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499)
낭선기환담-498화(499/600)
낭선기환담 – 2부 208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의 경지는 완고해졌고 만물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 상천마저 내게는 좁았다.
허나 내 가슴에 그늘이 있어, 이것을 어쩌지 못하면 대라는 허락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상천, 상천… 상천이라….”
공간을 꿰뚫어 곧장 상천과 맞닿은 장소로 향했다.
뿌옇게 안개가 가득한 바다.
건원해였다.
후웅!!
팔을 휘두르자 안개가 걷히며 저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수면에 비추어 반짝거렸다.
건원해.
바다의 표면에 떠오른 것은 하늘.
바로 이곳, 상천의 하늘이었다.
“스승님께서는 어찌하여 땅을 쪼개고 건원해를 솟게 하셨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게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스승님께서는….
첨벙!
건원해로 들어가자 끝도 없는 어둠만이 반긴다.
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지의 종착지에 우리네가 원하는 하늘이 펼쳐져 있지는 않을까.
허나 감히 다가갈 수 없으니.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지의 힘이 날 밀어낸다.
나의 힘을 빨아들어 이윽고 혼까지 삼켜버릴 두려움을 안긴다.
촤악.
“모든 것을 알겠노라 자부했으나, 결국엔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허나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하늘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 후에는 나의 손에 얼룩진 핏물로 화한 그들의 저주들로 하여금 온전한 죽음을 받아들일지 모르리라.
‘온전한 죽음.’
섬뜩할 만한 말이지만 나는 왠지 그것이 진정한 안식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또 다른 시작이다 말했으나 내게 죽음은 죽음이다.
죽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새로이 한다는 것은 미련이 있다는 뜻.
미련이야말로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이니, 털어내야만 할 것이다.
‘모르겠군. 온전한 죽음. 진정한 죽음. 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산, 여기서 뭐해?”
린이었다.
“그냥 건원해를 보고 있었어.”
린은 건원해에 솟아오른 자그마한 바위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날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니, 네가 여기 있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한 번 와봤어. 또 어디 가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고.”
“간다면 너와 함께겠지.”
꽤 듣기 좋은 말이었던가.
린은 싱긋 웃으며 발을 건원해에 담구며 동동 거리며 물장구쳤다.
찰랑이는 물방울이 그녀의 발장구를 따라 튀어 오르니 한 폭의 명화 와도 같은 모습이다.
“왜?”
“그냥. 보기 좋아서.”
평생 눈에 두고픈 모습이다.
온전한 죽음.
린에게만큼은 그것을 안겨다 주고 싶었다.
“무슨 할 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괜찮으니까 말해도 돼.”
난 린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말했다.
죽음이라 말한다면 이 애정 가득한 얼굴이 일그러질 수도 있겠지.
“온전한… 평안을 주고 싶다.”
“온전한 평안?”
린은 뭔지 모르겠다는 듯 갸웃하다 배시시 웃었다.
“네가 곁에 있는 걸로도 난 한없이 평안하기만 한걸. 산.”
내게 두팔을 뻗는다.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아 들자 목을 꼬옥 껴안아 안겨온다.
향기와, 감촉. 따스한 체온이 내 전 신을 휘감는다.
그러며 말하기를.
“아이 하나 더 낳을까?”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그리 말하니, 거절키가 어렵다.
내게 온전한 죽음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원한다면.”
이내 그녀를 안고 건원해를 벗어나니, 천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수선하다.
성벽 외곽에 수선 하나 없고, 제각각 바삐 돌아다닌다.
“무슨 일이냐.”
병사 하나를 잡아 묻자, 화들짝 놀라며 우물쭈물 거린다.
“무슨 일이냐 묻지 않느냐.”
“그, 그것이….”
그때였다.
척 척 척 척 척!
어느새 모인 병사들의 창이 나와 린을 향하고 있었다.
그 수가 천, 만을 넘어가니 가히 엄청난 숫자였다.
“무슨 짓이지?”
“네 이놈들! 이분이 누군지 알고나 이런 짓을 벌이는 게냐!”
린이 나서서 외치자 병사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답한다.
“명입니다! 죄, 죄인 산과 그의 처자식들은 천궁의 반란을 꾀했으니 엄히 잡아 데려오라는 명입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병사들 또한 겁에 질려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죄목에.
어마어마한 숫자였으나, 내게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참으로 딱했다.
“괜찮다. 떨지 말라.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안내해라. 그 명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봐야겠으니.”
“산….”
린에게 괜찮다며 눈짓하자 잠자코 있는다.
천천히 병사들의 인도를 받자, 여러 시선들이 쏠리다가도 피한다.
그리고 이내.
천궁의 본관, 깊아까지 들어오고 나서야 거대한 대문이 거칠게 닫힌다.
동시에 거대한 법진이 바닥을 밝히며 나타나 금제가 발동된다.
나와 린의 몸을 옭아메는 금제와 함께 누군가가 나타난다.
“…아검.”
그는 아검이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다.
신위 또한 함께였다.
그리고….
“너희들이 여기는 왜…!”
나의 자식들 또한 함께였다.
줄줄이 연행된 듯 잡혀와 포박된 채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민다.
“아검, 신위.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이유야 많지… 허나 그것들을 말한다 하여 사정이 달라지겠는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풀어라. 나와 너 사이의 일이지 않느냐.”
“그럴 수는 없다.”
“어째서냐.”
“네 힘이 나를 능가하고, 천궁을 능가하는데 어찌 그러겠나. 이들이 없다면 나 또한 네 손에 찢겨 죽을 텐데 그럴 수야 없지. 내 목숨줄은 잡아 놓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뻔뻔하기 그지 없는 태도다.
“후회할 거다 아검.”
으드드득.
이를 갈며 기운을 드러내자.
쩌저적, 콰창!!
전신을 속박하고 있던 금제가 단숨에 깨부숴지고 강렬한 기세가 사방을 아우른다.
쿠구구구궁!!
벽면이 갈라지고 지진이 일어난 듯 요동친다.
“산!! 네 아이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어 이러는 것이냐!!”
아검은 내 아들을 잡아 어느 거대한 연못 앞에 멱살을 잡아 놓았다.
“스승님의 물건인 건원해정을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 이곳에 빠지는 존재는 뼈도 남기지 않고 혼까지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산!!”
구구구구구.
진동이 잦아든다.
애절하게 내 손을 붙잡은 린의 감촉이 날 막아 세운다.
린은 아이를 잃은 어미의 표정을 하며 날 바라봤다.
“…오랜 세월 쌓아온 친분도 모두 소용이 없군. 이처럼 허망하니.”
“산, 네 스스로 검을 찔러라. 도합 백이십여덟 자루의 검이다. 그것으로 너의 경혈 하나하나를 찔러 네 힘을 봉해라. 그리하지 않으면 네 자식들을 건원해정으로 빠뜨리겠다.”
“아검!!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야!! 우리는 동문이잖아! 친우잖아!!”
아검은 답하지 않았다.
“찔러라.”
스스슥.
아검의 검이 스르르 내게로 다가왔다. 얇고 짧은 검이다.
“어서!!”
“아버님!! 하지 마십시오!! 저희들 때문에 그러셔서는 아니 됩니다!”
짜악!!
“커헉!”
“어서 찔러라 산.”
“산…!”
린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난 그런 린을 달래 주며 검을 잡았다.
‘이것을 말한 거였나.’
급박한 상황에서도 내 정신은 유달리 담담하기만 했다.
온갖 감정이 회오리쳤으나, 그것들 모두가 예언을 말했던 그녀의 목소리로 탈바꿈되어 이해되게끔 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그리 말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온전한 죽음은 이룰 수 없겠군.’
나는 내 몸을 찔렀다.
푸욱.
“끄으윽…!”
이후로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내와 처절함 뿐이었다.
백스물여덟 자루를 몸에 찔러 넣자 나는 모든 선기를 차단당했다.
나 스스로는 검 한 자루 뺄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그 뒤부터는 정신이 몽롱했다.
린은 연신 날 안아들며 울먹였고, 나의 자식들도 피눈물을 흘려댔다.
이내 즐거운 듯 웃는 아검과 애잔한 눈빛을 하는 신위를 뒤로 하고, 나는 건원해정에 빠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건원해정의 우물 속에서 나는 서서히 사라졌다.
육신과 정신이 분리되고, 혼과 정신이 분리되었으며 모든 것이 하나하나 천천히 소멸했다.
부질없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이로다.
하늘의 끝에 닿아도 그 모든 것이 하룻밤 꿈처럼 사라지니, 무엇이 나를 눈 뜨게 한단 말인가.
차라리 잘 되었다.
난 이대로 죽음을 원하노니.
온전한 죽음으로 평안을 찾겠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나 자신 하나는 온전한 평안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랐다.
평안 속에 또 다른 길이 있으니.
아. 왜인지 알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개안하게 된다.
모든 사사로운 것들을 내버리고 나서야 나는, 나는 드디어 평안에.
온전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몸이 부유하는 듯 하다.
속박하는 육신을 버리고 나서야 몰랐던 자유를 느낀다.
나는 그제야 온갖 것들의 속박을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하늘로 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죽음.
온전한 죽음이야 말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라 확신했다.
아쉬웠다.
이 죽음이 내가 택한 죽음이었다면.
온전히 모든 걸 내버리고 택한 죽음이었다면!!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지금이라도 사사로운 속세를 내던진다면…!
허나 그때.
풍덩!!
건원해정의 물결이 파동쳤다.
이 출렁이는 물결이 예견하는 것은 지독한 절망이었다.
나만이 아니다.
나의 아이들 또한 이곳으로 빠졌다.
‘아검!! 약조를 어긴 것이냐!!’
더 없는 분노가 날 사로잡았다.
허나 그뿐.
감정에 사로잡혀 무엇하나 할 수가 없으니 기다리는 것은 온전치 못한 죽음.
그녀가 말했던 대로의 비참한 죽음.
그뿐이니.
* * *
몽롱함 속에 깨어난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허나 보이는 것은 무.
오직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
‘나는 죽었나.’
죽고 윤회를 하는 중인가.
한줄기 분혼이 되어 이제는 그 무엇도 아닌 채 어딘가로 향하는가.
소멸했어야 할 내 혼이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봉황의 안배인가.
쓸데없는 짓을 하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실패자인 내가 또 살아나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이미 나의 힘은 놈이 취했을 것이고, 많은 핏줄들이 죽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살아난다 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미약한 혼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쥐면 바스라질까, 불면 날아갈까 싶은 기이한 혼은 내게 날아와 나의 곁에 달라붙어 다른 내가 되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인가.
아니면 계획된 자의 안배인가.
어찌됐든 나는 그저 바라볼 뿐.
그저 나를 지켜볼 뿐이다.
그것이 바로. 나이며, 내가 아닌 이야기의 시작. 그리고 끝이었다.
“그렇군. 넌 줄곧 내게 있었어.”
날 바라보며 말하는 사내는 모든 것을 깨달은 듯 현기 가득한 눈으로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네가 바라는 온전한 죽음. 내가 이루어줄 테니.”
난, 그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나의 온전한 죽음이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