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62)
낭선기환담-461화(462/600)
낭선기환담 – 2부 171화
벽공부촉멸(碧空不觸滅).
벽공은 푸른 하늘을 뜻하는 바이며, 부촉멸은 아닐 부, 닿을 촉, 멸할 멸자를 썼으니 닿지 아니하여 멸한다는 뜻인가 했으나 천범은 잠시 생각해보고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벽공부, 촉멸인가.’
띄어놓고 본다면 푸른 하늘이 아니니 닿으면 멸한다.
이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앞서 본 공법과 이곳에 있는 다른 공법들 또한 여러 가지 법칙이 얽혀 있는 비술이었지만, 천범은 벽공부촉멸에 관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왜냐면 시간 법칙에 근간을 둔 공법은 벽공부촉멸이 유일했기 때문!
심시묘를 가지고 있는 천범으로서는 시간법칙에 대한 의문들이 많았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는데 그 공허를 채울 공법이 바로 벽공부촉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벽공부촉멸은 공간과도 상당히 연관이 깊어 심시묘처럼 자기 자신의 시간을 빨리 감는 것이 아닌, 공간 자체의 시간을 멈추거나 할 수도 있었다.
부차적인 갈래로 시간 자체에 기민한 관계를 갖게 되며 대성하게 된다면 보물 자체의 세월에 간섭할 수 있게 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리보나 저리보나 천범은 벽공부촉멸만 한 것이 없다 느꼈다.
수궁의 통천서고에도 이런 류의 법칙 수서는 없었던 터라 범은 벌써부터 심장이 크게 뛰었다.
[작공과를 먹는다 하여 이 공법들을 모조리 한 번에 대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배우는 다른 수련 방법보다야 월등히 뛰어날 거라 자부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지닌 자의 마음과 깨달음이니.]“예.”
[벽공부촉멸은 오랜 세월 내가 익힌 시간 법칙을 나만의 뜻대로 걸러 내어 합일시킨 독문공이다. 이것을 익힌다는 건 곧, 나의 의발을 잇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널 나의 적전으로 들이게 될 것이다. 물론 개계오경의 주인으로 내가 지니지 못한 것은 없으니 수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여 널 내 아들이라 생각하고 키울 게야.]“….”
천범은 고민했다.
분명 욕심나는 조건이다.
원선의 제자로 들어가 모든 것을 지원받으며 수행에만 매진할 수 있는 기회다.
다른 수선이었다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당장 절하고 사제의 연을 맺는 것이 당연했으나 범은 그러지 않았다.
[신중함은 수선함에 있어 꼭 필요한 덕목이지. 너의 빠른 수행과 강인함은 그 신중함에 나왔을 터. 허나 날 앞에 두고 보일 태도는 아니구나.]“무례를 보였습니다. 허나 저는 아직 할 일이 있기에 세상과 단절하고 오경계주님의 문하로 들어가 수행에만 집중할 수 없을 듯합니다.”
개계오경은 아무 일도 없이 평탄한 하늘을 보내고 있으나, 이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선살전으로 인해 하늘은 다양한 색으로 바래져 있다.
수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없지만 그런 마음을 품은 자가 곁에 자리하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범이 이곳에 남으면 사하는 홀로 수계로 복귀하여 살선신장으로써의 임무를 다 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어느 정도 흐른다면 그녀의 선조격인 천외양군 사기가 나타날 것이다.
나름대로 그의 도움을 받은 적 있고, 나타날 것을 뻔히 아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손 놓고 흘러가게 둘 수는 없다. 그리고 수계에 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생각하고는 있다.
애(愛)는 없어도 의(義)는 있다.
게다가.
‘아직 완전히 신용할 수 없다.’
이야기로 전해들은 인물이라 하여도 정작 그녀가 어떤 성품을 지닌 자인지 범은 모른다.
제자를 이용하고 팽하는 스승의 대한 이야기는 여럿 있다.
오늘 처음 본 오경계주의 제자가 되기에는 아직 모르는 점이 많다.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너와 엮여 있는 실타래 같은 인연들을 보노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나의 작공과를 취한다면 넌 내 의발을 잇게 되는 공법을 익히게 되겠으나 꼭 이곳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앞서 말하지 않았더냐. 난 가르치는 것에 큰 재주가 없다고.]그녀는 곰방대로 주변에 날아다니던 옥함 하나를 툭 쳐서 열어보였다.
[가져가거라.]옥함에는 촉(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곰방대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보면 모르더냐. 곰방대다.]“그러니 이걸 왜….”
[말했다시피 난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없는 년이다. 하여, 작공신목을 만들어 작공과에 나의 모든 공법과 깨달음을 녹여내 손쉬운 제자 육성을 위한 꾀를 부렸다. 그런 모자란 스승이지만 제자에게 하나쯤은 증표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제자라는 의미로 주는 증표였다.
곰방대는 흑단목으로 만들어졌는지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것을 내주는 뜻은, 떠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을 테니 좋을 대로 사용해도 좋다. 내 직접 애써서 키운 흑정진목을 깎아 만든 곰방대이니 담배를 태우면 흑정의 기운이 몸속에 돌아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심신을 정화케 할 것이니.]그녀는 꽤 애연가인지 곰방대의 이름이 흑정단죽이라 말하며 신목으로 만든 만큼 내상을 입었을 때 좋은 담뱃잎의 제조법등을 친히 알려주며 자신의 배합법을 즐거운 듯 말했다.
[고민이 있다면 흑정단죽을 피워 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달아날 터이니.]농담으로 하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범은 뭔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알겠노라 답했다.
[네 사형되는 놈도 같은 걸 가지고 있으니 연이 닿는다면 만나볼 수도 있겠지.]“제 사형이 있습니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구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통 한 번 보내지 않는 무정한 놈이라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어찌하는지도 모르겠다. 놈에게도 흑정단죽을 주었으나 한 번도 피우지도 않는 녀석이니….]그녀는 말을 아끼는 듯했다.
묘한 침묵이 맴돌자 천범은 괜히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이제 가거라.]그녀는 천범에게 작공신목의 작공과를 품에 쥐어주고 축객령을 내렸다.
“절을 받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묻자 그녀는 질색했다.
[그런 허례허식 따위가 싫어 작공과를 만든 게 나다.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다면 대성으로 갚아라. 벽공부촉멸을 대성한다면 개계오경과 내 진의를 모두 네게 줄 것이니.]그리 말한 오경계주.
촉명천녀는 소매에서 부채를 천범을 향해 휘둘렀다.
후웅!
강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이 천범을 밀어내고 풍경이 순식간에 밀려갔다.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널 찾을 것이다. 네게 무언가를 묻거든 그렇다 말하거라.]“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네 스승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구나. 내 이름은….]멀어지는 풍경 속에서 나른한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가는 옅은 웃음기를 머금었고 천범은 그녀의 입 모양을 주시하며 공간 끝에서 사라졌다.
* * *
휙.
공간에서 튕겨져 나온 천범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헛웃음 지었다.
‘이름에 걸맞는 성격이시다.’
신위.
개계오경의 계주이자, 촉명천녀라 알려진 그녀의 이름은 신위.
신위(神威)였다.
“범아! 무사했구나!”
사하였다.
그녀의 부름에 주변을 돌아보자 이곳은 본래 사하와 함께 각종 신목등을 살펴보던 동쪽 숲이었다.
“아, 그래. 어디 다친 곳은 없더냐.”
사하가 먼저 튕겨져 나갔던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응, 너는 괜찮아? 이상한 짓 당한 건 아니고?”
“그런 건 없다. 다만….”
천범은 그녀에게 신위의 제자가 되었음을 넌지시 말했다.
사하는 당연히 크게 놀라며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럼 앞으로 여기서 가르침을 사사하는 건가…?”
조심스레 묻는 그녀의 말에 범은 걱정할 것 없다 말해주었다.
‘정말 얼떨결에 제자가 되어버렸군.’
다행인 것은 그녀는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스승이 아니었고, 가르침에 관한 것도 방임주의에 가깝기에 천범은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기연이라 볼 수 있는 완연한 득이니 더 없이 기뻤다.
아직 의심을 거두기는 어렵지만, 귀찮다는 듯 할 말만 전하고 내버려 두는 것을 보면 우려하는 일도 생기지 않을 듯 했다.
‘그러고 보니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내게 뭔가를 물을 거라 했는데….’
그게 사하를 말한 거였나?
조금 의아했다.
“근데 너 왜 탈형할 수 있는 게냐.”
“갑자기 되던걸? 신통도 쓸 수 있게 됐고… 아마도 개계오경의 금제가 풀린 것 같아.”
사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개계오경 전역에 퍼져있던 금제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나 때문에 금제를 손본다 하더니 지금 바로 고치는 건가.’
수결을 맺어 신식을 좀 더 광범위하게 펼치려던 그는 손가락 하나에 자그마한 상처가 있음을 보았다.
기운을 집중시키자 상처는 금세 아물었으나 범은 크게 동요했다.
‘피를 조금 가져가셨군.’
눈치 채지도 못하게 손가락을 베어 피를 가져갔을 줄이야.
그녀의 신통이 얼마나 심후한지 가늠할 수 없으니 허탈감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봉황의 깃 조각도 내달라 할 걸 그랬나.’
제자에게는 후한 편이니 달라했으면 줬을지도 모르겠다.
개계오경을 떠나기 전에 만날 수 있다면 부탁을 해봐야겠다.
수결을 맺어 전역에 신식을 펼친 천범은 정말로 개계오경에 모든 금제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개계오경에 꽤 많은 수의 신선이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략 삼천 명 정도의 신선들이었는데 대부분 개계오경의 금제가 걷힌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후….”
대략적인 상황을 가능한 천범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여러 일이 일어나 행동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작공과는….’
혹시 모르니 개계오경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서 취하는 게 맞다.
이곳에서 취했다가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하면 아니 되지 않던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천범의 스승인 신위의 흉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게다가 스승님의 깨달음을 때려박은 열매라면 그것을 흡수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하니 이곳에서는 아니 됐다.
어디 마땅한 곳이 없을까 했지만, 개계오경 근처는 붕계와 인접한 지역이었고 지난 오십 년간 마주쳤다 하면 말도 섞지 않고 다짜고짜 공격해오는 터라 적당한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수계 진영 근처로 가야 적당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겠군.’
미세파의 임무도 범이 대신 완수해 줬으니 개계오경에 더 있을 필요는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여기 더 있어서 스승에게 여러가지를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인연이나 검은 것과 달무리는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지금 알게 된다 하여 뭔가가 바뀌지는 않을 테니.
천범은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사하를 보고는 픽 웃었다.
“본신으로는 안 변하는 게냐? 타고 다니기 딱 적당했는데.”
“내가 네 탈 것인 줄 알아?! 네 앞에서는 절대로 안 변할 거야!”
삐쳤는지 홱 고개 돌리고 토라진다.
그 모습이 퍽 어여뻐 범은 사하의 뺨을 살며시 꼬집고 놓았다.
“가자. 금제가 사라졌으니 개계오경은 큰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왜?”
“그야, 여러 종의 신선들이 그동안은 금제 때문에 잠자코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으니 묵혀놓은 감정이 가만히 있겠느냐. 터져 나오겠지.”
콰앙!! 쾅!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 기서 굉음이 들려오며 기민한 기운의 파동이 느껴졌다.
한곳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신선의 기운이 느껴지고 살기마저 허다했다. 그동안 금제 때문에 마음대로 주먹질 한 번 못해 봤던 이들을 막을 금제가 사라지니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떠나는 게 좋겠다.”
할 일은 모두 마쳤다.
조금 아쉽기는 하나 더 있어서 득 볼 것도 없으니 떠나는 게 낫다.
툭.
그때였다.
천범의 기감을 건드리는 누군가가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범의 곁으로 다가온 사내는 선이 굵고 덩치가 다부졌다.
사내 중의 사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천범은 그를 느끼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원형신선!’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널 찾을 것이다. 네게 무언가를 묻거든 그렇다 말하거라.]스승의 말이 선명하게 되뇄다.
천범은 긴장한 채로 사하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답을 기다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네게 그년의 냄새가 나는군.”
사내는 유심히 눈살을 좁히며 범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긴 게 꼭 기생오라비 같은 게… 그건가? 그년의 기둥서방.”
장난스러운 말투와 행동.
허나 동시에 그의 기백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천범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