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85)
낭선기환담-484화(485/600)
낭선기환담 – 2부 194화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살이 베이는 듯한 서리가 내려앉는 천공(天空).
하늘 끝이 어디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자들도 감히 올라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웬 새하얀 사슴과 그 위에 올라탄 소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배고파.”
[….]소녀의 얼굴은 무미건조했으나 옅은 짜증이 남아 있었고, 사슴은 안절부절 못하며 하늘을 향해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었다.
[이제 곧 다왔어… 저기 봐, 벌써 달이 저만큼 가까워졌잖아.]“그거 사천 년 전에도 했던 말이야.”
둘은 그날 이후로 범과 헤어진 탐화와 화담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화담이 달로 가보자고 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아버지였으면 무턱대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내 손쉽게 달에 도착하셨을 텐데.”
[….]화담은 할 말이 없었다.
날아가면 금방일 줄 알았던 달은, 애석하게도 쉽게 닿지 않았다.
손에 닿을 듯 가까워 보이지만 이상하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일만 년이 넘게 달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본래라면 진즉에 탐화가 배고프다며 돌아가자 했겠으나, 그나마 다행히 이런 높은 하늘에서도 살아가는 충수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투명하거나 구름과도 같이 형태가 불분명한 충수들이었으나, 탐화는 보이는 족족 놈들을 잡아먹었다.
허나 그것도 일정 이상의 하늘로 올라가자 잘 보이지 않아 탐화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화담은 어떻게든 탐화를 어르고 달래야만 했다.
벌써 일만 년 가까이 시간을 허비했는데, 여기서 돌아가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달에 가면 부, 분명 탐화 네가 좋아할 충수들이 있을 거야. 아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녀석들일걸?!]“…그럼 빨리 가기나 해.”
휴.
화담은 탐화를 등에 태우고 달리고 또 달렸다.
평범한 수선이라면 진즉에 기운이 다하거나 강렬한 바람과 추위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마어마한 거리감에 짓이겨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화담은 묘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곧 도달할 수 있다고.
‘네가 취한 월야수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화담은 지난 날, 천범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잔잔한 건원해에서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와의 추억은 이제, 머나먼 이야기가 되었다.
화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또 울어.”
[천 대인 생각이 나서….]그러자 탐화는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빨리 가기나 하라며 다그쳤다.
[에휴….]화담은 짠한 눈으로 탐화를 봤다.
이전에도 한 번 천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화담은 슬퍼했고, 은혜를 다 갚지 못했다며 그를 그리워했다.
허나 그때, 탐화가 말하기를.
‘아버지는 죽지 않았어.’
라고 말하였다.
화담에 보기에 천범은 원선태사의 화살에 맞아 절명했다.
아예 흔적조차 없어졌는데 어찌 살아있겠느냐 타일렀지만, 탐화는 말을 듣지 않았다.
‘네까짓 게 뭘 알아? 아버지는 이 정도의 일로 죽으실 분이 아니셔. 정말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려 하셨을 거야.’
‘하지만 그때 천 대인은….’
살기를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 말하자 탐화에게 날아온 것은 말이 아닌 주먹이었다.
몇 대 처맞고 나자 화담은 천범이 살아있으리라 말해야만 했다.
“또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하려고?”
[아니아니! 처, 천 대인은 반드시 살아 계실 거야. 너 같은 딸을 두고 멀리 떠나셨을 리 없잖아!?]“흥, 알면 됐어.”
휴.
화담은 한시름 놓은 얼굴로 또 다시 달을 보고는 발을 놀렸다.
그렇게 만 년하고도 천 년.
일만 일천 년이 지났을 때.
화담의 발이 멈췄다.
[탐화.]“나도 알아.”
탐화와 화담은 거대한 모달과 자달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드디어…!!]화담은 감격에 벅찼다.
눈앞에 이르른 달은 거대했고,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월야수의 피가 요동치고 기꺼워하는 것 같았다.
‘월음지력.’
그것이 다분했다.
허나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화담과 달리 달은 그들을 전혀 반기지 않는 듯 했다.
거대한 회색 달의 허공이 일렁거리더니 해괴한 충수들이 나타났다.
화담은 이들을 월충수라 불렀다.
[진짜 있을 줄은 몰랐는데.]“오….”
껄끄러워하는 화담과 달리 탐화는 현 상황을 매우 기꺼워했다.
처음 보는 충수, 월충수.
탐화는 화담의 등을 밟고 일어섰다.
“신기한 기운을 담고 있네.”
색이 바랜 듯 회색이나 은빛에 가까운, 벌레인지 짐승인지 모를 녀석들이다. 허나 그들이 적의를 지닌 것만은 알 수 있었으니, 탐화는 월충수를 향해 입을 벌렸다.
어느새 거대한 본신의 모습으로 변해 월충수와 충돌하여 한 입에 삼켜버리자, 삽시에 여러 허공에서 파문이 일어나며 월충수가 계속해서 나타났다.
[꺄하하하!]탐화는 더 없이 기꺼워했다.
화담이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 월충수들 사이로 인간의 인영이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탐화!]새하얀 인간이었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이기도 했다.
새하얀 머리는 시린 달빛과도 같았고, 푸른 눈은 호수를 담은 듯했다. 그런 이들이 여럿이었고, 일제히 월충수의 위에 올라타 나타난 것이다.
화담은 돌연 나타난 자들이 적의를 품었음을 깨닫고 허공의 돌덩이들을 밟아 탐화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피이이.
새하얀 인간들이 호각을 불어 소리를 냈다. 굉장히 오묘한 소리였는데, 귀가 아닌, 전신으로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뚝.
[어.]동시에 화담의 몸이 멈춰 섰다.
뭔가가 몸의 제동을 걸어 놓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건 탐화 또한 마찬가지….
투쾅!!
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탐화는 전신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충수들을 죄다 먹어치웠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그녀들이었다.
새하얀 머리칼의 달의 선녀들 같이 보이는 그들은 적잖이 당황하여 달려드는 탐화를 보고 달아나기 바빴다.
후우웅!!
촤라라라락!
탐화의 몸에서 금쇄가 나타나 여인들을 잡아먹으려 했다.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던 그들은 하나둘 탐화에게 잡아먹혔다.
[…나도 모르겠다.]모르겠다 싶어 화담 또한 자신의 신통을 이용해 그녀들을 붙잡았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붙잡힌 여인이 큰소리 쳤다.
허나 탐화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한 입에 그녀들을 삼켜버렸다.
이내 대부분의 월녀들을 삼켜버린 직후.
탐화의 고개가 슬그머니 한곳을 향해 돌아갔다.
스르릉.
달의 파문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앞서 나타났던 월녀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새하얀 머리와 푸른 눈.
조금 다른 게 있다면.
[투명한 검?]기이하게 생긴 투명한 검을 뽑아 들고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입고 있는 궁장과 날개 옷 또한 남달라 보인다는 것 정도였다.
[소궁주님!]탐화의 금쇄에 붙잡혀 있는 월녀 하나가 그리 소리쳤다.
소궁주라 불린 여인은 차가운 눈초리로 탐화를 바라보고는 손끝으로 검신을 훑었다.
스릉!
검신이 새하얗게 번쩍이고 이내 쩌저적 소릴 내며 얼어붙었다.
콰장창창!
[?]돌연 검신이 저 혼자 깨져버리더니 얼음조각으로 바뀌어 주변으로 흩날렸다.
대체 뭘하는 거지 하는 순간.
[컥!!]탐화의 금쇄에 붙잡혀 있던 월녀들이 모두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더니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것은 탐화의 쇠사슬.
금쇄 또한 마찬가지였다.
쩌저저저저저적!!
얼어붙는 금쇄를 따라 탐화의 몸체까지도 얼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콰앙!!
탐화는 자신의 금쇄를 이빨로 끊어냈다. 무척이나 빠른 판단력이었으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궁주가 허공에 손을 대고 몇 번 휘적거리자 검이 깨진 검이었던 얼음조각들이 반짝거리며 탐화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한기를 뿜어내며 얼리기 시작한다.
[이런!]화들짝 놀란 화담이 소궁주의 기운을 흡수하려 했다.
[흡!!]허나 오히려 흡수한 화담의 몸이 경직되더니 피를 토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것도 잠시. 화담의 전신에 서리가 달라붙고 큰 내상을 입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라니!’
화담은 크나큰 충격과 내상에 몸이 상했지만, 자신보다는 탐화가 더 걱정이었다.
[아아….]탐화는 이제 와서는 전신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북풍한설을 몇 천 년이고 맞아선 것 같은 모습.
팔백 장에 이른 거대 오룡의 전신이 얼어붙자 장대하면서도 엄청난 위용이었다.
화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어떻게든 이 한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번뇌를 지우던 그때.
툭, 투두둑.
탐화의 몸체에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콰차차차차차창!!
크아아아아아아아!!
오룡의 포효가 천 리 만 리 이어지고 뒤덮었던 얼음 조각이 사방에 휘날렸다.
[탐화!]화담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와 반대로 탐화는 진노하여 독무를 뿌려대고 수천 개의 금쇄를 펼쳐내 소궁주를 잡으려 했다.
허나 소궁주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고, 탐화는 어딘가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졌고 달은 사라져 있었다.
탐화는 자신이 환계에 걸린 것이라 떠올리고 화를 잠재웠다.
‘아버지는 이럴 때….’
거대한 오룡의 모습이었던 탐화는 다시금 소녀로 탈형하여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풍경은 다를 바 없다.
화담 또한 마찬가지로 멍청하게 서 있지만 소궁주는 사라졌다.
교묘한 환계이다.
자신이 환계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도 모르게끔 설계했다.
본래 다른 신통에 취약한 탐화이지만 범과 다닌 세월이 얼마던가.
‘환계를 깨는 법은 두 가지. 시전자를 찾아내 죽이거나, 강력한 한 방으로 환계를 뚫어내는 것.’
꽁꽁 숨어 있는 시전자를 찾아내는 수는 탐화로서는 쓸 수 없다.
그나마 가능한 게 환계에 공간 법칙을 이용하여 구멍을 뚫는 것 정도.
탐화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조그마한 몸이지만 본신은 오룡.
이 주먹에 담긴 기운은 향선 이상의 것이니 일점으로 담는다면 능히 환계에 구멍 하나 뚫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아버지가 어떠했는지.’
지성이 생기기 전부터 봐왔던 그의 주먹은 모든 적을 물리쳤다.
하계의 해룡들과 싸울 때부터, 탐화는 수백 수천 번 주먹을 휘두르는 천범을 보고 또 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탐화의 곁으로 새하얀 넝쿨이 사방으로 스며든다.
허나 동요하지 않는다.
탐화의 공간에는 오직 공간을 꿰뚫을 일 권만이 자리하니.
“부서져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릴 만큼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 속에서 자그마한 공간균열을 발생시킨 탐화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자신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쇄를 휘둘러 자그마한 공간을 확장시키고 그 속으로 빠져나갔다.
“나왔다!”
기뻐하며 뛰쳐나온 탐화는 곧장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풍!
허나 의외로 맥 빠진 소리가 들렸다. 탐화의 손은 새하얀 소궁주가 들고 있는 작은 동경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씨!”
탐화의 몸이 작은 빛으로 변해 청동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환계를 벗어났다 했더니 이번에는 봉인술이었다.
물 흐르는 듯한 연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꼭 아버지랑 싸우는 거 같아….”
탐화는 꼭 아버지와 싸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소궁주의 얼굴이 꽤 낯익었다.
신선의 얼굴 따위 그다지 기억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누구지.”
기억이 나지 않는 탐화는 이내 생각을 떨쳐내고 본신으로 변해 자신의 몸을 분열시켰다.
늘어난 탐화는 수억이란 숫자가 어울리게끔 불어났다.
그러다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설마, 그 여자인가?’
허나 확신은 없었다.
기억이 애매했다. 우선은 봉인을 깨는 것이 먼저다.
천범에게 어령태행결이란 봉인술을 받았기에 파훼법 또한 명확히 알게 된 탐화였다.
그녀의 몸이 수억 수조 개가 되는 순간. 봉인의 공간이 쩌저적 갈라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소궁주는 자신의 동경이 갈라지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멀리 던졌다.
콰아아앙!!
폭발음이 들리고 다시금 나타난 거대한 오룡은 순식간에 일대를 집어삼킬 숫자로 불어나 있었다.
[알았다. 누군지 알았어!]엄청난 숫자로 분열한 오룡들이 일제히 말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가 되어 말하길.
[아버지 첫째 부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