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9)
낭선기환담-48화(49/600)
낭선기환담 – 48화
산군은 보름을 꼼짝없이 누워있다 일어났다.
보름이나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산군은 피폐한 몰골로 선단을 복제했다.
그 뒤에야 이후의 일에 관해 들을 수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금긴이 홍연의 손아귀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영겁의 수행을 가진 홍연인데 어떻게 도망을 칠 수 있었을까? 의아해 물어본 질문의 답변을 받자 그의 안색에 쓴웃음이 스쳤다.
“제가 당도했을 때 놈은 이미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죽이는 데 문제는 없어 단칼에 놈을 죽였으나 단령(團靈)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뒤쫓으려 했으나 산군님이 위중한 상태였고, 입구를 지키던 비선들의 눈도 있어 쫓을 수 없었죠.”
단령이란, 영명에 올라 내단으로 깃든 영각을 말하는 뜻이다.
영명의 경지에는 내단에 혼. 즉 영각이 깃드는데 그때가 되면 육체가 전부 손상돼도 내단만 무사하다면 달아날 수 있다.
아무튼.
산군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달아났다 해도 곧장 자신을 쫓지는 못한다.
조금 꾀를 부리기도 했고, 단령으로 도망쳤다면 아마 몸을 회복하기까지 꽤 오랜 시일이 걸릴 터.
‘못해도 3, 40년은 걸리겠지.’
그 정도 시간이면 산군은 멀리 도망쳐도 좋고, 수행에 힘써도 넉넉한 시간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산군이었지만 당장은 거동하기가 어려웠다.
산군 또한 천요동에서 원기를 너무 상한 상태였다. 피를 너무 쏟은 탓일까. 본래 영화 후경이었던 수행이 초경으로 격하됐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산군. 제가 요강까지 다 받아드리지요.”
그가 누워있을 때, 몸을 회복한 화란이 현현해 짓궂은 농을 건넸다.
하지만 그 얼굴은 너무도 기쁨이 만개해 있어 산군은 뭐라 하려다 헛웃음을 흘리곤 드러누웠다.
“하- 내가 정말 살아남은 건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분합수결을 익혀 신식을 강고하게 다지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수의 보구를 동시에 다루는 것 자체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환진을 유지하고 귀신들을 부리며, 류곡자와 염주, 그리고 호리병에 탐화오공, 마지막으로 봉악청화까지.
영력을 물처럼 쏟아 부으며 원기까지 상해가며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수행이 조금 내려간 것은 아쉬웠지만 한번 올라섰던 길이다.
시간만 있다면 다시 쌓을 수 있으니 개의치 않았다.
산군은 천요동에서의 일을 상념하다 화란을 바라봤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에 오목조목 자리 잡은 눈 코 입.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생긋거리는 표정은 가히 경국지색이라 해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을 보는 산군의 낯은 조금 씁쓸함이 감돌았다.
‘화란이 본래 경지를 찾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일반적인 귀신이라면 몰라도, 범에게 종속된 창귀가 홀로 수행을 쌓을 수는 없다.
범의 역량에 따라 부릴 수 있는 신통 또한 늘어나겠지만 그래 봤자 창귀는 창귀일 뿐.
잠시 고민한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금은 자매는?”
“그녀들은 진즉에 몸을 회복했습니다. 그녀들도 산군을 따라 수방봉에 거처를 만들어 쉬고 있을 겁니다.”
어느새 홍연이 다가와 거대한 무언가를 슬쩍 내려놓았다.
“이건?”
“놈의 머리와 앞다리입니다.”
꿈에서도 보기 싫은 흉측한 몰골이었다. 놈의 눈알이 박혀있는 거대한 머리는 물론이요, 산군을 찌르기 직전까지 갔던 날카로운 다리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데 이걸 왜?”
물론 탐이나는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홍연의 것이다. 그는 금긴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으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으니까.
“제겐 쓸모가 없는 것이니 교환하러 왔습니다.”
“교환? 아…….”
이것들과 산군이 가진 것을 교환하려는 셈이었다.
어차피 산군은 사월제항으로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었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긴 홍연에게 눈에 차지 않겠지.’
영겁의 홍연에게 눈에 차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까망호리의 수행에 도움이 될 선단이 탐이 나겠지.
‘검둥이 놈 자질은 평범한 축이니.’
산군은 고개를 주억이며 이미 복제해둔 옥주백단을 건넸다.
홍연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미소 짓고는 사라졌다.
‘신기하기도 하겠지.’
그녀가 알기로 산군에게 있는 선단은 옥주백단 하나뿐이다.
그것을 넘겨줬으니 놀랄 만도 했다.
‘덕분에 살았으니까.’
홍연에게는 빚이 많다.
목숨 값으로 선단은 부족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럼 좀 볼까.’
홍연이 놈의 머리를 가져온 것은 아마도 놈의 눈 때문일 것이다.
금긴의 눈은 특별한 혈통으로 이어진 눈이다.
환진을 파훼하거나, 비틀어 힘으로 부수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신통은 산해(山海)에서도 찾기 힘들다.
눈 자체가 특별한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삼귀에게 얻었던 단령금정이 떠올랐다.
‘내단을 눈으로 만드는 비술.’
그것만으로 산군의 환술을 꿰뚫어 봤던 단령금정. 그리고 강력한 환계를 펼쳤던 금긴의 눈.
‘두 개를 합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각종 환(幻)계통의 신통에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
이것은 홍연에게 자문해보기로 하고, 산군은 삼귀에 대한 생각을 하다 손뼉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삼귀의 독문 통술이 있었지.”
시간이 없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었다. 산군은 잠시 홍연에게 들었던 파천마격의 구결을 풀어헤치며 그 뜻을 헤아렸다.
잠시 후.
산군의 안색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이유는 파천마격이란 구결이 지닌 신통 체계가 꽤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파천마격(破天魔激).
이 통술이 놀라운 점은 분합수결과 조금 흡사한 통술이라는 점이었다.
분합수결이 본래 있던 내단을 따로 나누는 것이라면, 파천마격은 가단(假團). 가짜 내단을 만들어 그것의 수를 늘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영명으로 수행을 늘 릴 수 있었던 건가.’
그제야 삼귀가 수행을 급격히 늘렸던 연유를 알게 됐다.
삼귀는 파천마격으로 가단을 만들어 두고, 위급할 때마다 그것을 이용해 기하급수적으로 수행을 올렸던 것이다.
가단을 만드는 것에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겠지만, 보험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사용한다 하여 수행을 급진적으로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영력을 단번에 채울 수는 있겠어.’
그의 눈은 점차 깊어지다 손에 든 것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내 옆에 있는 다리를 내려다봤다.
‘금긴의 다리.’
봉악청화로도 태울 수 없었다.
칠흑처럼 어둡고 예리함까지 가지고 있는 이 다리는 보패로 만들어도 꽤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천천히 생각해볼까.”
홍연과 함께하는 이상 어느 정도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경지를 올릴 선단도 챙겼으니 조금쯤은 느긋하게 지내도 상관없었다.
* * *
보름 후.
금매가 금발을 찰랑거리며 웃고, 은매가 옆에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다 죽어가던 그녀들보다는 이렇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크흠, 아무튼 공자께는 고맙다는 인사로도 부족하네요. 이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 애초에 저희는 혼아혈인데 그런 것도 신경 안 쓰시고.”
“운이 좋았을 뿐이네. 게다가 혼아혈이든 아니든 마음만 맞으면 되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너희들이 뭐라도 난 개의치 않으니.”
애초에 산군은 영수다.
그 사실도 알리지 않았는데 이리 치켜세우니 괜히 미안해졌다.
“역시….”
금매는 그리 중얼거리더니 은매와 의미 모를 눈빛을 주고받았다. 뭔가 다짐한 듯 결연한 낯으로 산군을 향했다.
“공자께서 저희에게 왜 이리 잘해주시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죠.”
은매는 돌연 고개를 푹 숙이더니 얼굴을 붉혔다. 금매도 아랫입술을 베어 물더니 손을 꼼지락거렸다.
뭐 하는 건가 싶어 잠시 기다리니, 이내 헛소리를 내뱉었다.
“고, 공자가 저희 자매 중 한 명을 흠모하고 계시는 것이겠죠!”
“…….”
“하지만 안 됩니다! 은매와 저도 공자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은매와 저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요! 그러니 호, 혼인하시려면 저희 둘과 함께….”
“뭔 개소리야!!”
“꺅!”
소리를 빽! 지르니 금매가 화들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은매는 어느새 바닥에 엎드렸다.
금매는 은매를 일으켜 세우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가르쳐주세요. 저와 은매 중 누구예요?”
헛소리를 늘여놓는 금매의 말에 산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때.
어느새 나타난 까망호리가 긴 머리를 어깨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흥, 산군은 강한 여인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더냐?”
“그건 또 뭔…….”
개똥같은 소리인지.
그런 말은 해본 기억이 없다.
한데 확신에 가득 찬 저 표정은 무엇일까.
산군의 미간이 더없이 깊어졌다.
“아닙니다. 산군님은 연약하지만, 지아비를 섬길 줄 아는 현모양처가 취향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자 산군의 뒤에서 나타난 화란이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산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경험상, 이곳에 오래 있다간 고막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 미리 자리를 피하는 게 옳았다.
“아……. 들어가 버리셨네.”
금매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아쉬워했다.
“흥, 너 때문이지 않더냐. 말 같지도 않은 것을 물으니 저리 뿔이 난 게지.”
까망호리는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끼었다.
“뭐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은 건 그쪽이지 않습니까.”
“뭐? 내, 내가 뭘!”
“강한 여인을 좋아하는 사내는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저희 공자님이 그런 취향일 리 없죠.”
이 시대의 여인상은 현모양처다.
기가 센 여인은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기는 했다.
“흥!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 본녀와 대호는 알고 지낸 지 50년이 훌쩍 지났다. 당연히 본녀가 더 잘 알지!”
하지만 그 세월 동안 말을 나눈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을 쏙 빼 놓고 말한 까망호리는 자신만만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화란은 코웃음치며 비웃었다.
“몇 년을 알고 지냈는지는 관계가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죠!”
“마, 맞아…….”
그러자 까망호리가 당황하며 끙끙거렸다. 생각해보니 홍연과 산군 이외에 대화를 나눈 경험이 별로 없는 그녀였다.
“주인님.”
보다 못한 홍연이 까망호리의 손목을 가리켰다. 그러자 호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의기양양해진 그녀가 손목에 감긴 애적사를 흔들었다.
“이것이 보이더냐?”
“뭡니까 그 뱀은……. 헛! 설마!”
“네년의 눈이 삐지는 않았구나. 후후,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 이후, 금은 자매는 넋이 나간 얼굴로 석실을 나가고, 까망호리는 산군에게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