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58)
낭선기환담-457화(458/600)
낭선기환담 – 2부 167화
쉬이이이익.
빛바랜 도화지에 피가 떨어진다.
물속에 떨어뜨린 피처럼 기묘한 기류로 흘러들어간 핏방울은 이내 병사의 모습을 한 분신으로 이루어졌다.
그 수가 가히 칠백.
선두에는 미세파의 분신이 자리해 상당한 기세를 내뿜었다.
“준비는 다 됐나.”
“물론.”
그 반대편에 있는 천범 일행은 다소 왜소했다.
범을 선두로 뒤에는 탐화와 사하, 그리고 후해와 사비뿐이었다.
칠백과 다섯.
누가 이길지는 한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긴장을 풀지 않았는데, 이전 붕계의 마선들과 전투를 치렀을 때 다른 이는 몰라도 거대한 오룡의 위용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세파마저도 오룡의 강함은 향선에 필적한다 하였으니 미세파의 병사들 중 그 누구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미세파는 그들을 고취시키기 위해 귀한 보물마저 약조했기에 더욱 의욕이 만만했다.
“그럼 시작하지.”
선두에 선 미세파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단번에 내리자.
“우오오오오!!”
“가자아!!”
그의 병사들이 내달렸다.
미세파는 공중에 몸을 띄운 채로 아직 나서지 않았다.
잠시 두고 볼 예정인 듯 했다.
그에 따라 천범도 거대한 대도를 꺼내 땅에 박아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움직여야 하는 건 후해와 사비 그리고 사하였다.
“날 보조해.”
“옙!”
사하는 단번에 상선보를 들어 올려 화기린을 불러냈다.
화기린은 입안에 화구를 머금었고, 단번에 광선을 토해냈다.
휘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앙!!
광선을 쏘아내자 단번에 병사들이 쓸려나가고 적색의 불바다가 잔잔혈정도에 요동쳤다.
“제법이군. 역시 화기린 일가다운 강력한 신통력이다.”
미세파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상선 수준 치고는 매우 강력한 화기와 신통을 다루고 있었다.
후해와 사비 또한 같은 급의 상선들보다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사비는 본신인 물고기로 변해 땅 밑으로 스며들어 헤엄치며 전장을 종횡무진했고, 후해는 쌍도끼를 꺼내 강력한 힘으로 땅을 찍었다.
콰아아앙!
지면이 쩌저적 갈라지고, 안에서 사비가 곤의 형태에서 대붕으로 변모하여 폭풍을 불러냈다.
그 주변을 사하의 화기린이 적화를 내뿜으며 난리를 치니, 단번에 전장은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셋의 합이 퍽 잘 맞았다.
허나 그것만으로 칠백이 넘는 상선들을 막기란 어려웠는데, 그때 탐화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탐화가 내뿜는 독기는 한 호흡만 마셔도 절명에 이를 정도였고, 전신에서 나오는 금쇄는 매우 단단하고 질겨 한 번 붙잡히면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독무를 내뿜으며 금쇄를 마구 휘두르며 죄다 걷어차고 다니는 탐화의 모습은 병사들에게 악귀 그 자체.
그야말로 일당백이었다.
허나 퍽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대만 저지하면 끝날 일이겠지.”
미세파의 측근에는 향선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융씨 성을 지닌 자였다.
이내 융씨 수선과 담화가 빛줄기로 변해 하늘에서 공투를 벌이자 아래쪽의 병사들이 조금 숨통이 트였다.
탐화가 순식간에 삼백 정도를 지워내 버렸고 초반의 기세를 몰아 사하 일행이 백 정도를 없앴으니 이제 남은 것은 삼백이었다.
그쯤 되자 미세파가 슬슬 움직였다.
“슬슬 쫄리시나?”
뜨끔한 미세파는 이내 냉소하며 품에서 석장을 꺼냈다.
“어차피 이 싸움의 끝은 정해져 있지. 자네와 나의 승부에서 모든 게 정리될 일이란 걸.”
그 또한 그렇다.
범은 지면에 꽂았던 구환도를 뽑아 한 손으로 미세파를 겨누었다.
짤랑짤랑짤랑!
구환도의 아홉 개의 환이 짤랑거리며 귀기를 내뿜었다.
“흉측한 대도로다. 그런 사이한 것을 지니고 있지? 전리품인가?”
“알려줄 의리는 없지.”
범은 의미모를 웃음을 내지은 채 구환도에 선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쩍! 쩌저저적!
대도가 균열이 일어나 갈라지고, 걸려 있던 환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짤랑이다 픽픽! 튀어나갔다.
마치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던 것마냥 마지막 환이 박살나 사라지자 거대한 대도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였다.
후우웅-
서늘한 바람이 몰아쳤다.
이내 어디선가 귀곡성이 들려오고 귀무가 낮게 내리 깔렸다.
“모습이 변했나.”
천범의 손에는 거대한 대도가 아닌, 얄상한 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검붉은 날이 인상적인 도.
새로운 모습인 듯하다.
“생각해 보니 이걸 쓰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
하계에서는 종종 썼지만, 상계에 올라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런 만큼 본래는 소름끼쳐야 하는 귀곡성임에도 범은 반갑게 느껴졌다.
낮게 깔린 귀무 속에서 크고 작은 악귀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수십만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게다가 악귀들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귀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한 악귀로 치부하기에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대군의 악귀들을 눈앞에 둔 미세파는 한눈에 저들이 지닌 힘을 깨닫고 기함했다.
“…보통 연자보가 아니군.”
저것 하나로도 웬만한 붕계의 군대는 홀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다.”
꾸득, 꾸드득!!
소름끼치는 뼛소리와 함께 미세파의 모습이 거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손에 든 석장을 지면에 쾅! 하고 내다 꽂으니, 쩌저적! 땅바닥이 갈라지며 중력이 역전된다.
땅덩어리가 부상되며 하늘로 떠오르고 하나의 점으로 모여 점점 땅 아래를 가리는 거대한 달로 변모한다.
그 강력한 흡입력에 악귀들도 비명을 내지르며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세파는 자신의 공법 신천-지축라를 통해 달을 만들어 악귀들을 모조리 한 번에 봉인하려는 것이었다.
“흠, 그런 수가 있었나.”
범은 그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얇아진 구환도를 역수로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떨어뜨렸는데, 미세파는 도통 무슨 짓을 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구환도는 날부터 지면으로 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땅에 닿은 순간 검은 연기로 화해 귀무로 바뀌어버렸다.
미세파의 눈가가 좁혀졌다.
휘이잉.
바람이 바뀌었다.
펑, 수십만에 달했던 악귀들이 다시금 검은 연기로 변모했다.
이내 귀무는 하나로 모여들어 어떤 여인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검붉은 쇠로 만들어진 고리를 손발에 차고 있는 귀신처럼 창백한 피부의 여인.
귀음나찰 예후였다.
“쯧….”
범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지만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그가 손짓하자 예후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귀무 속에서 검은 칼날 수만 개가 튀어나왔다.
“뭣!”
미세파는 화들짝 놀라 칼날을 피해냈지만 그의 달은 아니었다.
콱가가가강!
단번에 난도질당한 신천-지축라는 산산조각 나 떨어져 내렸다.
귀음나찰의 검은 칼날은 그에게만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땅 밑의 병사들의 머리 위로도 떨어져 내렸다.
“컥!”
“허억!”
수백 명의 병사들 머리 위로 떨어진 칼날은 그들을 무너뜨렸다.
허나 그것만이었다면 미세파는 놀라지 않았을 터.
‘병사들을….’
쓰러진 병사들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정수리에 검이 박힌 이들은 마치 조종을 받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수결을 맺고 각자의 신통으로 미세파를 공격했다.
미세파 입장으로서는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런 비겁한 사술을 쓰다니!”
“귀신이 된 뒤에도 그런 헛소리를 할 작정인가? 미씨 세가가 자랑하는 천재 중의 천재라더니 별로 그렇지도 않군.”
“이놈이…!”
미세파가 거원의 모습으로 귀음나찰의 칼날을 피하고 병사들을 정리할 즈음, 범은 그녀를 살폈다.
‘그렇군. 악귀들 자체만이 강해진 게 아니라 흉력을 쓰고 있군.’
불구대천마의 기운인 흉력을 사용해 자신의 힘을 더하고 있다.
거기다 만각변왕이 힘을 써준 덕분에 연자보에 가까운 기운을 지니게 되었으니 웬만한 연자보보다 한층 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 모든 걸 통솔하는 것이 예후라는 점이 조금 거슬렸으나 감정을 빼고 본다면 훌륭한 법기라 할 수 있다.
그녀가 다루는 검은 칼날은 하나 하나가 악귀가 변한 것이고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흉력을 품고 있어 웬만한 법기로는 막아내기는커녕 부서지기만 할 것이다.
때문에 상선들은 결코 막아내지도 못할 것이고, 향선 정도나 되어야 몇 번 막아낼 수 있을 터.
허나 그마저도 힘에 부칠 것이다.
범은 그녀가 부리는 검은 칼날을 흑수라 부르기로 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많은 수의 흑수를 이용해 자신과 미세파를 가두었다.
귀무 속에서 나타난 흑수는 촘촘하게 이어져 검은 태양처럼 허공의 한 공간을 장악했다.
그곳에 갇힌 미세파는 사방으로 난리를 쳐대며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으나 흑수로 이루어진 공간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미세파의 발버둥이 잠잠해지자 천범은 귀음나찰이 만든 공간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전신이 흑수로 찔린 미세파가 피투성이로 꼬챙이처럼 꿰어져 매달려 있었다.
그 곁에서 예후는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는데, 대부분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간교한 매도였다.
“쯧.”
범은 혀를 차고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은 연기로 사라졌다.
미세파를 찌른 흑수 또한 귀무로 변해 사라졌고, 이내 범의 손에는 이전과 같은 아홉 개의 환이 달려 있는 투박한 대도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내 그의 모습조차도 안개처럼 흐려져 사라졌다.
스르륵.
감았던 눈을 뜨자 그곳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미세파와, 그의 병사들이 가부좌를 풀고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기는 내 승리군.”
“….”
미세파는 분하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자네 승리다.”
그러자 곁에 있던 후해가 자기 일처럼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사비 또한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입가가 꿈틀거리는 걸 막지 못했다.
사하는 빙긋 웃어 보였고, 탐화는 배가 고픈 듯 병사들을 바라봤다.
“잘 했다.”
범은 탐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후해와 사비, 그리고 사하에게도 고생했노라 치하했다.
생각보다 수준 높은 전투를 보여 준 그들이었다.
솔직히 탐화를 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놀랍기도 했었다.
‘내 밑에 있는 것보다는….’
사하의 밑에 있는 게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언뜻 보였다.
후에 사하에게 그들을 거두는 게 어떻냐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보였다. 그녀의 부하들은 효구가에서 행방이 묘연해졌으니.
“해서, 자네가 할 부탁은 뭔가. 빨리 말해라. 마음이 바뀌기 전에.”
미룰 것도 없다.
천범은 곧장 물었다.
-대천무장의 지령이 무엇이지.
-…그걸 꼭 알아야겠나?
주저하는 듯 보였다.
범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 말고는 딱히 놈에게 부탁할 것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다.
내기에 응한 것 자체가 그 때문.
다른 것은 관심도 없다.
-어째서 그게 궁금하지?
-자네가 품에 지니고 있는 그것, 다른 이라면 몰라도 나는 절대 못 느낄 수가 없는 화신통이거든.
-…! 언제부터 알았지?
-처음부터.
-!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아챘다.
그가 품에 지닌 뭔가의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약하고, 왜소한 기운이었으나 다른 이라면 몰라도 천범은 절대로 못 알아볼 수 없었다.
미세파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다, 수결을 맺고 풍경을 가리는 결계를 쳐서 자신과 천범의 모습을 병사들에게서 완벽하게 가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옥함 하나를 꺼내 열었다.
그곳에는, 잘려나간 듯한 깃털 조각 하나가 담겨 있었다.
푸른 화염을 지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