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71)
낭선기환담-470화(471/600)
낭선기환담 – 2부 180화
“정말 그게 사실인가?”
“아아, 그렇대도. 내 얼마 전에 마령곡 놈들에게 쫓기다 공각춘에 갔었는데 그곳을 뒤덮었던 지네들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그곳에 있던 숲이며 심지어 대흉목으로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모조리 없었다고! 내가 꿈을 꾸는 건지 의심했었다니까?”
“술 처먹고 헛꿈 꾼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니까 그러네!!”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마선들은 이내 공각춘으로 가보고 나서야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만….”
충수들이 창궐했던 공각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는 지네가 모조리 뜯어먹고 사라졌다 하고, 누군가는 고명한 신선이 공각춘을 통째로 가져갔다고도 떠들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어 모두가 혀만 찰 뿐이었다.
* * *
한편.
누군가가 공각춘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또 다른 누군가는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잡아와라! 잡아와!! 오랜 세월 수없이 공들인 공각춘의 원천강을 훔쳐간 도둑놈을 당장 내 앞에 데려와!!”
그는 전신에 살은 없고 뼈만 붙어있는 해골이었는데, 그의 노호성에 주변에 있던 마선들 모두가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돈랑(燉狼). 네가 잡아와라.”
“만골님의 명을 받듭니다.”
돈랑이라 불린 사내가 예를 다하고 사라지자 그제야 만골이라 불린 이는 이를 딱딱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걸 어찌 가져갔을까… 놈의 신통은 만보시대를 넘어 상고시대 탐의 혈통이 아니고서야 어찌할 수 없었을 텐데. 거참… 제기랄이군.”
* * *
같은 시각.
공각춘의 원천강이며 동시에 탐의 혈통을 이어 충수왕을 잡아먹은 도둑놈 일행은 어느 객잔에서 배터지게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사내는 한쪽 팔이 없는 듯 소매가 펄럭였고, 열심히 음식을 쓸어 먹고 있는 소녀는 누구나 한 번 흘깃 볼법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 둘은 당연히 천범과 탐화였다.
탐화는 전보다 더 성숙해졌으나 아직 아이의 티는 벗지 못했다.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였던 외양에서 열넷 정도 되어 보이는 정도였다.
“그리 먹고 또 들어가느냐.”
“응!”
“그래, 많이 먹거라.”
천범 일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둘로 엇갈렸다.
사이좋은 부녀지간으로 보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산처럼 쌓아놓고 음식을 먹고 있는 소녀를 괴이한 눈으로 보는 이들로 갈라져 있었다.
물론, 저 정도의 음식을 시켜대는 사내의 재물에 눈독을 들이지 않은 이도 없지 않았다.
뭣 모르는 동네 소선들이 시비를 걸어 돈 주머니를 탐내봤으나 은연중 펼쳐져 있는 결계에 가로막혀 무엇 하나 해보지도 못했다.
몇 번 결계에 주먹질을 해보다가 자기 주먹이 깨부숴지자 금세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쓰려고 익힌 공법이 아닌데 말이지.”
방금의 결계는 이번에 새롭게 익힌 일심만천옥경이었다.
신식에 자신의 기운을 담은 옥경을 만들어내는 보호 신통이다.
은은한 금빛을 띈 천범의 일심만천옥경은 총 삼성 중 일성의 성취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 견고함은 현각불괴를 뛰어넘어 있었다.
그러니 소선 놈들 주먹질에는 끄떡없는 것이 당연했다.
“고생이 많았으니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시켜도 된다.”
탐화는 공각춘에서 모든 충수들을 잡아먹고 향산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
본신은 전보다 세 배는 더 거대해졌고 흉흉한 기운 또한 남달라 범이 직접 기를 감추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 밖에도 스승에게 받은 어령태행결의 구결이 담긴 과실을 탐화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탐화의 몸속에는 이제 어령이란 것이 생겨 한 입에 삼켜지면 웬만해서는 나올 수 없는 봉인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정말? 그럼 이거랑 이거랑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그래그래. 내 딸이 먹고 싶어 하는 것 좀 더 내오게.”
그러자 점소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말하기를.
“죄, 죄송하지만 선사님. 저희 객 잔에 오늘 치 재료가 벌써 떨어져서 더 내올 요리가 없습니다요….”
점소이는 굉장히 두려움에 떨며 사죄하듯 말했다.
고명한 선사로 보이는 사내와 그 딸의 경지가 심상치 않으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탐화야 다른 곳으로 가자꾸나.”
“여기 음식 맛있어. 다른 곳도 맛있겠지?”
“분명 그럴 게다.”
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돈주머니를 탁자에 떨구었다.
“부족하진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객잔 밖으로 나온 천범은 주변 이들에게 물어 다른 객잔을 찾았고, 하루 사이에 몇 개의 객잔을 더 거덜 내고 나서야 탐화는 만족스럽게 천범의 등에 업혀 잠을 청했다.
“도와드릴까요.”
“됐다.”
화란이었다.
범은 외팔로 탐화를 굳건히 안아 들고 천천히 길을 거닐었다.
탐화를 안아드는 것이야 한 팔로도 충분했으나 남이 보기에는 영 불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째서 팔을 만들지 않으십니까.”
신선에게 훼손된 육신을 다시금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비록 오랜 시일이 걸릴 지라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다른 것을 이어 붙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허나 천범은 지난 사백 년 동안 잘려진 팔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란의 물음에 잠시 허전한 소맷자락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입가를 둥글게 했다.
“방심의 결과다. 한동안은 이렇게 놔두고 싶구나.”
“사백 년이나 지났습니다. 탐화도 향선이 되었으니 이제 길을 떠나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아직 붕계 근처의 땅이다.
지금은 마선으로 위장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선살전은 여전하고 범은 수계의 수선이다.
이제는 슬슬 돌아가야 할 때.
그럴 때 한 짝밖에 없는 팔로는 수결을 맺기도 어렵고 온전한 힘을 펼치기가 번거로울 터.
한데 저런 태평한 소릴 하고 있으니 란은 애가 타기만 했다.
“팔이 붙어 있는 것은 여지껏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날이다. 한데 붙어 있던 게 없으니 꽤 새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구나. 물론 불편하기도 하지.”
“그럼 어서….”
“때가 되면 그러하겠다.”
아무래도 그의 고집을 꺾기란 불가능할 듯 싶었다.
“무겁다 하셔도 안 도와줄 겁니다.”
“굳이 뭐….”
도움 받을 필요는 없었다.
범은 등에 담화를 업고 란과 함께 길을 거닐었다.
붕계 인근의 이름 없는 산골.
그 땅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간간히 수선들이 지나다니며 오가는 것 말고는 범인과 다를 바 없는 소선들이 나고 자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번엔 어디로 가십니까.”
“글쎄. 탐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백 년간 꼼짝 없이 공각춘에서만 지냈으니 좀 더 둘러보다 가고 싶구나.”
떠나게 되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전쟁터에서 지내야 할지 몰랐다.
란은 솔직히 선살전이든 뭐든 신경 쓰지 말고 하고픈 대로 살라 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질 거고, 속세에 빠져들어 수선을 잊어보는 일도 괜찮겠지.”
“그렇네요. 탐화가 먹을 것을 좋아하니 객잔을 열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산군은 요리에 필요한 식자재들을 사냥해오고 저는 그 요리를 손님들에게 나르고요.”
“글쎄, 그러면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전에 탐화가 다 먹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허나 상상만으로도 참 한가롭고 행복한 나날이 될 것만 같았다.
“객잔은 모르겠고… 약재원 같은 것은 어떨까.”
“그 또한 나쁘지 않지요. 산군이 지닌 선초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도 벅찰 정도니까요.”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래볼까.”
“…진심이십니까?”
“아직은 여유가 있을 테니. 그 또한 나쁠 것 없지 않겠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정말로 괜찮냐 물으니 천범은 자조적인 웃음을 내보였다.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런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어 마음이 심란하기라도 한 것일까.
“하긴, 팔 한 짝이 잘렸고 공각춘에서 여러 공법을 배워 벽을 하나 뚫었으니 잠시 쉬어도 나쁠 것 없지요. 이곳에 있으면 여러 이야기가 들릴 것이고… 수선은 잠시 잊고 평범한 삶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사내다. 평범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이 참에 아주 좋은 기회가 되리라.
“돈은 넘칠 정도로 많으니까요.”
“그렇지. 돈이야 많으니….”
“한데 걱정 안 되십니까.”
“무슨 걱정.”
“사하님이요.”
“글쎄….”
여지까지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란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글쎄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어째서 그럽니까. 사하님의 전생은 산군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라 하여 여지껏 몇 번이고 그녀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다시금 죽음을 기리고 싶지 않다 하시면서.”
그랬던 천범이다.
“이제 은혜는 다 갚은 겁니까?”
“목숨 빚을 어찌 갚을 수 있을까. 내 무엇을 한들 갚지 못할 것이야.”
“그럼 왜요?”
왜라는 말에 천범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빛은 현기가 맴돌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그것을 몇 번 걷어내 주었다 한들 영원불멸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
“…그래서 여지껏 지켜주셨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그랬었지… 허나 죽음이란 단어가 내 속에서 변화하였다. 그러니 궁금하더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죽음이 정녕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한 참이고, 고뇌하여 정의를 새로 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필요성.
란은 그 점에 주목했다.
그는 아마도 죽음에 대한 고찰이 자신의 수행의 진전에 큰 연관성을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의 속에서 죽음이란 것을 새롭게 정의내리지 않는 한, 그의 수행은 더 이상 진일보하지 못하리라.
“새로 익힌 공법과도 큰 연관이 있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그러하다.”
“….”
그가 익힌 공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허나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주가 되는 것이라 한다면 단연 벽공부촉멸이라 하는 시간 법칙이 깃들어 있는 공법이었다.
“시간은 많은 게 될 수 있더구나.”
누군가에겐 세월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경험이 될 수도, 다른 누군가는 죽음이 될 수도 있는 게 시간.
시간은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또 많은 것을 무로 되돌린다고 한다.
란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허나 그가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유는 대강 알고 있다.
앞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으니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향선 중기가 되셨으니….’
더 그럴지도 몰랐다.
“어쨌든 지금 하고 싶으신 건… 일반 소선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보고 싶으시다는 거죠? 일종의 유희?”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뜬금없기는 합니다만 잠깐 정도는 괜찮겠죠. 짧은 명을 사는 소선들에게는 백 년도 긴 시간이니.”
란은 많은 것을 생각하는 듯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심했다.
그가 죽음에 관하여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게 됐을 때.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게 될까.
화란은 죽음에 익숙한 자들의 말로를 모르지 않는다.
‘감정의 마모.’
그것이 가져다 줄 변화는 열띤 무언가는 아니리라.
반대로 차갑고 냉혹한 것이리라.
허나 란은 그가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결정한들 그의 곁에 남을 것이다.
‘여지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변함없으리.
* * *
백 년 뒤.
산골 마을 이언골에 작은 약재방이 하나 생겼다.
어디선가 나타난 노부부가 운영하는 약재방은 주인장의 재주가 좋은지 여러 신기한 약재들이 많았다.
그들은 금세 이언골에 스며들었고, 이윽고 없어서는 안 될 일원이 되었다.
이언골의 신비한 작은 약재방.
그 이름은 범란화(梵蘭化)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