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왜냐면 소청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똑똑히 기억할 정도로 매우.
매우, 재수 없는 목소리였다.
“네놈, 설마…!”
소청의 입가가 뒤틀린다.
그리고 모습이 뒤바뀐다.
소청의 붉은 눈은 금색으로 바뀌었으며 귀여운 얼굴은 날카롭게 변해 듬직한 사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때 죽었겠거니 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을 줄은 몰랐군. 분명 그때 다른 태선들에 의해 몸이 갈가리 찢겼다 들었는데 말이지.”
귀실귀주.
“동국에서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이야… 하마터면 내 소중한 손녀를 잃을 뻔 했어. 네놈은 예나 지금이나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군.”
참으로 악질이야.
그는 천범이 동국에 잠시 있었을 적, 금은자매를 농락했던 야천귀문의 문주. 귀실귀주였다.
“천범 네 이노오오옴!!”
허나 금색의 기운에 의해 귀실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오, 아주 좋은 물건이군. 오랜 세월 한을 서려 만들었다지? 내가 한 번 써 봐도 되겠나?”
“뭣….”
천범은 귀실의 손아귀에서 골망도를 빼내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주는 좋군. 꺼리침한 느낌이 드는 게 네놈과 딱이야.”
소름끼치는 게 딱 귀선이 만들법한 물건이었다.
천범은 골망도를 손에 쥐고 꼼짝 못하는 귀실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푹.
“컥…!”
“그 안에서 편히 쉬시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