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67)
낭선기환담-466화(467/600)
낭선기환담 – 2부 176화
잠들어 있는 수정 위강 새끼를 허공에 띄워놓고 천범은 검을 휘둘렀다.
촤악.
쿠구구궁!
거목 한 그루가 쓰러지며 그 뒤에 있던 거미의 외관에 여인의 형상을 한 충수가 반으로 갈라졌다.
한데 범은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내 핏물을 털어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제까지 삐져있을 게냐. 검로도 자꾸 이상하게 빗겨가고.”
범은 하 선자의 부탁으로 위강 새끼를 들고 사대충수들이 있을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간히 나타나는 충수들을 상대하려고 화란을 들었는데 자꾸만 검로가 비틀어지고 빗나가 애를 먹는 중이었다.
아마도 화양의 일 때문에 아직도 삐져 있는 듯했다.
“자꾸 그러면 나도 나찰을 쓸 수밖에 없다.”
귀음나찰 예후로 다시 태어난 구환도는 옛 이름을 지우고 나찰이라 명명한 뒤였다.
그녀 또한 다시 태어났으니 새 이름을 지어 달라 청하여 범은 나찰이라 명한 지 오래였다.
-그러시던지.
콧소리와 함께 화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대답을 하는 걸 보니 화해의 여지는 있어 보였다.
“내 어찌 너를 두고 그러겠느냐. 저 하늘에 별을 갖고프다하면 별을 가져다 줄 것이고, 달이 갖고프다하면 달을 가져다주어도 부족하여 더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거늘.”
-얼씨구.
씨알도 먹히지 않는 듯하다.
천범은 괜히 머쓱해 들고 있는 화란으로 무성히 자란 풀떼기를 슥삭 잘랐다.
한마디 더 뭐라 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는 걸 보니 금세 화를 풀어줄 생각은 없는가 보다.
‘점점 더 짙어지는 걸 보면 길을 잘못 들어서지는 않은 거 같은데.’
길을 나아갈수록 흉분이 점점 짙어져 서서히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라색 가루가 이제는 거의 안개처럼 숲 전역을 뒤덮고 있었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천범은 오감을 기민하게 만들어 놓고 천천히 길을 거닐었다.
혹시 몰라 현각불괴를 대기시켜놓았고 오행육십사괘를 발동시켜 어떠한 놈이 습격해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지 오래였다.
‘흉분이 짙어질수록 위험도도 올라간다만….’
느껴졌다.
천범의 팔목에 감아져 있는 탐화의 기운 또한 강해지는 것을.
흉분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탐화의 기 또한 강해졌다.
아마도 탐화가 이 흉분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인을 계속 두고 보실 겁니까.
숲길을 헤쳐 가는데 돌연 화란이 하 선자에 대해 물었다.
“내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으니. 아직은 두고 볼 일이지. 알다시피 향선 후기에다 심후한 공력을 지닌 마선이니 향선 초기의 나로서는 몸을 사려야 하지 않겠느냐.”
능청스럽게 떠드는 말투에 화란은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고요. 그 생글거리며 웃는 마녀 같은 것이 산군에게 미혼술을 부리지 않았습니까.
“음….”
그렇기는 했다.
진심으로 마음먹고 부린 것은 아니었고 장난삼아 했던 거 같다.
부탁해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내용인데 굳이 미혼술을 티 나게 펼쳤던 것은 아마도….
“마선들끼리 통하는 장난 아닌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너무 대놓고 쓰기도 했고, 정말로 미혼술로 자신을 제 마음대로 이용하려 했다면 더 나은 때와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하 선자를 완벽히 신용하지는 못하고, 그녀 또한 그러하니 아마 시험해본 것이겠지.”
아직까지 천범의 판단은 그러했다.
물론 하 선자의 장난질이 여기까지라면 대충 넘어가줄 수 있으나, 선을 더 넘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탐화도 있고,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허나 그녀가 그러지 않겠다면 나 또한 마음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지.”
-여자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니래도. 그녀는 나보다 오래 살았고 공각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 좀 더 두고 보고 있는 게다. 란 너도 탐화를 딸이라 부르고 있다면 내 마음을 모르지 않잖아.”
-뭐… 그거야 그렇긴 합니다.
공각춘은 신비로운 곳이다.
대흉목이 뿜어내는 흉분.
그것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력해지는 충수.
그리고 대흉목을 차지한 충수왕.
탐화의 승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와중에 대흉목과 관련된 충수들의 이야기는 범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잘만하면 그동안 탐화를 서운하게 했던 것들을 모조리 지워내고 완벽하고 알찬 승선을 이루어줄지도 모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어차피 탐화가 승선을 끝내기 전까지는 천범도 공각춘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이곳, 공각춘.
사대충수와 충수왕.
마지막으로는 이 흉분에 관하여 범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탐화는 보통 충선이 아니고, 천겁도 빗겨가는 탐의 핏줄을 지녔으니….
‘공각춘의 충수들이 기이할 정도로 강한 현상이 탐화의 승선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로울지 해로울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탐화의 반응을 보자면 이로운 쪽에 해당될 것 같았다.
“그래, 더 가보자꾸나.”
범은 탐화를 쓰다듬으며 더 깊이 숲속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항상 걸려 있던 귀걸이 여위가 없어진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 * *
“오! 이런 곳에 계셨군요. 하 선자!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천범을 숲속으로 보낸 하 선자의 곁에 웬 사내가 다가왔다.
친근한 어투와는 달리 그렇지 못한 눈빛을 보냈는데, 그는 앞서 수정 위강에 쫓겼던 자 수선이었다.
그를 본 하 선자는 빙긋 미소 지으며 반가워했다.
“살아 계셨군요? 다행이에요.”
자기가 은술 법보에 불을 질러 놓고도 아주 뻔뻔한 낯짝이다.
허나 자 수선은 더 탓하지 않고 대규모로 그려져 있는 진법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일대 삼백 장 정도를 모두 빼곡하게 그려 넣은 방대한 마진이었다.
이전과 달리 중심에 수정 위강의 새끼는 없었고 기묘한 암석과 다른 세 가지의 조각이 둥둥 떠 있었다.
“절 버리고 다른 사내와 가시더니, 어찌 일은 잘 풀리고 계십니까?”
“물론이죠. 자 수선이 안 계셔서 그런지 더 수월하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유 수선 홀로 보내셨습니까? 수정 위강의 새끼를 미끼로 삼을 거라는 말과 함께?”
“예, 뭐 문제될 게 있나요?”
하 선자는 더 해보라는 듯 법진을 그려 넣는 것도 멈추고 허리를 펴 자 수선을 보았다.
“허나 하 선자. 수정 위강의 새끼따위로 사대충수가 여기까지 올 리가 없는데 왜 그런 거짓을 말하셨습니까.”
“거짓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죠.”
의미심장한 어투다.
자 수선은 흥미롭다는 듯 하 선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대충 알겠다는 듯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사대충수가 고작 수정 위강의 새끼를 탐내 숲 밖으로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자기들끼리 영역다툼을 수만 년째 이어가고 있는 놈들이 겨우 손바닥 위에나 올라올 새끼의 살점에 혹해서? 공각춘을 알지 못하는 상선들이나 속아 넘어갈 말입니다.”
“그래서?”
하 선자는 더 말해보라며 부추겼다.
“허나 하 선자께서 그것을 빌미로 유 수선을 사대충수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으니, 미끼는 수정 위강이 아니라 유 수선이지 않겠습니까.”
짝, 짝, 짝.
하 선자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박수쳤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역시 저와 오랜 세월을 함께 다니신 분답게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내시는군요.”
“하 선자의 심후한 심계를 제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그저 어깨 너머로 얼추 예측만 할 뿐.”
하 선자와 자 수선은 오랜 세월 동거동락한 마선이었다.
물론, 하 선자와 같이 자 수선 또한 향산의 경지에 올라있는 자였다.
“헌데 미혼술을 쓰신 건 왜 그러신 겁니까. 괜히 의심을 살 수 있는 부분 아니었습니까?”
“의심하라 그런 겁니다.”
“의도하신 거였군요.”
미혼술을 걸었음에도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미혼술에 걸린 척하며 아마도 지금쯤은 절 의심은 하나, 동시에 방심 또한 하고 있을 겁니다.”
“덫이었군요.”
향선 정도는 걸리지 않을 미혼술을 일부러 걸며 의심하게 한 뒤, 그것으로 하여금 방심을 유도한다.
치밀한 수법이었다.
“허나 제아무리 그라도 사대충수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면 하 선자의 속셈을 알아차리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요. 사대충수는 워낙 흉포하고 신선의 기운에 민감하니까요. 저희와 막역한 동료들도 모두 사대충수에게 잡아먹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사대충수는 신선을 잡아먹어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힘을 키우는 기이한 족속들. 하니, 그 어떤 놈들보다 신선의 기운이 민감하게 반응하니….”
천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대충수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대충수의 이목을 끌게 되면 쉽게 도망치지 못할 터.
자연스럽게 원치 않아도 하 선자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대충수를 불러내 한 마리라도 잡게 된다면 그야말로 운수대통.
“그는 자 수선께서 단순한 상선이라 알고 있으니 상대함에 어려움은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탁월한 혜안이십니다. 하는 행동거지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보니 붕계의 수선은 아닌 듯 보이더군요.”
“아마 이계의 수선이겠지요. 철저히 기운을 가리고 있어 알아볼 수는 없으나 붕계의 마선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낭선이라도 공각춘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고 이 시기에 선살전에 차출되어 나가지 않은 것만 봐도 흔치 않은데 모를 수가 없지요.”
그들은 이미 천범이 붕계의 마선이 아님을 짐작해낸지 오래였다.
어차피 그들에게 천범은 향선 초기의 수선.
구태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사대충수.
“저희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이만하고도 팔천 년이 지났습니다. 그날 모든 동료들이 사대충수들에게 갈가리 찢겨 잡아먹히던 날. 자 수선도 보셨지 않습니까. 그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을…!”
하 선자는 흥분이 가득 찬 얼굴로 거친 숨을 토해냈다.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껴안고 비음을 흘렸다.
“저는 갖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사대충수를 죽여 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그들을 복속시켜 충수왕에게 향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황홀할까요. 이제껏 보지 못했던 하늘이 제 눈앞에 열리게 될 겁니다!!”
자 수선은 십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 강인한 힘을 흡수한다면 원신을 제 것으로 하여 자신만의 원칙을 이루고 원형의 경지에 오를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원칙!
원선!
듣기만 해도 황홀한 단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예, 당연합니다. 이전에 죽어나갔던 이들처럼 허망하게 죽기는 싫으니. 한데 그가 이목을 끌어 네 마리 전부를 데려오면 어떡합니까?”
“한 마리만 데려와도 좋지만, 둘, 셋, 모두를 데려와도 상관없습니다.”
오랜 세월 그들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했고 서로 싸움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하 선자다.
사대충수는 서로간의 영역에 민감하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녀는 그런 점을 십분 이용하여, 몇 마리가 튀어나온다 해도 기지를 발휘하여 놈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몇 놈이 오든… 이번에는 모두 죽이고 말 겁니다.”
그게 충수이든 신선이든.
쿠웅!
숲이 들썩였다.
“이제 슬슬 오는군요.”
쿠웅!
쿠웅!
쿠웅!!
그 거대한 진동 속에서.
나무에 달라붙어 있던 투명한 무언가가 사사삭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