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44)
낭선기환담-443화(444/600)
낭선기환담 – 2부 153화
쿠구구구구구.
공주의 권풍에 박살난 기암괴석이 무너져 내린다.
간발의 차로 피한 천범은 헛웃음을 흘렸다. 균천오광을 뿜어내는 권풍은 확실히 천범의 것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등 뒤에 만다라가 피어나 오행극산이 떠오르기까지.
저것들은 명실상부 범의 신통들이요, 보물들이었다.
쌍멸과 영화비는 물론, 오행육십사괘신까지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어찌 부정하랴.
“이 정도의 힘이라니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향선이… 향선이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 거죠?”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는 듯 말하며 공주는 손을 슬며시 벌려 화구를 띄워 올렸다.
금색의 작은 화신통.
그것은 점점 크기를 키웠고 이내 태양처럼 거대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보랏빛 어둑한 하늘을 밝히는 찬란한 태양. 태천외양신공이었다.
“확실히 몸이 바뀌긴 했나.”
천범은 여인으로 변모한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워 저도 모르게 계속 주무르게 되는 몸이다.
“어딜 계속 주무르는 거예요!”
화들짝 놀란 화양 공주가 태천외양신공의 태양을 날려 보내자, 천범은 슬쩍 축지하여 피해냈다.
‘이 몸뚱이로는 어찌 못하겠군.’
태천외양신공의 구결을 알고 있다 한들, 사기가 흐르는 도깨비의 몸으로는 어찌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화기가 하나 서려 있지 않아 더더욱 어렵다.
설마하니 몸을 바꿔 버릴 줄이야.
이 상황을 어찌 타계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에 반해 공주는 신이 난 듯 천범의 보물과 신통을 이용해 공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죽이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마치 놀고 있는 듯한 수준이기는 했다.
허나 천범의 신통이요 힘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천범은 그녀의 장난질에 식겁하고 달아나야 했다.
그녀는 시험해볼 요량으로 쌍멸을 내던지고, 뇌신을 다루었으며 태천외양신공은 물론, 균천보화에 태화만등까지 사용해보더니 신이 난 듯 더 마음껏 써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죽을 맛인 것은 천범이었다.
그래도 같은 향선은 향선이라, 기본적인 신통을 사용해보기는 했으나 그녀는 약해도 너무 나약했다.
강체는 상선 수준이었고, 주신통은 금신통인데 반해, 딱히 이렇다 할 보물이나 강력한 선술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몸을 바꾸는 신통을….’
쓰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단신으로 만각정에 들어올 만한 힘을 지니셨습니다. 이 정도라면 저라도 그런 포부를 보였을 거예요.”
허나 지금은 아니라는 듯 말한다.
“힘없고 나약한 몸이 되어 보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당신은 항상 강자의 입장에 처해 있으셨겠죠. 이 신체의 나이를 보니….”
그녀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만 년도 되지 않았네요. 해봤자 삼, 사천 년 정도?”
저런 거까지 알 수 있는가 보다.
공주는 정말 깜짝 놀랐다는 듯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날 때부터 강했을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극히 뛰어난 자질로 순식간에 여러 신공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겠죠. 그리고 지금의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었을 테니 약자의 심정은 한 번도 헤아려 보신 적 없겠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약자의 마음을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약자가 한다면 만용인 것을 강자가 하면 관용이라고 한다죠.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한 번 배워보심이 어떨까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자 하니, 반문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그런 힘을 얻기까지 자신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어떠한 죽음을 피해왔는지도 모르면서.
저 힘을 갖게 되기까지 무엇을 희생하였는지도 알지 모르면서 감히. 감히, 그들의 희생과 죽음을 단순한 자질로 유무로 치부한단 말이던가.
범이 주먹을 꽈악 말아 쥔다.
“그 말을 하면 아니 되었습니다.”
“네?”
“날 위해 스러져간 이들의 희생이 어떠한지도 모르면서, 내가 그 힘을 지니게 될 때까지 어떤 고통과 죽음을 견뎌냈는지도 모르면서 세상 다 안다는 듯 말해서는.”
쿠웅!
후와아아아아!!
거친 바람이 분다.
연약하디 연약한 여인의 몸에서.
흑풍이 몰아친다.
‘뭐….’
화양은 저도 모르게 전신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지금의 자신은 엄청난 육체와 신통을 지녔는데도 저 모든 걸 잠식시킬 듯 퍼져 나오는 살기에 어쩌지 못한다.
‘무슨 살기가….’
구구구구구구구구구.
천지가 떨려온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옅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천살기….”
공주는 기함했다.
이 정도로 엄청난 살기라면 하나밖에 없다.
살겁을 헤쳐 나온 자만이 내뿜을 수 있다는 천살의 기운.
바로 천살기였다.
‘살겁을 받았다고!?’
겨우 삼천 년이 조금 넘게 살아온 자가 어떻게 살겁을 받고 그것을 이겨 냈다는 것일까.
사계의 공주로 자리한 세월이 그리 길지 않다지만 화양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듯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저런 살기를 내뿜는 자는 처음이었다.
분명 자신의 몸이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
허나 그것에서 뿜어지는 기백과 살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공주는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몸을 필사적으로 주물렀다.
“사, 살기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금의 절 이기는 건 불가능해요!”
필사적으로 외쳐댄 말에도 천범은 아랑곳 않고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겼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에 화양은 더 없는 공포를 느꼈다.
자신이 두려워 할 것은 하나 없다.
하지만 두려웠다.
자신의 모습을 한 저 사내가.
저 사내의 발걸음이 한없이 두려워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자꾸만 자신이 죽는 환상만이 언뜻 언뜻 머릿속을 지배했다.
뱃가죽을 뚫리고, 머리가 잘리는가 하면 어떻게든 잔혹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절대 그럴 리 없는데도 그녀의 속에 숨어든 공포는 물 먹은 모닥불의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워냈다.
우뚝.
그때였다.
돌연 천범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속을 읽을 수가 없는 공주는 왜 저러는가 하고 바라만 봤는데, 돌연 범은 비소를 흘렸다.
“뭐가 그렇게 우습죠?”
잔뜩 겁을 집어 먹었던 공주는 괜히 찔렸는지 앙칼지게 소리쳤다.
“단순한 걸 생각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죠?”
“정말로 몸이 바뀌었다면, 가만히 있을 여인이 아니거든.”
저 여자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건지 모를 그때.
“뭘 하나 했더니 여기서 다른 여자랑 밀회를 즐기시고 있었습니까?”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를 내뱉는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터라 화양 공주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평범하게 외도하는 건 질리셨나 봅니다. 별 이상한 공간에서 서로 몸 바꾸고 뭘 하시는 겁니까?”
여인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말투가 조금 신랄했다.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지.’
허나 그녀의 등장은 화양 공주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천범은 화란의 등장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참 재미난 신통이다. 서로의 몸을 뒤바꾸어 힘의 저울을 뒤튼다는 발상은 나도 하지 못했으니까. 허나 네 환술이 완벽하지는 않더군. 적어도 내게는 말이야.”
쩌적.
쩌저적.
삭막한 풍경이 유리 조각처럼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정말로 몸을 빼앗겼다면 반서를 해야 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화란은 약과다.
천범의 손목에는 탐화가 오룡 모습의 팔찌가 되어 있었고, 쌍멸에 스며든 불천불벽도 있다.
정말로 몸이 뒤바뀌었다면 그들이 진작에 날뛰었어야 마땅하다.
허나 그런 기색은 일절 없었고, 그녀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천범의 신통을 써대고 있었다.
애초에 말이 되질 않았다.
태천외양신공은 사용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화신통 최고조에 이른 신공이다.
천범의 몸을 얻었다 한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신공이 아니다.
균천보화 또한 마찬가지.
화란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의 동의 없이는 사용치 못하고 불천불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만 힘 조절에 실패하면 제 맘대로 날뛰는 뇌신인데 그것을 한 번에 파악해 다룬다?
평범한 범인이 난생 처음 본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밀어 놓고 먹지 말라고 명하는 것과 같은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
‘백 번 양보해서 가능했다 해도….’
화란과 탐화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 가능했어도 그녀들은 무언가로 억압된 것이 아니다.
자유 의지를 지니었고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이들인데, 천범도 아닌 것에 힘을 빌려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뭘까.
정말로 몸이 바뀐 것일까?
아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천범도 심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범은 살기를 거두어들이고 말했다.
“놀랐습니다. 설마 저한테 환술을 썼을 줄이야.”
쩌저저저적!!
콰창!!
부서져 내린 풍경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니.
천범은 아까 정자에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였고, 눈앞에는 여전히 화양 공주가 마주 앉아 있었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은.
공주의 곁에 화란과 탐화가 그녀의 목을 노리는 채였다는 것뿐이다.
“제가 실수했네요. 설마 검령을 지니고 계셨을 줄이야.”
그녀는 천범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환술을 쓴 것이다.
환계와 환술에 관해서라면 천범도 어디 가서 빠지질 않는데 그를 속일 정도였으니 그녀의 솜씨에는 과연 혀를 내두를 정도이리라.
‘이 정도 환술은 충계의 금박지주 이후로는 처음이군.’
아마도 그녀는 대단한 수준의 환술사이리라.
만일 그에게 화란과 탐화가 있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천범이라 해도 꼼짝 없이 당했으리라.
‘살기로 겁주는 것 정도는 금세 이겨 냈을 테니….’
게다가 환술을 환술이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을 깨는 법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허나 알다시피 이곳은 결계로 가리어져 있지 않았던가.
천범은 이번 일을 가슴 깊이 새기며 다음 번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수행해야겠다 생각했다.
“대강 끝난 것 같군.”
결계 바깥에는 만각정의 병사들이 어느새 사방에 깔려 있었다.
향선도 몇 보였지만 천범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리라.
“제가 살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웬만하면 살생은 피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여… 공주의 목을 취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공주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화란의 검이 그녀의 목을 짓누르자 이내 답했다.
“만각변왕의 여식인 절 박대해서 좋을 것이 없을 겁니다.”
“나도 박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괜한 원한을 만들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만각변왕의 여식을 죽인다면 필시 그와 척을 지게 될 터.
괜히 그런 강자와 일부러 척을 질 필요는 없다.
받을 것만 받고 가면 된다.
“원하는 게 무어라 하셨죠.”
“벗.”
그뿐.
사하만 찾고 나면 이곳에 다신 올 일 따위는 없다.
“좋아요. 하지만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화양 공주는 앞서 보였던 흥미로운 눈빛과 미소를 보였다.
담이 큰 것인지 무엇인지,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도 저리 웃는다.
그 모습이 쓸데없이 어여뻐 그는 괜히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청을 하려는지 몰라도 이런 소란을 떨었으니 내줄 수 있는 대가라면 내주고 청산하는 게 낫다.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그러자 화양 공주는 자신이 줄곧 쓰고 있던 철가면에 손을 가져갔다.
철컥, 이내 그것을 벗더니 탁자에 내려놓았다.
반은 금발이요, 반은 은발인 오묘한 머리색을 지닌 여인이다.
금과 은이 뒤섞인 듯한 머리색이며 눈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가히 그가 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었다.
“저와 혼인해 주셔야겠습니다.”
“예…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