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5)
낭선기환담-4화(5/600)
낭선기환담 – 4화
“초아 버리시면 안 돼요, 네?”
산삼이 어디 있냐 물으니 다짜고짜 껴안는다. 그것뿐이랴,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칭얼거리는 초아를 보며 산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의 똥 씹은 표정을 보았는지 초아의 눈물은 그 크기를 부풀리고 울음소리가 점차 거세졌다.
‘염병…….’
뭐만하면 빼액 울어버리니 있지도 않은 정나미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초아가 산삼 얘기에 우는 걸 보니 어떻게 됐는지 대강 느낌이 왔다.
[산삼 잃어버렸냐?]버려두고 와서야 떠올린 거지만, 꼬맹이한테 산삼 쥐어준다고 알아서 잘 살아갈 턱이 없었다.
누구한테 뺏겼겠지.
“기, 김부자가 산삼 뺐어갔어요.”
[김부자?]울먹울먹 거리며 더듬더듬 어찌 된 영문인지 말하는 초아의 이야기에 산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강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마 자신이라도 웬 꼬맹이가 산삼 팔러 돌아다닌다면 몰래 훔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이 각박하니 제 안위를 챙기기도 바쁜 것이다. 그리고 원래 세상은 있는 것들이 더 하는 법이기도 하고.
[타라.]“히끅, 네?”
* * *
김부자는 소녀에게 빼앗은 산삼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공짜로 이 귀한 산삼 세 뿌리를 얻었으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마누라 잔소리도 웃으며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허, 어찌 이리 고울꼬.”
산삼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과 흡사해지고 천년을 묵으면 영성을 갖게 되어 사람의 모습으로 화해 움직인다고 한다.
그렇기에 산삼 뿌리가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면 흡사할수록 오래 묵은 것이고 값진 것이다.
“칠삼에게 물으니 족히 삼백년 이상이라 하니 그 돈이면 이 좁아 터진 곳을 떠나 한양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족히 금자 세 냥. 좀 더 기간을 오래 잡는다면 금자 다섯 냥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이라면 상단을 차리고 한양에 커다란 집 한 채를 짓는 것도 꿈이 아니리라.
“큭큭큭,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내심 그 귀신같은 꼬맹이를 쫓아낸 게 불안하지만 제까짓 것이 한을 품으면 어떠랴.
“그래봤자 어린 계집이지.”
게다가 그년의 신분은 노비.
입만 뻥긋하면 백지자 대감이나 그 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곰방대 하나를 들어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뻑뻑 연기를 빨아들이니 극락이 따로 없음이다.
“어르신! 어르시인! 대감마님!! 크, 큰일 났시요! 우, 우와악!!”
말똥이 밖에서 호들갑을 떨며 시끄럽게 굴었다.
한창 기분 좋았던 김부자가 아미를 좁힌 채로 회초리를 들었다.
“네 이놈을 기냥!”
아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해도 너무 멍청해 사사건건 신경질을 긁으니 어찌 곱게 보일까.
끼익.
단박에 문을 열고 말똥을 혼내려 했던 김부자의 발걸음 우뚝 멈췄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말똥이 사지를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그러는……, 흐이이익!!”
말똥이 마당 앞에 구겨져 있는 것을 본 김부자가 밖으로 나서자 보이는 것은.
황갈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 날카로운 송곳니와 붉은 눈. 누가 보아도 절로 오줌을 지리게 할 만한 풍채를 가진 범중의 범.
말로만 듣던 백산의 산군이 눈에 불을 켜고 기세등등 서 있었다.
“에구머니나!”
“부, 부인!”
뭔 일인가 싶어 나왔던 김부자의 처도 호랑이를 보곤 화들짝 놀라 주저앉았다.
애가 들어서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회임 중이었다면 단박에 애가 떨어졌을 것이다.
이 집에 있던 다른 노비들도 산군을 보며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개중에는 오줌까지 지리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김부자는 손에 들고 있던 회초리도 놓아버린 채 덜덜 떨었다.
맹수 중의 맹수가 두 눈을 붉게 빛내며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까. 저 날카로운 발톱과 단단한 송곳니가 너무도 두려웠다.
호랑이를 만나면 그 기백에 눌려 혼절을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꼼짝 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리 허무하게 가게 될 줄이야.
명예롭게 죽는 것도 아닌 범에게 잡아먹히게 되다니.
김부자는 하늘도 무심하다며 억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때.
“산삼 내나!”
산군의 곁에서 웬 어린애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하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산군의 목덜미에 매달려 있는 백발의 소녀가 가슴을 활짝 펴고 호기롭게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년은……!’
아까 전, 산삼을 가지고 찾아왔던 백발의 소녀였다.
‘그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정말 초야를 치루고 산군을 지아비로 모시기라도 했단 말이던가!
김부자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찔리는 게 있으니 본능적으로 숨은 것이다.
하지만 초아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저기! 저기 저 아저씨랑 저 아저씨가 초아 밀치고 산삼 뺐어 갔어요!”
히익!
말똥이와 김부자의 안색이 새하얗다 못해 파리해져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이상하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인다 해도 범보다 발이 빠르지 않으니 헛수고나 다름없었다.
‘죽는다!’
그것도 호환(虎患)으로!
괜히 사람들이 호환마마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김부자는 말로만 들어오던 것을 자신이 직접 당하게 되자 그동안의 어리석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산군의 산제물이 정말 그의 신부가 되었을지 누가 알았을꼬. 쥐며느리도 몰랐음이었다.
그뿐일까.
산군의 신부에게 강제로 산삼을 빼앗고 몽둥이찜질을 하려 했으니 찢겨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산삼 어딨냐?]움찔!
‘범이 말을 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던 김부자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영물이로구나! 영물이야!’
백산의 산군. 그의 위명이 임금에게까지 닿았다고 하더니 어느새 영물이 된 모양이었다.
어쩐지 저 꼬맹이를 신부로 맞이했다하니 그렇지 않을까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김부자에게 그것은 호재였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지 않던가! 김부자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며 입을 뗐다.
“여, 영물이 되신 것을 감축 드리옵니다!!”
[닥치고 산삼 가져와.]“예, 예…… 마, 말똥아! 무엇하느냐! 어서 산삼을 내드리지 않고!”
“아, 알겠습니다요!!”
쿠당탕!
넘어져가며 허겁지겁 산삼 세 뿌리를 들고 온 말똥이 산군의 머리 위에서 내려온 초아에게 공손히 그것을 내줬다.
“히힛, 서방님 산삼 찾았어요!”
그 천진난만한 웃음에 산군이 콧방귀를 끼고 다시 안색을 굳혀 김부자를 내려다봤다.
“사, 산군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못난 놈이 산군님의 신부를 알아뵙지 못하옵고…….”
[신부는 얼어 죽을. 됐고. 네놈이 내 산삼을 가져간 것은 명명백백하다. 그러니 그 벌로 네 재물을 가져갈 테니 목숨을 취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재물이라니!
김부자는 한낱 범이 자신의 재산을 갈취해간다는 것에 얼굴을 붉혔다.
“어, 어찌 영물께서 재, 재산 따위를 탐하신단 말입니까…….”
‘영물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들었다. 그렇다면 산군 또한 마찬가지.’
조금 대들어도 죽지는 않으리라.
자신이 어찌 모은 재산인데 이리 허망하게 빼앗길쏘냐.
그리 생각한 김부자는 비굴하게 엎드리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탐내는 범을 괘씸하게 바라봤다.
[영물은 재산을 탐하면 안 된다더냐? 내 마음이니 냉큼 가져 오거라!]산군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또 다시 터지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생각하니 당연히 재산을 뺏기기 싫어진 김부자는 연신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 해도……, 저희 재산을 가져가시면 임금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겁니……다.”
[임금?]“예, 제가 이런 변방에 있기는 하오나 그래도 나라 녹을 먹었던 놈으로……, 이 재산 또한 임금의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아, 그러니까 내가 가져가면 임금이 군대라도 끌고 와 날 죽일 것이다 뭐 이런 말이냐?]하!
산군은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영물임을 알아보고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인지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가 꾀를 내는 것이 아닌가.
평범한 영물이었다면 임금의 군대라는 소리에 지레 겁을 먹었을 것이나 산군은 애초에 인간이었다.
얼마나 영물을 무시했으면 그딴 되도 않는 소리를 내뱉는 걸까. 산군은 기가 차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기분이었다.
녀석에겐 안됐지만 그런 얼토당토 않는 소리에 속아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가 없다.
[네놈이 허무맹랑한 말을 믿고 꾀를 내었구나. 영물이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확신이라도 하고 있는 헛소리야. 그러니 그런 개소리를 내뱉는 것이지.]“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김부자! 백산의 산군님께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영물이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자신의 명줄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여우같은 늙은이의 짱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영물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런 헛소리를 믿는 것이냐?]“그, 그럼 죽여도 개의치 않다는 말입니까?”
[살아있는 것은 본디 다른 무언가를 죽이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 생명이 생명을 죽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을 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어찌 인간만을 다르게 생각하더냐!! 인간과 짐승 그리고 식물이나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차별을 두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짓거리다!]살아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이며 살아간다.
그것은 죄악이 아닌 본능이며 섭리인 것이다. 길가에 자란 잡초도 하나의 생명이고 인간도 하나의 생명인데 그 무게가 다르다 생각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 또한 그저 땅 위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일 뿐. 그 차이는 없다.
게다가 애초에 영수와 요수의 차이는 순전히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을 공격치 않고 온순하면 영수, 난폭한 성정에 인간을 공격하면 요수라 하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까.
모든 세상이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기껏 자비를 베풀어 목숨을 취하지 않으려 했더니 네놈의 세치 혀가 네 명줄을 앗아가는구나. 영물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네깟 놈들 죽여 무슨 득이 있다 그리 하겠느냐!]“히, 히이익!!”
[네놈은 내게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영원토록 내 창귀가 되어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 보거라!]“히익!! 자, 잘못 했습니다! 부, 부디 모, 모, 모, 목숨만은!!”
산군이 으르렁 거리며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려 앞발을 들어 올렸다.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부풀어 오르고 황갈색의 털이 삐죽 솟아올랐다. 산군의 붉은 눈동자는 분노로 인해 빛나고 터져 나온 살기에 김부자는 게거품을 물기 일보직전!
“서방님!”
우뚝.
초아가 산군의 앞을 가로 막았다.
짧디 짧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
[아오 비켜! 저 놈 멱을 따버릴 거다!]“주, 죽이는 건 나빠요! 안돼!”
단연코 안 된다며 초아는 산군이 들고 있던 앞발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그를 막았다.
[아오, 이걸 확!]“꺅! 새, 색시 때리는 서방은 나쁜 서방이랬어요!”
[누가 네 서방이야 누가! 아오 진짜……. 내가 뭔 죄를 졌길래!]산군은 숨을 푹푹 내쉬고 땅을 쾅쾅! 짓밟아 분을 삼키다 말똥이라 불린 사내를 보며 명했다.
[저놈이 정신을 차리면 백산 꼭대기로 보내야 할 재물을 보내라 이르거라! 한 톨이라도 남겼다간 그때야말로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히익!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에잇, 니미럴.]“앗! 같이 가요!”
[저리가! 꼴도 보기 싫다!]“힝…….”
그러면서도 초아는 슬금슬금 산군의 뒤를 쫓아갔다.
말똥은 십년감수했다는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보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산군의 신부라니……, 그럼 비……. 산비(山妃)……인가?”
그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다 마당에 털썩 드러누웠다.