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73)
낭선기환담-472화(473/600)
낭선기환담 – 2부 182화
발이 빠른 화담은 범란화에서 나와 계단을 바람처럼 내려갔다.
쏜살같이 달려간 화담은 그대로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기둥 밑에 숨겨 놓았던 단약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 이언골 근처에서 죽어 있던 시신을 수습하고 챙겨두었던 것인데 범상치 않아 보여 여지껏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었다.
허나 이게 무엇이든 탐화가 먹어 기뻐한다면 그걸로 족하니.
“이걸 주고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 번 꼬셔봐야지.”
방금 받은 약방서를 제쳐두고 자신이 지닌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이 단약이라 화담은 그것을 꼭 쥐고 거처 밖으로 나섰다.
“화담!! 화담아!!”
그때였다.
누군가 화담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뭐야, 초롱이잖아.”
“화, 화담!!”
초롱은 순박하고 통통한 체격의 화담과 비슷한 또래 아이였다.
“크, 큰일 났어!”
“큰일이라니…?”
“지, 지금 외부인이 들이닥쳐서… 하악 하악, 갑자기 막 어른들이랑 실랑이 하더니 잡아가기 시작했어!”
“뭐? 잡아가? 설마 그 사람들 혹시 보청에서 온 상선들이야?”
“어! 어떻게 알았어!? 그 사람들은 보청에서 온 상선들이래!”
화담은 즉시 달렸다.
“가, 같이 가 화담!!”
화담은 나무를 넘고 담장을 넘었다.
발 빠르게 마을 중심으로 다가가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흑의인 무리 넷이 마을 주민들을 꿇어앉히고 있는 중이었다.
어두운 산골 마을에 횃불이 드리워 사방을 밝혔다.
“다음.”
어렴풋 보이는 불빛에 의지해 눈을 번뜩이니 흑의인 무리들이 아이들을 줄지어 세우고 손목을 붙잡아 보고 있었다.
“여기는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평소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손목을 전부 잡아본 흑의인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민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흑의인 중 한 명이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붉은 단약을 꺼냈다.
‘어, 저건….’
화담이 주웠던 단약과 비슷한 모양을 지닌 것이었다.
“먹어라.”
흑의인이 아이들에게 하나씩 단약을 쥐어주고 먹으라 명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부모들을 보았으나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단약을 집어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내 아이들의 목구멍으로 단약이 스며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동시에 기묘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으, 으으으윽.”
“으아악! 켁! 케엑!”
“아, 아파! 몸이 아, 아버지!”
“어머니! 몸이 뜨거워요!”
아이들의 비명이 넘쳐나며 몸의 기이한 변화가 생겨났다.
팔이 두꺼워지고, 머리가 하나 더 생겨나기 시작하는가 하면 전신에 검은 비늘이 돋기도 했다.
여러 변화가 나타났으나 공통적인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말을 하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짐승처럼 그르르 거리는 괴물들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가 어떻게….’
사람이 아니게 된 그들은 이내 먹잇감을 찾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처에는 자신의 부모들이 있었고 그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크아아아!”
“어, 어어어! 자향아!”
마을 어른들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자식들에게 물어 뜯겨 죽었다.
흑의인들은 아이들을 마수로 만들어 자신의 부모들을 먹게 했다.
“별로군. 힘의 크기나 기운이 빈약해 상선들과 싸우기는 부족해. 역시 산골 마을의 소선들을 마수로 만들어봤자 쓸모는 없겠어. 신의 피가 옅어질 대로 옅어진 이들은 하계의 범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쯧쯧 혀를 찬 흑의인들의 우두머리인 사내는 이윽고 화담과 눈이 척 마주쳤다.
“나와라.”
화담은 즉시 도망쳤다.
자신의 장점은 발이 빠른 것뿐.
허나 그것만 잘해도 이 세상에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척.
“어딜 가는 거지? 내 분명 나오라 말했거늘 도망을 쳐?”
짜아악!
뺨을 얻어맞은 화담은 땅바닥을 굴렀다.
순식간에 자신의 곁으로 축지한 상선의 손찌검에 화담은 손발이 덜덜 떨려 일어설 수도 없었다.
“퉤. 크으으.”
순식간에 이빨이 부러지고 입속이 진탕되어 피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화담은 더 없는 공포를 느꼈다.
풀뿌리를 잘못 먹고 죽을 뻔 했을 때와 같은 죽음의 공포였다.
바닥에 누워 덜덜 떨고 있는 화담의 손목을 잡아보던 다른 흑의인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이상한 게 잡힙니다. 놈이 본래 지닌 것은 아니고… 네놈, 예 전에 한 번 죽을 뻔한 적이 있지 않느냐.”
화담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에게 치료 받았지?”
상선의 물음에 화담은 피가 질질 흐르는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꾹 다물었다.
자신의 이마를 땅바닥에 찍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어린놈의 기개가 상당하구나. 그 또한 헛수고이거늘. 놈의 머리를 열어 추혼대법을 펼쳐보라.”
“존명.”
이내 화담의 머릿속을 열어본 흑의인들의 입에서 이언골의 약재방 이름이 튀어나왔다.
“범란화?”
털썩.
정신을 잃고 쓰러진 화담을 내려다본 흑의인의 우두머리는 묘한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렸다.
“기묘하군. 이런 곳에….”
“어찌하시겠습니까. 혹, 은거하고 있는 기인이라도 된다면….”
“흥, 상관없다. 우리의 뒤에 어떠한 분이 계시는지 잊어버린 게냐. 차라리 잘 됐다. 은거하고 있는 수선이라면 만골님의 이름하에 있는 우리의 청을 거절치 못할 테니… 이놈, 앞장서라!”
퍽!
화담을 발로 차니 몇 번 땅바닥을 구르고 조금 지나서야 피를 토하며 몸을 꿈틀거렸다.
‘개새끼들….’
이미 상황은 극으로 치닿았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몰라도 범란화의 천 대인 또한 이들에게 당할 처우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화담에게 천 대인은 은인이었다.
비루한 목숨의 은혜를 입어 자신을 살려주고 약재의 지식을 넓혀 주던, 때로는 스승이고 때로는 아버지나 다를 바 없던 사람이었다.
화담은 겁이 많다.
허나 살아나갈 길이 없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하… 오래 살고 싶었는데.’
화담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품에서 단약을 꺼내 입 속에 넣었다.
“수상한 짓을 하기 전에 죽여라!”
촤르르륵. 푸욱!!
법기가 날아와 심장에 꽂혔다.
화담의 눈에 흰자위가 넘쳐흘렀다.
즉시 절명한 것이다.
털썩!
“죽었습니다.”
“놈이 뭘 삼켰지?”
“그것이….”
두웅.
단약이 물처럼 변해 목구멍으로 넘어가 전신으로 퍼진다.
울긋불긋 전신에 핏줄이 솟고 근골이 기괴하게 뒤 꺾였다.
뿌드득 꾸드득!
뼈가 변형되고 피가 역천한다.
칠공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허나 역으로 몸집은 점점 거대해졌다. 이내 화담의 몸은 짐승과도 같이 변해버렸다.
발에는 발굽이 있었으며 네 발로 땅을 디뎠고 전신은 털로 뒤덮였으며 머리에는 사슴의 뿔을 지니고 있었다.
“저놈이 어찌 마수단을 지니고 있었지? 신기한 일이군.”
신기했으나 그것이 다였다.
힘없는 소선 하나가 마수가 됐다 한들, 이지를 잃어버린 짐승이 된 거나 다름이 없다.
여타 이곳에 있는 다른 마수와 다를 게 없으니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위치는 알고 있으니 상관없지. 마수로 만들어 지원군에 편입해 보내는 것이 우리 일이니. 놈을 잡아 금제를 부여해라. 나머지는 범란화라는 곳으로 간다.”
그때였다.
퍼억!
“윽!”
화담이 변한 마수에게 접근하던 마선 하나가 뿔에 치여 발라당 넘어졌다.
“뭐하는 거야! 어서 잡지 않고!”
“노, 놈의 발광이 심합니다!”
“마수제술을 쓰면 되지 않느냐!”
“머, 먹히지 않으니 이러고 있지 않겠습니까!!”
“뭐?”
마수제술은 마수를 제어하는 술법이었는데 화담에게 치인 마선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두머리 마선이 수결을 맺고 마수제술을 썼으나 화담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길길이 날뛰게 만들었다.
“놈 안에 있던 수선의 약효가 마수제술을 방해하는 것 같군.”
놈이 날뛰자 덩달아 조용하던 마수들도 흥분하며 콧김을 내뱉는다.
“억지로라도 잡아라!”
아무리 마수로 변했다 한들, 그들은 본래 소선이었다.
상선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그물을 꺼내 던졌으나 화담은 그것을 폴짝 뛰어넘어 마선을 밟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다.
사슴처럼 폴짝 폴짝 뛰어가는데 그 속도를 상선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
“쫓아라!”
안되겠다 싶었는지 마선 넷이 빛줄기로 변해 그를 쫓았다. 네 개의 빛줄기로 변한 마선들과 마수로 변한 화담 사이에 추격전이 벌어졌다.
쾅, 콰아앙!!
여러 법기를 쏘아댔으나 화담은 높게 뛰어올라 모두 피해냈고 어느 산속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내 안개가 드리우더니 웬 대궐이 하나 나왔다.
화담은 대문을 들이받아 들어가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킁킁. 킁킁.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내 한 소녀를 보자마자 냅다 뛰어갔다.
그리고는 소녀의 뒷덜미를 물어 자신의 등에 태우더니 달아나려 했다.
“놈! 여기까지다!”
쿠웅!!
드드드득!!
하지만 동시에 기괴한 촉수들이 지면에서 솟아올라 진이 구축됐다.
촉수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붕마기의 기운이 화담을 옭아매 전신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붙들었다.
“마수로 변했음에도 아직 이지를 잃지 않은 건가? 신기하군. 허나 네놈의 명운도 여기서 끝이다.”
마선은 핏물이 잔뜩 굳어 붙어있는 검은 말뚝을 손에 쥐었다.
당장에 놈의 머리통에 말뚝을 박아 넣을 참이었다.
자신들을 고생시켰으니 당연한 처사요 통제가 되지 않는 마수는 필히 죽여 없애야 함이 원칙이었다.
“흠!”
스으윽.
허나 그때,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
느긋한 발걸음.
고민 깊은 목소리.
“누, 누구냐!!”
범란화의 주인. 천 대인은 멀거니 마선을 바라보다 스윽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선의 품에 있던 작은 주머니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렸는데, 안에는 소선들을 마수로 만든 단약인 마수단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역시 그렇구나. 공각춘의 흉분과 흡사한 것들이 들어있어. 역시 그 곳은 누군가의 실험장이었군.”
“이놈! 지금 무슨 짓…!”
척.
성을 내려던 마선을 저지한 자는 무리의 대장이었다.
“제가 만든 진 안에서도 수발이 자유로우신 것을 보면 필시 저희 배분을 넘는 선배님이시겠지요. 저희는 만골대사의 명을 받드는 상선들입니다. 혹, 선배님의 존함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굉장히 예의를 차린 질문이었으나 이미 때는 지났다.
“내 땅을 넘어 수작을 부리려는 네놈들에게 알려줄 이름이 있겠느냐. 만골인지 뭔지의 뒷배를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어디 한 번 내게도 그 배짱이 통할지 시험해보거라.”
휘이잉!!
노인에게서 풍겨오는 칼바람이 사방으로 날아가 마선들을 휘저었다.
촤자작!
“크아악!”
“커헉!”
푸른 바람은 순식간에 마선들의 팔다리를 잘라 버렸다.
단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 상천해월의 한 석을 차지하신 만골대사가 두렵지 않느냐!!”
“이제와 그런 것을 두려워할 처지는 못 되니라. 적이 워낙 많아 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그리고.”
뚜벅, 뚜벅.
천 대인은 팔다리가 잘려진 마선들 곁으로 다가왔다.
“상천해월의 한 석을 차지한 원형 신선이 네깟 놈들의 죽음에 분노할 성 싶겠느냐. 고작해야 개미들이 죽은 정도로 알 것인데….”
스산한 웃음을 보이자 마선들은 덜컥 겁을 집어 먹고 살려 달라 애원하기 시작했다.
허나 천 대인은 자신이 빼앗은 주머니 속의 단약을 건넬 뿐이었다.
“소선들에게 먹인 마수단으로 마수가 되면 꽤 강인한 마수가 되더군. 그럼 이걸 상선들이 먹으면 어찌 되는지 꽤 궁금한데 보여주지 않겠나.”
“으, 으아아아악!!”
마수단을 삼킨 마선들은 모두 마수로 변해버렸다.
소선이 변한 마수보다는 조금 힘이 강하고 기이한 신통을 사용할 뿐인 이들이었다.
감흥이 없어진 그는 이번에는 멀뚱히 서 있는 화담에게로 향했다.
그가 본 점괘에서는 화담이 죽을 것이라 나왔다.
허나 자신에게로 와 살아났으니 점괘가 틀린 것인지 자신이 망친 것인지 참으로 애매했다.
범은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이곳까지 찾아온 것 또한 너 자신의 의지일 터. 그렇다면 이는 내가 구한 것이 아니라 네가 구해진 것이겠지… 원하는 바가 있느냐.”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시 돌려줄 것이고 마수로 변한 아이들을 원래대로 돌려 달라 해도 그러해줄 수 있었다.
“자, 말해보아라.”
그의 말에 화담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조아렸다.
“날 따르겠다라… 고놈 참.”
천 대인. 아니, 천범은 흰머리가 성성한 늙은 노인이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금빛의 기류를 흘려 보내니, 밤하늘이 금빛으로 물들어 환하게 세상을 비추었다.
“탁월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