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64)
낭선기환담-463화(464/600)
낭선기환담 – 2부 173화
눈부신 둔광을 뿌리며 하늘을 날아가던 천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개계오경 여기저기서 살기가 들끓어 올랐다.
‘마선들도 여럿 있었군.’
이전에는 금제 때문에 가만히 뒀으나 그것이 사라지자 가만히 둘 수 없다는 듯 부딪치기 시작했다.
미세파가 있을 동쪽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범아!”
“알고 있다.”
미세파의 군대 앞에는 마선 몇몇이 앞을 가로막고 대치하는 중이었다.
“수계의 수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필시 전쟁에 관하여 오경계주께 도움되는 물건을 거래하러 왔을 터.”
“본래라면 두고볼 수밖에 없을 터이나 금제가 사라진 지금은 아니지.”
마선들의 말에 미세파는 날카롭게 기운을 끊어 올렸다.
“변절자 놈들이 감히! 수계를 저버리고 붕계로 넘어간 네놈들에겐 일말의 수치도 없단 말이냐!”
“우린 이제 붕계의 마선일 뿐!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 쳐라!”
“저 변절자 놈들을에게 수계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검과 창이 난무하고, 온갖 법기가 뒤섞여 요란한 소음을 자아낸다.
더 지체하지 않았다.
쾅!! 하늘에서 금색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천범이었다.
“문무관장!”
때를 잘 맞춰 왔다는 듯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천범은 곧장 품에서 옥함 하나를 내던졌다.
탁, 받아들어 살피자 작은 단도가 들어 있었는데 손가락만 한 크기라 도저히 살상용 도구는 아닌 듯했다.
“대가로 받았다. 개계오경에 더 있을 이유는 없어졌어.”
“죽어라!”
턱!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마선의 목을 턱 쥐어 그대로 땅바닥에 내팽개친다.
골통을 발로 밟자 단숨에 절명했다.
“!”
함께 달려들던 마선들은 범의 패기에 짓눌려 주춤거렸다.
“개계오경의 금제가 풀렸다. 한동안은 마선 놈들이 계속 시비를 걸어 올 게야. 할 일을 마쳤으니 어서 여기를 떠나는 게 좋아.”
스르륵, 허공에서 꽃잎이 흩날리며 범의 손에 검 한 자루가 들려졌다.
“자네는?”
“난 할 일이 있어.”
촤르르륵!
수결을 맺자 손에 쥔 검이 금색 꽃잎으로 변해 사방으로 만연했다.
“막아라!”
평범한 신통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마선들 중 향산의 기운을 풍기는 마선 몇이 소리쳤다. 그러자 몰려있던 수십의 마선들이 기괴한 목소리로 마치 불경을 옮는 듯 주술을 읊었다.
“사하. 너도 미세파와 동행해라.”
“!”
“슬슬 내 부하들이 병상을 털고 일어날 때가 됐다. 수계로 향해 그들을 모아 날 기다려. 내가 없으면 또 괜한 짓을 당할지 모르니.”
후해와 사비 또한 데려가라 말하고는 천범이 기운을 흩뿌렸다.
쿠구구구궁!
“내가 시간을 끌지. 오래 싸워봤자 이곳은 붕계 근처이니 우리에게 좋을 게 하나 없다. 먼저 가라.”
마선들이 보호 법기와 진법을 이루며 결계를 쳤다.
순식간에 만들어낸 결계 치고는 꽤 단단해 보였다. 붕마기가 상당한 마선의 결계였기에 보통의 신통으로는 쉽게 깨트릴 수 없을 듯 했다.
허나 천범이 냉소하며 두 팔을 펼치니 하늘 위에서 다섯 개의 극산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질량 자체가 엄청난 오행극산을 단숨에 하늘에서 떨어뜨리니 마선의 결계도 속수무책이었다.
“컥!”
“크억!”
경지가 낮은 마선들은 주술을 외우 다가 엄청난 무게와 충격에 큰 내상을 입어 피를 토했다.
그 즉시 결계가 흔들렸는데 천범은 때를 놓치지 않고 미리 흩뿌려 놓은 화란의 꽃잎을 움직였다.
“태화만등.”
꽃잎은 순식간에 연꽃 화등으로 변해 극양의 기운을 품었다.
“피해라!!”
화들짝 놀란 마선이 소리쳤으나 이미 한 발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연쇄적으로 태화만등이 폭발하여 금천지화가 일대에 만연했다.
“어서 가라!”
천범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미세파와 수계의 상선들에게 소리쳤다.
“…무운을 빌지.”
미세파는 그 말을 남긴 채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사하는 범과 함께하고 싶어 했으나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후해와 사비를 챙겼다.
그가 가려는 공각춘은 필시 위험한 곳임을 모르지 않다.
탐화정도 되는 충선이 승선을 위해 많은 원기를 흡수해야 한다는 뜻은 많은 살생이 필요하다.
그런 곳으로 추천된 장소가 평화로울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빨리 와야 한다.”
“부하들을 부탁하마.”
둔광을 일으키며 떠난 이들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합장하여 선기를 끌어 올렸다.
지면에 떨어진 오행극산이 각각의 색으로 빛나며 천범과 공명하자, 오행의 빛을 밝히며 떠올랐다.
천범의 등 뒤로 오행극산이 떠올라 육십사괘의 모양으로 변모한다.
전신의 힘이 들끓고 오감이 보다 선명해지며 주변 만 리의 모든 것이 상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후우….”
오행육십사괘신.
오랜만에 느끼는 전능감이었다.
퍼엉!
그때였다.
돌연 허공의 공간이 열리며 마선 하나가 창을 찔러왔다.
은술과 공간 신통에 조예가 깊은 마선이었다.
“죽어라!”
범은 조금 놀랐지만 찔러 들어오는 창날을 잡아 부러트렸다.
툭. 흉흉한 붕마기가 가득 담긴 창 날이었으나 너무도 쉽게 부러지는 자신의 법기에 이름 모를 마선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들고 있는 창이 조금 조약하군.”
곧장 쌍멸을 꺼내 놈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허나 놈은 죽지 않고 반쪽이 된 채로 뼈다귀로 변했는데, 수상한 변화에 단령금정을 펼치자 놈의 본체는 공간을 연이어 뛰어넘으며 달아나고 있었다.
가공할 속도로 달아나는 중이다.
둔술에 일가견이 있는 천범이었으나 놈을 쫓기는 어려울 듯했다.
허나 저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
하여 주먹을 파악 말아쥐었다 피자, 그의 손에는 새하얀 반지가 떠올랐는데 그것을 손가락에 끼우자 세상이 회색 빛으로 바뀌며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흘렀다.
충계에서 얻은 시간 법칙 연자보.
심시묘였다.
휙.
순간 천범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금 하늘 아래 나타났을 때에는.
“크헉!”
수십만 리 바깥에서 마선의 목이 달아난 후였다.
수십만 리를 순식간에 날아와서 그런지 몸에 걸리는 부하가 조금 있었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지칠 뿐이었다.
“대충 정리된 것 같군.”
마주쳤던 붕계의 마선들은 대충 정리했으니 이대로 천범 또한 공각춘으로 향하면 될 듯 했다. 신식을 펼치니 몇몇 거슬리는 기운들이 있었으나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공각춘이 어디인지 묻지 못했군.”
미세파에게 물어보려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묻지 못했다.
범은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검은 손가락 뼈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다. 금천지화를 피워 뼈를 태우자 안에서 기괴한 비명이 피어나왔다.
방금 목이 잘린 마선이 뼈 속에 분혼을 숨겨둔 것이었다.
다른 수선이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만, 단령금정을 지닌 천범으로서는 도저히 모를 수 없었다.
“공각춘을 아는가.”
[아, 알고 있습니다!]마선의 분혼은 붕마기로 뒤덮여 있어 멀리서 보면 검은 먹물과도 같은 생김새였다.
“잘 됐군. 만일 거짓으로 안내한다면 윤회도 하지 못하게 영멸 시켜줄 테니 알아서 잘 하는 게 좋을 걸세.”
두려움에 떠는 마선의 분혼을 손에 쥔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개계오경은 아비규환 자체가 되어 난리가 나고 있었다.
“미세파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는 녀석이고, 실력 또한 출중한 놈이다.
개계오경에 오면서도 충분히 미세파의 판단력과 실력을 보았다.
성격상으로 잘 맞는다 할 수는 없으나 수선으로써의 놈은 믿을 만하다.
“그 정도도 못해줘서는 곤란하지.”
팔찌처럼 손목에 감아져 있는 탐화를 쓰다듬은 범은 이내 귀걸이로 변해있는 여위를 건드렸다.
스르륵.
범의 몸이 허공에 스며들며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 * *
십 년 뒤.
공각춘(空殼春).
공각춘이라는 지역은 개계오경에서 북서쪽 방향에 자리한 곳이다.
붕계와 인접한 곳이기도 했으나, 본래 붕계에 속하는 지역은 아니었다.
본래 상계에서도 몇 되지 않는 절대 법칙을 갖고 있는 거대한 신목이었으나 어느 심후한 내력을 지닌 마선에 의해 지역 채로 옮겨져 기운을 크게 잃고 죽은 신목이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공각춘이었다.
공각은 비어 있음을 뜻하고, 춘은 나무를 뜻하니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허나 그것뿐이었다면 천범이 힘들게 잠도 자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속이 비어있는 썩은 나무라 해도 본래는 절대 법칙을 지니고 있던 신목.
그렇다 보니 크게 기운을 잃은 후에도 썩을지언정 죽지 않았다.
이 나무는 하도 기이하여 대흉목이라 불렸는데, 기괴한 현상 중 하나가 수많은 선충과 환수를 불러 모은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원리로, 그리고 이유로 선충과 환수를 부르는지 몰라도 그 특수성 때문에 종종 환수나 선충을 잡아 부리는 충사나 수사들이 조심스럽게 공각춘에 나타나고는 했다.
“왜 조심스럽게냐! 라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선충과 환수의 수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기 때문입죠!”
공각춘 근처에 마련된 작은 누각에 모인 마선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입을 연 마선은 주변에 모여있는 이들을 향해 목을 가다듬고 설명했다.
“공각춘의 충수(蟲獸)들은 대흉목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력한 힘을 지녔지요. 아마도 대흉목에서 나오는 어떠한 기운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왜 아무도 밝히지 못한 것이오?”
“공각춘이라 이름 붙인지가 몇 만 년인데 왜 그것도 그렇군.”
“자네가 몰라서 그런 건 아니고?”
고개를 갸웃하자 앞서 설명하던 마선이 쯧쯧 혀를 찼다.
“그거야 당연히 대흉목에 살고 있는 선충과 환수, 그러니까 충수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하기 때문이지 왜 그렇겠소!”
과장되게 말하자 모여 있는 마선들은 영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봤자 선충과 환수일 뿐인데 말이오? 향산 신선님들 몇 분만 나타나셔도 다 정리되지 않겠소?”
“쯧쯧, 그럼 왜 여태껏 대흉목이 저리 꿋꿋하게 버티고 있겠소? 당연히 어쩌지 못했으니 멀쩡히 있겠지!”
그리 말하자 그제서야 감탄을 자아내며 믿는 눈치다.
“선충이나 환수들은 강해봤자 상선을 넘지 못하는데, 이곳의 충수들은 대흉목의 기이한 기운 때문에 그렇게 강해진 건가 보군!”
“바로 맞췄소! 그 중에서도 대흉목을 차지한 충수들의 왕이 살고 있는데 놈은 향선 열댓이 덤벼들어도 감당 못할 만큼 강하다 하더이다!”
마선들은 차마 못믿겠다는 투로 웅성웅성거렸다.
이곳에 있는 마선들은 대부분 상허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럼 우리는 괜찮은 거요? 난 특수한 공법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 공법의 참으로 현묘하여 수행법 또한 간단치 않소. 하여 희귀한 환수를 구해야만 하는데 도통 구할 수가 없어 이곳을 마지막이라 여기고 온 것이오.”
한데 향선 열댓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놈이라면 상선인 그들로서는 놈의 입김만으로 죽어나갈 테니 무서워서 숲으로 들어갈 수나 있겠냐는 소리였다. 이곳에 모인 상선 대부분은 자신의 수행이나 보신을 위해 찾아온 것인데 도리어 충수 때문에 죽게 된다면 허망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 말을 콧구멍으로 들으셨구만, 대흉목은 공각춘 중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충수왕이나 강한 충수들일수록 중심에 있소. 하여 우리들은 외곽 쪽의 충수들을 잡거나 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단 말이오.”
다만.
“대흉목이 뿌리는 흉분(凶粉) 때문에 공각춘에 오래 있으면 광증이 일어나니 이곳에서 방비를 하고 가시는 게 좋지.”
그러면서 줄곧 공각춘에 설명하던 마선은 품에서 부적을 꺼내며 이것이면 흉분을 막을 수 있다며 값비싼 금액에 부적을 팔기 시작했다.
공각루에 모여 있던 대부분의 상선들이 부적을 샀으나,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한 사내만이 부적을 사지 않았다.
점원은 그를 보고 부적을 팔랑였다.
“필요 없소? 여기가 아니라면 흉분부는 구할 수 없을 터인데.”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그의 말을 듣는 척도 안하며 공각춘의 입구로 걸어갔다.
공각루의 점원은 가끔 저런 자가 있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객기 부리다 뒤지는 거지.”
쯧쯧 혀를 차던 점원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돌아가려다 멈칫했다.
“내 부적 어디 갔지?”
사내에게 흔들어 보였던 흉분부가 분명 손에 들려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