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5)
낭선기환담-44화(45/600)
낭선기환담 – 44화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거짓 없이 말한다면 살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나 또한 영수니까.”
“뭣? 당신이 영수란 말이오?”
“그래. 다짜고짜 공격하기에 말할 새도 없었다.”
자신을 영수라 밝힌 것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첫째는 그리 말해야 친밀감을 형성해 괜한 수작을 부릴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그래야 거짓 없이 이야기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넓고 신통은 바다와 같은 법.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내 신통이 미천하여 그대가 영수임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으니 전적으로 내 잘못이오.”
산군은 속으로 냉소하며 물었다.
이곳에 어찌 들어오게 된 것이냐부터, 누구와 들어왔고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까지.
조금 의아한 것은 화란과 상의하고 나서야 만족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이, 이제 궁금증은 모두 풀리었소?”
“그래.”
산군은 그리 말하며 구환도를 치켜 들었다.
“사, 살려준다 하지 않았소! 우리는 같은 영수니 싸울 이유가 없단 말이오!”
대경실색하여 낯빛이 하얗게 변하자 산군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죽이지 않을 이유도 없지.”
서걱!
머리가 잘린 요수는 부들부들 사지를 떨다 절명했다.
하지만 산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구환도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곧장 시꺼먼 귀무가 터져 나왔다.
그때, 놈의 머리에서 흰빛이 뛰쳐나왔는데 죽은 요수와 똑 닮은 모습의 영각이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귀무를 조종하자 귀신들이 튀어나와 단번에 놈의 영각을 물어뜯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후- 좋네.”
이전과 달리 완전한 보구가 된 구환도는 귀무를 생성하는 것은 물론, 그 속에 담긴 귀신들마저 완벽히 조종할 수 있게 됐다.
귀무에 담겨 있던 독들도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귀신들의 흉흉함도 강고해졌고…….’
구환도에 담긴 귀무에 귀신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구환도 또한 강력해질 테니 놈을 살려줄 이유가 없었다.
“아주 좋아.”
산군은 구환도를 한 번 쓰다듬고는 놈의 몸에서 내단을 빼내 갈무리했다.
그 후, 신목 앞으로 다가갔다.
-산군 저희의 예상이 들어맞아 버렸습니다.
-그래……. 역시 영명의 영수가 이곳에 있구나.
그들이 예상한 대로 이곳에 도망쳐 온 영수 중에는 영명에 이른 영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이곳에 들어와 버린 이상, 마주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홍연이 자신을 도와주길 기대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그녀라도 이 환진 속에서 산군을 찾는 건 힘들다.
그러니 산군은 자신의 힘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놈에게 들은 정보가 있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겠지.
놈들은 총 다섯이었는데 한 놈은 영명이고 다른 놈들은 전부 영결이었다.
그들은 도사들을 뿌리치며 도망 다니다 얼떨결에 이곳까지 당도해 환진에 갇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후, 어쩌다 보니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여기저기 방황하다 항보신목을 발견해 이것을 가져가려 했다.
여기까지가 놈이 털어낸 이야기.
-놈이 목 속성의 신통을 지녔기에 신목을 온전히 옮길 비술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신목은 섣부르게 뽑거나 잘라냈다가는 크게 상하거나 곧바로 죽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고계 선사도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한데 이놈은 목 속성 통술에 정통해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기연이라면 기연이었다.
“덕분에 신목을 얻게 됐구나.”
미소 지으며 신목 앞에서 합장하며 놈이 알려준 구결을 읊었다.
그리고 놈의 품에서 찾아낸 작은 구슬 하나를 허공에 띄웠다.
잠시 후.
그는 옥빛으로 만연한 구슬 하나를 품에 넣으며 환진 속으로 걸어 나갔다.
* * *
금은 자매의 얼굴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져 곧 죽을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들의 입술 또한 생기를 잃어 갈라지고 피가 묻어 있었다.
두세 번 정도 더 피를 뽑았다가는 생명을 잃을 것이 자명했다.
“어서 피를 뿜지 않고 무엇 하느냐!”
거친 숨을 토하며 골골대니 한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노호성을 뱉었다.
그들의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한수 일행 또한 산군과 마찬가지로 요수를 만나 격전을 치렀기에 더욱 그랬다.
삼통의 요수 하나와 도선 여덟.
겨우겨우 죽이긴 했다.
하지만 같이 행동하던 도선 셋이 요수에게 명을 달리했고, 그 때문에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삼통의 요수였기에 사망자가 나온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천요동에 뜬금없이 요수가 튀어나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수월문이 관리하고 있는 천요동에 삼통의 요수가 튀어나오자 다른 도선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천요동에 요수가 숨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은 물론 한수가 숨긴 사실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은연중 알아차렸다.
당연히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자 한수는 도리어 애꿎은 금은 자매를 타박했다.
“아니면 아까 전처럼 요수가 튀어나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냐? 혹 요수들과 내통이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릴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동료를 잃은 분노가 요수의 피를 가지고 있는 금은 자매에게 쏠렸다.
아이러니한 일이기 그지없다.
도를 닦는 도사들이라 할지라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에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월문이라는 뒷배를 가지고 있는 한수에게 어찌 그럴까.
자연스레 그들의 분노가 금은 자매에게 쏠린 것이었다.
금매와 은매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으나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도선의 원망과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환진을 헤쳐 나갔다.
셋이 죽어 총 다섯의 일행들이 길을 나아가길 한 시진.
“자, 잠시! 이곳 좀 보시오!”
“그것이 뭔데 그러시오.”
“하! 찾았소! 찾았단 말이오!!”
뜬금없이 한수가 벽면에 튀어나온 풀떼기 하나를 보며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 게 아닌가.
도선들은 저것이 대체 뭐기에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내 미리 말하지 않은 것 때문에 내게 적잖이 실망한 것을 알고 있소. 요수가 천요동에 숨어들었고 그 사실을 숨긴 점은……. 솔직히 어쩔 수 없었소. 삼통의 요수가 있다 하면 그대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오.”
당연했다.
삼통 요수는 도선들이 당해내기 어려운 요수니 미리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점은 정중히 사과하겠소 미안하오.”
한수는 그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러자 도선들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사과를 받았다. 뜬금없이 이 시점에 사실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요수는 총 다섯이 들어왔으나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소. 이것을 찾았기 때문이지!”
한수는 또다시 벽면에 있는 풀을 보며 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부님이 내게 혹 기회가 되면 망랑초(望朗草)를 찾아보라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것이오! 망랑초는 제 사부가 주로 사용하는 통술의 일환으로 표식을 남겨둔 것이란 말이오!”
“그럼 그곳이…….”
“그렇소! 이곳은 사부님이 과거에 모종의 일로 친우분이 명을 달리해 이곳에 못자리를 만들어 숨겨두셨는데, 친우분이 사용하시던 보물들도 함께 놓으셨다 하셨소. 혹 찾을 수 있으면 제게 양도하겠다 하셨는데 설마 정말로 찾게 될 줄이야…!”
한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다른 도선들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찾는 게 이것 아니오?”
“맞소!”
돌무더기를 파헤치자 벽면에 작은 홈이 오각형으로 파여져 있었다.
한수가 크게 기뻐하며 품에서 영패 하나를 꺼냈다. 그 홈에 맞추자 딱 맞아 떨어지며 쿠구궁! 동굴이 진동 하기 시작했다.
“오오.”
벽면이 기아학적인 무늬의 빛이 생겨나며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만연했다.
그 이후, 벽면이 쩍! 반으로 갈라졌다.
그곳에는 커다란 관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약병 3개와 붉은 염주, 자색 호리병, 고급스러운 붓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약병은…….”
한수가 약병 하나를 열어보자 톡 쏘는 악취가 느껴졌다.
그가 잠시 멈칫하고 생각하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인상을 피고 설명하자 모두 경탄했다.
“이게 정녕 추령주(醜領紬)란 말이오?”
“그렇소! 이것을 잘 제련해 취한다면 만독불침이 된다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다, 다른 것은 어떻소? 전부 추령주란 말이오?”
한수가 다음 약병을 열어 코 밑에 가져다 댔다. 그 이후, 마지막 약병도 냄새를 맡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령주는 하나이고, 나머지 둘은 제가 알지 못하는 단약인 듯합니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같은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선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자 도선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보물은 총 여섯.
금은 자매를 제외한다면 다섯이니 하나씩 나누어 가져도 한 가지가 남게 되는 것이다.
“큼, 저는 이 추령주가 담긴 약병과 붓을 가지지요. 한 모가 두 가지를 가져도 이의가 있는 분은 설마 계시지 않겠지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한수의 말에 다른 도선들은 침음을 삼켰다.
여기까지 모두를 이끌고 온 것은 분명 한수이고, 금은 자매를 데려온 것도, 이 밀실을 언질 받은 것도 모두 한수인데 어찌 그럴까.
요수가 있다는 것을 숨겨 도선 셋을 죽게 했다지만 여기 있는 보구들과 약병은 그것을 덮고도 남는 보물들이었다. 제 동문들과 보물을 저울질하여 보물에 더 무게가 기운 것이었다.
모두가 침묵하자 한수가 취령주와 붓을 품에 챙기고는 물러났다.
이제 네 명의 도선이 서로를 바라보며 하나씩 선택해야 할 때였다.
* * *
도사들이 보물을 두고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산군은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간 평안하게 지낸 업인가 보구나.
-……농을 하고 계실 때가 아닌 듯 싶습니다.
산군의 앞에는 여덟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있었다.
전체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관자놀이까지 침범한 놈의 눈알은 도저히 인간이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놈이 드디어 찾아왔나 했더니 아니었구먼.”
산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산군은 잠시 머릴 굴리다 미미하게 미소 짓고는 포권했다.
“예, 유정이라 합니다.”
“유정? 흐흐, 인간 같은 이름이로군. 한데 네놈은 어찌 이곳에 들어왔나?”
산군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단박에 인간이 아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의 짐작대로 영명에 이르는 경지를 지녔기 때문이리라.
산군은 차분하게 영초를 채집하다 환진의 영향으로 이곳에 들어오게 됐다 설명했다.
“흠…. 휘말렸나 보군.”
노괴는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좁히다 입을 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노부를 따라오거라. 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이제 놓고 말이지.”
움찔.
산군은 쓰게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류곡자를 품에 넣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했으나 그에게 선택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잠시 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걸음을 맞추며 천요동을 거닐기 시작했다.
놈은 환진을 꿰뚫어 보듯 기묘하게 움직였는데, 산군은 노괴의 발자국을 보고 그대로 따라 걸었다.
“…무엇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어냐.”
“서악으로 영수들이 모이고 있다 들었는데……. 그 연유가 어찌 됩니까?”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는 서악이 아닌 동악에 있는 팔귀 쪽에 십해만척귀들이 모여야 함이 옳았다.
그런데 어찌 서악으로 모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음, 십귀 중 삼귀의 좌에 있던 분이 돌아가셨으니 무얼 하겠느냐. 당연히 백귀야행(百鬼夜行)을 펼쳐 새로운 삼귀를 뽑기 위해서지!”
‘백귀야행!’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삼귀가 죽었으니 당연히 새로운 삼귀를 뽑기 위해 백귀야행을 시행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야 이해가 가네.’
원래대로라면 유정에 의해서 후반부에나 죽었어야 할 십귀 중 하나.
삼귀가 산군의 손에 죽어버렸으니 이리 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후에도 산군은 노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노괴는 십해만척에 소속된 인물로 오귀의 수하 중 하나였다.
그는 만보 시대에 금박지주(擒縛蜘蛛)라 불리던 영충의 후손 중 하나로, 영충과 영수의 혼아혈이라 했다.
이름은 금긴(擒緊).
“금긴 육사. 백귀야행에 참여하여 야행주(夜行酒)를 마시는 그것만으로도 수행에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그럼. 야행주를 마시면 수행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몸속의 영력이 더욱 정순해지니 당연하지.”
산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곳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수행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귀를 죽인 것이 산군이라는 게 알려지게 되면 어찌 될까. 아마 모든 귀수들이 산군의 목을 노릴 것이다.
그런데 어찌 야행주를 탐낼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금긴이 피식 웃었다.
“백귀야행에 참여하고 싶더냐? 네 원한다면 들여보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네 영력이 동급 영수들보다 정순하니 팔귀 님의 밑으로 추천해 줄 수도 있지.”
금긴은 인심 쓰듯 말했지만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한창 전쟁 중일 터인 팔귀의 밑이라니,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하, 괜찮습니다. 제까짓 것이 감히 십해만척에 이름을 올릴 깜냥이나 되겠습니까.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니다. 괴비여각(拐非閭覺)을 익힌 내 눈은 한 치의 틀림도 없다. 네놈 신통은 동급 영수를 능히 압도할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금긴이 잠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너 정도라면 능히 십해만척귀가 될 수 있으니 그리 겸양 떨 것 없다.”
“예, 감사합니다.”
산군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으나, 숙여진 고개 아래 그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