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79)
낭선기환담-478화(479/600)
낭선기환담 – 2부 188화
휘. 휘.
안개 짙은 건원해의 달 밤.
한 치 앞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바다를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쪽배.
뒤편에서 노를 젓는 노인과 곁에 있는 소녀, 그리고 멍하니 달을 바라보는 소년이 쪽배에 타고 있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곳에서 노인이 이끄는 작은 쪽배 하나만큼은 세상의 여유를 가득 안고 나아가는 듯했다.
“무얼 그리 보더냐.”
“달을 보고 있습니다.”
노인과 소년은 바로 천범과 화담이었다.
천범을 쫓는 수선들의 추격을 피해 돌아다니기를 사흘.
한동안은 죽을 힘을 다해 쫓더니 이제 웬만큼 멀어진 건지 추격이 뜸했다.
“밤만 되면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을 그리 보더구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 이렇게 달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저 달을 보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달이라….”
천범은 화담을 따라 달을 보았다.
“해와는 다른 맛이 있기는 하지.”
“그렇습니까.”
“해는 찬란하지만, 바라보면 눈이 멀고 가까이 다가가면 몸이 불타 재가 되어버리지 않느냐. 허나 달은 그렇지가 않지.”
은은하게 밤을 밝히는 달빛은 해와는 다른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
“어쩌면 네가 취한 월야수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월야수요….”
화담은 천범의 공정강에서 살고 있을 때 월야수와 월야석수의 살점을 취했던 일이 있다.
그 때문에 전신의 털색도 회색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그때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월야수는 이름 그대로 달밤의 물.
달의 성질을 띤 것이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묘하게 달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흠….”
천범은 화담을 따라 모달과 자달을 보았다.
당금의 상황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달은 퍽 운치가 있었다.
“옛 문헌에 어떤 신선이 달로 날아가 살기도 했다던데. 사실일까요.”
“글쎄, 내가 살아본 게 아니라서 사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구나.”
다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게다.”
“정말요?”
화담은 백 년 전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가능하다면 당장에라도 달로 날아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꽤 시일이 걸리겠지. 하늘과 달 사이의 거리는 꽤 먼 거리일 테니까.”
애초에 상계는 각각의 계를 향하는 것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달로 향하는 건데 고작 몇백 년 정도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자주 향하는 곳이라면 전송진이라도 만들어 뒀겠으나….”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한 번 쯤 가보고 싶네요. 갈 수 있을까요.”
“…때가 되면 한 번 가보자꾸나.”
“정말이십니까?”
더 없이 기뻐한다.
“나 또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한 번쯤 가봐서 나쁠 건 없겠지.”
스승이 말한 달무리년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마 달과 연관이 있을 테니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이 세상은 뭐든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법이니.
천범은 품에서 곰방대를 꺼냈다.
오경계주가 선물한 것이자, 제자라는 증표 흑정단죽이었다.
흑정단죽을 입에 물고 손가락을 튕기니 불이 붙었다.
이내 묘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범이 그것을 빨아들인다.
이내 피로함이 사라지고 눈이 맑게 떠졌으며 혈색이 좋아졌다.
노인의 모습으로 삿갓을 쓴 채로 곰방대를 문 범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완벽한 뱃사공이었다.
의도치 않은 선계 신선의 추격으로 뱃사공이 되었으나 범은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여겼다.
본래 건원해는 잡다한 해수들이 날뛰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바람 잘날 없는 곳이고 밝혀지지 않은 신비가 가득한 곳인데, 범은 쪽배를 띄운 이후 단 한 번도 해수들에게 공격은커녕 위협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선살전 때문이겠지.’
바다 속에 사는 해수라 해도 머리가 없지는 않으니.
그들 또한 아는 것이다.
수면 위로 괜히 떠올랐다가는 죽기 십상이라는 것을.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배를 띄운 범만 이롭게 되었다.
“후우….”
바다 안개 속에서 담배 연기를 뱉어내니 달빛과 어울려 하늘로 오른다.
첨벙첨벙, 잔잔한 파도의 건원해는 자장가처럼 귀를 어루만져 씻겨주니.
“이 또한 나쁘지만은 않구나.”
나이를 먹어 그런가.
이 고요함이 싫지가 않다.
젊은이들은 적막함이라 느끼며 무엇이든 하려하고 말하려 했겠으나,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그는 아니었다.
고요하여 좋았다.
은은한 달빛이 쪽배를 비춘다.
담화는 꾸벅꾸벅 졸고 있고 화담은 멍하니 달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아닌 모습이지만, 그렇기에 편안함을 느꼈다.
툭툭.
담뱃재를 털어낸 그는 새로운 환단을 넣어 불을 피웠다.
이번에는 전신의 몸이 풀리고 긴장이 누그러졌다. 배에 눕듯이 기대며 흑정단죽을 입에 물자 고요함 속에 수마가 몰려들었다.
살며시 눈을 감자 전신이 붕 뜨는 듯한 감각 속에서 불현듯 있는 듯 없는 듯한 기감에 다시 눈을 뜬다.
“뉘시오.”
돌연 천범이 그리 묻자, 달을 보며 멍 때리고 있던 화담이 흠칫 놀라며 전방을 바라봤다.
앞에는 수면 위에 잠자코 서 있는 한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희고 품위 있는 선비처럼 보이는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갓을 쓴 사내는 얼굴도 희고 단정하고 꼭 백면서생 같았는데, 허리춤에 찬 검을 붙잡고 꼿꼿이 바다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 강인한 검객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름은 헌원. 호는 검. 사람들은 날 보며 이리 부릅니다.”
헌원검.
그는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스르릉.
달빛에 반사된 그의 검날이 수면 위를 비춘다.
동시에 편안하기만 했던 고요함은 적막함으로 바뀌었다.
화담은 헌원검이라는 사내가 뿜어내는 기세를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운을 방출했다.
“닿지 않는 이유는 짧기 때문이 아니니, 길다하여 닿지도 않으리라.”
“무슨 소릴….”
화담이 의아해 중얼거리던 그때.
스윽.
검을 겨눈 헌원검의 검이 부지불식간에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쉬이이익!!
뱀의 혀처럼 늘어난 그의 검이 순식간에 화담의 목을 노렸다.
“흡!”
탓, 타타탓!!
황급히 뒤로 물러난 화담이 천범의 배를 뒤로하고 수면 위를 발로 박찼다.
첨벙, 첨벙!
천범의 쪽배는 단숨에 반쪽 나고 잠잠한 수면 또한 괴한의 신통에 두쪽으로 갈라져 높은 파도가 치솟았다.
콰아아아아아!!
둘로 갈라진 파도는 천범과 탐화를 잡아 삼킬 듯 쇄도했다.
탐화는 곧장 파도를 후려쳐 파훼시키고 범의 곁에 자리했다.
“닿는 것은 검에 들린 나의 기상이니 소년은 그 뜻을 알지어다.”
자신을 헌원검이라 말한 괴한이 시를 읊듯 읊조리자 검에 담긴 기운이 폭발적으로 퍼져나왔다.
쿠우우우!!
강한 기운에 화담이 가까스로 고개를 꺾었다.
그러자 즉시 한뼘 차이로 지나간 헌원검의 검이 꽈배기처럼 꼬여지더니 뒤통수를 노렸다.
“흡!!”
화담이 몸을 비틀어 허공을 선회하며 피해내고 건원해의 기운을 흡수해 수면을 박찼다.
퍼엉!
그러자 수십장 넘는 파도가 생겨났고 꽈배기처럼 꼬여졌던 검은 파도를 피해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금 사척 정도 되는 환검으로 변해있었다.
마치 시를 읊듯 검을 놀린 헌원검.
천범은 그 모습을 보며 눈가를 가늘게 떴다.
이 어두운 밤 날 새하얀 선비가 바닷가에 검을 들고 시를 읊는다라.
“대인…!”
깜짝 놀랐는지 화담이 긴장 어린 눈빛으로 천범을 불렀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저자가 진심으로 널 찌르려 했다면 응당 그리했을 것이다.”
“예? 그게 무슨… 일부러 절 빗맞추었다는 겁니까?”
“그래.”
천범은 확신하듯 답했다.
그에 대해 화담은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우선은 천범의 앞에 나서 그를 지키듯 섰다. 탐화 또한 곁에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다 큰 노인이 어린 아이들에게 지켜지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꽤나 실망이 큽니다만….”
헌원검은 슬쩍 천범의 비어있는 소매를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본인을 잘 아는 듯한 말투로군.”
“저희들에게 당신은 하나의 희망이자 죽여야 할 적이니까요.”
“희망을 죽인다라… 꽤 낭만이 있는 소리를 하시는군.”
“바다도, 달도 좋은 밤입니다. 운치 있는 장소이니 만큼 사내의 낭만을 시 한 수로 읊기 딱 좋지 않습니까.”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기에도 이보다 더한 날은 없겠지.”
헌원검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긍정했다.
범은 대강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선계의 추격대가 쫓아온 것인가 했으나 아니다.
기묘한 검술이지만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 이 느낌.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기분이다.
범은 눈을 감고 옛 일을 곱씹어 보다 그리운 듯 물었다.
“그래…. 하여, 그대는 놈의 몇 번째 검이신가.”
범이 물으니 그가 답하기를.
“스물네 번째 검, 헌원검입니다.”
헌원검이 답을 했다.
순간 그의 기세가 달라지며 건원해의 파도가 순간 멈춰 섰다.
이내 헌원검이 닿은 수면 위부터 작은 파문이 생겨났다.
“나 스물네 번째 검, 헌원검은 검신의 마지막 검. 천검을 향해 검을 겨누노니, 마땅히 나와 검을 맞대라.”
그러자 등 굽은 노인의 모습이었던 천범의 허리가 슬며시 펴진다.
자글자글하던 주름은 사라지고 탱탱한 피부로 변하며 백발성성하던 머리칼은 찰랑이는 흑발로 변모한다.
검은 눈동자는 금안으로 바뀌고 힘없는 노인에서 선이 날카로운 사내로 변하여 수면 위로 내려선다.
“대인….”
“네가 끼어들 틈은 없을 듯하구나. 이 싸움은 오로지 나의 몫이니.”
하여 범이 손아귀를 펼치자, 꽃잎이 모여들어 검으로 변했다.
화란이었다.
“어찌 날 알지.”
“검은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당춘과도 이어져 있었나 보군.”
“그렇지요.”
하계에서 처음으로 천범을 데려가려 했던 검노의 서른두 번째 검.
당춘과도 이어져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날 아는 게 당연하군.”
언제라도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선계에 갔을 때에도 나타나지 않기에 언제 나타나려나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그에게 검노란 이름은 하나의 두려움이었으며 놈의 검이란 반드시 겨루어야 할 상대들이었으니.
‘스물네 번째 검.’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천범이 가자고 순순히 따라갈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당춘이 어찌 죽었는지 아는 이상,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싹 다 집어 치워도 될 거란 것을.
사내는 무릇 검으로 말하는 법.
입을 여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서 검이 놓아진 뒤여도 늦지 않다.
휘이잉.
거친 바람에 안개가 걷힌다.
허나 그들의 발 내딘 수면은 한 점 파도도 치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다.
슬며시 감은 눈은 어둠을 보지 아니하고 그의 검격을 보았다.
범은 그와 자신의 실력이 대등함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하여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살 수 있음을 알았다.
첫 수.
한 합으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뱉듯 숨을 뱉으니 달빛이 새하얀 숨을 비추었다.
온몸의 힘을 빼고 검을 든 손마저 늘어놓으니 수면 위에 화란의 검날이 찰랑 닿는다.
그리고 한순간.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