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59)
낭선기환담-458화(459/600)
낭선기환담 – 2부 168화
“자네 정도라면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봉황의 깃 조각 아닌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빨라지겠어. 내가 이걸 지니고 있는 건 물론, 대천무장님의 지시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듣고 있다.”
“선살전이 발발하여 무의미한 대치 상태가 고착되는 것을 느낀 대천무장께서는 날 불러 이것을 맡기고는 개계오경으로 가라 하시었다.”
“개계오경?”
“붕계 쪽에 있는, 작은 섬들이 줄 지어 있는 곳의 지명이다.”
“그곳에 뭔가가 있나 보군.”
범의 추측은 맞았다.
개계오경은 옛 선인이 만들어 놓은 곳으로 여러 섬들이 진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있어도 아무나 나갈 수는 없는 곳.
“대천무장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라 하셨다. 그리하면 알아서 물건을 건네줄 테니 필히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
호기심으로 가득찬 물음에 미세파는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한테는 말 못할 비밀인가?”
“아니,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하지만 아마 내 생각으로는 잔잔경정도를 사용하시려는 게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잔잔경정도!”
지난 선살전에서도 큰 활약을 했던 수계의 보물 중 보물.
“잔잔경정도를 제대로 쓰려면 어떠한 귀물이 필요한데,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그것을 위해서 그런 거란 생각이 들더군.”
그게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봉황의 깃 조각을 대가로 내준단 말인가.
천범의 고심이 깊어졌다.
‘봉이 깨어나려면 흩어진 깃들을 회수하는 게 제일.’
조각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기운은 향산 신선이 된 범이 보아도 눈부실 정도이다.
허나 잔잔경정도를 발동시킬 귀물을 대가로 내주는 것이라 하니,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말인데….”
미세파가 은근히 같이 동행하는 게 어떠냐 물었다.
“내게 이득이 있나?”
“수계의 이득이 곧 우리의 이득이지. 어처구니없는 소릴 하는군. 자네도 수궁의 녹을 먹는 자라면! 대천무장의 명을 받는 자라면 날 도와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허나 대천무장께서 내게 명하신 건 아니지. 내가 아닌 자네를 믿고 맡기신 임무가 아닌가? 그런 신성한 임무를 하계에서 올라온 하등한 비승수선이 감히 더럽힐 수는 없지.”
“….”
미세파는 볼 살이 움찔거렸다.
낭패감이 깃든 얼굴이었다.
“게다가 그저 대가를 건네주고 물건을 받아오기만 하는 거라면 내 도움까지 필요하지는 않잖나.”
“생각해봐라. 지금은 전쟁 중이다. 언제 어디서 살선의 군대가 출몰할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곳이다. 불과 하루 전만해도 붕계 쪽 살선의 습격을 받아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한데 그들이 향하려는 개계오경은 거리로만 따지면 삼십 년은 더 걸리는 곳이고, 빠르게 이동할 수 없는 행군 속도로는 대략 오십 년 정도 걸릴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십 년 동안 전쟁통을 살살 기어가다시피 하며 안전하게 개계오경을 다녀와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으로는 조금 벅차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소수정예로….”
말하려던 범은 입을 다물었다.
놈의 표정을 보니 알 만했다.
‘다 죽었나 보군.’
몇 개의 부대와 함께 출발했으나 몇 번의 전투 끝에 모두 죽어나간 것이다.
“붕계도 사계도 바보가 아니다. 놈들도 수계의 잔잔경정도를 알고 있다. 이전 선살전에서 자신들의 선조가 죽어나간 보물을 모르래야 모를 수가 없을 터. 놈들도 그에 대비를 하고 있고, 덕분에 이런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지. 지금은 유야무야 지내고 있으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것은 우리다.”
“흠….”
꽤나 비관적인 판단이었으나 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각변왕은 그에게 말했다.
수천, 수만 년에 이르는 전쟁통에 방심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이 익숙함에 속아 방심하게 된다면 그때가 전쟁이 종결되는 순간이라 하였다.
“수계도 선계도 원선태사 분들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미세파 자네는 전쟁의 판도가 살선들에게 기울 것이라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어째서지?”
“공격당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다.
확실히 공격하는 것보다 방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긴 하다.
일반적인 전쟁이라면 다를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상계.
수많은 신비가 있는 곳이다.
지금 범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도 생각지도 못한 신통들과 공법들이 생겨나는 것이 바로 이곳.
수선계다.
그러니 마음먹고 공격한다고 하면 어떠한 방법을 쓸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죽은 자의 육신을 파먹는 구더기처럼 여기저기를 갉아 먹히게 될 것이다.
“도와주게, 자네도 수계의 수선이지 않은가.”
조금 골려줄 생각이었던 범은 미세파가 간곡하게 나오자 흥이 식었다.
‘흥미가 동기는 하다만….’
위치가 좋지 않다.
붕계와 인접한 건원해이다 보니 자칫하면 포위당해 꼼짝없이 죽을 수도 있다.
미세파의 말에 따르면 개계오경 안에는 진법으로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있기에 그곳만 들어가면 위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했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위험하지.’
허나 미세파의 손에 들린 봉황의 깃 조각이 마음에 걸린다.
그가 다른 놈에게 당해 봉황의 깃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깃을 다시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울 터.
“혹여라도 거절할 거라면 그 어디에서 발설하지 않겠다 맹세를….”
“됐다. 동행하도록 하지.”
“저, 정말인가?”
화들짝 놀란다.
정말 수락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다.
“대신 부탁할 게 있다.”
공짜로 도와주기는 배알이 꼴린다.
얻어낼 수 있는 건 모두 얻어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뭐든 말해봐라. 내 능력이 닿는 한 무엇이든 들어주지!”
“여의주를 좀 구해다 줘야겠다.”
“여의주? 흠, 지금 같은 때라면 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전쟁이 터진 때이니 대부분의 물자나 보물 등이 거래되는 때는 아니다.
“구할 수 있나 없나. 없다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겠네.”
“구, 구할 수 있다! 그래! 개계오경! 개계오경이면 된다. 그곳의 주인은 어떤 물건이라도 지녔으니 그곳에만 당도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여의주를 구해다 주겠다.”
개계오경.
세상에 없는 것 없고, 있는 것은 다 있다는 곳.
“그런 곳이었나? 한데 붕계와 가깝다면 마선이 있는 곳 아닌가?”
“그건 아냐.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그곳의 주인은 태생이 인간이었고, 지금은 상천해월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원선태사라더군. 허나 다른 분들과는 달리….”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관여치 않는 자라고 한다. 항상 중립을 유지하고, 좀처럼 모습을 내비추지 않기에 상계에 몇 없는 원선이라도 그를 만나본 자는 손에 꼽을 정도.
“아무튼! 정말 나와 동행할 건가?”
“한 입으로 두 말하진 않아.”
“좋아. 그럼 며칠 휴식을 취하고 곧장 떠나기로 하지.”
* * *
스르륵.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열렸다.
“깨어나셨습니까.”
곁에 시립한 여인이 물었으나 어둠 속의 그녀는 앞에 자리한 호수 위의 붉은 실이 이전과 달리 몇 겹으로 덧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허나 호수 밑바닥에는 덧대어진 붉은 실만큼이나 색을 잃고 떨어져 내린 실도 많았다.
붉은 머리의 여인은 자신의 주인이 붉은 실을 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많이도 떨어져 내렸습니다.”
붉은 실은 맞닿은 인연이요, 호수는 생사의 경계를 뜻하노니.
밑바닥의 붉은 실은 죽음을 뜻했다.
어쩌면 그와 친분을 쌓고 정을 쌓았을지도 모를 인연들.
그리고 피로, 정으로 이미 쌓아진 인연들이었다.
어둠 속의 그녀는 허물어진 실을 덧없이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
[불멸은 없다. 언제고 끝은 존재하는 법이니 닿은 인연 또한 언젠가는 덧없이 허물어진다.]지인의 죽음.
친족의 죽음.
반려의 죽음.
죽음이란 어디에나 있는 것이고, 언제고 찾아오는 것.
그렇기에 수선함에 있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정을 끊는 것.
사사로운 정에 휩쓸려 대사를 그르치는 이는 셀 수 없이 많다.
하니 수행의 시작은 무정을 깨우치는 것부터다.
“하지만 주인님은 그 이치를 비틀어보려 하셨지 않습니까.”
허나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무정.
“전생의 원한이 지금까지 이어지기에 그것을 바로잡고자 그런 꼴이 되어서까지 고생하고 계시지요.”
안쓰럽다 툴툴 거리는 여인의 말에 어둠 속 눈동자가 움직였다.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난 그녀처럼 시공간을 비틀어 넘나들 수 없으니 꾀를 부려 벽을 넘어야 했다.]“덕분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시죠.”
[…그것도 잠시뿐이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올 게야.]“상천해월들을 말씀하십니까.”
화르륵!
줄곧 어두워 볼 수 없던 벽면에 불꽃이 만연했다.
촛불에 불이 붙자 줄곧 보이지 않았던 목소리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을 빨아들인 듯 새까만 털을 지닌 여우상의 짐승.
등 뒤의 꼬리는 아홉이 넘었다.
허나 꼬리의 크기가 크고 작아 그 상태가 정상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는 잊어버렸다지만 난 떠올렸다. 그 원한을 어찌 잊겠느냐. 지금도 눈을 감으면 행복했던 나날이 떠오른다. 허나 이제는 일장춘몽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와 우리를 배신하고 하늘에 한없이 가까워졌다던 그놈에게 복수하는 것밖에.]구우우웅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모든 걸 잠식시킨다.
촛불의 불꽃마저 집어 삼켜 모든 것을 칠흑으로 뒤덮는다.
“고정하시지요. 탈나십니다.”
스르륵.
그녀의 눈꺼풀이 감긴다.
[머지않았다. 그때가 되면… 그에게도 모든 걸 말해줄 수 있을 거야.]“예, 그러셔야죠.”
때가 오면… 이라고 중얼거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다시금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곁에 있던 여인은 잠에 빠져든 제 주인을 느끼고는 멀거니 호수 위에 떠 있는 붉은 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여정은 고달프지만은 않으실 겁니다.”
* * *
오십 년 뒤.
“이곳인가?”
“지도상으로는 이곳이 맞다.”
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은 안개처럼 스산한 건원해 위에 자리 잡은 여러 섬들이 교묘하게 원을 이루고, 기묘한 선축문과 같이 이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냥 눈으로 보면 보통의 섬이었는데, 단령금정을 발동시켜 육문으로 보면 단순한 섬이라 칭하기에는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허나 범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고 다소, 어떠한 법칙이 가미되어 있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정확하게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멀고도 험난했군.”
“허나 아직 끝난 게 아니지.”
개계오경.
지난 오십 년 간 찾아다닌 그곳, 이곳이 바로 개계오경이었다.
지난 세월동안 은밀히 이동하며 잦은 전투로 인해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길을 뚫기 위해 무모한 짓도 많이 했다.
덕분에 미세파의 군대는 칠백에서 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허나 이렇게 도착했으니 임무의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들어가지.”
“음.”
개계오경의 중심에는 다른 곳보다 조금 커다란 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으로 단번에 내려갔는데 순간 천범과 미세파를 비롯한 주변의 수선들 모두가 당황했다.
“비행 금제?”
여러 금제가 그들의 몸을 구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계오경에는 여러 금제로 인해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들었다. 당황하지 마라.”
미세파가 병사들을 다독였다.
쿵!!
단번에 하늘에서 떨어져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이 하늘에서 떨어졌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지면 또한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
범은 곧장 주변을 살폈다.
단령금정을 발동시킨 채로 주변을 살피니 이곳 전역이 겹겹이 쌓인 금제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비행금제를 시작으로, 기의 방출까지 제한을 걸어둔 금제가 허다했다.
‘법칙 금제인가.’
그게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기의 방출을 막는다는 것은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강체를 익힌 자들에게는 유리한 공간이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한 뒤 후해를 불러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우, 우와악!!”
천범의 주먹이 후해의 얼굴 코앞에서 멈췄다.
“까,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님….”
“때려지지 않는군.”
“예? 정말 때리려고 했습니까?”
단령금정을 펼쳐 보자, 법칙 금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미생물과도 같았는데 그것들이 천범의 주먹을 막은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이곳에서는 그 누구라도 살육을 벌일 수는 없겠군.”
원선태사라면 모르겠으나 그 아래의 경지라면 누구든 이곳에서 치고 박는 것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천범은 단령금정을 펼친 채로 사방을 둘러봤는데, 이내 그것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게 되었다.
금제가 단령금정을 막은 것이다.
모든 게 막혀버리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손님이시군요.”
흠칫.
땅에서 솟아나듯 나타난 존재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장삼을 입은 미부인이었는데 자신을 보는 두려운 시선이 익숙한 듯 산뜻한 미소를 보내왔다.
“개계오경에는 처음 오셨습니까.”
“…그렇소.”
“저는 개계오경의 안내자이자 이곳의 주인이신 오경계주의 하선입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저를 고 부인이라 부르니 그리 불러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고 부인. 저희는 이곳의 주인이신 오경계주님에게 대가를 전하고 받을 물건이 있어 왔습니다.”
미세파가 공손히 말하자 알고 있다는 듯 고 부인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다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 부인이 어느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고, 범과 일행은 시선을 맞추고는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