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90)
낭선기환담-489화(490/600)
낭선기환담 – 2부 199화
“달무리? 네가 말하는 원선태사는 월모자녀를 말하는 것이냐.”
“알고 있어?”
“이름이야 들어본 적 있지. 상천해월의 한 석을 차지한 자의 이름도 몰라 어찌 상계의 수선이라 할까.”
이름이야 들어보았다.
‘사월제항의 본 주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다.
“월모자녀라는 자가 사월제항을 만들었다는 게냐.”
“아니, 그거까지는 몰라. 허나, 그녀 또한 그것을 지니고 있었고 후에 창조에 관한 것을 수행한 건 안다. 너 또한 많은 법칙들 중, 창조의 갈래로 가려 하니… 그녀가 적임이잖아?”
호리가 범을 월모자녀에게 데려가려 하는 이유는 하나.
그의 승선을 바라고, 그로 인해 복수를 원활히 할 힘을 얻게 하는 것.
그게 목적이었다.
“월모자녀는 달에서 살고 있다고 하던데… 내 알기로는 달까지 가려면 족히 수만 년이 걸린다 들었다. 하늘 위에 자리한 곳이라 웬만하면 가다 지쳐 돌아오기 일쑤라던데.”
“그건 내게 방도가 있다. 자모월로 가는 전송진을 알고 있으니.”
“그렇다면야 뭐….”
원선과 교류할 수 있다면 나쁠 게 무엇 있을까.
“허나 괜찮느냐? 내 알기로 월모자녀는 가장 오래된 원선태사라 들었다. 너와 면식이 있다고는 하나….”
자칫 심기를 거스르거나 하면 어쩌냐란 물음이었다.
천범은 호리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중 하나에 그녀가 억지로 경지를 올려 몸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익히 들었다.
그와 반대로 월모자녀는 상천해월에 속한 원선태사 중 가장 오래 된 원선이라 봐도 무방한 자.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심후한 내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괜찮다. 원선에게 오래 살았다는 말은 그리 좋은 소리가 아니니.”
“그게 무슨 소리지?”
“몰랐느냐. 원선태사는 오래 살면 살수록 오랜 천겁을 맞아 왔기에 힘의 대부분을 비축해둔다. 비축한 힘은 일정 기간의 천겁을 대비하는 데 사용하다 보니 평소에는 이빨 빠진 범이나 다름 없는 게지.”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
‘나도 슬슬 천겁을 받을 때로군.’
천겁에 정해진 기간은 없다.
허나 때가 되면 느껴진다.
천기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되는데 천범의 천겁 또한 슬슬 올 때가 되었다.
‘삼천 년 정도인가.’
그쯤 지나면 겁이 찾아올 듯하다.
“그러니 상관없다. 월모자녀는 애초에 두려워해야 할 존재도 아니니.”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 한다.
“월모자녀보다는 그 아랫것들이 더 사나우니 그것들이나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아랫것들?”
“그래. 자모월에는 대궁주인 월모자녀와 소궁주인 향선 넷이 있지. 너와 같은 경지이니 자모월에 간다면 아마 그것들이 널 귀찮게 할 것이다.”
자모월의 소궁주들.
“월모자녀와 달리 그것들은 꽤 호전적이거든.”
* * *
슥, 스슥!
쾅!! 콰르르르!
거대한 빙련이 갈라져 무너진다.
휘리릭 착!
빙련을 깨부쉈던 오색 비도가 소궁주 월련의 손에 들린다.
“언제까지 도망만 갈 테냐!”
앙칼지게 일갈한 월련이 수결을 맺고 열 손가락을 펼쳐 붉은 기운을 뿜어낸다.
우우웅!
쩌저저저적!!
그러자 땅 밑에서 붉은 연꽃이 피어나고 그대로 얼어붙은 채로 조각조각 찢겨져 사방으로 휘날렸다. 삽시에 풍경이 뒤바뀌며, 초아를 환계로 이끌어간다.
“헛수고를.”
허나 초아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허리춤에 있던 투명한 검을 뽑아 단박에 허공을 베어내자 스윽! 풍경이 잘려지며 붉은 연꽃이 깨어진다.
“소미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그럴 리가요.”
월련의 환계가 너무도 손쉽게 깨어지자 이번에는 소미미와 위소소가 나서서 초아를 압박한다.
소미미는 은색 보석이 박혀져 있는 편린을 휘둘렀고, 위소소는 자신과 똑닮은 괴뢰를 내보였다.
소미미의 편린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천둥소리가 요란했으며 근처에 있는 빙련과 빙벽을 모조리 깨부쉈다.
화담은 저 편린에 한 번이라도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지만 초아는 아니었다.
“이, 이게!!”
맹렬한 기세로 공간을 뚫고 공격해오는 기묘한 편린에도 초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편린을 툭 건드려 밀어냈다.
뱀처럼 뻗어오던 편린은 어느 순간 힘을 잃어버렸다.
‘뭐지….’
화담은 초아의 전투를 보며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분명 삼 대 일로 싸우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게다가 탐화와 싸울 때와는 달리 이렇다 할 법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화담은 그게 참 기이했다.
분명 저들도 그리 약한 축에 속하는 이들은 아닌데, 어찌 쩔쩔매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단 말인가.
“위소소! 소미미!”
자신들의 공격에도 초아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으니 화딱지가 나 소리친다. 월련이 소리치자, 위소소와 소미미 또한 고개를 주억인다.
이내 셋의 입이 달싹거렸다.
어느 순간, 일대가 어둡게 물들고 사방에서 불경을 읊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네년이라도 우리들의 합격신진은 어쩌지 못할 것이다!”
쿠우웅!
이내 사방에서 공간균열이 나타나고, 그 위로 빼곡한 법진들이 초아를 가두고 점멸하듯 깜빡거렸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법진들과 공간균열이 사방에 빼곡히 나타나자, 초아는 도망칠 수 없었다.
공간균열을 잘못 건드리면 몸이 찢겨나가는 것은 당연했고, 그 위로 건드리기 두려운 기묘한 법진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법진을 잘못 건드리면 저들의 법칙이 나타나 폭발하듯 뒤섞여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게 자명했다.
화담은 이제라도 자신이 뭘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죄를 뉘우친다 하면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봐드릴지도 모른답니다?”
소미미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초아는 냉소로 답했다.
“우리 사이에 정이랄 게 있었나요. 이곳에서 지낸 세월동안 항상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지 않습니까.”
“미운 정 또한 정이라잖아요?”
얄밉게 말하는 소미미의 말에도 초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공간균열에 푹 꽂아 넣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월련이 신이 나 소리쳤다.
의도적으로 만든 공간균열을 건 드렸으니, 이제 연쇄적으로 공간이 벌어지고 그에 따라 법진이 반응하여 거대한 폭발이 생길 터.
“나와 죽음은 본래부터 가까웠어.”
슥.
검에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이내 핏방울이 새어 나와 그것을 검 위로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공간이 비틀렸다.
끼우우우우우웅-!
뭔가가 잠식되는 소리와 함께, 법진이 점멸하며 공간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더니 찢어질 듯한 과도한 압력이 발생했다.
허나 그때.
“깨져라.”
청아한 음성이 공간을 뚫었다.
쩌저저저저적-!!
동시에 피로 물든 붉은 한빙이 나타나 사방을 붉게 얼려버렸다.
콰창창창창!!
그리고는 순식간에 조각조각 깨져버렸다. 혈빙 조각이 비산한 모습 뒤엔, 공간의 비틀림과 겹겹이 쌓은 법진 따위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
가히 놀라운 수준의 신통력이 아닐 수 없었다.
“미친!”
“백련의 혈빙백변공입니다!”
혈빙 가루가 휘날리는 가운데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소궁주 백련.
이내 그녀의 입이 달싹거린다.
“당장 막아!!”
무언가를 감지한 듯 소리친다.
“이미 늦었어.”
스르르르륵.
초아의 발밑에서 붉은 얼음조각들이 모여 혈빙으로 이루어진 연꽃이 만들어진다. 하나가 아니다.
사방에서 우후죽순 피어난다.
“혈빙백련(血水白蓮).”
천천히 선회하며 피어난 수십 개의 혈빙백련에서 붉은 한기가 달콤한 향기를 뿌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마, 막아!!”
각자 보호 법기를 꺼내 호신막을 만들지만 소용이 없다.
쩌저저적!!
초아의 혈빙한기는 단번에 소궁주들의 법기를 얼려서 깨뜨려버린다.
극한의 차가움을 가진 혈빙이기에 순식간에 얼어붙어 가루로 화한다.
“꺄아아아!!”
“큭!”
월련의 손과 발이 얼어붙고 순식 간에 가루로 화해 사라진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
꽥꽥 비명 지르던 소궁주들은 이내 가루로 변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뭐야 이게….’
가만히 보고 있던 화담은 할 말을 잃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탐화와 싸울 때는 왜 저 신통을 쓰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화담은 원기를 흡수하다 보니 힘의 기운에 관해 조금 민감했는데, 초아의 혈빙백련에서 나타난 혈빙한기는 앞서 흡수했었던 빙월한기와는 조금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빙월한기가 그저 물이라면, 혈빙한기는 마치 독과 같다.’
어쨌거나 전투가 끝났다.
화담은 기쁜 마음에 다가갔으나, 초아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디 다치셨어요?]“아니, 소궁주들을 온전히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야.”
[네? 육신이 그렇게 가루가 됐는데 어찌 살아있답니까?]“향선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니까. 그리고 저들 또한 나와 같은 백요보련이며 비슷한 갈래의 공법을 익히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리고서 초아는 몇 번이나 그들과 생사결을 겨루어봤기에 비슷한 감각이 들어 확신했다.
“저들 셋은 좀 특이한 자들이지. 나와는 달리 꽤 오랜 시간을 소궁주로 있으며 수행했으니까.”
무언가의 비밀이 있는 듯 했으나 화담과는 상관없는 일.
초아는 서둘러 전송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루 이틀을 더 날아가자 대혼빙련 가까이 오게 되었고, 힘들어하는 화담을 다독여 대궁주의 대혼빙탑으로 들어섰다.
[어찌된 게 여기가 더 추운데요….]“이곳에 있는 건물들 대부분은 빙월한철로 만들어졌기에 어쩔 수 없다.”
이내 터벅터벅 걸어가니, 빙월한철로 이루어졌다는 말대로, 사방에서 빙월한기가 새어나와 있었다.
짙게 깔린 새하얀 한기가 바닥에 넘실거렸다.
[저것들은 뭡니까?]화담은 바닥에 깔린 한기들 사이에서 형체를 이루는 무언가를 보며 물었다.
“빙월한기가 오래토록 쌓이면 저들끼리 영성을 갖기도 한단다. 허나 지성이 쌓이지는 않고, 육신 또한 제대로 이루지 못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자, 어서 가자꾸나. 대궁주께서 깨어나시기 전에 너희를 보내야 내 목숨도 온전할 수 있을 테니.”
[넵!]초아와 화담은 이내 대혼빙탑 한켠에 자리한 전송진을 찾아냈다.
고대 전송진답게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송진은 투명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연꽃의 모양이었다.
“대혼빙륜진. 이것이면 너희들도 땅으로 내려설 게야.”
[초아님은 정말 안 가십니까?]“앞서 말했다시피 난 대궁주에게 진 빚이 있어.”
[하지만….]“마음은 고맙구나. 허나 아니 되겠다. 서방님과 만난다면 전해주거라. 난 잘 있으니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언젠가 만나러 가겠다고.”
부이이잉!
전송진이 발동하고 기묘한 빛무리가 만연했다.
초아는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고, 아련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전해주렴. 난 괜찮다고.”
그때였다.
촤자자자자작!!
빙월한기에 생명이 깃든 듯 자유자재로 움직여 화담이 있는 일대를 모조리 얼어붙게 만들었다.
화담의 발이 땅과 붙어버렸고, 동시에 날카로운 음색이 들려왔다.
“백련…!!”
소궁주들이었다.
화담은 분명 가루가 되어 죽었을 소궁주들이 어찌 다시 살아난 건지 몰라 기함했다.
초아는 그녀들의 죽지 않았음에도 놀라지않고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한 번만 눈 감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될 수 있을 리가!”
“하긴, 그렇겠지요.”
초아 또한 거절할 것을 알았는지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촤르르르륵!
콰앙!!
촤악!
쩌저적, 콰직!
월련의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다.
허나 땅에 닿자마자 얼음조각으로 흩어지고 다시금 새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월련뿐만이 아니다.
위소소, 소미미 모두 같다.
초아는 몇 번이고 그녀들의 사지를 찢어버렸으나 죽지 않았다.
“빙련과 하나 된 몸. 이곳에서는 우리는 죽일 수 없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
월련이 이죽거림에도 초아는 묵묵히 그녀들을 죽였다.
그러면서도 한손으로는 수결을 맺어 얼어붙은 화담의 발을 풀어 주려고 했다.
화담은 그 노력에 힘입어 자신의 신통을 이용해 자신의 발을 묶은 한빙을 흡수하려 했다.
촤악!!
툭, 투둑.
“이제 슬슬 힘이 떨어지는가 보네요 소궁주 백련!”
어깨를 스친 그녀들의 공격에 초아의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끝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그때.
우우웅-
공간의 고동이 울렸다.
이윽고. 쿠우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빛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화담이 있던 연꽃이 만개하고 빛기둥을 중심으로 영험한 기운이 입자로 퍼져 사방에 한기를 몰아낸다.
“감히 누가…!”
소궁주들은 당황했으나, 본분을 잊지 않았다.
휘이잉.
전송진이 작동을 멈추고 연꽃 안에서 사람의 인영이 한기 사이로 모습을 내비친다.
언뜻, 보여진 사내의 모습.
소궁주들은 곧장 일수를 날렸다.
그때였다.
오묘한 기운의 파장이 이질적으로 빙월한기를 몰아내며 그들에게 맞닿았다.
“아.”
외마디 비명과도 함께, 소궁주의 전신이 잿가루로 변했다.
월련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의 몸체도 전부.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궁!!
이내 바깥에서 거대한 땅 울림이 느껴졌다.
초아는 그것이 그녀들이 본신을 두었던 빙련이 무너지는 소리임을 직감했다.
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 소궁주들을 죽인 사내는 그녀의 꿈에도 종종 나타나 사무친 그리움을 안겨다 주던 자였으니.
그가 바로 그녀의 반려.
천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