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98)
낭선기환담-497화(498/600)
낭선기환담 – 2부 207화
죽이고 죽였다.
죽은 자들은 상천 아래, 원기로 흩어져 살아남은 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나의 죽음은 하나의 생명을.’
오랜 전장 속을 헤치며 같은 동문을 죽이고, 또 죽였다.
내 손은 씻을 수 없는 그들의 피로 얼룩졌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내 힘은 걷잡을 수없이 불어만 갔다.
사라진 자들의 원념이 나를 붙들 듯 내 힘으로 모였으나, 그들의 사념이 날 끝없이 괴롭혔다.
“괜찮아?”
나와 등을 맞대고 싸운 신위였다.
신위뿐만이 아니다.
린도, 아검도, 예동도 모두가 함께 싸우고 있다.
“괜찮다.”
괜찮아야만 했다.
나의 적은 아직도 끝이 없으니.
불을 입 안에 머금은 듯, 고통스러웠으나 전장은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릴 테니.
채애앵!! 콰직!
푹!!
적군의 검을 부수고, 몸을 꿰뚫는다. 나의 창에 꿰뚫린 적은 몸이 불타고, 재로 변해 내려앉았다.
그것이 수선이든, 나의 동문들이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이면 죽일수록 힘은 넘쳐났다.
다만 고통스러울 뿐.
“크헉!!”
죽기 싫다고, 사라지기 싫다고 애원하는 아우성이 허다했다.
허나 나는 그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인도했다. 이제는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정의인지 애매했다.
그저, 나의 등 뒤에 자리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살을 찢었다.
“네놈을 저주한다 산!! 네놈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야!!”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해. 나 또한 곧 따라가게 되겠지. 늦고 빠르고의 차이일 뿐 아니겠나.”
촤악!
동문을 죽이면 더 많은 양의 천지원기가 상천에 뿌려졌다.
나는 그것을 천기라 부르며 그것을 흡수하여 힘을 키웠다.
그러다 너무 많아진 천기를 다스릴 몸의 기관을 만들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덜어낼 그릇이 필요했다.
덜어낼 그릇.
그것이 원신의 시작이었다.
내 손에 죽어간 이들의 사념과, 살들을 한데 뭉쳐 놓은 그릇.
나는 원신을 수없이 만들어내 나를 좀 먹는 그들의 념을 덜어냈다.
그리고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죽였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또 죽였다.
그러하니 나의 힘은 더 늘어났다.
양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오히려 더욱 정순해졌다.
그리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의 점으로 보였다. 내가 그 점을 건들면, 점들은 모두 흙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내 그 점들이 수선이었고, 나와 같은 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들은 이리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단 말인가.’
나는 전장에서 창을 놓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의 불꽃을 피워 상천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전쟁은 끝을 맞이했다.
* * *
많은 생명이 상천 아래 사라졌다.
서글픈 일이다.
그들이 흘린 피가 대지를 적시고, 강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간다.
상천은 풍족한 기운을 머금었고, 그에 따라 경지를 드높이는 자들이 속출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여기서 뭐해? 다들 널 기다리고 있어. 전장의 영웅이잖아.”
오랜 전쟁이 끝났다.
연이어 축제가 벌어졌다.
오랜 전쟁 속에서 고통 받은 만큼, 살아있음을 더 즐기기 위해.
“저리도 기쁠까.”
천궁의 소선들은 기쁨에 몸서리쳤다. 오래토록 이어진 전쟁이 끝을 맞이했으니 좋기도 할 거다.
이제 별안간 들이닥칠 죽음 앞에서 한결 자유로워졌으니.
“기뻐하는 게 당연하지. 온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됐잖아.”
“온전한 죽음.”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이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온전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전쟁의 승리를 더 기념하는 게 어때. 모두 너만 보고 있잖아.”
“그래.”
많은 자들이 날 보았다.
전장에서 함께 싸운 이들.
모두 즐거운 미소를 띤 채다.
축배를 들어야겠지.
“모두, 고생했다.”
모두와 함께 잔을 들고 전쟁의 승리를 만끽했다.
그 뒤.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나는 전장 속에서 얻은 힘과 그것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
성취는 더 올라갈 수 없을 높이까지 닿았으며, 비례하여 힘은 거대해졌다.
자만이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상천 아래 나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 판단됐다.
그것이 복일지, 흉일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거다.]나의 죽음을 떠올릴 때면 항상 봉황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비참한 최후.
어찌하여 비참한 최후일까.
“기왕 죽는다면….”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시작을 정하지는 못했으니, 끝이라도 나의 마음대로.
“산.”
신위였다.
“또 기운이 한층 정순해졌구나. 스승님께 먼저 닿을 수 있는 건 역시 너밖에 없겠어.”
스승님께라.
상천의 하늘 너머.
대라천을 뜻하는 것이리라.
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부족함이 많은 자다.
대라천은 나 같은 자가 어울릴 곳이 아니겠지.
아직도 내 손에 죽어간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승께서 지금의 날 보신다면 얼마나 경을 치실까.
파문을 하신다 해도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리라.
난 대라에 어울리지 않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린이 다쳤어.”
“린이? 전쟁이 끝나고 깨달음을 정리하러 폐관에 들었을 텐데.”
“뭔가 잘못되었나 봐. 네가 가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던데.”
“…그래. 그래야겠어.”
린이 다쳤다니, 안될 일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 공간을 넘고 넘어 린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는 문득 깨달았다.
‘죽음 앞에 초연해지지 않았었나.’
한데 지금의 나는 왜 이리 호들갑을 떨어대는가.
급격하게 마음이 식었다.
허나 발은 이상하게 재빨랐다.
말이 재빠르자 마음 또한 뛰었다.
이상한 일이다.
“산…?”
난 어느새 린의 동부에 있었다.
어둡기 짝이 없는 곳.
작은 불빛 하나 없는 칠흑처럼 어두운 동부다.
난 그곳에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주저앉아 있는 린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으냐.”
“산… 어떻게 알고 왔어?”
어두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렴풋이 형체만이 보일 뿐.
허나 음성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다쳤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왔지.”
“그렇구나….”
린은 나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난 그대로 그녀를 안아 동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품에 안겨있는 채로 린을 관조해보니 상태가 꽤 좋지 않았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어찌 해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다.
린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대며 나의 기운을 흘려주자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린의 동부에서 지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는 혼인했다.
슬하에 많은 자식을 두었다.
부부의 금슬이 좋아, 천궁의 한켠에서 평화와 행복에 취해 살았다.
행복.
그 단어의 참 뜻이 무엇인지,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가 걸음과 말을 배워 저 홀로 생각하고 뜻을 피워 나간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생명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성장을 바라본다는 것은 부모 된 입장으로 퍽 재미진 가락이 있었다.
“벌써 저리 자랐나… 이럴 때만큼은 시간이 참 야속하군. 조금 더 천천히 자라도 좋을 것을.”
“그러게. 조금 더 천천히 이 어미 품에 있어도 좋을 텐데.”
어느덧 아이들은 장성했다.
천궁의 한 자리를 꿰찰 정도로.
난 그것이 영 석연찮았으나, 자식들의 뜻이 그러하니 내버려 두었다.
기특하게도, 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에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방황하던 옛 시절의 나와 달리, 나는 꽤나 안정되었다.
허나 복이 커질수록, 후에 다가올 흉 또한 점점 내 마음 속에서 크기를 부풀릴 수밖에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이 이런 것이던가.’
아무 전조도 없이.
그것은 내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 * *
천궁의 본궁.
예동이 자리한 곳에 여러 개의 검을 지닌 노인이 나타났다.
바로 예동의 친우 아검이었다.
“많이 늙었군.”
“예동.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앉게.”
예동은 그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으나 아검은 앉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뭔가.”
“상천의 원기가 고갈되고 있음을 자네 또한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소선들의 성취가 오르면 오를수록 소모가 극심해지지. 후에는 저들의 성장 또한 멈출 게야. 다른 비책을 찾아봐야 한다 생각하고는 있었지. 전쟁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고, 또 다시 그런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힘을 갈고 닦아야 할 때이니까.”
천궁의 지도자다운 발언이었다.
허나 아검이 바라는 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네 성취는 어느 정도지.”
“난… 자네와 엇비슷하겠지.”
“그럼 산은?”
“산은… 비교할 수도 없지.”
그들의 힘은 이제 막 힘을 자리 잡은 상선들보다 한 계단 위 정도.
동문 수십을 도륙한 산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허나 산이 있기에 우리 또한 이곳에 자리할 수 있었지. 그리고 그는 옛부터 동문들의 우상이었으니… 뭐,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 아닌가. 한데 그건 갑자기 왜.”
“만일의 이야기일세.”
“자네와 내가 동거 동락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리 뜸을 들이나. 기탄없이 말해보시게.”
“지난 전쟁으로 많은 힘을 비축하고 있던 동문들이 죽어나갔지. 허나 그로인해 많은 원기가 상천에 스며들어 산은 그 축복을 받았네. 하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또 다른 하늘로 향할 계단을 한발 남겨두고 있지.”
“…그렇지.”
“그렇다면 만일, 산이 죽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천기가 상천으로 흘러 들어가게 될까.”
덜컹!
예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이냐.”
진득한 노호성이 담긴 음성.
목소리에 살이 가득하다.
“만일의 이야기라 말하지 않았나.”
“웃기는 소리! 네놈이 상선들을 데려가 검으로 만드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허나 묵인했지. 우리는 핍박받았고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달라! 게다가 우리의 목숨을 구명해준 산을…!!”
예동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 냈다.
“가라. 더 할 말은 없으니. 그간의 정을 보아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만일의 이야기라 말했네. 만약, 산이 죽어 그의 원기가 사방으로 뿌려진다면 우리들 또한… 산과 같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자 예동의 입이 꾹 닫힌다.
“자네도 알고 있을걸세. 우리와 산은 다른 경계에 서 있네. 스승님과 한결 가까운 그 경계에 말이야!! 자네도 그 하늘을 밟고 싶지 않은가?”
“내 힘으로 올라설 것이네.”
“지금의 상천으로는 불가능하지. 수많은 천지원기를 산이 홀로 독차지하지 않았나!”
“….”
아검은 그리 말하고는 그에게 작은 단검을 내주었다.
“뭔가.”
“작은 선물을 가져왔으니 한 번 쥐어나 보시게.”
“내게 검은 필요 없어.”
“작은 단검이네. 화살을 만들던, 무언가를 하던 간에 단검 정도는 지니고 있어서 나쁠 것 없지 않나. 자네가 말한 대로 나 또한 산과 같은 자네의 동문이니 성의를 봐서라도 받게.”
예동은 한숨을 길게 뱉어내고는 건네는 단검을 잡았다.
픽. 챙그르르.
예동이 잡았던 단검이 바닥을 굴렀다.
“너 이 자식…!”
단검 손잡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날이 숨어 있었다.
손바닥을 베인 예동이 큰 화를 터트리려는 찰나.
털썩, 쓰러졌다.
정신은 온전했으나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인 듯 했다.
“후에는 내게 고마워할 걸세. 이미 동문의 피로 얼룩진 손, 더 묻혀서 무엇이 크게 변하겠는가.”
쓰러진 예동을 자리에 앉힌 아검은 이내 등을 돌려 말했다.
“난 모두를 위해 그러는 것이야. 후에는 모두가, 상천의 모두가 내게 큰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천검을 만들게 될 테고. 그리고 자네도. 높은 경지로 올라가지 않겠는가, 지금의 수준보다 더!!”
아검의 스산한 웃음소리가 천궁의 한켠에서 천천히 울려 퍼졌다.
“후에는, 내게 고마워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