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46)
낭선기환담-445화(446/600)
낭선기환담 – 2부 155화
“공주가 이렇게 만든 겁니까.”
“예. 제가 그랬습니다. 이곳은 재능 있는 수선들을 모아 조각상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제가 금신통에 조금 조예가 있고, 아버님이 조금 도와주셔서 제 뜻을 펼치게 해 주었죠.”
드르륵 쿵!
석벽이 단단히 닫혔다.
순식간에 공동은 어두워졌으나 어둡기에 보이는 것도 있었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이 회전하며 뿌려대는 가루. 이름 모를 가르는 백색으로 밝게 빛났다.
“형무형유생(形無形有生). 우리의 형태는 무로 돌아가고, 돌아간 형태는 다시 유가 되어 새 생명을 받는다. 윤회의 굴레와도 마치 흡사하지요. 저는 이 진법이 좋아요.”
자세히 살피니 본래 인간의 형태가 조각이 되고 조각상의 형태가 점점 변모하여 검이나 다른 물건들로 변하는 듯 했다.
형무형유생.
이 특이한 이름의 진법은.
“수선의 형태를 무로 되돌려 다시금 법기로 만드는 진법이군요.”
한 눈에 파악하자 화양 공주는 놀랍다는 듯, 그리고 기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러 결점들은 보완되어 갈 테니 미래가 밝은 진법입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세상에 흔치 않은 연자보와 많은 보물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요.”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획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진법이다.
진법에 다소 조예가 있는 천범이 보아도 훌륭한 것이었다.
단령금정으로 보아도 현묘한 묘리가 녹아있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언뜻 언뜻 보였다.
앞으로 천 년.
만 년 후에 이 진법은 더욱더 보완되어 강력한 보물들이 많이 탄생되지 않겠는가.
‘재료는 충분할 테니.’
선살전으로 형무형유생의 재료가 될 수선들을 충당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은 문제다.
더군다나 만각변왕의 여식인 화양 공주라면 더더욱.
“재료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어떤 보물이 만들어질지는 모르죠. 그래서 더 기대되고 두근거린답니다.”
그럴 것이다.
완성되어 있는 법기를 살피니 확실히 진품 연자보보다는 못하는 기운이지만 보통의 법기보다는 확연히 나은 힘을 지녔다.
이런 진법을 창안해 냈다면 만각변왕이 아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선을 갈아 넣어 법기를 만든다거나 하는 건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수선 자체를 갈아 신선주를 만드는 붕계와 사계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니 말이다.
허나 수선으로 하여금 시간을 들여 연자보를 만드는 건 처음 보았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수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진법은 말이다.
“제게 이걸 보여준 이유는….”
만각정 내부에서도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공주와 만각변왕 정도일 터.
이것을 천범에게 보여줬다는 소리는 둘 중 하나.
“물론 선사 또한 제 진법에 녹아들어 연자보가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당신처럼 강한 분이라면 더욱 강력한 법기가 되시겠죠.”
라고 했으나 범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러자 민망한지 머리카락을 베베 꼬우며 딴청 피운다.
귀여운 구석이 조금 있다.
“안 속으시네요.”
“속을 리가, 여기 있는 보물들과 진법을 내가 다 부숴버린다면 손해인 것은 바로 공주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농이 통하겠습니까.”
“흥, 매정하기도 하셔라.”
범은 사하의 조각상 앞에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벗이라기에 사내인줄 알았더니 여인이네요. 부인이십니까?”
“부인이었다면 벗이라고 하지 않았겠지요.”
“남녀 사이에 싹튼 우정인가요?”
비웃는 듯한 태도였으나 범은 가볍게 무시하고 되물었다.
“돌려주시죠.”
진법으로 조각상이 된 것은 알았다.
그녀가 이리 된 원인 또한, 임무 중에 어찌저찌 잡힌 것일 터.
상황이 어찌되었든 사하를 찾았으니 되었다.
이제 그녀를 데리고 나가기만하면 되는 일이니.
“이미 늦었다 하면 어쩌실 겁니까?”
“되돌리는 법도 있을 텐데.”
“있을까요? 글쎄요. 모르겠는데….”
그녀의 대답으로 한 번에 입장이 바뀌었다.
“만경고가 다 박살이 나야 내 벗을 다시 원 상태로 만들어줄 거요?”
“흠….”
고개를 갸웃하며 유심히 천범을 바라보는 화양 공주는 어두운 곳에서 보아도 참 아름다웠다.
금빛과 은빛이 어우러진 머리칼이 고개를 기울이니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린다.
장난꾸러기처럼 얄궂은 표정을 지으니 괜시리 긴장이 풀어진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이 여인, 기억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들어온 수계의 수선이죠. 형무형유생을 위해 되도록 많고 다양한 재료들을 모집 중이었거든요. 아마 효구가 쪽에서 쓰러져 있던 수선이라 그대로 내버려둬도 죽을 거라 데려왔던 걸로 기억하네요.”
“내가 듣고픈 건 그게 아닙니다.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까?”
“글쎄요. 그건 유 선사께서 어찌하시냐에 따라 달려있지 않을까요.”
범은 고개를 주억였다.
“제가 여길 다 깨부수면 되겠군요.”
“폭력적이긴… 다 알면서 괜히 그러시는 거죠? 힘만 써대는 사내는 여인들이 멀리하는 법이에요.”
“미안하게도 여복은 타고나서 그런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에요?”
“뭐가 말입니까.”
“아니에요.”
공주는 왜 그리 아니꼽냐 말하려 다 그만 뒀다.
“저는 할 만큼 다 이야기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저 같은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건데 선사께서도 큰 복 아닌가요?”
“그걸 보통 자기 입으로 말하나?”
“하지만 제가 아름다운 건 맞잖아요? 맞는 걸 아니라 할 수는 없죠.”
“원래 그런 성격입니까?”
“뭐가요?”
“아니, 아니요.”
공주는 한껏 턱을 치켜들었으나 이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범 또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전 저를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을 원해요. 저도 신경 쓰이지 않는 부인이 될 수 있고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관계, 좋잖아요?”
“혼례만 치르면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녀가 원하는 것은 보여주기 식 거짓 혼례.
혼례 후에는 무엇을 하든 상관치 않고 어디를 가도 관여치 않는다.
솔직히 말해 나쁠 것 없었다.
오히려 장점도 많았다.
만각변왕과 연결점이 생기는 것이고, 원선태사와 안면을 익힐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계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만각변왕의 사위가 된다면 웬만한 일 아니고서는 천범을 공격할 자도 없다.
같은 원선을 제외하고 말이다.
‘장점과 단점이 너무 명확하네.’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하를 살리려거든 이 혼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했으니.
“그렇게 합시다.”
“현명한 선택이에요.”
* * *
한 달 뒤.
깨어난 사하는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오, 일어나셨다.”
“누구냐.”
살벌하게 경계하는 태도와 눈빛이 확실히 남달랐다.
‘전장에서 오래 구른 느낌이랄까.’
사비는 내심 멋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문무관장께서 저와 후해 오라버니를 상서로 데려왔을 때….”
사실 운적 사건 때 보았지만, 사비는 굳이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아, 기억난다. 사비구나… 한데 여기는 어디니?”
“여기는 만각정입니다.”
“만각정?”
“기억이 전혀 없으십니까? 듣기로는 효구가에서 쓰러져 있는 걸 만각정 귀선이 데려왔다 들었습니다. 그걸 문무관장께서 구하셨고요.”
“문무관장이라면… 범이가? 범이가 지금 여기 있다고?”
“예.”
범이 있다는 소리에 침소에서 일어나려 한다.
허나 퍽 오랜 시간 형무형유생의 진법에 노출되어 있던 몸이라 거동이 쉽지 않았다.
팔다리가 아직 뻣뻣했다.
그제야 사하는 이곳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렴풋이 기억나기를 점혈을 당해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한참을 서 있다 잠들어버렸다.
“윽.”
“괜찮으세요?”
“범은… 범은 어디 있니?”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번에도 자신을 구한 것이 그라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자신에게 소식 한 통 보내지 않는 그가 원망스럽고 미웠으나, 그럼에도 꿋꿋하게 공사다망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름이 널리 퍼지면 자연히 그가 찾아올 테니까.
허나 아직도 자신은 부족하여 생사를 건넜고, 그 어두운 길에서 꺼내어 준 게 범이라 하니 참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보고 싶었다.
벌써 천 년이 넘게 보지 못한 그다.
뻣뻣해진 몸뚱이를 어떻게든 일으키니 사비가 곁에서 그녀를 부축한다.
타닥, 타다다다닥!!
돌연 바깥에서 폭죽소리가 들린다.
“아, 이제 시작하나 보네.”
“뭘 시작하는데?”
“보시면 알 거예요. 어이가 없어서… 참나.”
어처구니없다는 듯 툴툴거린다.
도통 영문을 몰라 의문을 표했으나 보면 알 거라는 의미모를 말만 한다.
그녀의 부축에 따라 바깥으로 나가 보니 사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치켜떠졌다.
“무슨 축제라도 있는 거야?”
만각정은 인파로 시끌벅적하고 여기저기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귀선들은 줄지어 한보따리씩 무언가를 꽁꽁 싸매고 가져오고 있었고, 건물 내부는 휘황찬란한 보물들이 담벼락처럼 이어져 있다.
식탁에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들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고, 어디서 가져온 건지 집채만 한 술독을 가져와 술을 나누고 있다.
무슨 축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저런 기분 좋은 시끌벅적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 깨어나셨습니까?”
음식을 집어 먹고 있던 후해가 사하와 사비를 알아보고 한걸음에 달려와 인사했다.
“이야, 이런 진귀한 풍경을 수계의 수선이 보기는 어렵죠. 설마하니 사계의 화양 공주와 대부님께서 혼인하게 되실지 누가 알았답니까.”
세상 일 참 모르는 거라며 껄껄 웃으며 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마신다.
“캬, 술맛 좋고.”
후해의 말에도 사하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화양 공주는 만각정의 주인인 만각변왕의 여식이랍니다. 그리고 대부는 문무관장을 말하는 거고요.”
사비가 곁들이는 설명에도 사하는 멍한 얼굴을 했다.
화양 공주가 만각정의 주인인 만각변왕의 여식인 것은 알았다.
후해가 대부라 부르는 것이 천범인 것도 이해했다.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근데 혼인이라니?
난데없이 혼인이라니? 대체 왜?
갑자기 왜?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이 서로 나오려다 뭉쳤는지 가슴 언저리가 답답했다.
“화양 공주와 범이 혼인한다고?”
“예, 그렇다니까요? 언제 또 그렇게 눈이 맞았는지 원, 저희 대부님도 참 능력도 좋으십니다. 흐하하하!”
천범이 혼인을 한다?
그것도 사계의 공주와?
‘그럼 나는?’
그때였다.
[지금부터, 화양 공주님과 그 부마 되시는 유정님의 혼례를 시작하겠습니다! 하객 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하여 주십시오!]“시작하려나보다. 저희도 가서 앉죠. 전쟁으로 한창인데 여기서는 혼례라니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잖아요?”
후해는 순식간에 달려가 한 자리를 차지하며 오라 손짓했고, 사하는 허망한 눈빛으로 사비에게 끌려가듯 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의 주인공이 입장했다.
[신랑 신부는 입장해 주십시오!]치장된 단상 위에 오늘의 신랑과 신부가 나타났다.
신부와 신랑은 붉은 혼례복을 입고 나타났다.
신부는 이마에 뿔이 돋아나 있는 도깨비의 모습인 화양 공주였다.
가면도 쓰지 않은 모습이라 그녀의 모습에 하객들은 연신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금빛과 은빛이 어우러진 머리칼과 기품 있어 보이면서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용모는 절로 감탄이 서리는 미녀 중의 절세미녀였다.
눈가에 붉은 분으로 치장하여 한껏 신비로운 분위기를 주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편에 있는 신랑의 모습 또한 찬란히 빛났다.
“캬, 선남선녀네.”
절로 감탄이 나오는 두 사람이었다.
잘 어울리는 한 쌍.
하객들 입에서 침이 마를 정도로 연신 칭찬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크… 만각변왕님이 이 모습을 보지 못하시는 게 아쉽구만 그래.”
“그러게 말일세… 크아, 공주님이 참으로 곱다 고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모두들 축하하며 미소 지었다.
단 한 명만 빼고.
“….”
오직 사하만이 멍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다 픽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