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6)
낭선기환담-45화(46/600)
낭선기환담 – 45화
산군은 그 뒤로도 금긴과 함께하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백귀야행은 삼귀를 뽑는 귀수들의 축제이자 의식. 그리고 그곳에서 제일 강한 자를 삼귀로 뽑는다 했다.
새로운 삼귀는 백귀야뢰겁(伯鬼夜雷怯)라는 의식을 치루게 되는데, 그것을 받으면 천시벽겁(天試霹怯)에도 버틸 수 있는 신체를 갖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산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천시벽겁은 영겁에 오른 육사들이 때때로 받는 시련 중 하나다.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신체로 만들어 주는 의식이라 하니 주의 깊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요수들은 그런 시련을 받는군요. 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나도 처음 듣는구나.
인간과는 달리, 우화등선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만 알고 있었다.
막연하게 경지 상승이 어려운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니 놀라웠다.
노괴는 삼귀를 죽인 자를 잡아 오기만 해도 십귀들에게 큰 상을 받을 거라 말하기도 했다.
산군은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들으며 그를 따랐다.
그러다 돌연 금긴의 발걸음이 멈췄는데, 어느 한 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네가 이곳에 온 것도 이상하다 여겼는데, 아무래도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로구나.”
노괴가 그리 말하자 산군도 희뿌연 안개들 사이로 안력을 돋웠다. 하지만 그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인상을 쓰고 있자, 노괴가 껄껄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식경 정도 걷자 안개가 사라지고 밀실 하나와 도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놈이구나.
어디서 많이 본 놈이라고 했더니, 앞전에 보았던 한수라는 도사였다.
산군은 그들을 천천히 바라보다, 구석에서 다 죽어가는 여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금은 자매가 왜 여길!’
산군은 정신이 없었으나 일단 상황을 파악해봐야 할 듯싶었다.
산군은 당장 저 틈에 달려가고 싶었으나 일단은 참았다. 금긴이 안광을 번득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긴이 앞으로 나서며 막대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큭!”
금긴의 영압에 짓눌리는 듯 도사들의 몸이 흔들렸다. 무릎을 꿇는 자들도 있었다.
“그, 금긴님!!”
그때, 한수가 금긴을 바라보고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산군은 눈을 좁히며 침묵했다.
“호오- 웬 놈인가 했더니……. 그래. 그렇군. 네가 길을 뚫느라 환진이 이 모양이었던 거였어.”
“그, 그렇습니다! 금긴님의 명을 받아이 한수! 길을 열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여기 이 보물들과 도선들도 취해 주십시오!”
‘……그런 건가.’
어쩐지, 도선이 환선에 해당하는 요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했다.
둘은 애초에 알던 사이인 듯했다.
“한수 도사! 이게 무슨 소리요! 저 요수와 결탁이라도 한 게요!”
함께하던 도사들은 금시초문인지 안 색이 파리해져 소리쳤다. 한수는 그들을 비웃으며 이죽거렸다.
“그렇게 됐소.”
“어, 어찌 요수 따위와…….”
“난 인간의 몸에 신물이 났소. 경지 상승을 해보았자 천년도 살기 어려운 게 인간이요. 전전긍긍하며 영약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객사하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오? 그럴 바에는 요수가 되어 천년! 만년 사는 게 더 평안하겠소!”
다른 도사들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어이가 없는 것인지 모를 낯이었다.
한수의 말대로 도사들은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수도자다.
하지만 저런 회의감을 느껴 속세에 다시 들어가 유유자적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요수가 된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게요!”
“천년, 만년 살 수 있는데 부끄러울 게 무엇일까. 내가 천년만 더 살아도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인데 말이오.”
한수는 냉소하며 금긴을 바라봤다.
“약속대로 길을 텄습니다. 그러니 절 요수로 만들어 주십시오!”
“킥킥, 오냐. 약속대로 요수로 만들어 주마!”
금긴의 여덟의 눈동자 모두가 활짝 치켜떠졌다. 여덟의 동공이 기이하게 열리더니,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동공이 튀어나왔다.
그 직후.
한수의 몸이 울긋불긋하며 기괴하게 비틀렸다. 뼈가 살을 뚫고, 살갗이 검게 변하며 몸집이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핫! 하하하!!”
살갗은 이내 비늘로 변해 단단해지고,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왔다.
그는 이제 인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요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듯 동굴이 떠나가라 광소했다.
“흐하하하하핫!!”
* * *
“흐흐…. 흐흐…….”
한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멍청하게 웃었다.
-환술에 당한 모양이군요.
-흡족한 듯하니 환술 속에서 요수라도 된 모양이구나.
환술에 백치가 되기라도 한 듯 침을 뚝뚝 흘리며 웃는 꼴이 꼴불견이었다.
산군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금은 자매를 보며 혀를 찼다. 아마도 놈에게 억압당해 정혈을 소모한 탓일 게 뻔했다. 그녀들의 피는 환진을 비트는 신통을 지녔으니까.
이제야 자신이 천요동으로 빨려 들어오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낱 인간 따위가 요수? 웃기지도 않지. 영수인 우리를 요수라 낮춰 부르는 놈 따위를 누가 그리 해줄까.”
금긴은 그를 비웃으며 다른 도사들을 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그 직후, 천요동의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 속에서 수백, 수천의 거미들이 흉흉한 이빨을 드러내며 번득였다.
‘환계(幻界)!’
노괴가 신경 써준 것인지 산군은 환계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영명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는 환계였다. 환술과 달리, 주변 환경을 속이는 고계 신통이었다.
-아무리 사통 요수라도 환계를 사용함에 있어 필요한 진을 만들지도 않고 사용하다니……. 이곳 일대에 중첩된 환진의 영향일까요?
-글쎄.
화란의 물음에도 산군은 듣는 둥 마는 둥 답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술사의 역량에 따라 환계에도 차이가 있는 법이다. 대개는 동급의 경지를 지닌 자라도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환계다.
한데 그것을 도선들에게 사용했으니 어찌 됐을까.
“으아아악!!”
도선 하나가 검을 냅다 집어던지고 보패의 신통을 휘둘렀다. 하지만 거미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그를 향해 덮쳐들었다.
사내는 앞뒤 재지 않고 도망쳤으나 오히려 다른 거미들이 떼거리로 몰려 들었다. 결국, 거미 떼에 파묻힌 도선은 살이 파 먹히며 비명을 질러 대다 눈이 돌아가 쓰러졌다.
아무리 환계라 해도 환술의 일종이다. 저들에게는 진짜로 보여도 가짜인 것이다. 하지만 환계의 무서움은 강고한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아무리 강력한 도사라도 지치기 마련이고, 환영이라 생각해도 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니 말이다.
산군은 환계의 무서움을 제 3자의 입장으로 관찰하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금긴의 환계는 진을 구축하지 않고도 저런 신묘함을 만들어내니 가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마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금매와 은매도 서서히 좁혀 들어오는 환계에 안색이 파리해지고 있었다.
산군은 곧장 금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여식들은 살려주십시오.”
금은 자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어째서냐.”
“……혼아혈입니다. 반은 영수의 피를 이은 자들이니, 제 수행에 퍽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꿀꺽.
산군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수틀리면 금긴의 환계가 산군을 향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거래를 하자꾸나.”
“무엇입니까.”
“노부가 천요동을 나가 백귀야행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네놈도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요.”
“그래. 사제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니 네놈이 노부의 길동무가 되어 줘야겠다.”
“…….”
-이건…….
길동무란 길을 함께 거니는 동료를 뜻한다. 환선과 동급인 영명이 자신에게 길동무라니,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어찌하여 자신을 백귀야행에 데려가려 할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그리 생각하자 단번에 떠오르는 불안감이 온몸을 흩었다.
‘내가 삼귀를 죽인 걸 알고 있나?’
하지만 어떻게?
그게 의문이었다. 산군은 그와 천요동에서 처음 만났음은 물론 삼귀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삼귀를 죽였다는 사실을 놈이 알아챌 까닭이 없었다.
‘한데 어찌 날…….’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거절하면 금은 자매가 죽을 테고, 어쩌면 자신마저 위험할 수도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끌끌, 그래 잘 생각했다!”
금긴은 곧장 손을 휘저어 환계를 지워버렸다.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공간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본래의 지하 공간으로 돌아왔다.
산군은 그제야 안도하며 숨을 내뱉었다. 금긴은 지탄을 쏘아 도선들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흠?”
금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한수의 상태가 급변하기 때문이었다.
내뿜는 기운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고개를 기괴하게 꺾더니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이내 차분한 낯으로 제 몸을 더듬어 보더니 손을 움켜쥐었다.
“거 참. 상황이 녹록치 않구먼.”
허허 웃으며 말하는 한수는 영 딴사람이 된 듯 차분했다.
결정적으로 산군은 돌연 그의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망자가 젊은이 몸을 뺏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금긴만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 혀를 차며 그를 나무랐다. 한수의 손에는 기괴한 형태의 붓이 쥐여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산군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으니 금긴은 이미 죽었어야 할 망자가 몸을 빼앗은 것이라 했다.
아마 저 이름 모를 붓에 혼을 숨겨 놓고 한수의 몸을 강탈하는 비술을 부린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구만, 그래.”
“때가 좋지 않았나…. 이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금긴과 한수의 탈을 뒤집어 쓴 사내의 기운이 맞부딪쳐 허공에서 돌연 불똥이 튀기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광풍이 불어 닥쳐 산군은 사지를 떨고 있는 금은자매를 데리고 멀리 피신했다.
그때였다.
돌연 주변 풍경이 흘러내리고 수백의 거미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금긴의 환계였다.
하지만 한수가 손을 휘젓자 또다시 풍경이 푸르른 하늘로 바뀌었다.
가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들의 싸움과도 같은 절묘한 신통력에 감탄이 자아났다.
“단념하시지요! 살아생전 얼마나 신통이 대단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고작 도선의 몸을 빼앗아 예전만 못하는 것이 눈에 선하오!”
“그렇다 해도 다시 찾은 기회이니 발버둥은 쳐봐야 하지 않겠나!”
콰광!
천요동이 심하게 흔들렸다.
금긴과 사내의 영력이 서로 부딪치며 환계가 수십 번씩 뒤바뀌었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땅이 되며 뒤죽박죽 바뀌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산군은 어느새 정신을 놓고 있는 금은 자매를 품에 안고 몸을 굴렸다.
최대한 피신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은 면하고 싶었으니 당연했다.
환계의 영향으로 사방이 아득하다가도 눈이 시릴 듯 빛이 찬란했다.
한수와 금긴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서로를 죽일 듯 쳐다보며 환계를 점유하는 싸움만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쥐죽은 듯 고요함이 흘렀는데, 어느새 둘은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 속에서 싸우기라도 하는 건가.”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마주한 채 두 눈을 감고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의식 속에서는 엄청난 싸움을 하고 있을 터.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품에서 비도 하나를 꺼냈다.
단순한 비도 보패였다.
금긴이나 한수 놈이나 위협적이긴 마찬가지이나 지금은 금긴을 도우는 것이 더 수지타산이 맞다.
금긴은 지금 당장 자신을 죽이지 않겠지만 한수의 탈을 쓴 저놈은 다르다.
금긴이 당한다면 당장에 죽은 목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금긴을 도우는 것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의 신뢰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비도를 날렸다.
쉭!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비도.
그때였다.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비도를 척! 잡아냈다.
“이런…!”
“하하! 잘했다!”
단숨에 풍경이 비틀어지며 어두컴컴한 풍경 속에서 핏물이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그 속에서 서슬 퍼런 여덟 개의 눈동자가 번쩍 떠졌다.
이내 북 터지는 소리가 펑! 들리더니 찢어질 듯 비통한 비명소리가 난무하다 환계가 사라졌다.
이내 피비린내가 그의 코에 스쳤다.
“휴, 네가 아니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능구렁이 같은 노괴가 생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구나. 빌어먹을 놈이 괴상한 거나 불러내고 말이지. 쯧.”
금긴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사지가 찢겨나간 한수는 비통한 낯으로 죽어 있었다.
산군은 그를 바라보다 금은자매를 바라보곤 자업자득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