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87)
낭선기환담-486화(487/600)
낭선기환담 – 2부 196화
“그랬구나.”
상계에 올라와 그가 겪었던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은 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대부분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저기….”
“무엇이냐.”
초가집의 마루에 함께 앉아 있던 화담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소궁주님도 하계에서 비승하셨다면 본래 선계에 계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가만히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아는 하계의 비승수선이다.
한데 어찌하여 상계의 월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해 묻자 초아는 아미를 살짝 좁혔다.
“제가 괜한 것을….”
“아니,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니.”
초아는 어두운 하늘 아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상계로의 비승을 마쳤을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서방님께서는 쉬이 하셨으나 등선이라는 것이 그처럼 쉽다면 왜 등선이겠느냐.”
초아는 눈을 감으며 떠올리기 싫은 옛 기억을 들춰냈다.
“천로의 길은 험하고 험하였다. 각종 심마와 천외마군들이 날아와 날 타락시키려 간교한 혀를 속삭였지.”
그들의 꾀임에 넘어간 대부분의 이들은 몸을 빼앗기고 혼을 잡아먹힌다. 아니면 그대로 신체가 산화되거나 불덩이처럼 타버려 영락하기도 한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오직, 나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내 등선했다. 하지만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였지. 게다가 상계는 하계와는 달리 공기부터가 달라 나를 괴롭혔다.”
천지원기.
선기가 짙어 하계의 수선이 상계에 올라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폐관에 들어가 자신의 육신에 남아 있는 하계의 떼를 벗어내는 것이었다. 말이 벗어낸다고 하는 거지, 안의 탁기를 코로 내뱉고 피부로 내뱉어 상계의 대기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게 대부분이다.
“아버지는 그런 거 안 했는데.”
그러자 초아 옅은 미소를 보였다.
“네 아버지는 보통 분이 아니시지 않느냐. 나같이 부족한 여인과는 격이 다르신 분이야.”
“오….”
“역시.”
귀여운 감탄사를 터트린 탐화와 화담은 다시금 조용히 경청했다.
“허나 하계에서부터 날 괴롭히던 나의 핏줄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나도 봤어. 선계에서 아버지랑 싸웠던 머리 하얀 여자!”
“그래, 선계. 그것도 혼계의 진영에 있는 이들. 나와 같은 피를 지닌….”
백요족.
정확히는 백요보련이라 하는 혼아족을 말한다.
“백요보련(白搖寶蓮). 최초의 연꽃에서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지만 내가 보기엔 감정 없는 인형들이었다. 나 또한 그들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기도 하고.”
“어째서….”
물음에 초아는 커다란 어미 달을 보며 답했다.
“이곳의 주인. 대궁주 월모자녀의 이름아래 모자월을 지킬 백요보련의 수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자월을 지킨다.
대궁주는 당연, 상천해월에 속하는 원선태사를 말하는 것일 터.
아마도 자신이 모르는 속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화담은 생각했다.
그 기색을 눈치 챈 초아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백요보련은 옛부터 여러 갈래로 피가 흩어졌다. 그중에서도 혈의 힘을 강하게 타고난 자들을 모두 월모자녀님이 계시는 모자월로 보낸다.”
“아, 그래서….”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초아는 혈력이 뛰어난 편이었고 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곳으로 보내져 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아마 그냥 수만 년을 날아온 듯하지만, 이곳의 고대 전송진을 이용하면 천 년이면 이동할 수 있어.”
“앗!”
화담이 뜨끔하여 탐화를 바라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천 년이면 되는 것을 만 년 넘게 고생했으니 그러는 것이다.
화담은 한 번만 봐달라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억울하게 이곳에 올라와 월모자녀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지. 이곳에 쭈욱… 오랜 세월 동안 남아 있었다.”
제 서방을 만나지도 못한 채.
수계로 향할 수도 없이.
수행에만 매진해야 했다.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전송진을 타고 오니, 어느새 천 년이 흘러 초겁을 치러야 했다.
초겁을 치르니 월모자녀의 가르침과 수행이 잇달았다.
때로는 모자월에 찾아오는 천외충들을 상대하다 죽을뻔 하기도 하고.
월모자녀의 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니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운 좋게 향선에 올랐으나, 덕분에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지.”
뛰어난 실력을 입증 받아 소궁주로 임명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상계로는 발 한 번 못 붙이게 되었다.
그렇게, 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것이었다.
“고대 전송진을 이용하면….”
“월모자녀님의 허가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몇 번인가 청을 드려보기도 했으나….”
아직은 아니라는 답만 받을 뿐.
“몰래 타고 가면 되지 않아요?”
어린아이의 순진한 물음이었다.
“상계가 제아무리 넓다 한들, 원선 태사가 마음먹고 찾으려 한다면 그 어딘들 찾지 못할까. 그리고 내게도 월묘자녀님은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니 쉬이 그럴 수가 없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얼굴에 그늘이 진 초아를 두고 탐화와 화담은 서로를 바라봤다.
-탐화, 아마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닐까 싶어.
-무슨 소리야?
-만일 정말로 천 대인이 살아계시고, 두 분의 인연이 닿는 것에 나의 연도 끼어져 있을지도 모르잖아?
탐화는 그게 무슨 소리냐 물으려 다 인상을 쓰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답하기를.
-이분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초아님을 상계로 데려가기 위함인 것 같다고! 그러하여 만일 정말로 천 대인이 살아 계시다면 두 분을 만나게 해 드려야지!
-아버지는 살아계셔!
-그, 그래. 그러니까….
속닥속닥.
둘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전음으로 대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아 님, 혹시 고대 전송진이 있는 위치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모월의 중심. 월모자녀님이 기거하시는 모월궁에 있단다.”
화담은 금세 실망한 눈이 되었는데, 그것을 본 초아는 걱정 말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가는 것은 아니 되어도 너희들을 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너희들의 말도 거짓이 아님을 알아. 진정 서방님의 곁을 지키다 떨어지게 되었겠지.”
“어떻게 알아요?”
“이야기하는 너희의 말과 표정, 그리고 눈에서 감정이 새어나오더구나. 탐화는 진정 아버지로 여기고 있고, 화담 너는 서방님을 은인으로 여기며 본받고 싶어 하지 않느냐.”
“어… 헤헤.”
화담은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었다.
“하니 괜찮다. 서방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니 절대 죽기 전에 하는 유언 따위가 아니었다. 내게도 잘 넘겨주지 않으셨던 공정강과 보물들을 넘긴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분의 뜻은 우리들이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신 분. 아마 살아계실 것이야.”
반드시 그럴 것이라 강한 믿음을 내비춘다.
그러니 자연히 화담은 물론, 탐화도 기분이 좋아졌다.
* * *
같은 시각.
“에취!!”
“뭐야. 웬 재채기?”
“그러게.”
귀도 가려운지 귀까지 후비다가 다시금 술잔을 들었다.
사하는 편히 이야기 나누라며 자리를 피했고, 술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천외양군과 호리, 그리고 천범이었다.
“그것보다 여기 있어도 괜찮아? 부인께서는 들어가셨는데.”
“편히 이야기 나누라며 자리를 피해준 거겠지. 웃고 즐기는 이야기는 대강 했으니까.”
고개를 주억인 호리는 술잔을 툭 놓았다.
그러자 술잔에서 검은 기운이 몽글몽글 끓어올라 안개로 변하였다.
검은 안개는 순식간에 사방의 풍경을 잠식하여 어둠으로 만들었다.
어둠은 이내 사뭇 다른 풍경을 자아냈는데, 그것은 상계 일대를 축소하여 옮겨 놓은 것이었다.
중심에는 건원해.
동쪽으로 수계, 그 남쪽에는 충계.
북쪽으로는 선계, 서쪽과 남서쪽에는 붕계와 사계가 자리해 있었다.
딱! 호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여러 지점에 검은 점이 생겨났다.
수개에서 수십.
그리고 수백으로 불어난 검은 점은 이내 하나둘씩 선으로 이어졌다.
“대호.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글쎄. 이게 다 무엇이냐.”
모든 계에 하나둘씩 이어져 있는 여러 붉은 선.
범은 그게 뭘 뜻하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줄곧, 몸을 회복하며 너를 이곳으로 저곳으로 향하게 했지. 널 피신시킨 것이기도 했지만 여러 인연을 만들어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인연?”
“그래, 인연. 몇몇 개는 내 예상과 달리 이상하게 엮이고, 도리어 악연이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범의 눈이 깊어졌다.
“이유는?”
“네 성장과 복수를 위해서.”
“복수라… 복수 좋지. 그런데 이것들이 복수와 연관이 있나?”
“당연하지.”
호리는 한 곳을 가리켰다.
사계였다.
“악연도 있으나 인연도 생겼지?”
“…그렇지.”
“내 사위 놈 아랫도리 간수 좀 잘 하라고 사하에게 말해야겠구만. 쯧쯧!”
이때다 싶어 천외양군이 놀려댔다.
그 또한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내게는 악연이지만 너에게는 인연인 관계도 있지.”
이번에는 붕계와 인접한 곳. 오경계주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우리들의 복수를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쉬운 일이 아니야. 상선이나 향선을 죽이는 것과 원선을 죽이는 건 천지차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원선은 불멸에 턱없이 가깝지. 허나 가깝기 때문에 불안정하기도 해.”
“사위, 사위는 어찌하여 놈들이 선살전을 벌인다고 생각하는가.”
이야기가 조금 어려웠다.
천범은 생각을 정리하다 우선 천외양군의 질문에 대답했다.
“살선… 그리고 땅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땅. 그래… 사계 놈들은 항상 그러했지. 밝은 태양을 보고 살고 싶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며 땅을 노려. 하지만 다른 놈들도 그럴까? 붕계의 놈들은 밝은 해가 떠 있는 곳에 자리해있는데? 그들은 어찌 그러지?”
“그건….”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대호. 원선태사가 나아갈 곳은 하나니까.”
“…대라?”
“그래. 더 높은 경지. 자연과 하나 되는 드높은 격. 대라선이 되기 위함이다.”
대라선.
즉, 대라천에 가기 위해….
“선살전을 벌였다고.”
“명분일 뿐이지. 오래 살아온 만큼 체면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아랫것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후손들의 번영한 미래를 위해!! 라고는 떠들지만 결국 제 욕심들이지.”
천범은 의자에 앉은 채로 사하가 만들어준 곰방대를 꺼내 연초를 끼워 연기를 들이마시고 뱉었다.
새하얀 연기가 그의 곁을 기꺼운 듯 맴돌다 사라졌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대라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가? 이 전쟁이?”
“필요하니 저질렀겠지. 예전에도 그러하고, 지금도 그러하고.”
좀 더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애초에 원선들의 이야기이니, 천범이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원선이 되기 위함은 자신을 덜어내는 것.’
잘라낸 원신은 정화시켜 자신만의 법칙, 원칙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되는 것이 원선.
그렇다면 원선이 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그것에 대한 궁금점은 천외양군이 대신 답하여 주었다.
“원선태사가 대라선이 되는 방법은… 영면(永眠)이다.”
“영면? 그렇군….”
영면이란 영원한 잠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곧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죽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
자신의 죽음.
“또는 다른 이의 죽음.”
범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이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